외딴집 - 상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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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시립 어린이집의 원감으로 있는 친구가 어린이집 선생 초년병 시절에 해 준 이야기였다. 어린이집 선생이 되고부터는 아이들의 손톱을 유심히 보게 된다고. 아이의 손톱이 관리되어있는 정도를 보고 그 아이에 대한 그 아이의 부모나 집안의 애정을 가늠하는 버릇이 생겼다고. 그리고 그 가늠은 별로, 틀리는 일이 없더라고. 

친구의 손톱이 내게는 이름이었다. 나는 누군가의 이름으로, 그 사람에 대한 그 부모의 애정을 읽는다.

지금은 '지서'라는 단정하고 예쁜 이름을 가진 4살 여자아이의 부모는 한때 00라는 이름을 염두에 두었더라고 했다. 이름만으로는 참 예뻤다. 그러나 그 아이의 엄마가, 말하기를, 어릴때는 그 이름이 얼마나 이쁘냐고, 하지만 할머니가 되었을때 "이00 할머니~" 라고 불릴 그 아이를 생각해 보라고, 도저히 그 이름을 붙여줄 수가 없었다고. 나는 이런 사연들에서 아이에 대한 부모의 역할과 권한 사이의 편안한 균형을 읽는다. 나는 어리고 귀여운 여자아이에게 똑 떨어지게 어울리는 화려하고 요란한 이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이 언제까지나 어리고 귀여운 아이일 수는 없으니까.

고 3때 짝꿍의 이름은 윤경이었다. 정확한 한자가 생각나지는 않는데, 允 자를 썼던 것만 기억이 난다. 아주 흔해빠진 이름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드문 이름도 아니어서 우리반에는 큰윤경이와 작은 윤경이가 있었다. 친하게 지내던 다른반의 윤경이도 둘이나 더 있었다. 그 흔한 이름이 내 짝꿍 윤경이에게 가서는 특별해졌다.  

공부를 잘하고 행동거지가 단정했던 그 아이는 사전의 제일 뒤 표지 안쪽에 자신의 이름 두 글자를 한자로 써 놓고 그 이름의 뜻에 대해 아래에 적어놓았었다. 지나가다 슬쩍 봤는데, 한자가 짧은 내 눈에도 그 아이의 윤경이라는 한자의 뜻과 완전히 일치하는 해석은 아니었다. 그래서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그 아이의 아버지가 자신의 이름의 뜻에 대해 설명해 주신 거라고 했다. 그 말을 하던 그 순간 윤경이는 얼마나 특별해 보였는지. 그 아이의 뒤로 아버지의 사랑이 후광처럼 드리워진 것이 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 아이를 제외한 내가 아는 어떤 윤경이도 자신의 이름풀이를 가지고 있지 못했다.

나중에 윤경이는 그 아버지가 풀이해 주신 이름 풀이대로 정말 좋은 사람이 되었다. 나는 그녀의 오빠에 대해서도 내가 아는 괜찮은 남자 다섯손가락 안에서도 첫째 둘째로 꼽아주었는데, 그녀에 대해서도 역시 그렇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 좋은 사람이 된 것에는 이름 속에 숨은 사랑이 큰 역할을 했을거라 생각한다. 신경써서 이름을 지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이름의 뜻을 설명해 주는 그런 애정이라니.  

이 소설은 이름으로 시작하여 이름으로 끝난다. 10살된 여자아이의 이름은, 음은 같지만 한자가 달라진다.  

호. 바보의 호. 하녀의 몸에서 태어난 손녀딸에 대해 분노한 할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다. 글 중간에도 나오지만 "정말 심한 이름" 이다.  

그 이름은 아마도 일본어로는 같은 "호"라는 음을 쓰지만 방향을 뜻하는 方 으로 바뀌었다가 나중에는 보물을 뜻하는 寶 로 바뀐다.  

바보에서, 방향을 아는, 더 이상은 바보가 아닌 사람으로, 그리고 이번에는 보물로까지. 첫번째 이름을 제외한다면 모두 애정이 담겨있는 이름이다.  

야마오카 소하치의 소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서 보면, 에도시대 일본인들은 이름을 바꾼다는 것에 대해 별로 거리낌이 없었던 것 같다. 당장 주인공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름은 1부에서만도 몇번이나 바뀌는지, 결국 충무공은 그 때문에 도쿠가와 이에야스 읽기를 포기하고 말았었다. 넌 정말 그 이름이 다 기억이 나니? 라는 질문과 함께.  

그런데도 가가님은 호의 이름을 바꿀때 음은 그대로 둔다. 한자만 바꾸어준다. 그 배려에서 섬세한 사랑을 읽는다. 그리고 그런 배려를 가진 사람의 삶에 일어난 일들에 대해 슬퍼하게 된다. 고토에의 죽음에 대해서도 그렇고. 아. 정말 세상은 착한 사람이 살기에는 힘든 곳인지도. 

남들보다 한참이나 늦게 미미여사와 열애중이다. 정말 재미있지만, 

난 때때로 미미여사의 글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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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7-07 1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이거 동료에게 빌려놓고 아무래도 손이 가질 않아 내팽개쳐두고 있는데 이젠 좀 읽어봐야겠어요. 게다가 리뷰가 정말 맛깔스러워요. 저도 요즘 이름에 대해 생각하고 있거든요. 물론, 아시마님이 접근한 의미와는 좀 다르지만 말예요. 그래서 이 리뷰가 제게는 조금 더 뭐랄까 특별하게 느껴진달까요.

좋은 리뷰에요. 추천도 기꺼이 하고 갑니다. 그리고 곧 저도 읽어볼게요, 아시마님.

아시마 2010-07-09 12:05   좋아요 0 | URL
전 사실 이 책 1차 시도 했다가 50페이지쯤 읽고 덮어뒀다 다시 읽은 거예요. 치밀하고 잘 계산된 구조는 미미여사의 장점이겠지만, 또한 그게 그대로 단점으로 작용하기도 하더라구요. 특별히 이야기를 꼬아놓는 것도 아닌데 초반 몰입을 약간 방해하는 구석이 있죠. 그러니 결론은, 처음에 안땡겨도 꾹 참고 읽으삼!

이름... 전 이름에 맺힌게 많죠. ㅎㅎ

마녀고양이 2010-07-08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미 여사의 글은 추리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자꾸 뒤돌아보게 만들죠.
외딴집은 저두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었습니다.
그래도 한동안 미쳐서.... 엄청 읽었는데 말이죠. ^^

이름...... 부모님들이 조금더 소중한 이름을 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신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진정한 이름은 자신과 지어준 이만 아는거...
저는 그런 생각이 좋습니다. 이름은 힘이 깃들여 있으니까요..

아시마 2010-07-09 12:11   좋아요 0 | URL
네. 미미 여사의 글은 은근히, 꽤나 슬퍼요.
전 모방범이 한창 인기를 끌때 사두긴 하고 읽진 않았거든요. 이번엔 모방범 한번 시도해 볼려구요.

이름에 힘이 있다는 생각은 저도 동감이요. 전 몇번 그런 걸 느꼈거든요. 아마 우리나라 성명학이 발달한 것도 그같은 이유 아닌가 싶어요.

마녀고양이 2010-07-11 09:23   좋아요 0 | URL
재미로만 치면, 모방범이 제일 재미있습니다~

저절로 2010-07-09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녀의 '화차'를 질러놓고 '예수'에게 계속 순위가 밀리는 바람에 책장에 벌만 세우고 있었네요. 님의 글 보고나니, 책상위에 눕혀 놓고 읽어볼 작정입니다.

님의 리뷰는 제게 '평온'을 주는 것 같아요. 이 책은 말이야.내가..하며 귀밑에서 자근자근 소곤거려 준다고나 할까요. 추천,땡스투 행복하게 꾹 누르고 갑니다.^^

아시마 2010-07-09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화차도 참 좋았어요. 그리고 화차 역시 은근히 슬펐어요. 차라리 주인공이 뭔가 거대한 욕심을 가지고 있거나 한 사람이었다면 덜했을텐데 평범하기가 정말 가장 어렵죠.

과분한 칭찬이지만 기쁘게 받겠습니다. 아마 알라딘을 좋아하는 것도 서재질을 하는 것도 모두 그런 이유 아닐까요. 님의 그 칭찬을 듣고 보니 알겠어요.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은 평온의 한 방법 같아요. 모든 책이 다 그런건 아니고, 오히려 평온을 깨는 책들(ex. 지식채널e, 청춘의 독서, 삼성을 생각한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등등)도 분명 있지만, 그래도 그 책을 읽고 책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장미 비파 레몬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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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만에 읽은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 단점을 꼽자면 그 또한 끝도 없지만, 그래도 에쿠니 가오리에게는 굉장한 장점이 있다. 에쿠니 가오리는, 일상의 미세한 균열을 감지해 내는 감도 좋은 안테나와 그것을 그려 낼 줄 아는 섬세한 필력을 가졌다. 아주 사소한 몇가지의 나열로 그것을 묘사해 낼때는 때때로 감탄이 나온다. 확실히, 지나치게 지리멸렬하고 무기력한 인물들에 잔잔한 것도 좋지만 기승전결을 매길수도 없을만큼 사건이라고 할 것이 일어나지 않는 심심한 소설이라는 혹평을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그 안에서도 그런 섬세함은 빛을 발한다. 그것이 아마, 에쿠니 가오리를 여전히 일본과 한국에서 인기있는 여류작가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힘일 것이다. 

이 책은 에쿠니 가오리의 그런 장점이 특히 잘 살아있는 책이다. 아홉명의 등장인물과 네쌍의 부부와 일곱쌍의 불륜 커플들의 이야기. 이 아홉명의 등장인물들, 그 중에서도 기혼자들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무기력함이다. 특별히 성격자체가 유약하거나 해서는 아니고. 다들, 일상의 미세한 균열들을 더이상 벌어지지 않게하는데 집착하느라, 또는 그 미세한 균열들을 모른척하며 살아가느라 진이 빠져 또 다른 일을 벌일 기운이 도저히 나지 않는 그런 사람들이다.  

결혼을 해 보면 알게된다. 왕자님과 공주님은 결혼을 했습니다, 라는 구절이 이제 행복만이 남아있습니다, 라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예전에는 신데렐라도, 잠자는 숲속의 공주도, 벨도 백설공주도 왕자와의 결혼 장면을 마지막으로 동화책을 덮을때 행복으로 충만함을 느낄수 있었지만, 이제는 안다. 그 왕자에게는 왕자를 낳아준 시부모님도 있고, 아마 왕궁에서 시집살이를 해야 할 것이며(그렇다, 그는 아직 왕자인 것이다. 왕이 아니라. 실권을 쥔 권력자는 따로 있었던 것이다.) 책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 왕자에겐 여동생 또는 누나가 있을수도 있다. 그리고 이런 시댁의 문제가 없다고 해도, 그 왕자에겐 백설공주가 알지 못했던 주사가 있을 수도 있고, 야수의 탈을 벗고 사람이 되었지만 야수시절의 폭력성이 여전히 남아있을 수도 있고, 신데렐라를 찾아 헤매느라 가진 돈을 다 써버린 빈털털이 일수도 있고, 잠든 여자만 보면 매력을 느끼고 덤벼드는 바람끼가 있을지도 모른다. 생명을 구해주었기에, 힘든 하녀 생활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기에, 천년간의 잠을 깨워주었기에 앞 뒤 잴 것 없이 고마움과 사랑을 분간하지 못하고 결혼을 했던 공주들은, 어느날 레드 썬 하고서 자신이 왕자에게 고마워하고 있을 뿐 전혀 사랑하지는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다.  

결혼이란 그런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를 쓰고 결혼을 유지해 나가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고, 굳이 헤어져야만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일수도 있고, 상대방의 치명적인 단점을 알고 있지만 여전히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일수도 있고, 여러가지 이유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구절이 아마, 이 소설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구절이 아닐까. 

   
  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 (p. 244)  
   

 

남편 시노하라에게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해(물론 시노하라는 이혼 당해 마땅한 상황이긴 했었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를 수는 있겠으나.) 결국 이혼을 해 버린 에미코가 하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이 고비에서 삶이 갈라진다.  

사실 생활이라는 건 습관의 연속인 법이라서,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 어이없는 상황이어도 정작 그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그렇게 굳이 또 못견딜 것도 없는 그런 상황이 된다. 결혼도 그렇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에미코는 단호하게, 

   
  그냥 그대로라면 뭐 때문에 결혼했다는 말인가. 이미 사랑하지 않는 남자와. 애당초 사랑하지 않았다고밖에 여기지지 않는 남자와. (p. 244)   
   

 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다면, 그냥 그대로 지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선택은 자신의 몫이다. 에미코는 그냥 그대로 지내지 않기로 결정을 한다. 그리고, 남편 신이치에대해 이미 정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버린 아야는 그렇지만 그냥 그대로 지내기로 결정을 한다. 어느쪽의 결정도 100% 만족스럽지는 않다. 어느쪽으로 결정을 내리든 50%의 불만과 불안은 늘 공존을 한다. 이혼을 해도 하지 않아도. 결국은 누구와 산다고 해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도우코는 산책길에서 만난 남자 신이치와 불륜에 빠지지만, 그게 사랑은 아니고, 연애를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상태다. 남자들이 흔히 말하는, 가정은 깰 생각이 전혀 없지만 그냥 연애는 즐기고 싶은 그런 상태. 아, 나 그 기분 뭔지 정말 너무 잘 알겠는 거지. -_-;;;(헉 이건 위험 발언인데.) 

이 이야기에서는 하나의 커플이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두 커플이 정식으로 이혼을 하는 걸로 끝이 난다. 물론 그 안에 불륜으로 맺어지는 커플도 있고, 연애 상태였다가 깨어지는 커플도 있기는 하지만, 법률이라는 한계 안에서 보면 그렇다는 거지.  

딱히 재미있다거나 특별히 기발하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때때로 이런 소설을 읽는 건 그것 나름대로 또 의미가 있다. 다시한번 뭔가에 대해서 너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습관이 되어버리는 사랑에 대해서, 그것이 얼마나 쓸쓸한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주니까. 그러니까, 사랑이 습관이 되게 하지는 말으라고, 그냥 그대로 지내지 못할 것도 없어서 같이 사는 그런 관계가 되지는 말자고, 연애때처럼 그렇게 죽자사자 목을 늘이지는 못해도, 그래도 내가 당신과 사는 이유는 내가 낳은 아이들의 아버지이고, 굳이 이혼하는 것도 귀찮아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해서라고 느낄수 있게 살아가자고, 그런 생각들을 하게 해준다. 

그래... 이제 알 것 같다.  

일상의 균열이라는 거, 눈에 보이지도 않을만큼 미세하지만 분명 균열은 균열로서 생겨있을때, 사람은 참 쓸쓸해 진다. 이 소설을 읽는 내내 마음이 왜 그리 스산했는지 알 것 같다.  

더 많이,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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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7-0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그대로 지낼 수도 있었는데...로 시작해
더 많이, 더 열심히, 사랑하고 살아야겠다...끝나는
리뷰, 감명깊게 잘 봤습니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고 한번 결정히면 그저 최선을 다해 만족하도록 하면 되는것이란 생각이 다시 드네요.

아시마 2010-07-02 19:31   좋아요 0 | URL
행복도 불행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라는 말을 누가 했었는데... ㅎㅎ
타인의 행 불행을 너무도 쉽게 재단해서 말하는 사람들에 대해 분노스럽다는 건 돌아가신 박경리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구요.
열심히, 그냥 말고 행복하게, 그렇게 살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타인의 행 불행에 대해 내 맘대로 재단해서 말은 물론이고 생각도 하지 말자는 생각도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재단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좀 더 많이 행복할 수 있을거라는. (앗, 이건 공지영 책에서 공지영이 한 말 같기도 하군요.)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노력하려는 태도도 필요하고... 때로는 그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인정할줄 아는 용기도 있어야 할테고...
인생에 필요한 것들은 참 많아요, 그쵸?

루체오페르 2010-07-02 22:26   좋아요 0 | URL
아 참 공감가는 말씀들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나이를 떠나 삶에 필요한 그런 것들을 체득,체화 시켜나가는 것이 연륜인듯 합니다.

누가 하신말인진 모르겠으나, 불경에도 비슷한 말이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으나...
'행복도 내가 짓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짓는 것이네. 아,진정 행복도 불행도 나의 것, 다른 이가 아니네'

마녀고양이 2010-07-03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동안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탐독하다시피 했었습니다. 푹 빠져지냈죠.
머랄까... 말이 많지 않음이, 그리고 표현이 과하지 않음이 마음에 들었달까요.
한참 생각하게 만들고 가끔 슬프게도 만들지만.... 그래도 편안하게 읽을 수 있어서,
제 회피 성향에 잘 들어받는 글들이었답니다.

결혼 이후의 이야기들. 절대 공감합니다. ^^

아시마 2010-07-05 11:55   좋아요 0 | URL
그쵸, 에쿠니 가오리의 글은 약간 회피성향이 있는 사람에게 잘 맞는 것 같아요. 그 등장인물들이 사건에 대처하는 방식이나 삶의 방식이 회피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그런건가 싶기도 하구요. 한편으론 또 너무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구요.

결혼 이후의 이야기들은... ㅎㅎㅎㅎ 결혼을 하면 너무 절감을 하는 것들 아닐까 싶어요. 뭐, 남자들도 그렇겠죠, 도대체 어디서 그런 것들을 느끼는 건지 모르겠지만요. 사실 저도 알고 싶어요. 남자들아, 니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니...

blanca 2010-07-06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마님과 저가 좋아하는 지점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랍니다. 저는 에쿠니 가오리가 대단하지 않은 얘기들을 그 대단하지 않게 풀어 나가는 그 섬세한 필력이 넘 좋아요..그게 일상의 균열을 감지하는 능력이었군요! 잘 읽고 갑니다.

아시마 2010-07-07 12:41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과 제가 그렇게 접점이 많다니 전 좋기만 한데요. ㅎㅎㅎㅎㅎㅎ

전 그래도 에쿠니 가오리를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전 좀 더 열정적인 타입이 좋거든요. 소설도 서사가 강한 쪽을 선호하는 편이구요. 저한테 에쿠니 가오리는 너무 심심해요.

더 중요한 건, 이렇게 말하고 있으면서, 에쿠니 가오리 소설은 죄다 사다 모으고 죄다 읽었다는 거. -_-;;; 뭐냐구요, 대체.
 
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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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인엄마, 우리 아파트에 귀신있다는 거 알아?" 
"어머, 진짜요? 진짜진짜진짜? 어떤 귀신인데요? 어디서 나온대요?"
"아이고... 다인엄마도 참. 애들처럼. 귀신 이야기 좋아해?" 

뭐... 어른은 귀신이야기 좋아하면 안되나. 내가 이사온지 3개월이 좀 넘은 이 아파트에 오래 살았던 그 분은 귀신 이야기의 서두만 꺼내놓고 뒷말을 흐렸다. 덕분에 밤마다 좀 으스스하긴 하다. 어차피 밤엔 나다닐 일도 없지만.  

난 귀신은 싫어하는데, 정확히는 굉장히 무서워하는데, 귀신 이야기는 좋아한다. 저승으로 가거나 새로운 생을 받아 태어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귀신의 이야기는 그만큼 절절한 사연을 가진 것이라 정확히 내가 좋아하는 것은 그 사연과 이야기이다. 나는 그래서 사연없는 귀신은 무서워하는 것만큼이나 싫어라한다. 그 사연이 모두에게 잊혀진 뒤에도 남아서 떠도는 귀신은 구질구질해 보인다.  

귀신이 되어 구천을 떠돌만한 영혼의 사연이란 미련이 되었건 원한이 되었건 비범을 넘어선 임팩트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귀신 이야기에 열광하는 것일테다. 단순히 살아있는 사람들의 원한과 미련과는 도저히 대적이 되지 않는 강도니까. 죽음으로도 끝내지 못한 원한 또는 사랑이라니. 오오오오.  

이 책에 실린 아홉편의 이야기는 한편을 제외하곤 모두 귀신이야기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난 미야베 미유키를 읽다보면 종종 쓸쓸하면서도 따스한 무언가를 느낀다. 미야베 미유키는 삶과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 것인지를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인정을 잃지는 않는데, 그 인정이라는 것이 소설, 나아가 사회 전체를 따뜻하게 데울 무언가는 절대 되어주지 않고, 이 차갑고 쓸쓸한 세상의 아주 작은 위로가 되어주는 정도다. 오히려 그 인정이라는 것, 인간성이라는 것이 존재함으로 해서 세상의 쓸쓸함이 더욱 부각되는 느낌이랄까. 

미야베 미유키의 그런 분위기는 귀신이야기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일본의 에도시대, 작은 상가와 그 상가의 고용일꾼들의 이야기인 이 책에서도 미미여사 특유의 냉정한 세계관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고, 그 속의 따스함도 여전하다. 아. 그녀 소설의 따스함은 너무 미약한데도 너무 따뜻해서 참 눈물겹다.  

그리고, 여전히, 재미있다. 

재능이라는 것도 유전되는 것일까. 그녀의 아버지는 일본의 굉장히 유명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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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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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우부메의 여름에서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읽다가, 이건 데자뷰도 아닌 것이 아닌 것도 아닌 것이 뜬금없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한 구절이 있었다.  

"언제나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았던 사람이 어느 날 밤을 꼬박 새고 남들처럼 살겠다고 다짐한다면 그걸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머리가 터지는 줄 알았다. 처음엔 일본소설쪽 쳅터를 뒤졌고(일본소설을 읽다 생각난 구절이니 당연히.) 하루키를 뒤지다가 피츠제럴드와 레이먼드 챈들러를 거쳐 드디어 찾아냈다. 김연수였다. 헐. 도대체 김연수와 나츠히코는 무슨 연관을 가지는 걸까. -_-;;; 신기하여라 대뇌피질이여.

물론 저 위의 구절이 정확하게 떠올랐던 건 아니고, 저와 비슷한 구절이 있었는데, 하며 뒤진거였다. 저 구절은 이 소설의 정확히 33페이지 중간쯤에 등장해주신다. 덕분에 이 재미있는 소설을 다시 읽었다. 얌얌. 다시 읽어도 역시나 재미있다. 역시 김연수, 기가 막힌다.  

<굳빠이 이상>은 나름 김연수의 출세작이라 할 만한데, 이 소설 덕에 김연수는 적어도 나와 내 주변의 몇몇에게 좋고 잘 쓴 소설이지만 약간 현학적이고 어려운 글이라고 낙인찍힌지 오래였다. 이 소설은 그 낙인을 휘익 날려줬다. 사실 실제로 읽어보면 김연수의 소설은 분명 지적 유희를 즐기고 인문학적 지식의 폭이 넓게 펼처져 있긴 하지만, 읽기가 어렵지는 않다. 그의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선입관이란 무섭다.  

그리고 이 소설에 등장하는 진우는, <우부메의 여름>에서의 교고쿠도와는 다르지만 역시나 장광설이라는 면에서는 일치하는, 굉장한 변설가다. 깐족깐족 어찌나 얄미운지 한대 콕 쥐어박았으면 딱 좋겠다 싶은 점이 전혀 다르지만.  

그리고 세상엔 의외로 진우같은 놈이 많은가보다. 

내 친구 K양은 고전적이게도 집안이 정해주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이건 선하고는 또 달랐다. 선에도 집안 어른들이 개입하기는 하지만(주로 엄마) 결정권은 당사자에게 있다(... 음. 아닌가.) 대부분의 선은 일단 몇가지 조건에 의해 선발된 두 남녀가 만나 두 남녀의 의견이 일치되고 나면 양가의 부모에게 '형식적인' 추후 승인을 받는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내 친구 K양은 아버지가 결혼하라고 정해준 남자를 만나러 나갔다. 이건 부모가 결정을 본 다음 자녀에게 지시(통보도 아니고.)를 내린 거니까 선과는 전혀 달랐다. 당시 좀 심드렁하게 거의 끝이 보이기는 했으나 어쨌든 연애중이었던 K양, 펄쩍펄쩍뛰며 내가 사네 못사네 아빠땜에 죽네 사네 (그렇다, 선은 주로 엄마가 개입하고 정혼은 주로 아빠가 개입한다. 보통 태내 혼사는 아부지 친구의 딸또는 아들하고 한다.) 나가서 보기 좋게 걷어차주고 올테니 너희는 내가 나가있는 동안 30분마다 한번씩 전화를 하라는 둥 어쩌는 둥 하고는 나가서는, 그날로 홀딱 반해서(이건 반전인가 아닌가 -_-;;;) 그 남자를 만난 그 주 주말에 남자친구를 정리해 버리고는(주말까지 기다린것도 그 남자와 만날 시간이 주말밖에 없었기 때문이고...) 5-6개월 불타는 연애하더니 휙 결혼해 버렸다. 내 친구들 중엔 가장 진부하고도 가장 어이없는 결혼이었으나 가장 잘 어울리고 가장 행복한 결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녀와 내가 아는 그녀 결혼의 뒷이야기가 또 하나 있으니,  

K양의 남편인 L씨는 친구가 무척 많은 사람인데, P는 L의 가장 친한 친구 그룹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었다. 앞서 말한바, 집안의 정혼(-_-;;;)이 이루어 진 상태의 여자친구였으니 P에게 K는 가장 친한 친구의 예비 신부였음에도 불구하고, K에 대한 P의 추근거림은 꽤 집요한데가 있었다. K는 끝까지 P에게 그 일이 기억나지 않는 척 했고, P도 끝까지 K에게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지만 실제로 K가 L씨를 만나기 한참 한참 한참 전에 K와 P는 함께 술을 마신적이 있었다고 했다. (아... 정말 세상은 좁고도 좁은 것이다.) P는 K의 친구의 남자친구의 친구여서, 각자 친구를 한명씩 끌고와서 술을 먹는 2:2 술자리가 한번 있었다는 것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소개팅이라고 할수도 있었겠지만, 이름 붙기가 소개팅은 아니었고, P는 어땠는지 몰라도 K는 P도, P의 친구이자 친구의 남친이었던 그 사람도 다 별로여서 두번다시 만날 염도 안냈다고 했다. P쪽에서도 아마 K가 별로였으니 그 뒤로 연락도 없었을 터였다. 그리고 그나마도 대학 1-2학년때의 일이니 기억났다는 게 어쩌면 더 기적이었을지도.  

K도 처음부터 P를 기억하지는 못했고, 몇번 만나다보니 기억이 나더란다. 그 P가, 친구의 아내가 될 K에게 L씨 몰래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L씨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고 있던 K는 기겁을 했다. 처음엔 모르고 두어번 전화를 받았고, 그 뒤로는 P의 번호가 뜨는 전화는 받지를 않았다. 그랬더니 P는 다른 번호로 전화를 하기 시작했고, 새벽이며  한밤중에, K가 L과 있음을 뻔히 아는 시간에, 또는 P가 L씨와 함께있으면서도 전화를 해 K를 기절시켰다. 처음부터 L씨에게 말을 했었어야 했는데, L과 P의 사이가 유별나게 돈독함을 알고 있었던 K는 이러다 말겠지, 내가 반응안하면 그만두겠지, 하며 참고 있다가 더이상 참을수 없는지경, 어느 한계점을 넘어섰을때는 이미 L씨에게 말을 할 타이밍을 놓친 다음이었다. 지금과서 L씨에게 말을 해 봐야, 그동안은 왜 말을 하지 않았냐는 말을 듣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뭐 이러저러 날을 잡고, K가 전화기 분실을 계기로 한동안 이런 저런 핑계로 전화기를 만들지 않고... 이러면서 그 상황은 대충 끝나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지금 K와 L씨는 애 둘 낳고 잘 산다. P는 여전히 L씨의 친구이고. L씨는 아직도 그 상황은 모르는 것 같고.  

세상엔,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다. 정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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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메의 여름 백귀야행(교고쿠도) 시리즈
쿄고쿠 나츠히코 지음 / 손안의책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에는 언령(言靈)이라는 개념이 있다. 한국식으로 옮기면 "말이 씨된다" 정도로 이해할 수는 있겠으나 정확하게 합치되는 의미는 아니다. 일본식 언령의 개념은, 일단 말이 사람의 입 밖으로 나오게 되면 말 그 자체가 의지를 가지고 그 말이 뜻하는 바를 이루려고 한다는 거니까 굳이 표현을 하자면 일종의 주문에 해당 되겠다. 언령이란 그 뱉어진 말이 가지고 있는 의지를 표현한 말이다. 한국어에는 이와 완벽하게 합치되는 단어가 없다.  

사물이 언어를 만들기도 하지만 언어가 무언가를 규정하기도 한다. 한국에 없는 언령이라는 단어는, 한국에는 언령이라는 것이 없고, 한국인은 언령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국어 사전에 등장하지 않는 단어다.) 원념이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원념은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기는 하지만 한국인은 원념이라는 단어보다 원한이라는 단어를 더욱 즐겨, 폭넓게 사용한다. 원념에 비해 원한은 좀 더 구체성을 가지고 있고 좀 더 개별화된 감정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원한은 그 상대를 가지고 있다. 원한이란 대상이 존재할 때에만 성립할 수 있는 개념이다.  

원념은 국어사전에서 "원한을 품은 생각이나 마음"으로 풀이한다. 솔직히,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_- 나는 원한이라는 개념은 이해하지만 원념이라는 개념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어렴풋이 이런 것이려니 짐작할 뿐이다.  

이 책의 우부메는 원념이다.  

"우부메라는 것은 아마 산고로 죽은 사람의 유령이었지?"
"아니, 유령은 아닐세. 이것은 '산고로 죽은 여자의 원념'이라는 개념을 형상화 한 것이야. 뒷집 야마다 씨 딸이든, 귀족의 딸이든, 출산을 하다가 죽은 경우에는 그 원념이 표현되네. 동시에 이것이 나타나면 산고로 죽은 임산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유령이 아니라는 증거로 개인을 저주하지도 않고, 무엇보다 원망스럽다는 표정도 아니야."
p. 72

 

그러니까, 우부메는 특정 한 개인의 유령이나 원령이 아니다. 령(영혼)이 아닌 념(생각)이 남아있는 것이다. 영혼, 즉 유령은? 뭐, 승천했나보지.

영혼이 아닌 생각이 남아있다는 개념은 한국인에게도 아주 낯설지만은 않은 개념이다. 동해안의 대왕암은 신라 문무왕의 무덤이다. 신라를,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그의 염원이 그대로 남아있다. 그곳에서 우리가 찾는 것은 문무왕의 영혼이 아닌 염원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우를 제외한다면, 한국인에게 원념이란 그다지 익숙하지가 않다. 언령이라는 단어와 개념이 낯설듯이. 문화적 차이인 걸까, 한국의 전통신앙도 다신의 개념이고 부뚜막에서부터 빗자루 까지도 신격화 할때가 있지만, 그건 그야말로, 인격화 되는 신의 개념이다. 항상 인간의 모습을 띤 신이라고 해야 하나. 부뚜막은 부뚜막 그 자체로 신이 아니라, 부뚜막에는 조왕신이(그러니까 인간의 형상으로 교체시키고 인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산다는 개념이다. 오래 쓴 빗자루에 사람의 피가 묻으면 그 빗자루가 도깨비로 변신을 한다는 것 또한, 빗자루의 인간화다. 한국인의 모든 사상에는 인간을 바탕에 깔고 있다. 모든 것이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헷갈리는 대목은 여기서부터다. 원념이 남았다, 이건 알겠다. 그래서 그 원념이 원하는 게 뭔데? 원념을 남긴 이유는 무엇이며, 하긴 원념이 원념 스스로 남은 것이지 사람이 원념을 남긴것은 아닐테지만.  

한국의 유령, 원혼령, 귀신의 개념은 상당히 산뜻한데가 있다. 아랑 전설을 생각해보자. 아랑은 자신의 원한을 갚아달라는 선명한 목표를 가지고 나타난다. 원한을 갚고 난 뒤의 아랑은 풀어헤쳤던 머리 싹 걷어올리고 피줄줄 흘렸던 입가 세수 싹싹 단장하여 단정한 모습으로 나타나 사뿐하게 절 하고 감샴다~ 하고 사라져 버린다. 두번다시 안나타난다. 은원관계가 분명하고 처음과 끝이 확실하다. 이 아랑전설이 일본으로 넘어가면, 

강간당하는 여자가 있는 곳마다 아랑이 나타난다는 말이 된다. 정확하게는 아랑의 원념이. 아니 웬 귀신이 이렇게 오지랍이 넓담. 게다가 더 중요한 건 그 강간을 막지도 못한다. 그냥 원념일 뿐이니까. -_- 그럼 너 왜 왔니? 가 되는 거지. 아하. 그럴 수는 있겠다. 이게 화간인지 강간인지 구분을 못할때 아랑이 나타났으면 강간이고 안나타나면 화간이고... 뭐. 이런 효용이 있는 건가. (아. 말이 점점 산으로...  '') 

예전에 스즈키 코지의 링을 읽었을때의 그 이해할 수 없는 위화감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이건 뭐, 원하는 게 뭐냐고, 원하는 게 있으면 그걸 줘서 달랠수라도 있지 이건, 뭐, 아무것도 없는 그저 원념이라니 어쩌라고.

누가 그랬지. 공포란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사흘에 걸쳐 이 책을 읽으면서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특히 우부메가 나타나 난처한 표정으로 아이를 내미는 장면은 우와 완전 압권.  

이런, 이해할 수 없다는 개념하고는 별도로,  

소설은 굉장히 잘 짜여져 있고 현학적인 언어유희들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었다. 특히 마지막의 교코쿠도의 설명은 이 작가의 이후 작품을 죄다 읽어보리라는 투지에 불타오르게 만들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념이라는 개념은 낯설고 이해되지 않는다. 흠. 

난 종종 이해할 수 없다고 느낄때가 있는데 말이다. 유럽이나 미국의 문학작품에서조차 느껴지지 않는 이러한 위화감이 현해탄 그 좁은 바다를 사이에 둔 일본의 문학에서는 왜 이리 심하게 느껴지는 걸까. 이유가 뭘까.  

ps. 이 리뷰는 에파타님의 우부메의 여름 리뷰를 읽고 이 책이 급 땡겨 사흘동안 읽은다음 부랴부랴 쓴 것임을 밝혀둡니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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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6-26 1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고쿠도의 장광설에 혹해서 저도 이 시리즈를 망량의 상자와 광골의 꿈까지 읽었는데요, 아시마님, [망량의 상자]는 정말 재미있어요. 우부메의 여름이 뭔가 충격적이고 신선했다면 망량의 상자에서는 익숙해져서 더 푹 빠져들 수 있달까요. 전 세권중에서 [망량의 상자]가 제일 좋았어요. 교고쿠도의 장광설에 언제나 혹하죠.

아시마 2010-06-27 22: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우부메의 여름은 예전에 사서 쟁여놓은 책이라 읽을 수 있었으나. 망량의 상자는... ㅠ.ㅠ 망량의 상자가 제일 좋았다니 어우어우우...
링도 그렇고 이 책도 그렇고 넘 재미있다 미친듯이 읽어놓고, 남들한테는 진짜 잼나더라 읽어봐, 할 생각도 가지고 있지만서도, 저는 두번다시 읽지 말아야지 결심결심하며 덮었더랬지요. 그런데 망량의 상자 이야기를 하시니... 결심이 마구 흔들리고 있어요. 흑흑...

저절로 2010-06-27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우부메의 여름은 우선 '요괴'라는, 것도 출산하다 죽은 여자요물이라는 것에 콩깍지가 씌기 시작해 책 속 독특한 캐릭터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순식간에 사건속으로 함몰되고 말죠. 문제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을 어떻게 견디어 내느냐에 따라 희노가 갈라지죠.
다락방님의 말씀대로 '망량의 상자'는 그야말로 저자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러울 정도로 슈퍼기괴합니다. 딸아이의 밥 내몰라라하고 광골의 꿈까지 읽게한 마력의 책이죠.

거기에 비해 '광골의 꿈'은 뭐랄까. 의학, 특히 정신분석학에 대한 저자의 견해를 피력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짜맞춰 진 듯한 '인공의 냄새'가 나요. 더군다나 교고쿠도의 장광설은 이 책 말미에서 절정(?)을 이뤄요(미칩니다 아주).

님의 리뷰를 보니, 리뷰쓰기가 겁날 정돕니다.(넘 잘쓰신 거 아녜요? ^^)

아시마 2010-06-27 22:44   좋아요 0 | URL
옴마나. 웬 겸손이십니까. ^^ 전 에파타님 리뷰나 페이퍼 맨날 얼마나 감탄하며 읽는데요.

저는 교고쿠도의 장광설이 좋았어요. 저하고 잘 맞았죠. 이건 무슨 궤변도 아닌것이 궤변이 아닌 것도 아닌 것이 그야말로 따라올테면 따라와봐 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이해할 수 있다면 계속 따라와봐. 이렇게요. 전 이렇게 동서고금의 온갖 이야기들을 죄다 끌어와서 내 맘대로 잘라붙이고 끼어맞춰버리는 캐릭터들이 너무 사랑스러워요. ㅎㅎㅎ

그런데요. 교고쿠도의 그 장광설과는 별개로 전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에파타님의 표현대로 "슈퍼기괴"한 그 분위기를 못견디겠어요. 이건 정말 재미하고는 별개의 문제같아요. 전 예전에 스즈키 코지의 링을 읽고서요, 얼마나 기분이 울트라 기괴해졌는지 도저히 그 책과 한방에서 잠을 잘수도 없다는 기분이 들어서, 책을 방 밖에 내 놓고 잠잤다는 거 아닙니까.

지금 생각해도, 링이든 이 소설이든 무지무지 재미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으윽, 여전히 기분이 나빠져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