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는 잘해요 죄 3부작
이기호 지음 / 현대문학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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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보면 한국사람만큼 사과에 인색한 사람들이 없는 것 같다. 어지간 해서는 사과를 하지 않고, 어쩌다 사과랍시고 하는 걸 가만히 들어보면 사과가 아니라 변명 일색이다. 또는 적반하장격의 사과도 있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됐냐? 됐어? 이런식 말이다. 

사과라는 건, 나의 행위에 대해서 하는 게 아니다. 나의 행위에 대해서 하는 말은 사과가 아닌 변명일 뿐이다. 사과란 나의 행위의 결과로 상대방이 입은 마음의 상처에 대해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진정한 사과가 있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마음의 상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보통은 이 과정이 없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나오는 거다. "고작 그런 일에" 라는 식의. 무심코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돌을 던진 사람은 돌팔매에 대해 변명을 하는 게 아니라 살생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한다. 죽어버린 개구리에게 남겨진 가족들의 기막힌 슬픔에 대한 공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으니까, "난 그냥 돌맹이 하나를 던졌을 뿐이예요, 고작 그런 잘못에 제가 살생의 책임을 져야 한다니요?" 라고 묻는 것이다.  

하나의 사건이 일어나면, 책임을 져야 하는 쪽의 진실된 사과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그 일은 종결되지 않는다. 일제의 진심의 사과가 있지 않았기에 한일 근현대사 문제는 아직도 종결되지 않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옛날일을 왜 꺼내냐 하기 전에, 진심의 공감을 바탕에 둔 사과를 해서 이 문제를 종결지으면 간단한 문젠데 말이다.  

사과를 받지 못하니까 사람들은 원한을 품는다. 참 어려운 문제다. 사실 나도 몇개 원한을 품고 있는 사건들이 있는데, ㅎㅎ 앞 뒤 전후의 사정을 들어보면 정말 별 것 아닌 일이고 참으로 오래 전의 일인 것도 있고, 뭐 그렇다. 아마 내가 원한을 품고 있는 그 사람들은 내가 원한을 품고 있는줄도 모를거다. 하지만 나에게는, 사과 받지 못한 원한으로 그것이 생생한 현재형으로 남아있다. 언젠가 그 사람들을 보면 내가 당한만큼 그대로 갚아주리라 이 빠득빠득 갈며 벼르고 있는 사건도 두어개 있다. 나... 순하고 단순한 사람이다. 그냥 사과 한번 제대로 했으면 끝날 일이었는데. 그 사과에 인색했던 덕분에 그 사람들 밤길 조심하게 생겼다. 때로 이런 분노나 원한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크게 자라 내가 파괴되더라도 저들을 응징하고 말리라, 하는 수준에까지 이른다. 내가 죽더라도 널 죽이고야 말겠다는 거지.  

뭐, 하기는. 나에게 이런 원한을 품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장담은 나도 못하겠다,,,, 마는.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잘못을 저지르면 사과라도 제대로 하고 살자. 변명과 사과 정도는 구분해 주면서.  

 

PS. 쓰고 보니 책 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리뷰...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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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농담하는 카메라
성석제 지음 / 문학동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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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는 2003년 동인문학상을 받은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로 나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고보면 나도 참 희한하게 집요한게,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나는 성석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음, 글 잘쓴다는 건 인정. 잘 쓴다, 재미있다 라는 것과 좋아한다는 건 별개의 문제) 황만근 이후로 나온 책을 꾸준히 잘도, 열심히도 사다 날랐고 신간이 나올때마다 참 열심히도 읽었다는 거. 아니 도대체 왜? 심지어는 이전에 나온 책들까지 모두 사다 모아서 성석제 책을 거의 다 콜렉션 했다. 아놔... 왜 그랬냐고. 나 별로 안좋아했다니까, 성석제.  

이 사람, 음식이야기 참 잘한다. 그것도 맛깔나게 잘 한다. 성석제의 음식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가끔 이 사람 만나보고 싶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도 내가, 음식 이야기라면 뭐가됐건 누가 됐건 덮어놓고 좋아하기 때문이지, 굳이 성석제라서는 아니었다. 난 사실 그간 성석제식 글쓰기와 말하기, 성석제식 농담에 익숙하지 않았던가보다. 

그렇지만 확실히 성석제의 글은 유쾌하고 잘 읽힌다. 기분이 꿀꿀할 때면 기분전환에도 도움이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성석제 콜렉션 중 읽지 않은 몇 권 중 하나인 이 책을 꺼내 읽었다.  

그리고, 배를 잡고 데굴데굴 굴렀다.  

사실 내가 성석제를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으면서 그렇게도 열심히 사다 모으고 읽어댔던 건, 사촌 언니 부부 탓이 크다. 그 부부는 2003년 황만근 시절부터 성석제의 광팬이 되어 나를 만날때마다 열렬하게 성석제 찬양을 하곤했다. 그 부부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성석제라나. 그래서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다. 아니 뭐가 그렇게 좋아서? 어디가 그렇게 재미있어서? 난 도무지 싶던데? 그런 생각이 이 책 한권으로 날아갔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성석제의 농담에 98.76% 싱크로 성공한 것 같고, 성석제 찬양에 입에 침이 마르다못해 입가에 침버캐가 끼던 사촌언니 부부의 감탄에 완전 공감하고 있으며, 앞으로 어쩌면 나도 그들과 함께 성석제 찬양 찬동 우상화 작업에 침버캐를 앞세워 나설지도 모르겠다. (훗, 이게 성석제식 글쓰기인거다.) 

성석제의 책이 재미있으려면 일단은 약간 성석제화 되어야 한다. 이 성석제 化 라는 건 도무지 말로는 설명이 안되고, 자신이 겪어봐야 이해가 되는 건데, 세상과 사물과 사건을 보는 눈이 성석제와 겹쳐지는 것을 느끼는 어느 순간이 오면 알게된다. 아, 내가 드디어 성석제 화 되었구나. 그리고 그 성석제의 눈과 싱크로 된 눈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이 특별히 재미있는 건 모르겠지만 성석제의 글들이 미친듯이 재미있는 거다.  

그래, 이 험한 세상 그렇게 무겁게 무게잡고 살 거 뭐 있나, 농담하듯 재미있게 흘러가며 사는 거지.  

당분간은 성석제 주간이 될 것 같다. 이 작가, 이렇게 재미있는 작가였구나.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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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치 체포록>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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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나는 "풍풍 누나"라는 이름으로 불린적이 있다. 아마 내가 초등 고학년쯤 되었을 때였지 싶은데, 그 시기 평일 오전 TV에서 방영하던 유아 프로에 <풍풍 임금님>이 등장해 유아들에게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그야말로 풍풍 해 주며 인기 몰이를 하고 있었다. 나의 풍풍 누나라는 별명은 사촌 동생에 의해 붙여진 이름이었다. 2-3주에 한번, 길면 한달에 한번쯤 만나 서로의 집에서 자곤 했던 외사촌 동생 둘과 내 친동생 하나를 청취자로 나는 세상의 온갖 이야기를 잡탕으로 뒤섞어서 주저리 주저리 풀어놓곤 했다. 그것도 만날때마다 시리즈로 이어가며. 그 시기의 내가 창작(아니, 짜깁기) 했던 이야기로 기억나는 것 중 하나는 <남십자성의 비밀>이라는 거창한 제목을 가진, 흡혈귀 이야기였다. 한참 피며 귀신이며 모험에 열중하던 시절이었다. 흡혈귀가 된 주인공을 사람으로 바꿔놓기 위해서 피를 완전히 빼고 새로운 피를 교차 수혈한다는 황당한 발상에, 한방울이 남아서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했다는 어이없는 설정에도 동생들은 열광했다. 여기서 남십자성은 남반구에서 관측되는 그 별이 아니라 말 그대로 남쪽의 십자모양 성(城)되시겠다. 물론 흡혈박쥐들의 본거지였다.

나는 단연 이야기 달인의 자리로 뛰어올랐고, 동생들은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해 줄거냐고 졸라댔다. 때로는 10살 이쪽저쪽의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고 이야기를 듣느라 새벽이 이울도록 잠도 안자고 있다가 무섭다며 안방으로 뛰어가기도 했다.   

모든 것은, 전설의 짜집기였건만.  

근 1년이 넘게 사촌들 위에 군림하게 만들었던 그 풍풍 누나의 비밀 보따리는 전설의 고향과 초등학교앞에 떠돌던 말도 안되는 해적판 괴담집이었다. 그땐 그런거 많았다. 중국 귀신 전설, 일본 귀신 전설, 학교 귀신 전설 등등등. 최근에 읽고 들은 무서운 이야기들은 생각도 나지 않는데, 그야말로 돌아서면 까먹는데 어릴때 전설의 고향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봤던 "내 다리 내 놔"를 비롯한 전설과 괴담은 지금까지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내 상상력의 바탕에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끊임없이 변주된다. 그건, 일종의 씨앗 같은 거다. 지금 당장 먹을 수 있는 열매가 아닌 씨앗. 복숭아씨나 사과 씨앗 같은. 그것을 심고 가꾸어 그것에서 비롯된 무언가를 만들어 섭취하게 하는 것. 그 자체로는 먹을 수도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고, 먹어본들 맛도 없지만, 그것이 없이는 결과물도 없는 그런 것.

이 책 한시치 체포록도 일종의 씨앗같은 책이다.  

처음엔 셜록 홈즈 시리즈의 번안 소설로 기획되었던 이 책은, 결국 번안물이 아닌 순수 창작물이 되기는 했으나 태생적 한계랄까, 그런 것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번안물의 냄새가 난다고 해야하나. 번안물이 아닌데도. 인물들은 평면적이고(에도시대 인물들의 특징인가) 전형적이며 악당은 악당으로서 공통점을 가지고, 선인은 선인으로서 공통점을 가지고, 각각의 사건 역시도 비슷한 유형을 띤다. 괴담처럼 보이지만, 결국 괴담은 단 한편도 없이 모두가 인간의 소행이라는 점도 그 소행이 밝혀지는 과정이 박진감 넘치기 보다는 그냥, 음, 담담해서 별로 재미가 없다. 게다가 이야기는 전체적으로 세련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게 만드는 건, 우직하게 촌스러운데서 오는 매력이랄까. 온갖 산해진미와 눈같이 보얀 쌀밥에 질린 사람이 깡보리밥집을 찾아가는 것과 비슷한 심리?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상상을 했다.  

이 책 자체로는 크게 재미가 없는데, 분명 무언가를 자극하는 부분은 있다. 이 이야기의 이 부분을 이리 비틀고 여기는 저렇게 꼬고, 여기는 잘라버리고 새로운 인물을 추가하고, 이런 사건을 추가하면 뭔가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것 같은, 그래서 하나의 이야기에서 수많은 다른 이야기를 파생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힘찬 이야기다. 기교없이 우직하고 세련되지 못하게 밀고 나가는 서술이 가진 힘이라고 할까.  

표지를 보고는, 뭔가 엄청나게 재미있는 괴담을 기대하고 펼쳤다가... 화나서 별 하나 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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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노릇 사람노릇 - 개정판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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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몇년 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만병통치약은 우황청심원이었다. 그걸 한번에 열 너댓개씩 사다가 장롱속에 구메구메 넣어두시곤 두통이 날 때, 소화가 안될 때, 노동이 과해 허리가 아플 때, 아이들이 시끄럽게 해서 심통이 날때, 자식들이 괘씸해서 겁을 좀 줄 때 매번 할머니는 그 우황청심원을 꺼내다 드시곤 했다. 한번에 온전히 하나를 다 드시는 법도 없이, 증세에 따라 청심환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작은 과도로 뚝뚝 잘라 반절을 드실 때도 있고 반에 반을 드시기도 했다. 약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 꿀꺽 삼키고 물로 입안을 한번 가시고는 휘유- 하는 한숨과 함께 명치께를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쓸어내리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매번 다른 증세에 똑같은 약을 처방하는 꼴이지만 효과는 틀림 없어서, 우황청심원을 드시고 30분만 지나면 씻은듯이 괜찮아지셨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우황청심원이 도대체 무슨 약인지 어떤데 먹는 약인지를 잘 모른다. 안티프라민과 함께 노인네들 필수 상비약인 것만은 틀림 없지만.  

비슷한 용법 용례를 가진약으로 친정엄마에겐 구심이 있고, 갓 태어난 아기들을 위해서는 기응환이 있다. 도대체 이 약들의 정체는 알수가 없으나, 효과만은 틀림이 없다... 고 한다. 뭐, 난 기응환 울 애들 안먹여 봐서 모르겠다. 하정훈이 먹이지 말래서.  

내 마음의 만병통치약은 박완서다. 

마음이 괜히 우울해지고 가라앉을 때, 이유가 꼭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딱히 그럴필요는 없는데도 청승을 떨고 싶어질 때 박완서의 책을 펼치면 어느새 마음은 갓 감아 정갈하게 빗질해 내린 머리채처럼 단정하고 가지런해진다. 현실에 튼튼하게 뿌리를 박고 우뚝 선 것 같은 박완서의 글들은 세상살이가 얼머나 엄정하고 힘드는지, 하지만 그 힘든 사이사이로 얼마나 재미있고 유쾌한 일이 많은지를 전혀 힘들이지 않고 보여준다.  

박완서의 글을 읽다보면 도대체 내가 언제 왜 우울했는지 뭣때문에 우울했는지를 잊어먹게 되거나 고작 그까짓 일로 그랬다는 사실에 부끄러워진다. 그 소녀스런, 청승의 기운이 민망해져 버리는 것이다. 박완서 샘이 일곱살 무렵에 박적골 고향집 툇마루에서 새빨간 노을을 보면 느꼈다던 그 청승, 그걸 난 서른 일곱이 멀지 않은 이 상황에 떨고 앉았으니 민망해질밖에.  

이번에도 괜히 마음이 가라앉고 쓸쓸했다. 하긴 괜히라고 할 수는 없고, 지금 내 상황이 좀, 나 우울해 라고 외치면 주변에서 어머 어쩌니, 그래 쟤가 그럴 상황이지 하고 동정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이긴 하다. 하지만, 역시나 지금 내 상황이 나 우울해 라고 마음껏 청승을 떨고 있을 그럴 상황도 아닌 것이다. 내 청승을 받아주는 거야 남들의 호의니 나름대로 좋지만, 청승떨고 있는 동안 엉망진창이 될 내 생활들은 어쩌나.  

남들의 위로와 동정이 확실히 예비되어 있는 청승떨기는 감미로운 유혹이라 쉽게 떨치기가 힘들다. 그럴때 박완서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 그야말로 냉수를 들이키고 속을 차리는 기분이 된다. 아이코야~ 얘 누군 너만 아닌줄 아니? 라는 말을 하는가 싶다가는 갑자기, 얘얘, 내 얘기좀 들어봐라 며칠전에 우리집 앞마당에 제비가 날아왔는데 말이지, 라는 식의 유쾌하기 그지 없는 수다를 잔뜩 들어 기분전환이 확 되는 그런 기분이랄까. 기분 전환이라는 게 그 가벼운 기분 전환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뭔가 옷깃을 가다듬고, 그래, 열심히 살아아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그래서 박완서의 글을 읽고나면 세상을 살아갈 힘이 생긴다. 그건 박완서의 글줄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한 속물성에서 나올 것이다. 작가는 가리지 않고, 치장하지 않고, 굳이 미화하지도 않은 채 자신의 소시민의식을 그대로 보여주는데 그게 참 좋다. 게다가 그 맛깔진 말솜씨라니.  

이 책은 1998년 IMF를 통과하던 무렵의 산문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비슷한 시기의 산문을 모은 책으로 김훈의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도 있다.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을 새로 꺼내 읽으면서 새록새록 김훈과 박완서가 하는 말이 어찌 이리도 똑같은가 감탄하며 읽었다. 이런 일을 저지른자에 대한 분노, 무능력한 사회 지도층에 대한 경멸, 고통받는 서민에 대한 따스한 관심. 그러면서도 위악적이다 싶을만큼 냉정한 서술태도. 그 태도가 오히려 얼마나 위안이 되었는지.  

소설 <그 산이>에 이어 이 책까지 읽고나니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내일부터는 또, 좀 더 열심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박완서 선생님, 고맙습니다.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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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12 0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먼데까지 이 책을 챙겨가는걸 잊지 않으신거로군요! 다행이에요.

아시마 2010-04-20 02:54   좋아요 0 | URL
^^ 만병통치약인걸요. 타이레놀과 함께 꼭꼭 쟁여놨죠. 하하하.
 
바람이 분다, 가라 - 제13회 동리문학상 수상작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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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국 직전, 내가 가장 마지막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이 책은. 인천공항의 서점에서 간신히 구해든 책을 손에 쥐고 비행기에 올랐다. 아이를 재워놓고,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 펼쳐서 읽었다.  

한강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나는 문득문득 슬프고 서러워진다. 그녀의 소설들이 가진 색채는 "갓난 아이의 손바닥만한 연푸른 피멍(한강, <내 여자의 열매>, 《내 여자의 열매》, 창작과 비평사, 2000, p. 217)" 같고, "약간 멍이 든 듯도 한, 연한 초록빛의, ....... 식물적인 무엇 (한강, <몽고반점>, 《채식주의자》, 창비, 2007, p. 101)" 같다. 그건 몽고반점의 색채다. 

아주 어릴때, 갓 태어난 사촌동생의 엉덩이에 넓게 퍼져있던 몽고반점을 보고 그게 무어냐고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뜻밖에도 아주 진지한 목소리로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안나가려고 버틸때 엄마 고만 괴롭히고 얼른 배 밖으로 나가라고 삼신할머니가 엉덩이를 철썩 때려 내 보낸 흔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 마음에 그 말은 참 슬펐다. 여하한 이유로든 나가기 싫었던 엄마 뱃속에서 억지로 내쫓긴 아기가 그렇게 작고 연약하다는 건 더 슬펐다.  

그 뒤 한동안 잊고 있던 그 말은, 내가 첫 아이를 낳아 처음으로 기저귀를 갈아 주던 순간에 다시 떠올랐다. 너도 내 뱃속에서 나가기가 싫었니, 그래서 엉덩이를 맞고야 나왔니,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그렇게 울었던 거니, 문득 아이의 울음이 서러운 흐느낌으로 들렸다.  

한강의 인물들은 모두가, 그렇게, 지독히도 연약하고 무방비한채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누군가에게 엉덩이를 채이고 떠밀려 세상에 나온 것 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에 섞여들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돈다.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의 주인공 영혜도 그렇고, <검은 사슴>의 의선도, <그대의 차가운 손>의 주인공들도, 단편의 주인공들도 모두가. 그래서 그들은 갓 태어난 아기처럼 연약하고, 섬세하고, 상처받기 쉽고 서럽다.  

이번 소설에서도 한강 특유의 주인공들, 그렇게 엉덩이를 걷어채여 세상에 나온듯 연약하고 순결한 인물들이 나온다. 그리고 또한 한강의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피와 죽음, 불과 물의 원형 그리고 재생(창조자-즉 예술가) 모티프가 한 가득이다. 한강의 소설에서 주목해 보아야 할 부분은 여기다. 인간으로서, 아니, 세상 속의 생활인으로서의 죽음과, 거기에 이어지는 예술가로서의 창조를 통한 재생. 한강은 아마도, 넘지 못할 것, 죽음이라는 것을 각오하고서라도, 그 죽음을 뛰어넘고 싶어서 바람을 느끼면서도 장대를 들고 뛰었던 인주처럼, 지금이 아닌 다른 것을 꿈꾸는 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말하자면, 한강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죽음 이미지는 아마도,  

다시 시작하는 게 가능하다면....... 정말 가능하다면 말이야. 뭔가를 되살리는 게 아니라, 복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부숴야 하는 것 같아. 
아니, 그건 달라.
끝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부숴야 하는 거야.
p. 324

라던 서인주의 말처럼, 다시 시작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한강의 주인공들은 아티스트가 많다. <채식주의자>의 비디오 아티스트나 <검은 사슴>의 사진작가 <그대의 차가운 손>의 라이프 캐스팅 작가와 인테리어 디자이너. 그리고 이번 소설의 화가와 작가까지. 결국 한강은 소설에서 끊임없이 죽음을 말하고 있지만 마지막 이정희의 안간힘처럼 살고싶다 살고싶다,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영문도 모른채 이 세상에 떠밀리듯 나와 엉망진창 지독히도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살고 싶다고 살고 싶다고... 그 고통스런 몸부림을 읽고 있는 건 슬프고도 괴로운 일이다. 몽고반점을 달고 나온 사람의 천형.  

힘들고 무거운 내용과 아름답지만 가독성이 떨어지는 문장임에도 불구하고 추리소설 기법을 차용하여 소설은 빠르게 읽힌다.  

한강이 써 낸 또 한편의 걸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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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3-21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기부처]를 꽤 인상깊게 봤어요. [몽고반점]은 두번째 읽었을때야 아! 했답니다. 그래도 역시 제게는 [아기부처]가 제일 좋은 그녀의 작품인데요, 이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가 또 한편의 걸작인가요? 외면할수가 없군요.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아시마 2010-03-26 14:22   좋아요 0 | URL
전 한강 소설을 죄다 좋아해서요. 아기 부처나 몽고반점을 좋아하셨다면 이 작품도 아마 좋아하실 거예요. 딱 한강스러운 분위기의 한강스러운 인물이 나오는 한강스러운 작품인데도, 매너리즘이란 생각이 들지는 않는 것 또한 신기하구요.
제가 한강을 참 좋아하거든요. ^^

트윈 2010-03-21 1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너무 오랫만에 왔나봅니다.
갑자기 없어져버린 홈페이지....
깜짝 놀랐습니다.
그래도 "아시마의 라이브러리"는 잊어버리지않아 검색해서 겨우 찾아왔네요.
먼곳으로 이사도 가버리시고 ...
건강히 잘 지내시고 다음에 아시마님의 글로 만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시마 2010-03-26 14:23   좋아요 0 | URL
아이코야. 예전 홈페이지 없어진게 언젠데요. ^^
회자정리 거자필반~ ^^ 이사간 아시마는 곧 컴백홈 하겠지요. 아하하.
글이라... ^^ ㅎㅎㅎ 늘, 열심히, 쓰고는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