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참 나쁘다, 이 사람. 글을 왜 이렇게 아프게 쓰는가. 

하릴없이 마음이 잦아드는 날이 있다. 평소와 하나 다를 것 없는 창밖 풍경이 문득 쓸쓸하게 보이는 날엔, 김훈의 글은 피해야 한다. 그런 날 김훈의 글줄을 읽어버리면 세상 사는 것이 하염없이 쓸쓸하고 덧없는 것으로 느껴져서 어쩔줄을 모르겠다. 

이 책은 기행문이다. 기행문은 기행문인데 감상이 없다. 무릇 기행문이란 여행을 하고 난 뒤의 감상과 느낀점을 기록하는 글 아닌가. 헌데 이 책엔 아름답다, 감동적이다 이런 감정에 관한 단어가 전혀다시피 없다. 그저 김훈은 그 풍경에 대해 신문 기자 시절의 습관대로 스케치하듯 옮겨놓는다. 그런데 그 스케치들을 읽다보면 그게 보인다. 이 글줄들을 쓸때, 이 사람이 어떤 감정이었을까, 어떤 기분이었을까가.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나의 감정이 된다.   

가끔은 그런 글들이 있다. 읽을 때 나의 감정의 층위에 따라 다르게 읽히는 글. 내가 책에 줄을 긋는 이유는 단 하나다. 두번째 읽을 때에도 난 이 구절에 마음이 움직일까가 궁금해져서. 김훈의 글은 읽을때마다, 그때의 기분에 따라 줄이 그여지는 부분이 달라진다. 세번째 읽는 이 책은, 그래서 밑줄 투성이다.  

지난번에 읽을 때는 그저, 이 사람은 이 한반도의 풍경을 참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번엔 이 사람이 이 글을 쓰면서 느꼈을 울분이 손에 잡힌다. 그 울분과 눈물을 꾹꾹 참으며, 그 울분과 눈물을 글에 섞지 않으려 노력하며 한줄 한줄 써내려 갈때, 그는 아마 울었을 것 같다. 그래서 도대체 울 것이 없는 구절에서도 울컥울컥 눈물이 난다.  

참 나쁘다, 이사람. 글을 왜 이렇게 아프게 쓸까.  

대부분에서 이 책의 구절들은 여행지의 안내문 같이 건조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그 구절들에 결코 건조하지 않은 김훈의 시각을 섞어 넣는다. 예를 들면 이런식이다. 

봉정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은 고려 중기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국보 15호)이다. 이 극락적은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과 함께우리 나라 최고의 목조 건물인데, 건축 양식으로는 무량수전보다 오래된 것으로 평가된다. 봉정사 극락전은 부석사 무량수전처럼 장엄하고도 숨막히는 산하의 경치를 눈 아래 깔고 있지는 않다. 그 건축의 질감은 무량수전과 흡사한 점이 없지 않지만, 규모는 무량수전보다 작다. 봉정사 극락전은 고전적인 단순성의 위엄과 힘의 안정감으로 당당하다. 1363년에 이 건물을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으므로, 건립 연대는 그보다 앞선 고려 중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p.145)

 

이런 구절도 그 구절대로 아름답지만, 김훈의 절창이 드러나는 구절은 이쪽이다.  

살아갈수록 풀리고 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은 점점 더 고단하고 쓸쓸해진다. 늙은 말이 무거운 짐을 싣고 네 발로 서지 못하고 무릎걸음으로 엉기는 것 같다. 겨우, 그러나 기어코 봄은 오는데, 그 봄에도 손잡이 떨어진 냄비 속에서 한 움큼의 냉이와 된장은 이 기적의 국물을 빚어 낸다. 사람도 봄나물처럼 엽록소를 피부에 지니고 태어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라고 냉이된장국을 먹으면서 아내에게 말했다. 아내는 슬퍼했다. 아내를 위로한다고 꺼낸 말이 또 이지경이 되었다.
(p.37) 

쑥 된장국의 냄새는 그것을 먹는 인간에게 괜찮다, 다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침내 돌아가야 할 곳의 정갈함을 일깨우기도 한다. 그 풀은 풀의 비애로써 인간의 비애를 헐겁게 한다.
(p.39) 

이 구절들을 읽다가 문득 울컥했다. 어쩌면 이 사람은, 그래서 자전거를 타고 이 국토를 여행하기 시작했나보다, 하는 생각을 했다. 괜찮다, 다 괜찮다 라는 위안을 받고 싶어서. 그런 위안이 필요할만큼 이 글을 쓸 무렵의 김훈은 힘들었나보다. 그리고 문득 마음이 쓸쓸해서 아리고 슬픈 날엔, 나도 김훈의 그 글줄에서 아픈 위안을 받는다.  

그래도 참 나쁘다. 글이 너무 아파서. 

한동안은 김훈의 글줄들을 피해다녀야겠다. 이 마초중의 상마초인 아저씨가, 어쩌자고 이런 글들을 써내는가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건, 국내 여행기에선 거의 최고봉이란 생각을 한다. 감상을 넣지않은 기행문이 이렇게까지 감정을 건드리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 정말 도대체 왜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라스 만차스 통신 - 제16회 일본판타지소설대상 대상수상작
히라야마 미즈호 지음, 김동희 옮김 / 스튜디오본프리 / 2005년 9월
평점 :
품절


책을 하도 많이 질러대다 보니, 이 책을 내가 도대체 왜 샀는지, 언제 샀는지 내가 산게 맞기는 한지 싶은 책이 정말 혹가다 한권씩 생긴다. 이게, 알라딘 중고샵을 이용하기 시작하고부터는, 사고 싶은 책이 나오면 무료배송 2만원을 채우느라 또는 5만원 이상 추가 마일리지를 노리느라 급하게 걍 땡기는 책 한권 정도를 집어 넣어서 더 잦아졌다. 

이 책도 그래서 끼어들어왔는데, 읽는 내내 후회했다. 아, 차라리 시작하지말고 되팔아버릴 걸. 

가끔은 어느 분야에 학을 띠게하는 책이 있다. 그런 책을 읽고나면 한동안 그 책의 분류와 관계있는 책들 근처도 가지 않게 되는데, 이 책이 그랬다. 잘썼고 못 썼고는 다음문제고, 아니 오히려 잘 썼으니 그만큼의 파급력을 가지는 거겠지만, 그냥 읽고난 뒤에 어우어우어우...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는, 그런 류의 책들.  

주로 일본 소설에서 그런 걸 많이 느끼는데, 한번씩 이렇게 학을 띠고 나면, 일본 소설은 쳐다도 보기 싫다. 한번씩 이런 지뢰가(글이 재미가 있고 없고를 떠나, 나의 정신에 미치는 악영향이라는 점에서 이건 핵폭탄급 지뢰다.) 걸려든다는 걸 알면서도 일본 소설을 읽고 있는 내가, 나도 내 스스로 웃긴다. 뭐, 변명해 보자면, 내가 주로 읽는 작가들(하루키, 바나나, 가오리, 에이미, 히토나리)의 작품은 적어도 이런 류의 정서와는 관련이 없으니까, 한번 읽기 시작한 작가는 웬만하면 차기작도 읽어주자 주의라서... 운운.  

일본이 아닌 미국에 거주하면서 글을 써내기도 하는 하루키부터 일본색을 버리고 싶어 바나나라는 이름을 선택했다는 요시모토 바나나 까지도, 그 기본 정서에 깔고있는 일본적인 어떤 느낌을 완전히 씻어내지는 못했다. 그런 일본 적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산뜻하지가 않고, 끈끈하고, 기괴한 느낌이다. 음. 귀신이 아니라 요괴 라는 느낌이랄까. 좁디 좁은 바나 하나를 사이에 둔 이렇게 가까운 나란데도 이렇게 다를수가 싶을때가 있다. 뭐, 서양인이 보면 일본의 정서나 한국의 정서나 비슷할라나. 

에엥, 이야기가 영 딴데로 새고 있다. 

하여간 이 소설은 한동안 일본문학 근처에도 가기 힘들어질만큼 학을 떼게 만들었다. 으윽. 

그렇다고 재미없는 소설이라는 이야기는 아니고. 어떤 미스테리적인 요소가 강해서 그런지 끝까지 긴장감을 놓치지 않고 읽어나가게 된다.  

헌데... 작가의 처녀작이라 그런지, 여기저기 허점이 너무 많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고지마씨가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가 밝혀지지 않고 있고, 아버지가 고지마씨에게 왜 그렇게 약한 입장을 취하지는지도 명확하지 않다. 전반적으로 어떤 금전적인 도움을 받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고지마라는 인물을 계속 미스테리로 남겨둔 채 끝까지 밀고나가는 게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하는 중요한 원동력이긴 하지만, 이놈의 고지마라는 인간의 정체는 끝내 밝혀지지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냥 변태적 취향을 지닌 화가, 이게 끝이라는 사실이 더 어이없다. 이건 뭐야 밝혀진 게 밝혀지지 않은 거나 상황이 달라지지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이해를 못한 건가, 이와지마와 유키코, 주인공 셋이 왜 재의 도시를 떠나야만 했는지도 모르겠고, 첫번째 단편에 등장한 주인공의 형이 왜 그런 종류의 요괴(? 라고 밖에 표현을 못하겠다.)가 되었는지, 왜 부모님은 그 요괴를 그냥 두고만 보는지도 알수 없고, 죽음 이후에 주인공을 그렇게 대하는 부모와 누나의 태도는 더 미스테리다. 형은 그냥 단순한 정박아였던 건가? 어쨌든 갱생원(? 교도소랑 비슷한 곳 같은데)에서 몇년만 살고 나올정도로 어쩔수 없는 상황, 또는 실수 였던 것을 누구나 아는 상황에서 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주인공의 입장에서 서술되었기에 그런건지,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 같던데, 주인공은.  

모든 것이 명쾌하게 밝혀지지 않은 것이 이 소설의 기괴한 분위기를 더욱 강화시키는 것만은 분명하니 밝히지 않는 것이 작가의 또다른 의도였다고 보기에는, 음.  

여하간.  

어익후. 싶은 소설이었다.  

가끔 생각한다. 융의 이론대로 집단 무의식을 적용하자면, 내가 일본이 싫고, 일본적인 뭔가가 싫은 것은, 유전자에 각인된 프로그램인거 아닐까 싶은. 

ps. 근데 또 내 노트북은 VAIO 라는거~ 카메라는 캐논이고. 앞으로도 노트북은 바이오로, 카메라는 캐논이나 소니로 갈 예정이라는 거. 우습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 움베르토 에코의 세상 비틀어 보기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은 재미있지만 어렵다. 분명 재미가 앞에 놓이는 뛰어난 작품임에는 이견이 없지만, 어렵다는 것 또한 부정할 수는 없다. 가끔 몇몇 작품들은 그 작품의 재미를 느끼기 까지 가파른 산을 꾹 참고 열심히 올라야 하는데, 에코의 소설이 그렇다. 그 처음을 넘기기가 쉽지가 않은지 내 주변엔 에코를 읽으려다 포기했다는 사람이 많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장미의 이름> 역시 초반부의 산을 넘어야 한다. (딴소리지만, 움베르토 에코와 숀 코넬리가 닮았다 생각하는 사람? 수염 때문인지 나한테는 늘 둘이 겹쳐보인다.) 산을 넘고난 다음엔, 미치지 않기가 불가하기도 하지만. 

이 책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에 접근하기 전에 입문서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에코식 문장, 에코식 유머를 가볍게 접할 수 있어서 낯설음을 많이 지워준다. 물론, 움베르토 에코의 팬이 읽는다면 완전 배꼽잡고 넘어갈만 하고.  

똑똑한 사람이 구사하는 유머는 정말 유쾌하다. 가끔 특정인물이나 무언가를 갈굼의 대상으로 삼아 바보취급을 하며 놀리는 것으로 웃음을 유발하는 개그를 보고 있으면, 웃으면서도 뭔가 찜찜한 뒷맛이 남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찜찜한 뒷맛이 없다.  

하긴, 사실 이 책도 그다지 쉬운 책은 아니다. 에코의 다른 책에 비해 그나마좀 쉽다 정도지. 유머러스한 에세이 치고 책장이 술술 넘어가진 않는다. 그러나 읽어내고 나면 뿌듯함도 있고, 읽는 동안의 몰입도도 꽤 강한 편. 

이 책을 읽고나면 느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가 왜 유명한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사실, 궁정 음모극을 몹시 좋아하는데, 굵직굵직한 남성적인 이야기 보다 박종화의 『금삼의 피』같은 여성적인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게다가 화사한 떨잠과 어여머리와 금박휘황한 의상에 관한 이야기까지 나오면 금상첨화이려니, 하며 본다. 당연히 사극도 좋아한다. 궁중의 비사, 음모에 관한 이야기가 잔뜩 나오는 인현왕후 이야기나 문정왕후 이야기는 더 좋다.

그럼에도 작년(또는 재작년쯤?)에 산샤의 『측천무후』를 읽었을 때, 음, 나와 중국 궁정의 이야기와는 맞지 않는 군 하였었다.

전 세계적으로 “내시”라는 존재는 어디에나 존재하는 것이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역사의 전면에 그 내시의 존재가 가장 강하게 드러나는 곳이 중국인 것 같다. 그. 내시. 라는 존재의 기괴함을 생각해 보라. 남자이되 남자가 아니고, 그렇다고 여자도 아니고, 몸은 남성인데 성기가 없음, 그 하나로 인하여 수염마저 나지 않고, 외모도 목소리도 점점 여성화 되어가는 그 존재. 그들의 영혼은 여성이었을까 남성이었을까.

한국, 조선의 궁중 비사가 대부분 상궁 마마님들에 의해 벌어진다는 것과는 달리, 중국의 궁중 비사는 그 기괴한 존재 내시들에 의해 일어난다. 그래서 중국의 궁정 이야기는 내게 기괴하고 그로테스크하게 읽힌다. 하여, 산샤의 측천무후 이후, 읽지 않기로 마음 먹고 있었는데, 이 소설을 집어든 이유는 일단, 쑤퉁의 소설이었기 때문이고, 가상 역사 소설이라는 점이 마음을 끌었다. 누천년의 중국 역사 안에서 가상의 나라를 만들고 가상의 황제를 만들면 어떤 이야기가 나올까, 하는 호기심이었다. 산해진미를 만들수 있는 재료를 잔뜩 쌓아놓은 다음에 만들어 내는 요리에 대해서는 늘 기대가 가득하게 마련이니 말이다.

이 소설은 섭국 이라는 가상의 나라, 제 5대왕 단백의 일대기다. 부왕의 오자(五子)로 태어나 할머니가 조작한 부왕의 유지에 의해 14살에 왕위에 올라 24살에 폐위되는 왕. 1인칭으로 서술되는 이 이야기 안에, 단백의 왕으로서의 치세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당연하지, 그동안 정치는 할머니 황보부인이 하였으니. 단백은 그저, 황제로서, 무지하여 잔학할 수밖에 없었던 황제로서 살아가다 폐위된다. 폐위된 후 평민으로 살아가다 줄타기 광대가 되어, 동경하였던 새와 같은 자유를 줄 위에서 맛본다는 이야기.

쑤퉁은 이 소설을 “꿈 속의 꿈” 과 같은 이야기라 말하고 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이 소설 한편을 읽고 나면, 한편의 총천연색 꿈을 꾼 듯, 인생 무상에 관해 한번쯤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제왕이었던 남자가 줄타기 광대로 인생을 마감한다는 점에서 그렇게 생각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그럼 너무 도식적이라 재미가 없지.) 그저, 산다는 게 뭘까, 에 관해 생각을 해 보게 되는 것이다.

왕의 장남으로, 부왕이 지정한 차기 제왕으로, 누가 보아도 훌륭한 왕재였던 단문(섭국의 6대왕이 된다.)의 치세 때에 섭국이 망한다는 것을 생각해보아도.

글은, 전체적으로 꿈처럼 기괴하면서도 우아하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게, 우아하여 궁정극 특유의 분위기가 난다. 화려하면서도 규칙적이고, 규율속의 파격이 있는 우아함.

썩 괜찮은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니하오 미스터 빈
하 진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5월
평점 :
품절


우리는 요즘 젊은 사람들 답지 않게 신문을 받아본다. 그것도 조선일보. 특별히 남편과 나의 정치적 성향이 보수적이라서가 아니라(사실 보수적이긴 하다.) 조선일보 판촉 사원이 롯데백화점 상품권으로 유혹을 했기 때문에. 별로 읽을 거리가 없긴 한데, 주말 섹션 하나만은 볼만하다. 그 중에서도 북섹션.

이 책 『니하오 미스터 빈』도 어느 주말 아침, 조선일보 북섹션에 실려 있던 책 소개 기사를 보고 주문했던 책이었다.

중국 작가의 책은 위화, 쑤퉁을 거쳐 이 작가가 세번째.
위화와 쑤퉁이 중국에 거주하며 중국어로 작품활동을 한다는 것과는 달리, 하진은 미국에 거주를 하며 중국어가 아닌 영어로 창작활동을 한다. 모국어가 아닌, 학습된 언어로 창작을 하는 사람들의 특징인 것일까, (한국인 이창래-영어로 글을 쓴다, 벨기에인 아멜리 노통-프랑스어로 글을 쓴다.) 문체가 몹시 단정하다. 마치, 문법책에 나오는 문장들처럼. (물론 번역가의 영향도 있을테지만.)

그 단정한 영어로 그려내는 세계는 의외로 대단히 중국적이다. “중국적” 이라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여러가지로 생각해 보았지만, 글쎄. 한국의 “한의 정서”라는 걸, 한국인은 분명히 감지해 내고(물론 외국인도 감지해 내겠지.) 존재를 알고 있지만,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설명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중국적인 정서라는 것 또한, 분명, 중국만의 특이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알겠는데, (위화, 쑤퉁, 하진의 소설에서 구사하고 있는 유머는 분명 한국인 작가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는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다르다. 국민성이 다른 것과 같이.

웃음조차, 대륙적이라고 할까. 말 그대로 스케일이 다르다. 웃음의 스케일이. 웃음을 이끌어내는 방식과, 웃음을 유발해내는 상황 등이, 아, 정말 중국적이군 싶게.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와 비슷한 유형의 유머이긴 한데, 이 소설의 주인공 샤오 빈은 위화의 허삼관과 닮은 듯 하며 다르다. 허삼관이 만들어 내는 유머 뒤의 찡한 눈물 같은 게 없다고 해야하나. 무게감은 비슷한데, 그 뒤의 느낌이 다르다.

일종의 슬랩스틱 코메디를 보듯 깔깔 웃어가며 볼 수 있는 책이다. 분량도 적당하고, 한 두시간 정도 몰입해 읽기 딱 좋다.

하진, 이 작가, 글 참 맛깔나게 잘 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