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겨레 기사를 읽은 후부터 머리가 복잡하다.
소위 일베충이라 불리는 여러 세대와 여러 계층의 사람들의 인터뷰 기사였다. 나는 이래서 일베를 한다, 는 내용의.
물론 반인륜적, 반사회적 행태에 대한 그들의 비루한 변명을 귀담아 들은 것은 아니다. 엎어치나 메치나 그들은 비겁하다. 외국인 노동자나, 여성들에 대한 그들의 인식은 역겹고 치졸해서 불쌍할 정도이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학교에서 배운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역사교사가 한 이야기를 믿을 수 없다는 그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역사교사인 나를 무척이나 혼란스럽게 했다. 왜냐고? 거의 20년 전의 나도 바로 그랬기 때문이다.
나는 국사 시간에 근현대사를 배운 세대가 아니다. 교과서에는 박정희 시대까지의 역사 서술이 있었지만, 수능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지 않았다. 간략하게 정리하고 넘어간 선생님의 현대사 수업은 뭔가 미심쩍었다. 몇몇 어른들에게, 혹은 몇몇 대학생 언니 오빠에게 어깨너머로 들었던 이야기와는 적잖이 다른 듯 했다. 그랬다. 뭔가 다른 게 있는 것 같았다. 뭔가 말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선생님은 말해주지 않고 있어, 혹은, 뭔가를 숨기고 있어, 라는 의심.
그후 나는 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다. 그곳의 여러 학회, 집행부 활동, 세미나를 통해 그 숨겨져 있는 것들에 대한 갈증을 풀었다. 뿌옇게 눈을 가리고 있던 안개가 걷어진 것처럼, 신이 났다. 진실에 가까워진 듯한 환희가 나를 역사교사가 되는 길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니다. 그리고 역사교사가 된 지금도 공부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몇년 전부터 한국 근현대사 수업 시간이 생기기 시작했다. 좌편향이니 어쩌니 하는 우습지도 않는 딴지를 걸어대도 어쨌거나 사실을 사실로 가르칠 수 있는 수업시간이 생겨서 참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교과서대로 잘 배운 학생들은 역사 속의 그 질곡과 어리석음을 다시 겪지 않겠지 하는 희망도 제법 있었다.
그.런.데. 그걸 믿지 못하겠단다. 우선, 어이가 없다가, 왜지? 하고 심각하게 궁금하다가 문득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건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사실을 사실로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도 왜 의심하는 젊은이가 생겨나는 거지? 이토록 독.한. 방식으로 의심하고 비트는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나타나는 거지? 어디부터 문제를 풀어야 하는 걸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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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는 경향신문에 실었다는 김규항의 글을 읽었다.
언제나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명쾌한 그의 글을 나에게 적잖은 힘이 되었다.
물론,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극우가 자본주의의 자식이라는 것, 한 사회가 심화하는 착취 구조와 반복되는 불황·공황이라는 자본주의적 모순에 갇혀 아무런 출구를 찾지 못할 때 극우의 우물을 찾는 청년들이 생겨난다는 건 상식적인 이야기다. 물론 한국의 기존, 장년층 극우는 전쟁과 분단이라는 특별한 역사에 기인한 바 크지만 일베 사태에서 보이는 자생적, 청년 극우는 그 전형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 청년들의 처지를 보라.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모조리 입시에 바치고 한 해에 1000만원을 넘는 등록금에 시달리며 간신히 대학을 졸업하면 비정규 노동과 아르바이트가 기다린다. 이런 상황에서 서유럽, 북유럽에도 있는 극우 청년들이 여태 없었다는 건 오히려 희한하고 감사한 일일 수도 있다.
청년들이 극우의 우물을 찾는 건 보수의 영향 때문이 아니라 진보가 희망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희망은커녕 이 상황을 만든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걸 ‘신자유주의’라 부르든, ‘재벌 왕국’ 혹은 ‘부자의 천국’이라 부르든 이 상황이 진보정권 10년과 보수정권 6년의 변함없는 행진 덕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진보가 지난 6년 동안 한 거라곤 모든 문제를 보수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것이었다. 자신을 진보라 여기는 기성세대가 청년들 앞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보수 정권 6년의 영향” 따위 속이 빤한 정치 선동이 아니라 ‘깊은 성찰’이다. 그게 청년들이 제가 살아온 사회를 사랑하게 할 수 있게 만드는 첫걸음이자 박제된 5·18의 역사에 숨길을 불어넣는 일이다. 일베는 단지 시작일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