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가 사랑한 수식 오가와 요코 컬렉션
오가와 요코 지음, 김난주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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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이다. 그냥 26쇄가 되는 건 아니구나. (내가 읽은 건 알라딘 중고점에서 구입한 하얀 표지의 구판이었고, 무려 26쇄 였다.)
루트의 머리를 쓰다듬는 주름진 박사의 손과 당근을 먹이기 위해 조심스레 식사를 준비하는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훌쩍 자라 버린 듯한 루트는 언제까지나 박사와 주고받던 캐치볼의 감각을 기억하겠지. 
숫자와는 전혀 무관한 일을 하고 있고, 수학을 절대 잘 할 수도 좋아할 수도 없었지만, 차근차근 방정식을 정리하면 꼭꼭 제 자리를 찾듯 정리되던 숫자들의 가지런함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답을 찾은 희열보다는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매끈하게 정리되어 있던 연습장을 사랑했었던 것 같다. 그런 희미한 기억들이 소수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며 반짝거리던 박사의 눈빛과 오버랩되곤 했다. 아름답다고밖에 할 수 없는 매력적인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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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11/22/63 1~2 세트 - 전2권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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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FK의 암살을 막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 고등학교 영어교사 제이크 에핑. 눈물이 없다던 그의 바람은 그저 애틋한 사람들의 불행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 그리하여 그들이 상처없는 인생을 살 수 있게 해주는 것, 그 뿐이었다. 그러나 과거는 변화를 바라지 않는다던가. 과거는 화음을 추구한다던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 않은 그에게는 사랑마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그가 고향같은 여자를 만나 함께 린디합을 추고, 고향같은 사람들과 함께 찐한 연극을 한 편 만들어 냈으니, 그의 인생 또한 그리 척박하기만한 것은 아니었다고 위로할 수 있으려나. 

돌아 온 미래가 너무 황량하고 비참해서 제임스가(그리고 조지가) 걱정스럽다. 그러나 모두 그의 탓은 아니라고, 악독한 작가 스티븐 킹을 대신해서 위로를 보낸다. 그가 다시 잡은 새디의 손의 감각을 절대 잊지 말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새디가 역경을 딛고 훌륭한 시민으로 꿋꿋이 버텨준 것처럼, 그도 그럴 수 있기를. 

미국인들이 가지고 있는 JFK암살에 대한 통한의 마음과 그 시절들에 대한 향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몇번이나 마음을 (때론 얼굴을) 흠뻑 젖게 만들곤 했다. `22세기로 건너간 시간 여행자가 그 시대에도 사랑받는 우리 시대의 작가가 누가 있는지 찾아본다면 그 명단에 스티븐 킹도 들어갈 것이다` 라는 헌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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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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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서치 이덕무와 그의 친구들 유득공, 박제가, 백동수 등과 그의 스승인 박지원, 홍대용의 이야기를 소설 기법을 통해 엮여낸 역사책. 
정조 시대의 개혁의 물결과 신분제의 허상 속에서 좌절해야 하는 선비들의 삶과 학식을 매우 우아한 담채로 그려내어 시대와 사람에 대한 경외감마저 들게 만든다. 
또한 역사 대중화에 대한 시사점을 던져준 책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그리 좋아하는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지금 여기 조선`의 모습을 직시하려고 치열하게 고민한 점, 문와 무를 비롯한 모든 예를 순진무구할 정도로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즐기려 했다는 점은 우리 시대의 교양으로 널리 알리고 익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마저 들었다. 우리의 지성사에 이렇게 멋진 어른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했다는 것 만큼이나, 김유신이 삼국통일의 주역이라는 것만큼이나, 당연히 알아야할 자랑스러운 일이지 않은가. (그 당연한 걸 당연하게 가르쳐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나 아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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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도 수컷과 암컷이 있습니다
오다 마사쿠니 지음, 권영주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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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치는 사랑스러운 찬가. 기꺼이 몸을 던지고픈 애서가들의 롤러코스터. 

까무라칠만큼 귀엽게 웃기다. 시종일관 히죽대느라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책장을 퍼덕거리며 날아다니는 책들, 그 책들을 잽싸게 잡아 찍어 누르고 상아로 된 도장을 쾅! 찍는데, 다리 여섯 개 달린 흰 코끼리를 탄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 외친다. ˝난 쬐끔도 수상한 사람이 아니지 않니 않으니꼬롱~˝ 그리고 그 뒤로 드라이아이스 연기마냥 깔리는 백 년의 딸꾹질 소리. 
이런 이야기를 또 어디서 들을 수 있을쏘냐.

게다가 60여년을 원앙처럼 알콩달콩 살았던 노부부의 이야기와 태어날 것이 분명한 아들을 기다리기 위해 새로 시작하는 연인들의 이야기까지 덤으로 읽을 수 있다.
온갖 잡다구니를 모아 놓고 좌판을 벌인 듯하지만, 역시 처음이며 마지막인 것은 책. 
그리고 또 하나 무지하게 좋았던 건 바로 이것.

태어나서 죽고 태어나서 죽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는, 나도 그 한 부분이라는 것. 누구나 누군가의 그다음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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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인의 딸 사형집행인의 딸 시리즈 1
올리퍼 푀치 지음, 김승욱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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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짜여진 중세추리극을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이야기의 짜임새와 인물 묘사와 시대 묘사가 알차 읽는 내내 즐거웠지만, 딱 그만큼. 문장이나 이야기에서 가슴을 치는 무언가는 없어 별 네개는 주기 힘들겠다. 
그러나 `일종의 추신` 부분을 읽고 이 이야기가 마구 사랑스러워졌다. 사형집행인의 숨가쁜 모험보다 작가가 계보를 그려가며 과거의 문헌을 뒤지는 모습이 백배는 더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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