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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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이고 이국적인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그려내는 작가. 그러나 섬세하고 묘하게 동질감을 주는 문장들 덕분에 전혀 낯설지 않다. 뒤로 갈수록 문장보다는 소재의 힘에 끌려가는 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마지막 단편소설로 무한신뢰 모드로 귀환. 
차별이라는 비열한 공기 속에서 아주 손쉽게 칼날을 휘두를 수 있게 하는 도시의 교육에 대한 그녀의 묘사는 무척 짜릿했다. 스스로를 계속 다그치게 만들었던 꼭 한 방울의 죄. 그것을 이렇게 뼈아프게 기억하고 있는 그녀의 윤리적 올바름에 또 한번 무한 신뢰. 
무엇보다 좋았던 건 작가의 말이다. 존재하는지 자신할 수 없는 바다를 향해 노를 젓는 호수의 해군. 바다에 도착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노를 젓는다는 게 중요한, 호수의 해군.
바다의 의미가 저마다 달라도 우린 모두 노를 젓는 호수의 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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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내일 또 만나
윌리엄 맥스웰 지음, 최용준 옮김 / 한겨레출판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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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새 어머니를 받아들이는 힘든 과정을 겼었던 주인공은, 살인사건과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해야 했던 소년 클래터스와의 짧은 만남에 자신의 상실감과 불안, 죄책감을 투영한다.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하는 <새벽 4시의 궁전>은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구조물이다. 하늘이 그대로 올려다 보이던 천장, 이해할 수 없는 설치장식들은 혼돈스러우며 아슬아슬한 유년의 기억을 계속 떠올리게 한다. 
마지막은 주인공이 클래터스에게 전하고 싶었던 안타까움과 위로의 문장들이었는데, 그 글들을 읽으며 무척 마음이 아팠다. 사실 그 글들은 모두 주인공 자신에게, 주인공 자신의 유년 시절에게 해주는 말들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작은 어깨를 웅크리고 그런 위로의 말을 간절히 기다리던 주인공의 유년시절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기 때문이다.   

미국문학의 간결한 아름다움에 매료되고 있다. 영국문학과는 다른 단순하고 정제된 글들. 묘하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면서도 과하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커텐 너머에서 조용히 지켜보는 듯한 거리감이 오히려 주인공의 내면으로 나를 바짝 끌어당긴다. 그리고 그런 끌어당김이 무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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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카구치 미치요(坂口三千代) <크라크라 일기(クラクラ日記)>

사카구치 안고의 부인 사카구치 미치요가 쓴 수필.

시오리코의 어머니 사연이 담긴 책으로, 시오리코가 계속 사들이고 있다.

1967년 분게이순슈 판은 아마도 이 표지일 듯.

 

 

2. 앤서니 버제스 <시계태엽 오렌지>

 

 

 

 

 

 

 

 

우리나라 번역본은 원작 그대로 주인공이 새 삶을 살기로 결심하며 끝나는 듯 하다. 안 읽었으니 정확하진 않다. ^^

 

3. 후쿠다 데이치(福田定一) <명언수필 샐러리맨(名言随筆サラリーマン)>

후쿠다 데이치는 시바 료타로의 본명.

 

4. 시바 료타로 <돼지와 장미(薔薇)>

시바 료타로가 출판사의 권유로 썼다는 추리소설. 다시는 추리소설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는 그 책. 문예춘추사에서 낸 <시바 료타로 전집>에도 수록되지 않음.

 

5. 아시즈카 후지오 <유토피아 최후의 세계대전(UTOPIA最後世界大戦)>

도라에몽의 그, 후지코 후지오의 데뷔 당시 필명이 아시즈카 후지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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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뽑기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김시현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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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을 잘 읽지 못하기도 하지만, 이 단편집은 꽤나 고역이었다. 숙제처럼 읽었달까. 내용의 문제라기 보다는 문체의 문제라고 하는게 맞을 듯 하다. 무엇을 해도 안정감이 없이 달그락 거리고 있는 것 같은데 쳐다보면 엄청나게 무심한 얼굴. 쫙 내리깐 듯한 눈으로 툭툭 내뱉는 말들이 하나같이 서늘하고 무섭다.
아이들의 사악함, 선의를 가장한 중산층의 위선, 아니, 악의를 선의라고 믿고 있는 뻔뻔함, 익숙한 거리가 괴물로 변하는 듯한 공포. 그리고 허위의식
힘들게 읽은 단편들은 마지막 <제비뽑기>에 와서 긴 숨을 토해내었는데, 역시 표제작이다 싶을만큼 압권이었다. 손에 쥔 돌멩이의 질감까지 느껴질 정도로.
마지막 해설을 다 읽고 나서 아, 하고 납득한 부분도 많았는데. 뭐라뭐라 해도 이런 단편들로만 꽉 채워진 단편집 읽기는 쉽지 않다. 소화불량.
해설에는 셜리 잭슨의 삶이 짧게 언급되어 있는데, 임신해서도, 갓난 아이를 품에 안고도, 밥을 먹거나 술을 마시면서도 이런 이야기들만 떠올리고 끊임없이 써대는 작가의 삶이라니. 아, 상상할 수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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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지음 / 시공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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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이유는 치밀한 범죄와 이를 풀어가는 추적 과정 때문이 아니다. 인간성을 잃게 되는 순간의 망설임과 고통이 역설적으로 인간성이란 무엇인가를 보여주기 때문이고,  선과 악, 생과 사의 모호한 경계를 추적해야 하는 사람의 끊임없는 고민을 들여다 보면서 선악 생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을 담되 지나치게 현실적이지는 않은 추리소설들을 좋아한다. 세밀하기는 해도 지나치게 조밀하면 안된달까.
여하튼, 그러다 보니 한국 추리소설은 잘 읽게 되지 않았다. 적당히 이국적인 장소와 적당히 거리감있는 번역문이 좋았지.. 간혹 읽게 되는 한국추리소설에선 꿈틀대며 살아있는 대화체나 너무 익숙해서 냄새까지 느껴지는 거리의 모습들이 지나치게 생생해서 좀처럼 거리를 둘 수가 없었다. 압사당하는 느낌이라고까지 말하면 좀 미안하지만, 적나라한 범죄의 모습은 소설이라기 보다는 뉴스를 보는 것 같아서 내 사고와 내 감정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다.
내가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데, 영화를 보다보면 내 감정과 내 사고가 피어날 틈이 없다. 화려한 시각적 효과들과 완성체인 배우들을 보다보면, 어느새 그냥 멍하니 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몸이 후루룩 빨려들어갔다 나오는 것처럼.  

그러다가 송시우의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꽤 기분좋게 읽었고, 망설임없이 그녀의 두번째 책까지 집어들게 되었다. 왜 망설임이 없었는지 그때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이제는 좀 알겠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골똘히 생각했다. 왜 이 이야기들은 다른 걸까 하고.
두어 시간은 생각해 본 것 같은데, 결론은 어떤 `틈` 같은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내가 마음껏 인물에 동화하고 마음껏 사건을 둘러보고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 틈.
말하자면 이 소설에는 그런 게 있더라. 인권위 조사관이라는 묘한 포지션(사건과는 약간 떨어져서 전체를 조망할 수 있고, 그 안의 사람을 보는)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고민하고 실수하는 주인공들을 사려깊고 침착하게 그려낸 작가의 역량 덕이 더 크다. 게다가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그것도 범죄 이야기를!!) 를 미스터리로 멋지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한국`추리소설의 재미까지 알게 해 주었다.
아낌없이 별 다섯 개 주고 또다른 이야기까지 기다리련다~ 이왕이면 조사관 시리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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