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의 엔드 크레디트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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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읽어도 금새 본래의 감각을 찾을 수 있는 고전부 시리즈. <바보의 엔드 크레디트>라는 제목보다 소제목이었던 `Why didn`t the ask EBA?`가 더 신경쓰였었는데, 역시 무지하게 머리를 굴린 이야기였어. 밀실이니, 제2밀실이니, 서술트릭이니, 영화적 구성이니 하며 온갖 장치들을 생각해봐야... 앤서니 버클리 콕스니, 아비코 다케마루니, 애거사 크리스티니 하물며 홈즈까지 죄다 끌어다가 요네자와 호노부는 고생고생하며 이야기를 만들었지만, 미안하다. 나는 그런 거 아무 상관없다. 물론, 감흥은 있다. 가끔 감동스러울 때도 있다. 이렇게까지 장르적 재미를 가지고 노는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마치 조그마한 큐브를 착착착착 하고 굴리는 유연한 손놀림을 보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본편을 읽는 것만큼이나 해설을 읽는 재미가 있다. 
내가 고전부 시리즈를 즐겁게 읽는 이유는 낭비를 싫어하는 효율적인 인생관의 오레키 호타로를 보는 재미, 나는 경험해 보지 못한 고등학교 동아리 활동의 재미. 툭툭 내뱉지만 뼈가 잔뜩 들어간 호기어린 대화들. 요네자와 호노부, 당신은 온갖 장르적 실험들을 계속 하시라. 나는 이런들 저런들 당신 글을 읽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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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나 정말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캐런 조이 파울러 지음, 이은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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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취약한 부분 중 하나가 동물이다. 동물을 키워본 경험도 없고, 키워보고 싶은 생각은 더더욱 없다.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도 그리 살갑지 않기 때문에,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인간에 대한 태도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넓은 의미의 휴머니즘 같은 거. 딱 그 수준으로 동물을 바라보기 때문에 동물과의 교감은 인간과의 교감 만큼이나 데면데면하다. 마찬가지로 동물 학대를 대할 때의 감정도 인간에 대한 감정일 때와 공평한 편이라고 자부했는데, 의외로 눈감고 넘겨버리려 했던 사실들이 상당히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동물을 자녀와 함께 기르려고 했던 부모들의 심정 같은 건 상상할 수 없지만, 그렇게 함께 성장하고 시간을 보낸 가족들이 구성원을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로즈메리가 언니 펀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나도 그녀를 기억할 순 없지만. 팔을 뒤덮은 털의 감촉이라던가, 손가락을 깨물던 이빨이라던가.... 아.. 나는 펀을 그냥 누군가의 딸로, 누군가의 언니이자 동생으로 기억하기로 했다. 나는 결코 할 수 없을 용기있는 공생을 했다는 것만으로 나는 충분히 그들이 경이롭다. 존경스럽다. 마지막까지 그들의 모든 노력에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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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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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 책을 너무 지지부진하게 읽어서 속도감있는 책으로 기분전환 좀 해볼까 하고 골라본 책인데, 기분 별로네.
장강명이라는 소설가의 존재 가치랄까, 이런 건 충분히 이해하고, 또 입에 쓰지만 꼭 필요한 약이라고 인정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이건, 좀 지나치게 독해서 떨떠름하다. 이 떨떠름함의 밑바탕에는 소설가가 모두 허구라고, 모두 본인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힘들여 강조하는 부분이, 사실은 분명 현실에서 존재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아니, 현실에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알면서도 굳이 보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니까. 아니, 꼭 피하고 싶은 이야기였으니까. 여자를 혐오하는 어떤 사이트의 존재를 알고 나서 몇 날 며칠을 악몽에 시달렸고, 지금도 가끔씩 끔찍하게 무서워지는데, 그런 경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이 책은, 내 책장에 꽂아두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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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도시
차이나 미에빌 지음, 김창규 옮김 / 아작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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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의 문법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이중도시라는 개념 자체는 매우 매력적이다. 같은 공간에 중첩된 채로 상대방을 보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 보지 않으려 교육받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엄연히 존재하고 살아 숨쉬는 사람들과 건물들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생각할수록 오싹하고, 의미심장하다. 적대적 공생관계인 국가를 함께 이고 살아가는 남한의 입장에선 아주 현실적인 은유이다. 
오르시니의 존재가 인상깊었던 터라 결말이 다소 생뚱맞긴 하지만, `침범국` 과 `침범국인`의 존재가 후반부에서 부각되면서 약간 상쇄되긴 했다. 결국 이 이야기는 `베셀인 티아도어 볼루는 어떻게 침범국인이 되었는가` 라서, 이러한 중심 주제를 떠받치기엔 서론이 지나치게 장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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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바 2 - 제152회 나오키상 수상작 오늘의 일본문학 15
니시 카나코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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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너무 멀었다. 두권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을 여러 번 했다. 과감하게 책장을 덮자니 왜 이렇게 나를 끌고 다닌 건지 꽤 찝찝하게 마음이 불편했고, 좀처럼 애정이 생기지 않았던 주인공들의 앞날이 은근히 궁금했다. 언젠간 다른 일이 벌어지는 걸까. 이 답답하고 재수없고 젠체하면서 도망이나 다니는 인생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극적일 정도로 아름답게 구원에 이르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래도 끝까지 읽기 잘했다는 안도감이 들었지만, 그래도 나는 여전히 일말의 미심쩍은 마음을 버릴 수 없다. 구원, 그래, 그 구원이 그렇게 대단한가. 

아무런 이유도 설명도 없이 엉망으로 무너지고 파괴되고 죽어가는 재해를 빈번히 겪은 일본인에겐 죽음이란 것의 의미가 다를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세계 어딘가에서는 그렇게 사람들이 계속 죽어간다.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을 먼 나라의 이야기로 무덤덤하게 넘기는 자신이, 약간 무서워졌다.
그러다 생각이 났다. 이제 4월이라는 것이. 차가운 물 속에서 잠겨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떠올랐다. 아, 이런 것이구나. 구원을 찾는 마음이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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