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 콘서트 2 - 우리 동네 집값의 비밀에서 사무실 정치학의 논리까지, 불확실한 현실에 대처하는 경제학의 힘 Economic Discovery 시리즈 2
팀 하포드 지음, 이진원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소설 '용의자 X의 헌신'에서 주인공은 수학선생님입니다. 수학이 무슨 필요가 있냐고 하는 학생에게 이렇게 답하더군요. 잘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를 주행할 때도 미적분이 적용된다구요. 미국 드라마 시리즈 '넘버스'의 주인공인 수학자 찰리의 경우에서도 비슷한 답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때는 주인공이 격분하면서 전문용어를 쏟기 시작해서 알아듣기가 더 힘들었지만요.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딱딱하게만 느껴지고 이게 무슨 필요가 있나 싶지만 수학부터 물리학까지 학문의 원리는 생활 이곳 저곳에 숨어 있습니다. 단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어서 찾지 못하는 것 뿐이구요. 경제학이야 알게 모르게 퍼져 있는 터라 큰 관심이 없었는데 요사이 경제학이 관련된 '괴짜 경제학', '일상의 경제학', '경제학 패러독스' 같은 책이 나오기 시작해서 경제학에 대한 것을 조금은 생각해 보게 됐습니다. 그 선두에 서 있는 책이 바로 이 책 '경제학 콘서트' 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끊임없이 다수의 상품을 소비하기도 하지만 더 나은 이익을 추구하는 생물이라는 점에서 경제학이 계속 적용되더군요. 허나 이 책 자체가 워낙 재밌어서 이 책 제목에 엄연히 경제학이라는 단어가 붙어 있다거나 경제학 원리가 등장한다는 사실을 잊게 될 때도 많았습니다.

책은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 장의 제목은 '똑똑한 사람은 에이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게임의 달인 인생의 달인, 멋진 남자가 평범한 남자와 결혼하는 이유,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연봉의 비밀, 네 이웃은 누구인가, 차별당하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 도시에서 영리하게 살아가기, 합리적인 유권자 생활, 부유한 나라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입니다.

각 장에 소제목이 붙어 있고 그 소제목 당 두세 쪽으로 나뉘기야 하지만 일관된 주제를 설명하기 위함이라서 오히려 더 좋더군요. 편안한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랄까요. 한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다가 퍼져나가는 부분을 건드리고 한참을 듣다보면 다시 본래의 주제로 돌아와 마무리 됩니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집중도가 저하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일단 첫 부분이 '왜 10대들에게 구강성교가 유행하는가'로 시작해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만은 확실했습니다. 은근히 클린턴 전 대통령이 떠오르기도 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하고 한심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지은이는 이것이 더없이 합리적인 일이라고 설명합니다. 에이즈 그리고 성병을 피하기 위해 덜 위험한 성행위로 옮겨간 것이라는 거지요. 이득을 착실하게 따진 계산이라는 겁니다. 단순히 아이들이 타락했다가 아니라 경제적 가치를 따진 행위라고 하나하나 분석해주는 것이 신선하게 느껴졌네요. 

그 외에는 유명 수학자 폰 노이만의 게임이론이 적용되는 포커판의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게임이론을 적용해서 우승한 도박사의 이야기도 인상깊었지만 컴퓨터보다 더 빨리 계산했다는 폰 노이만의 지능과 능력이 더 놀라웠습니다. 부러운 생각도 들었구요.

또 CEO가 굳이 열심히 일하려 들지 않는 것과 그런 CEO에게 거대한 연봉을 주는 것이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분석한 것이 재밌었어요. 이익을 더 얻어도 자신에게 오는 이득이 껑충 뛰어오르는 게 아니니까 CEO가 무리해서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고 뛰어난 CEO가 아니라도 많은 연봉을 주는 것은 그에게 그만한 연봉을 주면 밑에 부하직원들이 후에 승진할 때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면서 더 열심히 일하는 효과가 있다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카트리나의 재해를 당한 도시 뉴올리언즈를 복구할 것이 아니라 그곳에 살고 있던 시민들에게 돈을 줘서 다른 도시에서 살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이색적이었구요. 생각해보지 않았던 부분이었달까요.

다양한 주제를 재밌게 섭렵해가며 풀어나가는 경제학 이야기여서 부담도 적고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어요. 보기 드물게 시리즈로 나와도 재밌는 경제학 도서였구요. 생활 속의 경제 원리를 유쾌하게 풀어낸 '경제학 콘서트 2' 재밌게 읽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사 생태도감 - 본분을 잊은 의사들이 맞이하는 4가지 파국
이노우에 히로노부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미국 드라마 시리즈 '하우스'를 즐겨 보는 편인데, 처음 봤을 때는 상당히 신선했던 기억이 있네요. 의학 드라마라는 점도 그렇고 진단의학과라는 것도 생소했지만 주인공 하우스의 성격이 가장 신선했어요. 돈 밝히는 의사가 있다는 것도 알지만 의사의 기존 이미지랄까, 전반적으로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인 의사 선생님의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독설이 인상 깊더군요. 물론 하우스는 돈에 탐욕스러운 의사도 아니고 독설이 있어서 그렇지 들어온 환자 대부분이 살아서 나가는 명의 입니다. 어디까지나 드라마지만요.

또 실제로 만나게 되는 동네 가정의학과 병원 원장님도 친절한 편이라 의사에 대한 인식이 나쁘지 않았던 탓에 이 책 '의사 생태도감'은 아주 특이한 책이었어요. 마치 나비 표본처럼 의사들을 핀으로 꽂고 액자에 넣어서 진열한 상태를 보여주는 표지와 의사생태도감이라는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구요. 생태도감이라고 하니 사람을 다룬 내용이라기보다 파브르 곤충기가 먼저 떠올랐구요.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면야 핀으로 찌른 상태지만 클레이 애니메이션 인형 같은 상태의 깜찍한 인형인 터라 표지가 귀엽더라구요. 내용이야 제목에 작게 적힌 대로 '본분을 잊은 의사들이 맞이하는 파국'이지만요.

책은 4가지 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요. 첫 번째 이야기는 오카구라 쇼고라는 큰 병원 부원장이 아들을 의대에 부정입학시키려 들면서 벌어지는 일을 담고 있구요. 두 번째 이야기는 시마모토 고지로라는 개인병원 원장이 교통사고 환자들의 보험금을 과다청구하다 수렁에 빠지는 이야기에요. 세 번째 이야기로는 와카기 나오야라는 정신병원 원장이 정신적으로 장애를 겪고 있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가 있더군요. 네 번째 이야기는 우라베 슈이치라는 돈만 아는 의사가 소송을 당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본분을 잊었다고는 하지만 큰 악당이라기보다 속세에 찌든 생활인이랄까요. 아주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만 의사는 환자를 여러 명 보는 만큼 주위에 끼치는 피해도 크더군요. 범죄를 저지르려고 하면 용의주도하기도 하구요.

네 가지 이야기 중에서 환자와 사랑에 빠지는 게 뭐 그렇게 죄악인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요. 다른 과 환자가 아니라 정신과 환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부분이 께름칙하더군요. 마음의 균형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라 그 의사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 정신적 문제가 있어서 그저 의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연애를 하려드니까요. 그럴 때는 치료에 전념해서 그 상태를 벗어나게 해주는 게 의사로서 할 도리를 다하는 것일 텐데요. 그래서 어떤 의미로는 네 가지 경우 중에서 가장 거슬렸어요. 환자 본인 말고는 피해 입은 사람도 거의 없는 경우였는데도요.

아무래도 내용이 파국 쪽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라 즐겁게 읽기는 좀 힘들었구요. 작가가 전에 보험조사원을 해서 그런지 의학적인 부분의 묘사는 굉장히 세밀하더군요. 그 점에는 상당히 감탄했어요.

그나마 가장 재밌게 읽었던 이야기는 네 번째 소송을 당하게 된 악덕의사 이야기였어요. 의사에게 감정이입하는 게 아니라 간호사 미호의 입장에서 읽어서 더 그랬네요. 악덕의사에게는 파국이었던 마무리가 오히려 통쾌하게 느껴졌구요. 표지와 제목보다 내용이 더 특색 있고,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맹목적 신뢰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책 '의사생태도감' 인상 깊게 잘 읽었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외계인, 회사에 출근하다 - 나와 다른 별종들과 함께 일하는 직장처세전략
패트리샤 아데소 지음, 윤성호 옮김 / 미래의창 / 200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도시에서 살아간다는 것의 이득은 더러운 환경과 끔찍한 교통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사람과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책이 있더군요. 사람은 사회성을 가진 생물이라 혼자 남으면 못 견디는 면이 있기는 합니다. 영화 '나는 전설이다'에서 주인공은 다른 생존자를 찾고 있었지요. 괴물이 있기야 했지만 생존에 문제가 없었을 때도요.

하지만 사람이 주위에 없으면 외로워서 문제지만 주위에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과 성격이 달라서 또 문제 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화성인과 금성인으로 비유한 책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도 있기야 하지만 남녀간이 아니라도 저 사람이 같은 사람이긴 한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성격 차이가 나는 사람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때 그저 성격이 다를 뿐이지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고민도 없겠지만 산 속에서 도 닦는 사람이 아닌 이상 무리인 게 대부분입니다. 그 많은 성격 차이를 쉽게 분석하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게 하는 게 바로 이 책 '외계인, 회사에 출근하다' 입니다.

다른 성격의 사람을 '외계인'으로 규정지어서 이해를 돕는 점은 일단 후한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에서 써먹은 방법이긴 하지만 그 만큼 성격의 다름을 강조하는 데는 적합한 방법이 없어 보였습니다.

책은 심리학적 성격유형이나 분석기준을 가볍게 머리말로 훑어주고 본격적으로 들어간 부분에서 성격을 11가지 외계인으로 분류합니다. 그 11가지에 대립적 성격유형 두 가지가 들어 있구요. 그 중에 자신에게 어떤 것이 더 가까운 지 그리고 자신과 마찰을 일으키는 동료는 어떤 쪽에 가까운지를 생각해보게 합니다.

11가지 분류는 태양, 수성, 금성, 지구, 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립적 성격유형은 그 행성의 특성에 맞춰서 설정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스스로 빛을 발산하는 태양의 경우 외향형과 내향형 성격을 규정지어서 가르쳐 줍니다. 거기에 각각의 성격유형의 사람이 일을 할 때 어떻게 반응할 지의 예시가 있고, 각기 다른 대립적 성격유형의 사람들이 함께 일할 때의 경우, 상사와 부하직원의 성격유형이 다를 때에 서로 대응할 방법을 알려줍니다.

그 후에 다시 한 번 깊게 생각해볼 수 도 있도록 각 행성의 성격과 대응법을 본 후 자신의 경우 어느 쪽에 속하는지 그리고 동료는 어디에 속하고 앞으로 어떻게 대응해야 서로 마찰이 없을 지 체크하는 부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한 번씩 주의를 환기시켜 주니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 친절한 책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이렇게 11가지 행성순례를 하고 마지막 12번째 장에서는 실제 대응사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의 성격이야 복합적인 것이고 11가지 분류 중에 자신의 성격이 중간부에 있는 것도 있지만 한두 가지는 좀 치우친 것이 있을 겁니다. 그 부분을 신경 써서 조율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부분이랄까요. 가령 태양에 해당하는 외향형과 내향형에는 중간치지만 지구에 해당하는 감상형과 현실형에서는 감상형에 가깝고 동료는 현실형에 가깝다면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읽고 나니 처세술을 생각하기에 앞서 미처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성격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사고형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행동형에 가깝다던지 하는 것 말입니다. 자신의 성격과 타인의 성격, 성격이 부딪힐 때의 대응방안을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구요.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라는 황금률이 아니라 '그들이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그들이 대접하라'라는 백금률을 생각하게 하는 책 '외계인, 회사에 출근하다' 흥미 있게 읽었습니다. 백금률이라는 말, 다른 사람의 성격이 거슬릴 때마다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 - 신달자 에세이
신달자 지음 / 민음사 / 2008년 3월
평점 :
품절


중학교 2학년 때, 어느날 밤 갑자기 죽는다는게 너무 무섭게 느껴진 적이 있었습니다. 흔히 귀신이야기도 했고 사람은 죽는다는 것도 알고는 있었지만 가까운 사람이 죽은 기억도 거의 없었고 피상적인 것으로밖에 죽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그런 감정이 그 때 밀려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한 동안 잠을 자고 싶지가 않더군요. 언젠가는 끝없이 잘 텐데 지금 자는 일이 너무 무익하게 느껴졌구요.

죽음으로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것부터 오만가지 생각과 불안이 머리를 복잡하게 했지만 가장 큰 두려움은 건전지가 다하듯이 뚝 하고 목숨이 끊기고 영혼이니 전생, 내생 같은 것이 없는 게 죽음이면 어떻하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 쓸데없는 걱정으로 잠을 설쳤나 싶지만, 지금도 죽음이 그렇게 뚝 끊어지는 형태면 어떻하나하는 점은 두렵습니다.

이 책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는 시인 신달자의 에세이 입니다. 그녀는 24년간 남편의 병수발을 했고 책은 남편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며 시작합니다. 그녀가 묘사하는 남편의 죽음 그리고 이후가 제가 생각하는 두려움의 모습과 근접해서 그런지 이 생각이 읽는 내내 떠나지 않더군요.

유명한 분이라는 것 말고는 저자분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지 않아서 이 책 제목 '나는 마흔에 생의 걸음마를 배웠다'를 보고 남편 분이 그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인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읽다보니 이 때가 저자분이 대학원에 진학하고 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해 버티던 시기라는 걸 알겠더군요.

그녀의 남편, 심교수라고 지칭되는 분은 지금으로부터 28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그 때 그녀의 나이 서른 다섯이구요. 아이 셋과 부인, 어머니를 부양하던 가장이 그렇게 쓰러졌으니 그 때의 충격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23일간의 중환자실 생활과 환자가 눈을 뜬 것으로 행복이 돌아올 줄 알았던 순진함, 이후 24년간의 병수발이 저자분의 감성을 실어 하나하나 담겨있습니다.

책을 보면 주위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재밌어?'라는 질문입니다. 그런데 이 책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군요. 처음에는 그 질문에 맞지 않게 '불쌍해'라고 답했습니다. 가족이고 남편이고 아이의 아버지이기는 하지만 그 분을 붙잡고 버티기 위해 안간힘을 썼던 저자분의 노력이 안타깝게 느껴졌으니까요.

쓰러지기 전과 다른 사람처럼 변해버린 사람을 돌보고 모든 패악을 다 받아내는 것도 인간적 굴욕을 감내해야 하는 것도 생계를 책임지고 아이를 키우고 시어머니를 모시고 하는 것도 전부 한 사람에게 쏠려 있다는 게 읽는 순간 그렇게 마음 아플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환자가 성질을 부리면서 빗자루로 때렸다는 부분에서는 할 말을 잃었지요.

하지만 점차 그 생각이 변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버틴 모습은 안타깝지만 오히려 모든 고통을 전가하는 남편을 불쌍하게 생각하고 아끼는 모습에 감히 동정을 보내도 좋을지 결정할 수가 없었구요. 더구나 마흔 살에 대학원에 진학하고 박사학위를 받고 교수직에 오르는 것,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서 빚도 전부 청산하고 경제적 안정도 찾고 그렇게 자신을 괴롭힌 남편에게 운전기사와 차를 선물하는 모습이라니...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 교수가 되어서 그 쪽 강의를 위해 외박을 하고 자유를 만끽하는 부분이었어요. 모든 걸 희생하는 사람, 존경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자신을 다시 찾아가는 모습이라 그게 후련하기도 하고 같이 기뻐하게 되더군요. 그 때도 굴레이면서 애증의 대상인 남편 병수발 도중이었지만요.

손바닥 뒤집듯 태도를 바꾸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같이 분해하고, 간신히 숨을 쉬나 했더니 시어머니의 병수발까지 9년이나 하게 된 상황에 안타까워하고, 지지 않고 버텨내는 모습에 감탄하게 만들더군요. 글을 읽으면서 울고 웃고 한다지만 그 만한 흡입력을 가진 책은 많지 않거든요.

실화라는 점도 있지만 중간 중간 들어간 붉은 활자로 나타나는 시와 마음을 흔드는 이야기에 굉장히 인상 깊게 봤어요. 읽고 나면 복잡한 심경이 되어서 한 마디로 어떻다고는 표현할 수 없지만요. 굳이 말하자면 '존경스럽고, 안타까운' 정도일 것 같네요. 표지의 붉은 부분이 읽기 전에는 붉은 노을 같아서 아름답게 느껴졌는데 읽고 나니 붉은 눈물 같아 마음이 싸하구요. 오랜만에 인상적인 에세이였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누군가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의 뒷 표지에 이런 말이 적혀 있습니다. 행복한 일상을 살아가는 탐정을 주인공으로 한 책이라구요. 사실 그렇습니다. 사건은 소소한 것에서 시작되고 탐정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은 더없이 행복한 인물입니다. 후에 못된 것들한테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귀여운 딸, 아름다운 아내, 든든한 장인까지 갖춘 인물이니까요.

직업도 탐정은 아니고 편집자 일을 하기도 하는 사내보 기자입니다. 장인의 회사에서 일하고 있구요. 매일 딸이 자기 전에 '호호 아줌마'를 읽어주고 자신도 그 책을 읽는 걸 즐기는 이 사람은 장인의 부탁으로 하나의 사건 속으로 걸어들어갑니다.

사건은 장인의 운전기사였던 분이 자전거에 치여 돌아가셨다는 거구요.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는데 고인의 두 딸은 범인을 잡기 위해 아버지에 관한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책 만들기에 적극적인 둘째딸과는 달리 첫째딸은 뭔가 꺼리는 기색이 있는데요.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터라 엄청난 음모를 예상했는데, 어두운 그림자가 없지야 않지만 뜨거운 여름날 예상치 않게 마주하게 된 옛 과거라는 느낌이구요. 그렇지만 하나하나 살펴보면 살인사건이 있고 해서 소소하다고는 말 못하겠네요.

사건을 차근차근 풀어가는 주인공의 모습과 화목한 가정을 꾸리는 주인공의 모습이 교차되서 굉장히 조용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추리소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단지 못된 것들이 있어서 울컥하는 부분도 있지만요. 속편도 있다고 하니 읽어보고 싶네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