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토템 1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김영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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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 가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이 있다. 고독한 늑대라는 말이다. 늑대는 다른 많은 육식동물과 달리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다. 그런 동물에게 홀로 돌아다니는 외로움을 품은 존재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하기야 늑대는 육식동물다운 강인함과 무리지어 사냥할 때 보이는 영민함을 가진 동물이니 그런 고독한 방랑자에게 어울리는 수식어가 적합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보통 많은 이야기 속에 늑대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악한 존재로 등장한다. 이야기라서 상대적으로 약한 초식동물에게 선한 위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늑대토템' 속의 늑대는 묘한 동물이다. 무리 지어 사는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목축민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인 동시에 그런 특성으로 인해서 목축민에게 득이 되는 동물이다. 힘차게 초원을 달리는 초원늑대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적대시 되는 기묘한 위치에 있었다.

베이징에서 자본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지식청년들은 내몽골의 초원지방으로 오게 된다.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초원지방의 매력에 매료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식청년들 중에서 천전은 초원지방의 늑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몽골의 늑대는 그 지역의 어떤 동물보다 영리하고 강인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늑대의 힘에 압도되었던 천전은 늑대를 만날 때마다 그 영리함을 넘어서 교활하기까지 한 지능적 행동에 감탄하게 된다.

아버지로 생각하는 빌게 노인과의 생활에서 천전은 늑대에 관한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알면 알수록 홀로 늑대와 마주하게 된 상황의 두려움을 넘어서 늑대와 공존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농경민인 한인의 특성을 넘어서지 못했던 초기에는 감히 늑대에게 대항하지 못했지만 후에 정착을 하고 나서는 양치기로써의 직무에 충실한 나날을 보낸다. 쇳소리로 늑대를 간신히 쫓아 보냈던 처음, 양떼를 습격한 늑대에 대항하는 몽고여인의 강인함을 본 두 번째, 늑대의 사냥에 감탄하게 되는 세 번째 만남이 이어지면서 그는 늑대에 깊이 빠져든다. 이 상황은 읽는 사람의 마음도 같은 방향으로 유도했다. 늑대의 힘만이 보였던 첫 만남과 달리 두 번째 만남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과의 균형이 보였고 세 번째 만남은 늑대의 영리함이 감탄스러웠던 것이다.

주인공이 빌게 노인과 함께 숨어서 늑대를 주시하는 가운데 늑대 무리는 가젤 떼를 습격한다. 가젤 떼가 풀을 먹고 있는 목초지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귀중한 장소였다. 눈이 와도 남아있는 목초지라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가축에 비해서 엄청난 양의 풀을 먹어치우는 가젤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사냥을 해도 그 때뿐 사람들이 가버린 밤에 다시 나타나서 풀을 먹어치우기 때문이었다. 그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준 것이 늑대였는데 늑대들은 가젤들이 배를 가득 채우기를 기다려 가젤들을 습격한다. 배가 가득 찬 가젤의 움직임은 둔한 것이었고 그런 움직임으로 늑대의 포위망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늑대들은 삼면에서 가젤을 몰아 그들을 산등성이로 가게 한다.

산등성이 아래는 눈이 가득 쌓여 있어서 천연의 함정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나갈 수 없는 눈구덩이를 앞에 둔 가젤은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움직인다. 튼튼한 수가젤이 뿔을 앞세워 앞에 포위망을 뚫으면 그 뒤를 달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허나 왕늑대는 튼튼한 개체에게 일부러 포위망을 열어주고 그들이 지나가자 그 길을 막아버림으로써 약한 가젤만을 사냥대상으로 남긴다. 약한 가젤들은 살기 위해서 다시 산등성이 쪽으로 향하고 그 너머의 천연 함정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늑대들은 그 구덩이 속에 파묻혀 움직이지 못하는 먹잇감을 하나씩 먹어치우면 되었다. 그런데 늑대들이 죽이는 사냥감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 싶었다. 그 이유는 사냥에 나서지 못한 늙은 늑대나 어린 늑대가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리를 이루고 사는 동물 나운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냥은 거기서 끝이 아닌데 함정에 수많은 가젤들이 빠지긴 했지만 늑대역시 어느 한도 이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함정 가장자리에 있던 가젤들은 늑대의 먹잇감이 되지만 함정 가운데까지는 늑대도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장소를 잘 봐두었던 빌게노인과 천전은 다음 날 사람들은 데리고 그 장소를 다시 찾는다. 구덩이에 묻혀 있는 가젤을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늑대의 사냥감을 사람이 취하는 셈이었다. 허나 이는 많은 가젤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혹시라도 살아있는 가젤이 있으면 풀어주는 일도 겸한 것이었다. 그래야 다음 해에도 가젤이 있을 테고 늑대의 먹잇감이 있어야 가축을 습격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늑대의 사냥 덕분에 부수입을 얻는 일도 생기고 말이다. 늑대 무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냥감을 취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므로 이 정도는 넘어간다고 했다. 후에 눈이 녹으면 묻힌 가젤의 시체가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늑대의 봄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늑대가 사냥한 가젤 전부를 가져가버린 것이다. 거기에 늑대를 무조건적으로 죽여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해서 늑대새끼를 훔쳐다 죽이기까지 하니 굶주린데다가 화가 난 늑대의 보복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천전 역시 자신만의 오만함으로 새끼늑대를 데려다 키워 보고 싶다는 마음에 늑대 굴로 향한다.

늑대들의 가젤 사냥이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면 사람과 말에 대한 습격은 오싹한 그 자체였다. 그 처절한 싸움은 할 말을 잃게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늑대와의 공존을 이해하지 못한 농경민의 행동으로 인한 것이어서 늑대에 대한 나쁜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초원늑대와의 공존이 깨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늑대는  사람에게 위험한 동물이기도 하지만 초원에 해를 끼치는 쥐, 마르모트, 가젤 같은 초식동물을 없애 주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숭배대상은 보통 용이다. 허나 유목민의 숭배대상은 늑대다. 그 영리함뿐만 아니라 강인함을 보고 배울 수 있으며 숭배대상이기이전에 함께 살아가는 대상이며 스승이기도 한 늑대에 말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늑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한 '늑대토템'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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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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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람은 기묘한 생물이다. 어떤 자는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면 살기 위해서 못 할일이 없지만 어떤 자는 죽음이 아니라 그 뒤에 무엇이 있든지 자신의 입장을 굽히려 들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것이야 말로 사람의 입장이나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가장 근원적 공포인 죽음을 앞두고도 변하지 않는 증거이니 말이다. 물론 가끔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항상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던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앞두고 자신의 신념을 꺾어버린다. 누구나 가게 되지만 정작 그 뒤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죽음이란 길이 마음을 흔들기 때문이다.

여기 비슷한 상황에 빠진 네 명의 남자가 있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네 명은 국왕을 암살하려다 사로잡힌다. 네 명의 반란자에게 내려진 형벌은 사형이었다. 거기에 죽음의 방식은 단두대형이었다. 이것은 네 명을 가두고 있는 감옥의 우두머리가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총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총사령관은 네 명의 사형 전 날 이런 제의를 해 온다. 죽기 전에 반란군의 지도자를 알려주면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들 네 명은 들은 체도 하지 않지만 총사령관은 단 한 사람의 이름만 말한다면 전원 목숨을 구할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로 추방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거기에 국내의 상황이 잠잠해지면 돌아와도 좋다는 조건이었다.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 없고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어도 살 수 있는 조건이었다. 총사령관은 네 명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결정을 하고 나면 탁자 위에 있는 종이에 이름을 적거나 가위표를 해서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어떤 자가 배신했는지 모를 테고 단 한 사람만 신념을 꺾으면 모두 살 수 있었다. 누가 배신했는지도 알 수 없다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허나 그들은 신념 때문에 잡혀 온 자들이었고 이 이야기를 무시한다.

그런데 방을 옮겨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자 이들은 흔들린다. 씻지도 못하고 방에 갇혀 있는 상황 그대로였다면 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을 옮기고 오랜만에 이발과 목욕을 하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동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네 명은 고해성사마저 거부하지만 그들이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한 방에는 다른 이가 있었다. 치릴로 수도사라고 불린 산적이었다. 착잡한 심정을 지울 수 없던 네 명은 마지막 신변 정리를 겸해서 각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하기로 한다. 모두의 이야기가 끝이 나면 사령관의 제의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각자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생각은 치릴로 수도사에게서 나왔는데 그들이 어떤 답을 내든 그는 죽을 목숨이었기에 그 하룻밤을 즐기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네 명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가장 나이가 어린 학생인 나르시스였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가진 이 학생은 자신의 첫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어떻게 그가 평탄한 삶을 사는 상인의 아들에서 반란에 가담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이 나자 이번에는 네 명 중에서 우두머리의 위치에 있는 남작이 입을 연다. 삼십분 늦게 태어나서 가문의 재산이나 작위를 상속받지 못한 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남작의 충직한 수하인 아제실라오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집시인 어머니를 군인인 아버지가 강간해서 태어난 아제실라오는 수도원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인생은 어머니가 남겨준 단검과 쪽지로 인해서 급변했다는 것이다. 그의 단검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나자 마지막으로 시인 살림베니가 자신이 만났던 공작부인과 그녀의 의붓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네 명의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나자 이제 총사령관이 제의한 대로 종이에 이름을 적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때에 도달하고 만다.

네 명은 저마다의 생각대로 행동하지만 이미 그 밤은 음모로 가득 차 있었다. 이야기는 때로는 예측가능하게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에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이었는지 다시 하나하나 떠올려보게 되었다. 목숨을 건 하룻밤 속의 네 가지 이야기라 이야기 자체도 재밌었지만 그 이야기가 무엇을 품고 있을 지를 더 기대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렇기에 마지막 결말이 나올 때까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사형 전 날 네 명의 사형수가 풀어놓는 이야기 네 가지 '그 날 밤의 거짓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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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남자 - 성,사랑과 돈 다윈의 눈을 통해 본 당신의 세계
마이클 길버트 지음, 김석규 옮김 / 일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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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흔히 다른 별 사람으로 비유된다. 가끔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만 같은 문화권에서 자란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을 이해하는 것보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자란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의 행동을 이해하기가 쉬울 때가 많다. 단지 생물학적 성이 다른 것 뿐인데 몇 십년동안 같은 문화권에서 산 사람인데도 그 마음이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다. 그런 차이를 태어난 후 가정이나 사회에서 학습한 것으로 지적하기도 하지만 어떤 것은 태어나기 이전에 유전자에 각인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도 있다.

이 책 '일회용 남자'는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풀어주고 있다. 다른 성의 기묘한 행동이나 사고방식은 어떤 의미로는 영원한 미스테리라서 꽤나 흥미 있게 읽을 수 있는 면이 있다. 그 차이를 나누는 방식은 그렇겠다 싶은 게 있는가 하면 가당치도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게 있지만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 남자와 여자의 행동방식을 아주 예전 인류가 생겨난 시기로 돌아가서 그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여자는 관계를 추구하지만 남자는 성적 결합을 서두르는 면이 있다. 이 문제는 사람을 동물로 생각하면 간단하게 풀린다. 예전에 인류 역시 지능보다 신체적 능력을 사용한 동물에 가깝던 시기에 남자는 사냥꾼이었고 여자는 주로 채집자였다. 둘의 관계는 분명한 것이어서 남자가 사냥한 것을 여자가 소비해야 하는 위치였다. 그렇다고 해서 힘의 권력 관계에서 그 무게추가 남자에게 쏠리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모든 동물이 그렇듯 사람도 번식을 해서 자기 유전자를 남기고 싶은 본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여자가 열세에 있었지만 성적 결합을 통해서 아기를 갖는 것은 남자가 아닌 여자였다.

그리고 다른 동물들이 그렇듯 발정기가 왔을 때 그 표지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졌을 것이다. 허나 인간 여성은 가임기가 왔을 때와 가임기에 있지 않을 때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아서 인간 남성이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즉 자신의 아이를 여성에게 갖게 하려면 그 여성을 독점해야 했음을 의미한다. 결국 여성의 선심을 얻어야 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여성이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그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닐 수 있었다. 결국 남성 쪽에서 여성을 유혹해야 하는 입장에 놓였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해야 했다. 지금으로 치면 능력, 재산 같은 것을 말이다. 당시에는 사냥능력이나 그 희생물을 과시했을 것이다.

아기를 가지고 그 아기를 책임져야 하는 위치에 놓이고 마는 여성은 누구의 아기를 갖느냐는 자신과 아기의 생존에 중요한 문제였다. 그래서 누구의 아기를 가질 것이냐를 신중하게 고려했고 상대를 선택했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을 독점하려면 일단 유혹하고 그 후에는 결혼이란 제도로 묶어둠으로써 태어난 아이가 자신의 아이가 될 확률을 크게 올렸다. 그래서 부양의 의무를 지기는 하지만 당장 자궁에 아이를 가지지 않는 남성의 입장에서는 성적 결합을 더 중요시 하게 되었다.

반면 여성의 경우 안정적 관계를 유지하지 않으면 자신과 장차 태어날 아이의 생존을 유지 할 수 없으므로 관계를 더 중요시 하게 되었다. 남자가 만약 다른 여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다른 여성에게 가버리면 자신과 아기는 난감한 입장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자는 남자가 짧은 바람을 피운 것보다 마음을 준 것에 더 화를 내고 남자의 경우 마음을 준 것 자체보다 성적 결합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더 신경을 쓴다고 한다. 지금도 그런 생각들이 유전자에 남아 있고 아기를 가져야 한다는 서로의 입장에는 큰 차이가 없어서 이런 사고방식은 예전과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남녀의 관계를 분석하는 것 자체는 매우 재미있었다. 허나 그런 식의 방식이 '옳은'사고라고 강요하는 느낌이 있어서 읽으면 읽을 수록 이 책의 내용에 대한 반감이 생기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여성은 사회적 활동을 하는 것보다 집에서 아이를 양육하고 가정을 관리하는 것이 좋다는 식으로 강조하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주 높은 위치까지 올라간 여성 관리자들이 아이들을 위해 일을 포기하고 가정에 안주하는 선택을 했는데 그것이 너무 '옳은'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는 개인의 선택 문제고 그 사람들이 그런 삶을 선택했다고 해서 그게 옳다 그르다를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녀 차이를 종의 기원에 입각해서 분석한 '일회용 남자'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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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만, 오드리!
로빈 벤웨이 지음, 박슬라 옮김 / 아일랜드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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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상은 평범하지만 소중하다. 하지만 물에 빠져 질식할 것 같은 상황에 처하기 전에는 공기의 소중함을 알 수 없듯이 평범한 일상도 잃기 전에는 그 소중함을 알기 어렵다. 당연하다는 듯이 반복되는 동안에는 그저 그런 가운데 가끔 즐거운 때가 있는 시간들이지만 잃고 난 후에는 마치 닿기 어려운 신기루마냥 그 가치가 크게만 보이는 것이다. 여행을 하는 것처럼 계획된 방법에 의해 의도적으로 며칠 일상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좋지만 그 일상을 잃은 일이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생겨난다면 그것은 짜증스러운 일이다.

이 책 '잠깐만, 오드리!'에서 주인공인 오드리가 처한 상황이 그렇다. 오드리는 음악을 아주 좋아하기는 하지만 평범한 16살의 소녀였다. 남자친구인 에반과 헤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가능성은 있지만 명성은 제대로 얻지 못했던 '두-구더스'라는 밴드의 보컬이었던 에반은 오드리하고 사귀고 있는 사이었다. 허나 언젠가부터 오드리는 에반에게 염증을 느낀다. 그가 매력적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루 종일 자신에 대해서만 말하는 사람과 사귀는 일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다고 에반이 딱히 잘못한 일은 없었기 때문에 오드리는 이별을 통보하기 전에 잠시 고민한다. 오드리는 에반의 장점과 단점을 리스트로 작성하는데 장점은 몇 가지 안 되는데 단점이 그 배가 넘어서자 에반과의 결별을 결심한다. 에반과의 이별은 딱히 끔찍할 것도 없었고 에반 역시 그 이별 통보를 덤덤하게 받아들인 것 같았다. 단지 그가 좀 멍한 것 같기는 했는데 오드리는 이후에도 친구로 지내고 싶다는 에반의 말에 수긍하고 그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방을 나서려는 오드리의 뒤로 갑자기 에반이 '잠깐만, 오드리'하고 부르지만 오드리는 그 소리를 무시하고 방을 나선다. 이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오드리는 헤어질 때 약속한 대로 에반의 라이브 공연에 간다. 두 사람이 헤어졌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다를 것 없는 공연이었지만 마지막 순간에 에반이 자신이 최근에 작곡한 곡을 부르겠다고 말한다. 제목은 '잠깐만, 오드리' 였다. 여자 친구인 오드리와 헤어지고 영감이 떠올라서 그 곡을 썼다는 것이다. 전주가 나오는 동안 오드리의 머릿속에는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에반이 자신을 잡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곡을 썼다고 생각한 것이다. 허나 그 노래의 가사는 오드리의 예상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노래는 분명 흥겨웠지만 가사는 자신을 찬 여자 친구에 대한 원망을 가득 담은 곡이었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가사는 짜증나는데 노래는 여태 들은 두-구더스의 어떤 노래보다 최고라는 점 말이다.

오드리는 그 순간 무대 위에 뛰어올라가 에반의 목을 조르고 싶었지만 그 장소에서 나오는 것으로 상황을 벗어난다. 두-구더스는 어디까지나 동네에서나 약간 이름이 알려진 밴드였고 그 노래 자체는 시간이 약간 흐르자 잊혀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 노래가 라디오에 방송되고 점점 인기를 얻는다. 그에 따라 그 노래가 탄생하게 만든 오드리 역시 화제의 인물이 된다. 노래를 작곡한 것은 에반인데 마치 오드리가 그 노래를 작곡한 것 마냥 취급을 받는 것이다. 거기에 어느 정도 '잠깐만, 오드리'라는 노래가 유명해지자 언론사에서 오드리를 인터뷰하려고 한다.

그 전화가 왔을 때 아르바이트에 늦어 있었던 오드리는 반 장난으로 전화를 받고 만다. 오드리는 그럴 의도가 아니었지만 언론사 기자는 마치 오드리가 방종한 생활을 즐길 뿐 아니라 현재의 짜증나는 유명세를 즐기는 악동인 것 마냥 묘사한 기사를 보도한다. 덕분에 오드리는 더 유명해지고 노래도 점점 상승세를 탄다. 이제 기자에 시달리게 된 오드리는 자신의 유명세가 짜증스러울 뿐이었다. 거기에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사건이 발생하고 오드리는 이제 파파라치에게까지 쫓기는 상태가 되고 만다.

본의 아니게 유명세에 휘말리고 만 16살 소녀의 이야기 자체는 그리 특이한 소재는 아니다. 다만 유명해지고 싶어서 안달이 난 사람이 많은데 이미 유명해졌지만 그 유명세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주인공이라는 점만은 약간 특이했다. 이 책에서 내용보다 더 독특한 즐거움을 선사했던 것은 오히려 음악이 함께하는 책이란 점이었다. 책 자체가 노래 한 곡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리고 있기도 하지만 41개 장으로 구성된 각 장에는 주인공 오드리의 심상을 반영하는 노래가 장의 제목인 것 마냥 소개되고 있다.

그 41곡의 노래를 들으면서 책을 읽으니 이 책 '잠깐만, 오드리!'가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새로운 노래를 듣는다는 즐거움과 주인공 오드리가 처한 상황과 감정을 좀 더 생생하게 상상하는 즐거움을 동시에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끝이 나자 소개된 41곡의 노래가 마음에 들어서 이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이야기의 발단이 된 두-구더스의 '잠깐만, 오드리'를 실제로 들어보고 싶었다는 점이었다. 그 점만을 제외하면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설 '잠깐만, 오드리!' 매우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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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그리고 시작
김명조 지음 / 문학수첩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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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생각하게 되는 것이 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는 깨닫지 못하지만 사람들이 조국에 대해서 가지는 애정은 그 사람이 평소 생각했던 것보다 크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 다룬 자료를 보다보면 그런 생각이 종종 드는데 유난히 애국심이 강조가 된다. 그것이 그 사람들에게 그만큼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서 평소 사람들이 언급을 하지는 않지만 내심 애국심이라는 것을 꽤나 중요한 가치로 가슴 속에 품고 있다.

물론 그 애국심이라는 것은 단순히 정부를 향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신념이 섞인 것의 상징 그 이상을 말하는 것이므로 나라에 대한 무분별한 애정과는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설사 국가가 개인에게 아무 것도 해주지 않아도 국가에 헌신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도 애국심을 가지고 행동한 개인을 버려두는 차가운 국가의 일면을 볼 때마다 섬뜩한 감정을 지울 수가 없다. 개인이 가지고 있는 뜨거운 애국심의 아주 조그만 보답이라도 할 수는 없나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누군가는 대의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이야말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이 책 '끝 그리고 시작'은 표면적으로는 추리소설의 구조를 취하고 있지만 실상은 뜨거운 애국심으로 나라를 대했지만 비참하게 버려진 개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야기는 한 사람의 장례식에서 시작된다. 예비역 육군 대령 황인성, 그 사람에게서 모든 이야기의 매듭이 풀려나가기 시작한다. 반면 이 책의 주인공은 중요 사건을 맡은 검사다. 그는 살인 사건의 재판을 앞두고 있었는데 피의자의 이름은 심은희로 죽은 피해자의 처였다. 오랜 기간 동안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바람을 피게 된 부인 심은희는 자신의 정부 이재훈과 공모해서 남편 허준기를 살해한 것이다.

사건은 남편 허준기가 세 사람이 함께 모이는 식사모임을 준비했기 때문에 벌어진다. 어차피 불편한 관계였는데 그 일이 도화선이 된 것이다. 이 뜻하지 않은 초대에 내연관계에 있던 심은희와 이재훈은 긴장하고 만다. 두 사람의 관계를 허준기가 눈치 챈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표면상으로는 이재훈의 승진에 선배인 허준기가 힘을 써줬고 그 답례를 원한다는 것이었지만 두 사람의 관계를 알고 보복을 준비하려는 의도가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세 사람의 식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당사자만 알 일이지만 허준기는 식사 중에 만취하고 두 사람은 새벽 두 시 반에 허준기만을 집에 두고 그 자리를 떠난다. 이어 두 사람은 호텔에 가서 같이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데 이후 허준기는 칼에 찔리고 목이 졸린 상태로 발견된다. 직접적인 사인은 목이 졸려서 질식사했다는 것이었고 그가 사망한 후 의문의 화재가 발생해서 살인현장은 손상을 입었다. 그 화재로 인해서 그의 시체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범인에 대한 단서를 얻기 힘들어진 것이다.

경찰은 수사 끝에 동기가 있는 부인 심은희와 그녀의 정부 이재훈을 용의선상에 올린다. 그리고 심은희에게서 모든 범행의 자백을 받아내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재훈이 죽은 채로 발견되고 재판에 들어가자 심은희가 모든 자백을 뒤집은 것이다. 자신의 모든 자백은 수사관의 고문과 성폭행으로 인한 것이라 주장하면서 말이다. 이때부터 사건은 여론의 비난을 받기 시작한다. 뚜렷한 증거가 없기는 했지만 만약 심은희의 주장이 사실이고 그녀가 무죄라면 이 사건은 걷잡을 수 없게 될 상태였다. 이 난감한 상황에서 주인공은 사건을 다시 차근차근 조사할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발견된 알 수 없는 지문의 조사에 나선다. 그런데 그 지문은 이미 예전에 죽은 사람의 것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죽은 사람의 지문이라는 소재가 인상적이기는 했지만 지문의 주인이 금방 밝혀지기도 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터라 추리소설이라고 하기는 조금 묘한 느낌이었다. 처음 재판 과정의 소용돌이에서 휴전 상황이라는 복잡한 상황 속에 납북되어 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로 전개되는데 그 사람의 감정에 이입할 수는 있었지만 처음 흥미를 끌었던 살인사건에 대한 집중도는 뚝 끊겨버린 것이다. 기나긴 그만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낸 사람의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전개 된 이후 재판은 마무리 되지만 약간은 심심한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것을 국가에 바쳤지만 그 대가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는 인상적이었다. 살인사건이나 목숨을 건 도주처럼 인상적인 소재가 많아서 긴장감 있게 읽게 되는 점이 있었다. 항상 잊게 되지만 언제든 전쟁이 일어나도 놀랍지 않은 휴전 상황이라는 소재, 살인사건, 납북된 남자의 이야기가 잘 맞물린 터라 흥미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휴전이라는 독특한 상황과 탐욕스러운 인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소설 '끝 그리고 시작'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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