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토템 1
장룽 지음, 송하진 옮김 / 김영사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한 가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말이 있다. 고독한 늑대라는 말이다. 늑대는 다른 많은 육식동물과 달리 무리를 지어 사는 동물이다. 그런 동물에게 홀로 돌아다니는 외로움을 품은 존재라는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의아하기까지 하다. 하기야 늑대는 육식동물다운 강인함과 무리지어 사냥할 때 보이는 영민함을 가진 동물이니 그런 고독한 방랑자에게 어울리는 수식어가 적합한 동물일지도 모른다.

보통 많은 이야기 속에 늑대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악한 존재로 등장한다. 이야기라서 상대적으로 약한 초식동물에게 선한 위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늑대토템' 속의 늑대는 묘한 동물이다. 무리 지어 사는 육식동물이기 때문에 목축민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인 동시에 그런 특성으로 인해서 목축민에게 득이 되는 동물이다. 힘차게 초원을 달리는 초원늑대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자 적대시 되는 기묘한 위치에 있었다.

베이징에서 자본주의를 주장했기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했던 지식청년들은 내몽골의 초원지방으로 오게 된다. 도시를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기도 하지만 초원지방의 매력에 매료된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지식청년들 중에서 천전은 초원지방의 늑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몽골의 늑대는 그 지역의 어떤 동물보다 영리하고 강인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늑대의 힘에 압도되었던 천전은 늑대를 만날 때마다 그 영리함을 넘어서 교활하기까지 한 지능적 행동에 감탄하게 된다.

아버지로 생각하는 빌게 노인과의 생활에서 천전은 늑대에 관한 많은 것을 알게 된다. 알면 알수록 홀로 늑대와 마주하게 된 상황의 두려움을 넘어서 늑대와 공존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이다. 농경민인 한인의 특성을 넘어서지 못했던 초기에는 감히 늑대에게 대항하지 못했지만 후에 정착을 하고 나서는 양치기로써의 직무에 충실한 나날을 보낸다. 쇳소리로 늑대를 간신히 쫓아 보냈던 처음, 양떼를 습격한 늑대에 대항하는 몽고여인의 강인함을 본 두 번째, 늑대의 사냥에 감탄하게 되는 세 번째 만남이 이어지면서 그는 늑대에 깊이 빠져든다. 이 상황은 읽는 사람의 마음도 같은 방향으로 유도했다. 늑대의 힘만이 보였던 첫 만남과 달리 두 번째 만남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과의 균형이 보였고 세 번째 만남은 늑대의 영리함이 감탄스러웠던 것이다.

주인공이 빌게 노인과 함께 숨어서 늑대를 주시하는 가운데 늑대 무리는 가젤 떼를 습격한다. 가젤 떼가 풀을 먹고 있는 목초지는 그 지역 사람들에게 귀중한 장소였다. 눈이 와도 남아있는 목초지라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아껴두는 장소였던 것이다. 그렇기에 가축에 비해서 엄청난 양의 풀을 먹어치우는 가젤의 등장은 사람들에게 반가운 것이 아니었다. 사냥을 해도 그 때뿐 사람들이 가버린 밤에 다시 나타나서 풀을 먹어치우기 때문이었다. 그 난감한 상황을 해결해 준 것이 늑대였는데 늑대들은 가젤들이 배를 가득 채우기를 기다려 가젤들을 습격한다. 배가 가득 찬 가젤의 움직임은 둔한 것이었고 그런 움직임으로 늑대의 포위망을 벗어나기는 어려웠다. 늑대들은 삼면에서 가젤을 몰아 그들을 산등성이로 가게 한다.

산등성이 아래는 눈이 가득 쌓여 있어서 천연의 함정 역할을 하고 있었다. 지나갈 수 없는 눈구덩이를 앞에 둔 가젤은 포위망을 돌파하기 위해 움직인다. 튼튼한 수가젤이 뿔을 앞세워 앞에 포위망을 뚫으면 그 뒤를 달려가면 되는 것이었다. 허나 왕늑대는 튼튼한 개체에게 일부러 포위망을 열어주고 그들이 지나가자 그 길을 막아버림으로써 약한 가젤만을 사냥대상으로 남긴다. 약한 가젤들은 살기 위해서 다시 산등성이 쪽으로 향하고 그 너머의 천연 함정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늑대들은 그 구덩이 속에 파묻혀 움직이지 못하는 먹잇감을 하나씩 먹어치우면 되었다. 그런데 늑대들이 죽이는 사냥감의 양이 지나치게 많다 싶었다. 그 이유는 사냥에 나서지 못한 늙은 늑대나 어린 늑대가 먹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무리를 이루고 사는 동물 나운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냥은 거기서 끝이 아닌데 함정에 수많은 가젤들이 빠지긴 했지만 늑대역시 어느 한도 이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함정 가장자리에 있던 가젤들은 늑대의 먹잇감이 되지만 함정 가운데까지는 늑대도 다가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장소를 잘 봐두었던 빌게노인과 천전은 다음 날 사람들은 데리고 그 장소를 다시 찾는다. 구덩이에 묻혀 있는 가젤을 가져가기 위해서였다. 늑대의 사냥감을 사람이 취하는 셈이었다. 허나 이는 많은 가젤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고 혹시라도 살아있는 가젤이 있으면 풀어주는 일도 겸한 것이었다. 그래야 다음 해에도 가젤이 있을 테고 늑대의 먹잇감이 있어야 가축을 습격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늑대의 사냥 덕분에 부수입을 얻는 일도 생기고 말이다. 늑대 무리는 사람들이 자신의 사냥감을 취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극히 일부에 불과했으므로 이 정도는 넘어간다고 했다. 후에 눈이 녹으면 묻힌 가젤의 시체가 드러날 것이고 그것이 늑대의 봄 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공존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행동을 한다. 늑대가 사냥한 가젤 전부를 가져가버린 것이다. 거기에 늑대를 무조건적으로 죽여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해서 늑대새끼를 훔쳐다 죽이기까지 하니 굶주린데다가 화가 난 늑대의 보복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천전 역시 자신만의 오만함으로 새끼늑대를 데려다 키워 보고 싶다는 마음에 늑대 굴로 향한다.

늑대들의 가젤 사냥이 감탄의 대상이 되었다면 사람과 말에 대한 습격은 오싹한 그 자체였다. 그 처절한 싸움은 할 말을 잃게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늑대와의 공존을 이해하지 못한 농경민의 행동으로 인한 것이어서 늑대에 대한 나쁜 감정은 생기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은 점차 악화되고 초원늑대와의 공존이 깨져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러울 정도였다. 늑대는  사람에게 위험한 동물이기도 하지만 초원에 해를 끼치는 쥐, 마르모트, 가젤 같은 초식동물을 없애 주는 동물이었던 것이다. 농사를 짓는 사람들에게 숭배대상은 보통 용이다. 허나 유목민의 숭배대상은 늑대다. 그 영리함뿐만 아니라 강인함을 보고 배울 수 있으며 숭배대상이기이전에 함께 살아가는 대상이며 스승이기도 한 늑대에 말로는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늑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갖게 한 '늑대토템'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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