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의 거짓말
제수알도 부팔리노 지음, 이승수 옮김 / 이레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은 기묘한 생물이다. 어떤 자는 죽음을 목전에 두었다면 살기 위해서 못 할일이 없지만 어떤 자는 죽음이 아니라 그 뒤에 무엇이 있든지 자신의 입장을 굽히려 들지 않는다. 어찌 보면 그것이야 말로 사람의 입장이나 성격이 변하지 않는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가장 근원적 공포인 죽음을 앞두고도 변하지 않는 증거이니 말이다. 물론 가끔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기도 하다. 항상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던 사람이 죽음의 공포를 앞두고 자신의 신념을 꺾어버린다. 누구나 가게 되지만 정작 그 뒤에 무슨 일이 있는지 알 수 없는 죽음이란 길이 마음을 흔들기 때문이다.

여기 비슷한 상황에 빠진 네 명의 남자가 있다. 각기 다른 인생을 살아온 네 명은 국왕을 암살하려다 사로잡힌다. 네 명의 반란자에게 내려진 형벌은 사형이었다. 거기에 죽음의 방식은 단두대형이었다. 이것은 네 명을 가두고 있는 감옥의 우두머리가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총잡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총사령관은 네 명의 사형 전 날 이런 제의를 해 온다. 죽기 전에 반란군의 지도자를 알려주면 살려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들 네 명은 들은 체도 하지 않지만 총사령관은 단 한 사람의 이름만 말한다면 전원 목숨을 구할 뿐 아니라 아르헨티나로 추방해주겠다는 말을 덧붙인다.

거기에 국내의 상황이 잠잠해지면 돌아와도 좋다는 조건이었다.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있을 리 없고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입을 열어도 살 수 있는 조건이었다. 총사령관은 네 명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결정을 하고 나면 탁자 위에 있는 종이에 이름을 적거나 가위표를 해서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어떤 자가 배신했는지 모를 테고 단 한 사람만 신념을 꺾으면 모두 살 수 있었다. 누가 배신했는지도 알 수 없다니 그리 나쁜 조건은 아니었다. 허나 그들은 신념 때문에 잡혀 온 자들이었고 이 이야기를 무시한다.

그런데 방을 옮겨서 마지막 밤을 보내게 되자 이들은 흔들린다. 씻지도 못하고 방에 갇혀 있는 상황 그대로였다면 이들은 미동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방을 옮기고 오랜만에 이발과 목욕을 하고 나니 자신도 모르게 동요하게 되었던 것이다. 네 명은 고해성사마저 거부하지만 그들이 마지막 날을 보내기로 한 방에는 다른 이가 있었다. 치릴로 수도사라고 불린 산적이었다. 착잡한 심정을 지울 수 없던 네 명은 마지막 신변 정리를 겸해서 각자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나씩 하기로 한다. 모두의 이야기가 끝이 나면 사령관의 제의에 어떤 답을 내놓을지 각자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 것이다. 이 생각은 치릴로 수도사에게서 나왔는데 그들이 어떤 답을 내든 그는 죽을 목숨이었기에 그 하룻밤을 즐기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네 명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꺼낸다. 먼저 입을 연 것은 가장 나이가 어린 학생인 나르시스였다. 그리스 신화의 나르시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을 가진 이 학생은 자신의 첫 사랑에 대해서 말한다. 어떻게 그가 평탄한 삶을 사는 상인의 아들에서 반란에 가담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첫 번째 이야기가 끝이 나자 이번에는 네 명 중에서 우두머리의 위치에 있는 남작이 입을 연다. 삼십분 늦게 태어나서 가문의 재산이나 작위를 상속받지 못한 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남작의 충직한 수하인 아제실라오가 이야기를 이어간다. 집시인 어머니를 군인인 아버지가 강간해서 태어난 아제실라오는 수도원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의 인생은 어머니가 남겨준 단검과 쪽지로 인해서 급변했다는 것이다. 그의 단검에 관한 이야기가 끝이 나자 마지막으로 시인 살림베니가 자신이 만났던 공작부인과 그녀의 의붓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네 명의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나자 이제 총사령관이 제의한 대로 종이에 이름을 적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때에 도달하고 만다.

네 명은 저마다의 생각대로 행동하지만 이미 그 밤은 음모로 가득 차 있었다. 이야기는 때로는 예측가능하게 때로는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책을 덮는 순간에 어떤 것이 진실이고 거짓이었는지 다시 하나하나 떠올려보게 되었다. 목숨을 건 하룻밤 속의 네 가지 이야기라 이야기 자체도 재밌었지만 그 이야기가 무엇을 품고 있을 지를 더 기대하면서 읽어나갔다. 그렇기에 마지막 결말이 나올 때까지 긴장을 풀 수가 없었다. 사형 전 날 네 명의 사형수가 풀어놓는 이야기 네 가지 '그 날 밤의 거짓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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