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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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남편이 아내가 죽었다면서 치료를 해달라고 의사에게 데려온다. 의사는 기가 막혀서 그를 돌려보내려고 한다. 일단 자신은 남자가 원하는 의사가 아닐 뿐만 아니라 죽은 사람을 어떻게 치료해준다는 말인가. 하지만 맥을 짚어보니 남자의 아내는 분명 살아있었다. 마치 죽은 것만 같았을 뿐이다. 남자의 말에 따르면 아내는 책을 굉장히 좋아하는 독서가인데 문제가 하나 있다고 한다. 읽는 책에 지나치게 몰입해버린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책을 읽고 있었는데 주인공이 죽어버린 부분에서 책을 잃어버렸고 그래서 아내가 지금 저런 상태라는 것이다. 남자가 찾아온 의사는 정신과의사였으니 제대로 찾아온 셈이었다.

그리고 보통은 남자의 아내는 책에 지나치게 감정이입하지만 책을 다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원래대로 돌아왔었다는 것이다. 그 점에 착안해서 의사는 남자에게 아내가 읽고 있던 책을 건넨다. 마침 의사가 읽으려고 사둔 책이었는데 짬이 나지 않아서 아직 못 읽어봤다는 것이다. 집에 아내를 데려가 중단된 부분부터 다시 읽게 하면 아내는 예전처럼 돌아올 터였다. 남자는 안심하고 아내를 집으로 데려가지만 곧 의사에게 다시 연락을 한다. 아내가 책 속에 갇혀버렸다는 것이다. 의사는 기가 막혔지만 환자의 집을 방문한다. 문제는 이런 것이었다. 의사가 준 책의 제본이 잘못되어 있었고 이야기의 끝이 얼마 남지 않은 순간에 앞부분에 있어야 할 페이지가 뒷부분에 끼여 있어서 아내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읽고 또 읽고 하다 보니 책의 끝으로 진행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의사는 상황은 파악했지만 해결책을 찾지 못해 난감해한다.

책은 앞의 이야기의 여자처럼은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다른 세계로 통하는 관문의 역할을 한다. 책에 몰입해서 읽는 동안만큼은 책 속의 세계에 빠져서 새로운 지식과 감정의 홍수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영화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두 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전혀 다른 세계를 열어준다. 큰 화면, 귀를 쩌렁쩌렁 울리는 음향, 어두운 주변이 몰입도를 높여준다. 그래서 영화는 일상 속의 작은 일탈을 맛보게 해주는 도구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책 '영화처럼'에서도 영화는 일탈을 맛보게 하는 도구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뿐만 아니라 이 책에서 나오는 영화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관계를 이어주는 끈 역할을 하기도 한다. 지금은 처지가 많이 달라졌지만 어릴 적에 친구와 함께 보던 영화는 두 사람을 그 당시로 데려가기도 하고 남편의 죽음 이후 자시의 안으로만 침잠해 들어갔던 여자를 세상과 다시 소통하게 하기도 한다.

다섯 편의 이야기는 하나씩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첫 번째 이야기 '태양은 가득히'는 편모가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친해진 두 소년의 우정을 다루고 있다. 무신경한 담임의 영웅주의로 알리고 싶지 않던 가정환경을 공유하게 된 두 소년은 영화를 함께 보면서 점차 친해진다. 서로의 가정환경에 대해서 모른척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서로 친한 척 하지 않던 둘이고 한 명이 조선계 고등학교가 아니라 일본계 고등학교로 가면서 서로 길이 갈린다. 후에 다시 만나게 된 두 친구를 이어주는 끈은 역시 영화였다.

두 번째 이야기 '정무문'에서는 남편이 어떤 사건에 휘말려 죽어버린 이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었던 여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자를 밖으로 나오게 한 것은 죽은 남편이 DVD를 연체했다는 전화 한 통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여자가 영화를 보면서 예전의 자신감을 점차 회복하고 다시 세상과 맞설 용기를 얻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 외에도 로맨스를 주제로 한 '프랭키와 쟈니'와 복수를 주제로 한 '페일 라이더'도 기억에 남았다.

허나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마지막 이야기 '사랑의 샘'이었다. 어린 시절이후 다른 길을 가게 된 친구도 끔찍한 사건 이후 복수를 준비한 여자도 나오지 않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힘을 잃은 할머니의 기운을 회복시키기 위한 손자들의 노력이 기특했다. 단순히 따뜻한 이야기일 뿐이었다면 읽고 난 후에 잊혀졌겠지만 이야기 자체가 재미있어서 키득거리고 읽은 덕분에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항상 '괜찮아'라는 분위기를 감고 있는 덕분에 집안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할머니가 힘을 잃자 집안의 분위기가 처지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정답게 살아왔던 배우자를 잃은 탓인지 할머니는 부쩍 늙은 것만 같았다. 집안사람들 모두는 할머니를 정말 사랑하고 있었고 그래서 할머니가 예전처럼 기운을 회복할 방법이 없을지 고심한다. 그 때 손자들의 머리를 스친 것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처음으로 함께 본 영화의 상영회를 하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영화는 '로마의 휴일'이었다. 손자들, 정확하게는 대부분의 일을 주인공이 맡지만 일은 착착 진행되기 시작한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석양처럼 붉지만 아련한 분위기로 시작한다. 당시에는 소중하다는 것을 몰랐지만 후에는 추억이 되는 것 말이다. 하지만 주인공들이 그 상태로 안주했다면 그들의 옛 이야기는 결코 추억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다섯 편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은 때로는 영화를 매개로 시간을 견디고 변화해나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끝이 났을 때 영화가 그들에게는 구원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모든 이야기가 하나하나 빛이 났을 뿐만 아니라 매개가 된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 '영화처럼' 정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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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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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미국 형사재판의 경우에는 배심원이 존재한다. 열 두 명의 배심원들은 사건에 대해서 듣고 결정을 내린다.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에 대해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말이다. 유죄로 결정이 나면 형량은 판사가 결정을 하지만 유죄와 무죄를 가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배심원의 몫이다. 그런데 유죄와 무죄를 나누는 선은 합리적 의심이 드느냐에 따라 나뉜다. 유죄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무죄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정말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한 의혹을 가지게 된다면 배심원들은 재판장에게 피고인이 유죄라고 전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살인 사건에 기소된 피고인이 재판을 받고 있다. 그 때 그녀의 변호인이 이렇게 말한다. 진범이 따로 있고 이제 그 사람이 저 문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이다. 당당하고 단호한 발언에 재판장, 담당 검사, 배심원들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재판정의 출입구를 향한다. 하지만 기다려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변호사가 말을 잇는다. 여러분은 방금 문을 쳐다보셨고 그것은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이 진범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합니다 라고 말이다. 당황하는 검사의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변호사는 '그것이 바로 합리적 의심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합리적인 의심이 배심원의 마음속에 있음이 확실했고 검사는 패소의 위기에 직면했음을 깨닫는다. 즉, 기소된 피고인이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증거만으로 판단해서 피고인이 그 범인일수밖에 없다고 배심원들이 판단하면 유죄, 다른 사람이 범인일수도 있다는 약간의 의심이라도 든다면 무죄인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범죄 관련해서 기소된 후에 엄청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에게 자신이 기소된 사건을 맡긴다면 유죄인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간당 500달러를 넘게 받는 비싼 변호사들에게 의뢰를 할 리 없다는 것이다. 뭔가 숨길 것이 있으니 그런 선택을 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 생각이 맞는다. 그 말은 엄청난 수임료를 받는 형사법 변호사가 만나게 되는 의뢰인은 거의가 진범인 썩어빠진 작자들이란 소리다. 그래서 변호사들도 부담이 없다. 사건을 뒤집어서 무죄로 나오거나 무효심리로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명성을 높일 수 있고 설사 그렇지 못해도 어차피 의뢰인은 유죄가 확실하니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는 것이다. 유죄로 나와도 변호사의 능력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으니 진범인 주제에 그 정도면 괜찮지 않냐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의뢰인이 진정 무고한 경우다. 그런 경우 의뢰인은 범인이 아니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하는 타협을 원할 리가 없다. 무조건 끝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살인사건의 경우에는 사형을 구형하는 지역이 있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의뢰인의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억울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거나 죽게 할 수도 있고 형량거래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억울하게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형사법 변호사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무고한 의뢰인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이 책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미키 할러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약간 다른 시각으로 무고한 의뢰인을 기다린다. 재판에서 진다면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게 했다는 죄책감을 지게 되긴 하겠지만, 재판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여태까지 쌓아온 악업의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잘 나가는 형사법 변호사가 그렇듯 대부분 진범임이 확실한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고한 의뢰인보다 자신의 눈이 어두워져 무고한 의뢰인임에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미키에게 기회가 온다. 처음으로 '결백한 의뢰인'으로 느껴지는 루이스 룰레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다만 의아했던 것은 그런 대박 건수가 제발로 굴러들어왔던 것이다. 미키의 브로커 노릇도 겸하고 있던 페르난도가 가져온 사건도 아니었고 옐로페이지를 보고 연락을 했다고 하기에는 의뢰인이 지나치게 부유했다. 이미 가족변호사도 있는 인물이 굳이 미키를 지명해왔던 것이다. 가족변호사 세실 돕슨이 형사법 전문이 아님은 분명했지만 부유층에게는 인맥이 많으니 굳이 미키를 지명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키는 잠시 망설였지만 허영심을 만족시키느라 무리하게 큰 집과 비싼 차를 유지하고 있던 터라 그 사건을 맡기로 한다.

사건 내용은 이랬다. 루이스 룰레는 레지나 캄포라는 여성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그 여성은 한 쪽 얼굴을 심하게 얻어맞았으며 목에 자상이 남아 있었다. 여성이 주장하기로는 루이스 룰레가 밤 10시에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고 그녀가 문을 열자 무조건 그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를 칼로 위협해서 침실로 끌고 갔다. 이어 범인이 그녀를 강간하려 했는데 그녀가 옆의 화분으로 범인을 가격했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레지나 캄포의 비명을 들은 옆집 남자들이 와서 범인을 제압했고 경찰이 올 때까지 범인을 깔고 앉아 있었다. 범인으로 판단되는 루이스 룰레는 경찰에게 체포될 당시에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사건의 정황으로 봐서 경찰은 루이스 룰레를 범인으로 판단하고 기소한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룰레가 미키 할러에게 주장한 것은 달랐다. 레지나 캄포가 먼저 자신을 유혹했고 그래서 그녀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자신의 뒤통수를 둔기로 내리쳤고 자신은 의식을 잃었다고 그는 말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나자 누군가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체포될 때까지 그 상태로 있었고 다른 사람이 그의 손에 피가 묻어 있다고 말하자 경찰이 그의 손에 비닐을 덮어 씌었다는 것이다. 미키 할러는 루이스에게서 처음으로 느끼는 결백한 의뢰인의 냄새를 맡고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로 결정한다. 루이스의 말을 믿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상황은 미키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키 할러가 사건을 수임하고 나서 그 건에 대해서 다각도로 조사하면서 재판에서 이길 무기를 착착 챙기는 첫 부분과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재판에 나선 두 번째 부분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후의 마무리인 세 번째 부분이다. 첫 부분은 다소 산만한 감이 있었다. 미키 할러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맡고 있는 사건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큰 건인 루이스 룰레의 사건을 맡기는 했지만 이미 맡은 사건도 마무리해야 하는 터라 정신없이 바쁜 미키 할러덕분에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음이 바빠졌다. 큰 사건을 준비하기 위해 대부분의 작은 사건을 끝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때부터는 정말 재밌었다. 손을 뗄 수 없는 재미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게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던 것이다. 더구나 재판으로 들어가서 서서히 판을 뒤집는 미키 할러의 솜씨는 감탄 나오는 것 이상이었다. 그 세세한 솜씨에 여러 번 다시 읽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했지만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고만 마이클 할러의 이야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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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티스 JUSTICE 1 - 정식 한국어판 시공그래픽노블
짐 크루거 지음, 알렉스 로스 외 그림, 정지욱 옮김 / 시공사(만화)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것은 일상적인 생활을 평탄하게 유지하기 위한 기반이 될 수도 있고 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악당은 신념이 없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들도 신념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웅들과 달리 그 신념을 드러내는 방식이 사뭇 다를 뿐이다. 악당들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보고 신념을 관철시키면서 살아간다. 다만 보통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데에 다른 사람을 다치지 않게 하는 선에서 조정하는 반면에 악당들은 자신의 신념을 위해 자신과 관계없는 타인이 휘말리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이 다르다. 그렇다면 영웅은 어떨까. 영웅은 보통 사람처럼 신념을 조정하지는 않는다. 오직 자신이 정의라고 믿으면서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려고 한다. 그렇기에 악당과 맞서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악당과 영웅은 신념의 방향이나 관철하는 방식이 약간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강경책도 불사하는 영웅이 어떤 면에서는 악당과 많이 닮아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우연히 악당과 영웅의 대결에 휘말리게 되는 보통 사람들이 불운할 뿐이다. 덕분에 영웅이 악당으로 변하면 정말 무섭겠다는 생각도 들게 된다. 이 책 '저스티스'에서는 그 두 가지 부분을 전부 다루고 있다. 악당이 신념을 관철하려고 평소대로 움직이지만 그 방향이 겉으로는 영웅과 같은 측면을 가리킨 경우와 영웅이 악당으로 변해버린 경우를 말이다.

어느 날 전 세계의 악당들은 같은 꿈을 꾼다. 미국을 대표하는 영웅집단 '더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가 지구를 구하는 데에 실패하는 꿈을 말이다. 알 수 없는 공격이 지구를 덮치고 모든 영웅들은 위험을 막아내는데 실패한다. 슈퍼맨은 로이스를 구하지만 다른 사람을 구하기 위해 그녀를 길가에 내려놓는다. 그 판단 착오로 로이스를 잃고 다른 영웅들에게라도 가서 도우려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은 너무 늦어 있었다. 모든 것을 알고 있을 것만 같은 배트맨조차도 살아남은 아이들 몇 명을 자신의 동굴로 피신시켰을 뿐이었다. 원더우먼, 아쿠아맨, 플래시, 마샨 맨헌터, 그린 랜턴, 호크맨, 호크걸, 그린 애로우 같은 다른 영웅들 모두가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실패한다. 그리고 슈퍼맨은 그 모든 과정을 절망어린 시선으로 지켜본다.

슈퍼맨이 절망하는 시점에서 악당들은 매번 꿈에서 깨어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 꿈이 계속 반복된다고 해도 오싹해할 뿐이지 어떻게 할 방도를 모르겠지만 악당들은 달랐다. 그들은 자신들이 절대선이며 절대적으로 옳은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지구를 위해, 인류를 위해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다른 옳은 일을 행하려는 자들과 손을 잡고 적대자를 몰아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즉, 악당들이 영웅들을 퇴치하기 위한 연합전선을 구성하기로 한다. 그들의 작전은 다방면으로 펼쳐진다. 악당들은 영웅들이 하지 않았던 일을 하기로 한다. 영웅들이 상황을 유지하기만 했었다면 그들은 직접적으로 인류의 삶을 개선시키려고 한다.

가령 포이즌 아이비는 식물을 키워서 식량난을 개선하고 캡틴 콜드는 사막에 얼음 덩어리를 만들어서 오아시스를 만든다. 그와 동시에 지구를 지키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계획에 방해되는 영웅들을 하나하나 암살하기로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먼저 목표물이 된 것은 아쿠아맨이었다. 그는 자신의 영역에 이물질이 들어왔음을 알고 평소대로 순찰을 나서지만 예측하지 못한 공격에 휘말려 납치되고 만다. 거기에 배트맨은 중요한 데이터가 담긴 CD를 리들러에게 빼앗기고 만다. 점차 악당들에게 영웅들의 위치가 발각되고 영웅들은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자신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과정에서 영웅들은 여력이 없었고 악당들은 마치 자신들이 인류의 구원자인냥 앞으로 나선다. 이제 사람들도 영웅들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한 시점에서 목숨의 위기를 맞은 영웅들에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었다.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움직인다는 것은 영웅이나 악당이나 다르지 않았다.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기 위해 대립하는 두 집단은 부딪히고 그 결과는 점차 혼돈 속으로 빠져든다. 다만 두 집단을 나누는 뚜렷한 경계선은 둘 다 자신의 정의를 관철시키려는 과정에서 악당들은 영웅들을 죽이려 하지만 영웅들은 악당들마저도 도우려 한다는 것이었다. 원더우먼은 자신을 습격해 온 치타마저 구하려고 노력하지만 치타는 그런 원더우먼의 노력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를 해치려 할 뿐이다.

많은 영웅들이 총출동한 것을 볼 수 있어서 꽤나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 그림이 화려하다는 것 이상이어서 어찌나 세밀한지 사진인가 싶을 정도였다. 영웅들의 축은 슈퍼맨과 배트맨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모든 것을 초월한 초월자이지만 외계인이고 그의 선한 마음에 기댈 수밖에 없는 슈퍼맨과 인간이지만 자신이 가진 재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영웅의 반열에 올라선 배트맨이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영웅들과 악당들로 다소 산만했고 그리 무게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허나 눈을 휘둥그레 하게 만드는 그림과 많은 영웅들을 한 권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악당들의 연합으로 위기를 맞는 영웅들의 이야기 '저스티스'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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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후의 인간 경영학
리 아오 지음, 강성애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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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의 역사는 남성 위주의 역사여서 인상적인 여성 위인을 찾기가 어렵다는 문장을 읽은 기억이 있다. 사실 상대적으로 여성 위인을 찾기는 어려운 편이다. 여성의 기록이 역사 속에 남으려면 남성 위주의 제도에 순응해서 본보기가 될 여성이 되거나 제도에 불응해서 모든 비난을 들어야 하는 위치에 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허나 단순히 제도에 순응하거나 불응해서는 위인의 반열에 오르기 어렵다. 제도나 남성위주 사회를 넘어서 뛰어난 업적을 남기지 않으면 역사에 기억되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그만큼 역사 속에서 이름이 알려진 여성이 적다. 대신 워낙 수가 적어서 역사 속에서 유명한 여성의 대부분은 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이름이 워낙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청난 업적을 남겨서 알려지는 위인들은 그렇다치고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기는 방법은 보통 두 가지다. 역사에 인정을 받을 정도의 명성을 얻거나 반대로 악명을 떨치는 것이다. 이 책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은 후자에 속하는 서태후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서태후는 흔히 자신의 아이의 인생조차도 권력을 얻기 위한 도구로 썼던 악랄한 여인의 대명사다. 오직 자신을 위해 살았으며 권력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 수많은 악행을 일으켰고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나라를 파멸로 몰아 넣은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허나 권력을 얻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서태후 뿐인 것도 아니고 한 나라가 망하는데에 한 사람에게 전적인 책임이 다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역사 속에 이름이 알려진 여성이 많지 않기 때문에 모든 오명도 악명도 그녀에게 몰려 버린 것이다. 책에서는 인간 서태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무조건적인 악당이 아니라 부드러움과 강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으며 욕망에 따라 움직인 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부터 강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서태후도 처음에는 부드러움을 드러내는 여인이었다고 한다. 그리 높지 않은 관리집안의 딸로 태어나 권력을 얻으려 했던 것이 그녀가 악명을 얻게 된 모든 원인이었다. 여성의 몸으로 권력을 얻으려면 황제의 눈에 드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 미모도 재능도 뛰어났던 그녀는 황제의 눈에 들려고 입궁을 한다. 하지만 황제의 주위에는 수많은 후궁들이 있었고 그녀들의 미모도 뛰어났다. 영리한 자희는 미모만으로는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름다움은 젊음과 함께 가시는 것이고 그것 하나에 매달려서는 높은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자희는 자신의 재능으로 황제를 사로잡는다. 자희, 즉 서태후는 재기발랄한 여성이었고 수많은 일들을 황제를 대신해서 처리할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뛰어났다. 거기에 그녀의 지위를 확정할 수 있었던 것은 그녀가 아들을 낳았다는 것이다. 황제의 후계자를 낳은 그녀는 덕분에 지위가 올라간다. 하지만 황후가 되기에는 그녀의 집안이 너무 약했다. 자희가 입궁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황후가 정해진다. 황후가 될 수 없다면 황제의 총애를 받는 위치에 서야 했고 그 총애를 유지하려면 미모, 재능, 후계자를 낳는 것까지 고루 갖춰야 했다.

만약 황제가 오래도록 건재했다면 자희도 황제를 보좌하는 입장에서 만족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역사가 달라졌겠지만 황제는 젊은 나이에 죽고 황후인 자안과 후계자를 낳은 자희는 젊은 나이에 과부가 된다. 황후도 아니었고 단지 비였던 자희는 상대적으로 지위가 약했다. 그래서 대신들의 멸시를 받아도 참아야 하는 위치였다. 황제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자희의 아들이 황제로 오르고 상황은 달라진다. 자희는 황후인 자안과 함께 황태후란 입장이 된 것이다. 당시 자희의 아들인 황제는 나이가 어렸고 자희는 자안과 함께 수렴청정을 행하게 된다.

이 때부터 자희의 권력에 대한 욕망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단순히 열악한 지위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황태후가 된 이후에는 권력을 잡기 위해 다른 사람과 손을 잡고 자신에게 반대하는 이들을 몰아낸다. 그런 자희가 권력을 잡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인물이 있었는데 바로 최대 라이벌이며 질투의 대상인 자안이었다. 자희의 아들이 황제에 올랐다고 하나 황후였던 자안과의 경쟁에서 자희는 열세에 처해 있었다.

재능보다 덕이 뛰어났던 자안은 황후로 교육받았고 권력에 대해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그런 자안이었기 때문에 자희가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해서 황제의 앞을 가로막으려 들면 그녀에게 제재를 가했던 것이다. 자희는 그런 자안에 대한 시기심을 멈출 수 없었지만 자안은 무시하기에는 그 영향력이 너무 큰 인물이었다. 그래서 자희는 자안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을 쓴다. 몸이 아픈 자안에게 탕약을 건네고 그녀가 회복되었을 때 그 약이 자신의 살점을 베어서 만든 것이라는 점을 알려 자안을 감동시킨 것이다.

누군가가 자신을 잠시 불쾌하게 만든다면 그 사람을 평생 불쾌하게 만들겠다고 말할 정도의 사람이었지만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적절히 조절할 수 있는 인물이 서태후였다. 그런 점을 서태후의 인생 전반에 걸쳐서 보여주고 있다. 또한 권력을 완전히 차지한 이후에 그 권력을 오직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사용하는 모습도 보여준다. 서태후는 굳이 말하면 어디까지나 독재자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권력을 휘두른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서태후의 부드러움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이 책 '서태후의 인간 경영학' 인상 깊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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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
미겔 루이스 몬타녜스 지음, 송병선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콜럼버스에 대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묘하게도 '콜럼버스의 달걀'이다. 인도를 찾으러 항해를 해나가다 신대륙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사고의 틀을 바꿨다는 생각이 드는 달걀에 관한 일화가 더 인상적인 것이다. 인도를 찾아서 바다를 가로 질러 여행을 가는 발상도 그렇고 달걀을 세우기 위해 밑을 깨서 세우는 과감성도 그렇고 콜럼버스는 여러 모로 인상적인 인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런 콜럼버스에 대해서 다른 무언가를 알고 있나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면 별로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의 업적 말고는 크게 알려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콜럼버스는 유언장에 특이한 사인을 남겼다. 심지어 그 사인을 장자가 이어서 사용하게 했다고 한다. 콜럼버스의 사인과 그가 숨긴 비밀에 대한 이야기 '사인'은 그런 면에서 특이한 내용이었다. 모르는 사람이 적을 정도의 유명한 인물이지만 그가 숨겨서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라니 흥미가 생겼던 것이다.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도미니카 공화국 경찰서의 과학수사 팀장인 에드윈 타바레스가 호출된다. 사건의 내용은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가지고 있던 콜럼버스의 유해가 도난당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콜럼버스의 유해가 있는 곳에는 다른 보물들이 많이 있었는데 범인은 유독 콜럼버스 제독의 유해만을 훔쳐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훔쳐가지 않은 보물들의 가치가 낮은 것도 아니었고 아무리 유명한 제독의 유해라지만 그것만을 훔쳐간 범인의 행각은 기이해 보였다. 거기에 사건을 더 묘하게 만들었던 것은 범인이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그것도 제독의 사인을 남겨둠으로써 범인은 자신의 범죄행각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 것 같았다. 제독의 유해를 훔쳐간 의도도 훔친 후 바로 도망치지 않고 제독의 사인을 일부러 남겨둔 의도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콜럼버스의 유해가 있는 다른 나라 스페인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사라진 유해와 남겨진 사인, 사건은 동일해보였다. 그것은 동일범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서 도미니카 공화국과 스페인에는 일대 소동이 일어난다. 범인의 의도를 파악해서 범인을 잡고 유해를 찾아야 함은 물론이고 그 찾은 유해를 무사히 본국으로 가지고 돌아와야 했기 때문이다. 처음 콜럼버스의 유해가 두 나라에 다 있다는 것은 이상하게만 느껴졌다. 그런데 이 문제에 관해서는 양국이 다 자국이 소유하고 있는 유해가 진짜 콜럼버스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에 관해서는 콜럼버스의 유해가 반씩 나누어져 있는 것이라는 설이 있는가 하면 한 쪽은 콜럼버스의 유해가 맞지만 스페인에 있는 것은 아마도 콜럼버스의 아들의 것이라는 설도 있었다.

그 내막이야 어찌되었든 유해를 찾아야 한다는 목적이 일치한 두 나라는 공동수사를 펼쳐가기로 한다. 그래서 도미니카 공화국의 경찰 에드윈, 도미니카 공화국 문화부 장관 알타그라시아, 스페인 경찰 올리베르 세 사람이 함께 수사를 진행해나가기로 한다. 하지만 각국의 생각은 달랐다. 도미니카 공화국의 주요 관광자원이기도 한 콜럼버스의 유해가 만약 가짜라고 밝혀지거나 한 나라만 찾게 되면 관광객을 잃게 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스페인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에 세 사람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진행해 나갈수록 그런 생각을 잊은 것 마냥 손발이 잘 맞는 세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세 사람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는데 그것은 알타그라시아가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전부 미혼인 세 사람인지라 알타그라시아를 사이에 두고 경쟁관계가 형성된 것이다. 콜럼버스의 유해를 찾고 제독이 숨겨진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이 부딪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세 사람은 수사 중에 콜럼버스에 대한 것을 여러 교수들에게 물어보는데 그 중에 대부분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라서 신선한 느낌이었다.

이야기는 도미니카 공화국,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을 넘나들면서 진행된다. 그 과정에서 인물간의 관계가 흔들리기도 하고 믿었던 사람의 충격적 배신을 목도하게 되기도 한다. 그런 진실의 끝에 다가가는 방법은 오직 하나 콜럼버스가 남겨둔 미스터리를 푸는 것뿐이었다. 단순히 콜럼버스에 대한 궁금증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실제 콜럼버스가 남긴 자료를 바탕으로 해서 쓴 팩션이라 더 재밌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콜럼버스가 남긴 사인과 그가 만든 책이 의문을 푸는 실마리 역할을 하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콜럼버스 유해의 도난 사건에서 시작된 이야기 '사인'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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