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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21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3
마이클 코넬리 지음,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형사재판의 경우에는 배심원이 존재한다. 열 두 명의 배심원들은 사건에 대해서 듣고 결정을 내린다.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에 대해서 유죄인지 무죄인지를 말이다. 유죄로 결정이 나면 형량은 판사가 결정을 하지만 유죄와 무죄를 가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배심원의 몫이다. 그런데 유죄와 무죄를 나누는 선은 합리적 의심이 드느냐에 따라 나뉜다. 유죄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이 무죄라는 추호의 의심도 없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정말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이 했을 가능성이 있고 그 부분에 대한 의혹을 가지게 된다면 배심원들은 재판장에게 피고인이 유죄라고 전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다. 살인 사건에 기소된 피고인이 재판을 받고 있다. 그 때 그녀의 변호인이 이렇게 말한다. 진범이 따로 있고 이제 그 사람이 저 문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말이다. 당당하고 단호한 발언에 재판장, 담당 검사, 배심원들을 포함한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재판정의 출입구를 향한다. 하지만 기다려도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 때 변호사가 말을 잇는다. 여러분은 방금 문을 쳐다보셨고 그것은 마음속으로 다른 사람이 진범일수도 있다고 생각했음을 의미합니다 라고 말이다. 당황하는 검사의 표정에도 아랑곳없이 변호사는 '그것이 바로 합리적 의심입니다.'라는 말을 덧붙인다. 합리적인 의심이 배심원의 마음속에 있음이 확실했고 검사는 패소의 위기에 직면했음을 깨닫는다. 즉, 기소된 피고인이 실제로 범죄를 저질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직 증거만으로 판단해서 피고인이 그 범인일수밖에 없다고 배심원들이 판단하면 유죄, 다른 사람이 범인일수도 있다는 약간의 의심이라도 든다면 무죄인 것이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범죄 관련해서 기소된 후에 엄청난 수임료를 받는 변호사에게 자신이 기소된 사건을 맡긴다면 유죄인 것이 보통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시간당 500달러를 넘게 받는 비싼 변호사들에게 의뢰를 할 리 없다는 것이다. 뭔가 숨길 것이 있으니 그런 선택을 한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리고 대부분 그 생각이 맞는다. 그 말은 엄청난 수임료를 받는 형사법 변호사가 만나게 되는 의뢰인은 거의가 진범인 썩어빠진 작자들이란 소리다. 그래서 변호사들도 부담이 없다. 사건을 뒤집어서 무죄로 나오거나 무효심리로 만들 수 있다면 자신의 명성을 높일 수 있고 설사 그렇지 못해도 어차피 의뢰인은 유죄가 확실하니 크게 손해 볼 것이 없는 것이다. 유죄로 나와도 변호사의 능력으로 형량을 줄일 수 있으니 진범인 주제에 그 정도면 괜찮지 않냐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의뢰인이 진정 무고한 경우다. 그런 경우 의뢰인은 범인이 아니니 억울한 옥살이를 해야 하는 타협을 원할 리가 없다. 무조건 끝까지 가게 되는 것이다. 살인사건의 경우에는 사형을 구형하는 지역이 있는데도 말이다. 자신이 의뢰인의 무죄를 증명하지 못하면 억울한 사람을 감옥에 보내거나 죽게 할 수도 있고 형량거래를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억울하게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형사법 변호사들의 가장 큰 두려움은 무고한 의뢰인을 만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이 책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미키 할러도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는 약간 다른 시각으로 무고한 의뢰인을 기다린다. 재판에서 진다면 죄 없는 사람을 감옥에 가게 했다는 죄책감을 지게 되긴 하겠지만, 재판에서 이기기만 한다면 여태까지 쌓아온 악업의 죄책감을 덜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가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것은 잘 나가는 형사법 변호사가 그렇듯 대부분 진범임이 확실한 범죄자들을 변호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가장 두려웠던 것은 무고한 의뢰인보다 자신의 눈이 어두워져 무고한 의뢰인임에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미키에게 기회가 온다. 처음으로 '결백한 의뢰인'으로 느껴지는 루이스 룰레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다만 의아했던 것은 그런 대박 건수가 제발로 굴러들어왔던 것이다. 미키의 브로커 노릇도 겸하고 있던 페르난도가 가져온 사건도 아니었고 옐로페이지를 보고 연락을 했다고 하기에는 의뢰인이 지나치게 부유했다. 이미 가족변호사도 있는 인물이 굳이 미키를 지명해왔던 것이다. 가족변호사 세실 돕슨이 형사법 전문이 아님은 분명했지만 부유층에게는 인맥이 많으니 굳이 미키를 지명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미키는 잠시 망설였지만 허영심을 만족시키느라 무리하게 큰 집과 비싼 차를 유지하고 있던 터라 그 사건을 맡기로 한다.
사건 내용은 이랬다. 루이스 룰레는 레지나 캄포라는 여성의 집에서 체포되었다. 그 여성은 한 쪽 얼굴을 심하게 얻어맞았으며 목에 자상이 남아 있었다. 여성이 주장하기로는 루이스 룰레가 밤 10시에 그녀의 집 문을 두드렸고 그녀가 문을 열자 무조건 그녀를 구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를 칼로 위협해서 침실로 끌고 갔다. 이어 범인이 그녀를 강간하려 했는데 그녀가 옆의 화분으로 범인을 가격했고 그 상황에서 빠져나왔다는 것이다. 레지나 캄포의 비명을 들은 옆집 남자들이 와서 범인을 제압했고 경찰이 올 때까지 범인을 깔고 앉아 있었다. 범인으로 판단되는 루이스 룰레는 경찰에게 체포될 당시에 손에 피가 묻어 있었다. 사건의 정황으로 봐서 경찰은 루이스 룰레를 범인으로 판단하고 기소한 것이다.
하지만 루이스 룰레가 미키 할러에게 주장한 것은 달랐다. 레지나 캄포가 먼저 자신을 유혹했고 그래서 그녀를 방문했다는 것이다. 집 안으로 들어가자 누군가 자신의 뒤통수를 둔기로 내리쳤고 자신은 의식을 잃었다고 그는 말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겠지만 깨어나자 누군가 자신을 내리누르고 있었다는 것이다. 체포될 때까지 그 상태로 있었고 다른 사람이 그의 손에 피가 묻어 있다고 말하자 경찰이 그의 손에 비닐을 덮어 씌었다는 것이다. 미키 할러는 루이스에게서 처음으로 느끼는 결백한 의뢰인의 냄새를 맡고 그의 무죄를 입증하기로 결정한다. 루이스의 말을 믿어주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하면 할수록 상황은 미키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미키 할러가 사건을 수임하고 나서 그 건에 대해서 다각도로 조사하면서 재판에서 이길 무기를 착착 챙기는 첫 부분과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재판에 나선 두 번째 부분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난 후의 마무리인 세 번째 부분이다. 첫 부분은 다소 산만한 감이 있었다. 미키 할러는 말 그대로 잘 나가는 변호사이기 때문에 맡고 있는 사건이 한 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큰 건인 루이스 룰레의 사건을 맡기는 했지만 이미 맡은 사건도 마무리해야 하는 터라 정신없이 바쁜 미키 할러덕분에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마음이 바빠졌다. 큰 사건을 준비하기 위해 대부분의 작은 사건을 끝낸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이때부터는 정말 재밌었다. 손을 뗄 수 없는 재미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싶게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웠던 것이다. 더구나 재판으로 들어가서 서서히 판을 뒤집는 미키 할러의 솜씨는 감탄 나오는 것 이상이었다. 그 세세한 솜씨에 여러 번 다시 읽어도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했지만 범죄자를 변호하는 변호사가 되고만 마이클 할러의 이야기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 정말 인상 깊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