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랜덤 - 마법에 걸린 떠돌이 개 이야기
J.R.R 톨킨 지음, 크리스티나 스컬 & 웨인 G. 해몬드 엮음, 박주영 옮김 / 씨앗을뿌리는사람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소설 '잉크하트'에서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는 책을 지은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책 자체에는 관심을 가지지만 정작 그 이야기를 지은 작가는 당연히 죽은 사람으로 생각한다고 말이다. 익숙하게 받아들인 이야기를 창조한 사람이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살아있는 사람이라고는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가도 사람이고 독자와 같은 시대를 살았든 다른 시대를 살았든 각자의 사정을 가지고 있다. 생계수단으로 글을 썼을 수도 있고 취미로 글을 썼을 수도 있다. 그런 작가의 사정은 몰라도 책을 이해하는데 큰 문제가 없지만 책으로 가려진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이야기는 좀 더 생생한 것이 된다. 이 책 '로버랜덤'은 톨킨이 아들을 위해 지은 동화라고 한다. 어느 날 톨킨의 둘째 아들이 밖에 놀러 갔다가 아끼던 장난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 장난감은 강아지 모양이었다. 어린 아이가 가장 애착을 품고 있던 물건을 잃어버리면 부모의 입장은 난처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가족이 총출동해서 내내 물건을 잃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장소를 뒤졌는데도 못 찾으면 상황은 점점 난감해진다. 아이는 울고 있는데 달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톨킨은 그 난감한 상황을 벗어나고 아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아들의 강아지 장난감과 그 상황을 소재로 한 이야기를 말이다. 아이가 아끼던 그 강아지 장난감은 실제로는 마법에 걸린 강아지였고 이제 그 강아지가 자신에게 걸린 마법을 풀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다는 것이다. 둘째 아들은 톨킨이 만들어낸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거기에서 멈췄다면 '로버랜덤'은 빛을 보지 못했겠지만 임기응변으로 만들어낸 이야기에 첫째 아들이 흥미를 보인다. 그리고 다음 이야기를 해달라고 톨킨을 졸랐다고 한다. 톨킨은 이야기를 발전시켜나갔고 강아지 로버의 모험은 '로버랜덤'이란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할머니가 귀여워만해서 버릇이 없던 강아지 로버는 어느 날 마법사와 마주친다. 그 때 공을 가지고 놀고 있던 터라 로버는 마법사의 등장이 그리 달갑지 않았다. 더구나 그 마법사는 로버가 가지고 놀던 공을 집어 들었던 것이다. 마법사는 로버가 가지고 놀던 공을 가지고 잠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공을 개가 좋아할 만한 뼈다귀로 바꾸어서 돌려줄까 하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그 생각은 로버가 마법사의 바지를 물고 늘어지는 바람에 끝이 난다. 로버도 그 할아버지가 마법사인줄 알았다면 결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로버는 강아지라 철이 없기도 했고 살짝 버릇도 없었으며 공 말고 다른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덕분에 겁도 없이 마법사의 바지를 물어뜯었다. 이 행동은 마법사를 화나게 했고 로버에게는 재앙이 되었다. 마법사가 로버에게 마법을 걸어서 로버는 아주 자그마한 장난감이 되어버린 것이다. 거기에 로버를 장난감 가게로 이동시켜 버린다. 장난감 가게 안의 상자에 갇힌 로버는 발버둥을 쳐봤지만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았다. 장난감 가게의 사람들은 로버를 보고 아주 잘 만들어져서 생동감까지 가지고 있는 장난감이라면서 좀 더 높은 가격으로 판매하기 위해 진열을 해둔다.

그래서 로버는 꼼짝도 못한 채 진열장에 있을 수밖에 없었다. 햇볕이 뜨겁더라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나마 밤이 되면 아주 약간씩은 움직일 수 있었다. 그것이 걸린 마법이 풀리기 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지만 로버는 그 상황에서 벗어나 자신이 살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로버는 어떤 작은 소년에게 팔려간다. 로버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어한 소년은 로버에게 말을 건다. 소년은 개의 말도 약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틈이 생기면 소년에게서 도망쳐 자신이 살던 집으로 갈 생각만 가득한 로버의 귀에는 그 말이 들리지 않았다.

소년의 집에 온 첫날 밤 로버는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로버는 너무 작아졌고 계단을 내려가는 것은 낭떠러지를 뛰는 것만 같았다. 그런 상태니 현관문을 여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로버는 다른 기회를 노리기로 한다. 기회는 로버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찾아온다. 작은 소년이 해변으로 놀러가면서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인 로버를 주머니에 넣고 간 것이다. 로버는 소년의 주머니에서 조금씩 위로 올라왔고 마침내는 주머니에서 떨어진다. 소년은 그 사실도 모른 채 해변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해변에 혼자 남은 로버는 마법을 풀고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이야기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톨킨이 아들을 달래기 위해서 쓴 이야기라는 점이 굉장히 이색적이었다. 그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터라 서문이 길게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전부 읽고 나니 서문의 내용도 좋았고 자세하게 붙은 주석도 마음에 들었다. 또 2장에는 톨킨이 직접 그린 삽화가 등장하는데 그게 섬세한 맛이 있어서 이야기를 다시 떠올려보게 했다. 마법에 걸린 강아지 로버의 모험담 '로버랜덤' 톨킨의 소설 중 최고는 아니라도 환상적이면서도 따뜻한 동화라 마음 편하게 읽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청소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혼돈이 나름대로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치우려는 시도를 하기는 한다. 단지 청소를 결심하고 먼저 치워야 할 물건 A를 발견하고 치우는 도중 물건 B가 보여서 그 쪽으로 관심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물건 C를 보게 되면 물건 A에 대해서는 전부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청소를 시도는 했으나 물건의 위치가 약간씩 바뀌었을 뿐 물건더미가 주변에 널려 있는 상황은 그대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청소를 잘 못하는 사람은 개인의 집중력의 문제에 국한되고 피해도 개인에 미치는 수준이지만 한 국가기관이 연이은 문젯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가 안고 있는 문제였다. 이 책 '잿더미의 유산'은 CIA창설부터 사실상 국방부에게 흡수되어 유명무실해지기까지의 60년을 다루고 있다.

흔히 CIA에 대해서 떠올리면 세계최강의 정보기관이며 세계 대부분의 비밀공작이 CIA에서 이루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저자는 이 모든 CIA에 대한 신화가 CIA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CIA가 첩보활동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 중에서 정말 핵심 정보인 것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나마도 제대로 된 첩보활동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 국가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그 나라의 정보요원이 운 좋게 CIA에 넘겨준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CIA의 실체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첩보원하면 떠올리게 되는 사람은 제임스 본드인데 그 제임스 본드가 왜 영국 첩보원일까 하는 의문까지 품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가장 잘 알려진 첩보원인 제임스 본드가 영국 정보기관 소속인 것을 제외하면 영화나 드라마 속의 CIA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하다. 안하려고 해서 그렇지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법의 테두리에서 이뤄진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CIA는 사람들이 나쁜 쪽으로 생각했던 CIA의 모습이 사실이며 좋은 쪽으로 생각했던 CIA에 대한 것은 전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갑자기 모든 허식의 갑옷을 벗기고 생살을 드러낸 CIA에 대해서 짧게 말하면 이렇다. 첩보활동을 하는 정보기관은 끊임없이 우수한 인력의 유입이 필요한데 CIA는 그 점에서 계속 실패를 했다. 그들에게 준비된 요원이란 것은 없으며 그런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작전을 세우고 진행해나갔다는 것이다.

더구나 첩보활동은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이 섬세하며 치밀하게 진행해나가는 것을 떠올리는데 CIA의 첩보활동에 있는 것이라고는 온갖 비밀로 덮어서 마련한 거대한 자금과 폭력, 운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실패는 전부 비밀로 덮어버리고 대통령에게까지 거짓을 말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CIA가 성공한 것은 몇 안 되는 경우였는데 그것은 대부분 운에 의한 것이었는데 한 나라의 정부의 전복에 '우연히' 성공하자 그 일을 크게 부풀렸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짓 신화를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CIA는 자신들이 한 나라의 정부도 바꿀 수 있는 기관인 것 마냥 치장을 해왔지만 실상은 60년 동안 계속되는 실패를 거듭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냉전시대에 소련에 무분별하게 요원들을 파견하고 그들은 그 과정에서 전부 죽어나갔는데도 그것이 성공적 작전이었다는 듯 과시했다는 것은 우습기까지 하다. 돈은 마구 퍼부으면서도 제대로 된 요원이 없어서 역정보에 시달리고 그것이 역정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운이 좋아서 귀중한 정보를 얻어도 오히려 그 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이중첩자로 생각하고 심문을 계속 하는 등 여태 생각했던 CIA가 과연 한 때라도 있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모든 적대국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추측만을 하는 CIA는 끝내 내리막길을 걷고 만다. 내내 으르렁 거렸던 국방부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빼앗겼으며 CIA의 업무 태반이 민간보안업체 소속의 계약직 사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CIA의 탄생부터 사실상의 죽음까지를 알리고 있다. 그 과정을 시간에 따라 서술해서 진행해나가는데 그 와중에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던지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의 전모, CIA에 의한 체 게바라의 죽음 등 다양한 사건과 CIA의 연관을 밝히고 있다.

그것이 아주 흥미로웠다. 허상이었던 CIA와 다른 실체를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미국 역사상 여러 흥미로운 사건이나 다른 나라에 미국이 어떤 영향을 남몰래 끼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니 CIA라는 표현보다 cia에 가까운 CIA를 보여주는 '잿더미의 유산' 아주 인상 깊게 읽었다. 돈, 권력, 폭력을 마구 휘두른 정보기관의 실상이 실제로는 엉성하기 그지없다니 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 11시의 산책
구로 시로 지음, 오세웅 옮김 / 북애비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죽음은 많은 것을 빼앗아간다. 죽음은 단순히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없음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더 큰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살아있을 때는 사랑해 마지않던 가족조차도 죽은 자의 상태로 돌아온다면 그들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만다. 죽은 자를 아무 두려움 없이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대상이 예전에 사랑했던 가족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도 있었다. 남편을 잃고 슬픔에 잠긴 아내는 어찌 할 바를 몰랐다. 남편이 죽은 자가 되어버렸지만 죽은 자의 상태로나마 붙잡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술사에게 부탁했다. 죽은 남편을 다시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말이다. 주술사는 죽은 자를 돌아오게 하는 주술을 행했고 남편은 실제로 돌아왔다. 어느 달이 흐린 밤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아내가 들었다. 아내는 직감적으로 죽은 남편이 돌아왔음을 깨달았다. 허나 아내는 쉽사리 문을 열지 못했다. 불현듯 두려운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내가 망설이고 문을 열지 못하자 남편이 아내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가 남편을 너무 애절하게 붙들었기 때문에 편안히 갈 곳으로 향할 수 없었고 그녀의 곁으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제 그녀의 곁에 머물 테니 문을 열라고 남편은 말한다. 하지만 아내는 남편이 입을 연 시점에서 그가 죽은 자라는 것을 오싹할 정도로 실감한 터라 문을 열기는커녕 두려움에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 상태가 지속되었고 새벽이 되어 날이 밝아오자 남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주술은 실패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제야 아내는 자신이 저지르려고 했던 일을 깨닫는다.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시점에서 그와의 인연은 끝나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죽은 자를 일으키려 해봤자 돌아온 사람은 그녀가 바랐던 그 사람이 아니었다. 이 책 '밤 11시의 산책'에서도 죽은 자가 산 자의 생을 위협한다. 허나 그 위협은 죽은 자에 의한 위협일 수도 있지만 죽은 자에 대한 미련을 거두지 못한 산자에 의한 위협일수도 있었다.

공포소설가 타쿠로는 한 때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너무나 사랑하는 아내와 딸과 살고 있었으며 자신의 소설도 인기를 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 가정, 사랑 전부에서 행운아였던 그는 얼마 후에 자신의 행복이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깨닫는다. 그 시작점에 아내 미사코의 죽음이 있었다. 항상 부지런했던 아내가 어느 날 아침 늦잠을 잔다. 딸 치아키와 같이 늦잠을 자는 것으로 생각했던 타쿠로는 미사코가 늦도록 일어나지 않자 아내와 딸을 깨우러 2층으로 올라간다. 하지만 그가 보게 된 것은 죽은 아내와 그 품에서 아직 잠들어 있는 딸의 모습이었다. 아내가 평온한 얼굴로 죽어 있기를 바랐지만 강렬한 고통이 있었던 듯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그 후 타쿠로는 딸 치아키를 키우는 일과 자신의 소설에 대부분의 시간을 쓰면서 지낸다. 아직 손가락의 반지를 뺄 만큼 미사코를 잊지는 못한 채였다. 평온하고 그럭저럭 견딜만한 상황이었다. 딸 치아키에게 엄마 미사코의 죽음을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했지만 그것은 시간이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그런데 그 상황이 변한다. 딸 치아키가 아내의 재능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지 독특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가 그린 그림이라고 하기에는 세밀하며 대담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그 그림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타쿠로 정도로 다른 어른들은 아이답지 않은 화풍의 그림을 보고 놀라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허나 타쿠로는 딸의 범상치않은 재능에 만족한다. 그런데 우연히 딸과 강변을 산책하고 돌아온 이후 아이는 밤 11시의 산택에 집착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시퍼런 얼굴의 여자를 그린다. 딸의 재능에 감탄하던 타쿠로도 점차 불안을 느끼기 시작하고 그 불안은 그의 담당자가 바뀌면서 가속화되기 시작한다. 다섯 살 아이의 눈에만 보이는 엄마의 존재,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을 섬뜩한 그림으로 표현하는 아이의 이야기가 오싹하게 이어진다. 두 부녀의 주변을 맴도는 시퍼런 얼굴의 여자는 정작 타쿠로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오히려 아이의 눈에만 보이기 때문에 더 오싹한 면이 있었다. 더구나 그 존재를 치아키가 엄마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런 기분이 더했다.

이야기 자체는 주인공인 타쿠로가 담담한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검은 물밑으로 잠겨드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변할수록, 사건의 실체에 접근할수록 기분 나쁜 무언가가 주변에 있는 것만 같은 불쾌감이 몸을 감싸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정작 모든 진상을 알게 된 순간은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만 같은 생각도 들었다. 정체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오싹했던 것이다. 하지만 아이만 보는 무언가를 소재로 한 이야기라서 굉장히 긴장감 있게 읽을 수 있었다. 시퍼런 얼굴의 여자와 밤 11시의 산책에 집착하는 치아키의 비밀 '밤 11시의 산책' 인상 깊게 읽었다. 읽고 나서 생각한 것이지만 역시 알 수 없는 존재를 볼 수 있는 사람보다 보지 못하는 사람 쪽이 더 강한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O형 자기설명서
쟈메 쟈메 지음, 윤성규 옮김 / 지식여행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초등학교 1학년때 혈액형 검사를 통해서 처음 어느 혈액형에 속하는지 알았다. 하지만 혈액형이 성격을 결정한다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그것은 단 한 번도 내 혈액형을 맞게 예측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혈액형을 통해서 그 사람의 대략적인 성격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혈액형만을 통해서 그 삶의 대부분을 알 수는 없다. 혈액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그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수혈할 수 있는 혈액형의 종류 정도다.

O형의 경우는 성격은 몰라도 수혈 면에서는 유용한 혈액형이다. 어떤 혈액형을 가진 사람에게든 피를 나누어 줄 수는 있지만 받는 것은 O형만 가능한 혈액형이라서 가끔은 손해 보는 혈액형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런 특성이 성격에 조금이라도 숨어 있다면 누구에게나 친화력을 뿜어내지만 실상은 다른 사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혈액형이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요즘 시대를 사는 사람 중에서 타인을 쉽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있지만 말이다.

결국 혈액형은 수혈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 진지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혈액형으로 성격을 읽는 것이 꽤 재미있기는 하다. 그것을 얼마나 믿을 수 있느냐에 한해서는 내일의 비올 확률은 50%라는 일기예보를 본 기분과 같지만 말이다. 깊게 믿을 필요 없이 흥미위주로 보면 좋은 'O형 자기설명서'를 펼칠 때 기분이 이랬다. 이 책에서 어떤 내용이 나오든 맞는다고 수긍할 생각은 없었지만 과연 이 책에서 묘사하는 O형의 성격이 궁금하기는 했던 것이다.

다 읽고 난 후에 기분은 80% 정도는 맞는 것 같기도 하다는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같기도'에 한정되는 것이지만 읽으면서는 내내 '맞는 것 같아'라고 하면서 키득거렸다. 사람의 성격은 복잡한 것이라 어떤 식으로 성격을 묘사해도 100% 틀리다고 장담할 수 있는 내용은 많지 않다. 만약 O형이 성격이 비틀린 사이코패스가 많다는 식으로 묘사되어 있었다면 어처구니없을 뿐이었겠지만 O형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그 중 인상적인 몇 가지의 예를 들면 '어딘가에 잘 부딪힌다', '수다쟁이에 안무가', '칭찬받는 것을 좋아한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 잘 따른다'는 것이 있었다.

생각하기 나름인 특성들이지만 어딘가에 부딪혀서 나도 모르는 멍이 잘 있었던 터라 그 부분을 보고 웃어버렸다. 더구나 이어지는 설명에서 자신도 모르는 상처를 보고 오싹해 한다는 것이 있어서 피식 웃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다치는 일은 가끔 있을 수 있다. 큰 상처가 아닌 자잘한 멍인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긴장이 풀린 상태로 움직이면 집안의 가구에 부딪히게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후에 그런 상처들을 발견하면 도대체 어디에서 이런 상처가 생겼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 때문에 기분이 묘하기는 하다.

또한 칭찬받는 것을 좋아한다는 특성의 경우에는 칭찬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다. 먹을 것을 주는 사람을 잘 따른다는 특성도 먹을 것을 주는 사람에게는 상대적으로 호감을 느끼기 쉽다는 것인데 그리 놀랍지는 않았다. 단지 수다쟁이에 안무가라는 특성은 무뚝뚝한 O형이라면 전혀 들어맞지 않는 특성이겠구나 하는 생각은 들었다. 이처럼 맞는다면 대체로 맞고 틀린다면 '그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특성들이지만 읽을 때는 정말 유쾌했다.

성격에 들어맞는 것이 많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 모든 특성들이 모여서 복합적인 성격이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도 떠올랐기 때문이다. 처음 읽을 때는 가볍게 흥미위주로 읽으면서 자신의 성격과 비슷한 점을 찾아서 즐거웠고 뒤로 읽어 나갈수록 자신의 성격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성격의 특성을 하나하나 설명해나간 것과 다르게 마지막 부분에 O형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부분이 특히 재미있었다. 예를 들면 백설 공주가 O형이었다면 어떻게 나왔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웃고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게 움직였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쾌한 기분으로 자신의 성격을 다시 짚어보게 하는 'O형 자기설명서' 정말 마음에 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심리학, 습관에게 말을 걸다 - 손톱을 물어뜯는 여자, 매일 늦는 남자
앤 가드 지음, 이보연 옮김 / 시아출판사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중학교때 선생님 중에 이런 분이 계셨다. 무언가에 중독되는 것 같다고 느낄 때가 정말 싫다는 것이다. 커피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계속해서 마셔야 한다면 그것은 좋아한다기보다 중독된 것 같다는 말을 하셨다. 그래서 가끔씩 좋아하는 것들을 그만둬 본다는 것이다. 커피를 한참 좋아해서 몇 달을 마셨다면 그와 비슷한 기간동안 커피를 마시지 않고 참고 한동안 다른 취미에 푹 빠져 있었다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린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그 이야기를 듣고 특이한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습관이 되는 것들을 극단적으로 경계한 행동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의 행동, 생각은 그 사람을 반영한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습관 역시 그 사람을 반영한다. 자신은 무심코 왼쪽 어깨를 주물렀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몸의 균형이 틀어져 있어서 왼쪽 어깨에 부담을 주었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 습관 역시 몸이나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서 생겨난 것 일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맥락이라면 습관은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을 반영하는 것이다. 더구나 같은 습관이 어느 정도 반복되다보면 자신이 그 습관을 행한다기보다 습관에 자신이 지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까지 생겨난다. 그 습관을 누르려 해보지만 잠시만 방심하면 어느새 같은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쯤 되면 습관을 만들어낸 근본원인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된다.

완전히 굳어버리기 전에 그 습관을 만들어낸 것, 균형을 무너뜨리게 한 원인을 찾아서 바로잡는다면 원하지 않는 습관을 없앨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다리를 떨고 있으면 어른들은 복이 달아난다고 못 하게 한다. 복이 달아나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상대적으로 초조하거나 심심해지면 다리를 떨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식으로 어떤 습관이 자신의 심상을 그대로 반영한다니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어떤 쪽으로든 자신의 마음이 외부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타인이 읽어낼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더욱 더 고치고 싶은 습관의 근본원인을 말하고 있는 책이 바로 '심리학, 습관에게 말을 걸다'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바 역시 습관은 그냥 단순한 반복행동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 행동이라고 한다. 그것도 좋은 쪽의 감정이 아니라 분노나 질시, 결핍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그 중심에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이든 손가락을 빠는 행동이든 그리 보기 좋은 습관은 아니다. 당사자도 알고 있지만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손톱을 물어뜯는 여성의 사례에서 이런 설명을 하고 있다. 한 여자가 본인의 의지와 달리 끊임없이 손톱을 물어뜯는다. 손톱을 물어뜯다가 살점까지 뜯는 지경이 되었고 그녀도 가능하면 그 습관을 없애고 싶었다. 악수를 할 때마다 손이 보기 흉해서 각종 핑계를 대면서 손을 숨겨야하니 곤란했던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그녀는 운전을 하다가 신호에 걸리거나 잠깐의 시간 여유가 생길 때마다 손톱을 물어뜯는 행동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녀가 그런 행동을 계속해서 반복한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 그녀의 분노를 뿜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일찍 결혼을 해서 자신의 젊음 태반이 다른 사람의 뒤치다꺼리를 하는데 소진된 것이 아닌가하고 허탈해 하는 참이었다. 가족 간의 불화가 있었을 뿐만이 아니라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아서 그 점에 점점 짜증이 나던 참이었다. 시어머니는 독선적인 데가 있었는데 그녀는 그 부분에 제대로 항의조차 하지 못 했던 것이다. 감추고 누르고만 있던 분노가 점차 그녀의 안에서 커져만 갔고 그것이 한계점에 이르자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녀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분노를 표현하기로 했다. 독선적으로 구는 시어머니에게 그렇게 하지 말라고 말했으며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오랜만의 자유를 만끽했다. 누르고만 있던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하자 가족들은 전의 유순했던 그녀가 변했다며 불평했지만 그녀의 습관은 점차 수그러들었다. 원인을 해결하자 계속해서 반복되던 습관도 사라진 것이다.

물론 모든 습관에 다 이런 원인이 있고 그것을 없애면 습관이 사라지는 것이 공식처럼 적용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통용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해 보이는 습관이라고 해서 원인이 없으란 법은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습관과 그 원인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살펴 본 '심리학, 습관에게 말을 걸다' 인상 깊게 읽었다. 이 책을 읽는다고 해서 모든 쓸데없는 습관들을 다스릴 수는 없겠지만 습관에 대한 다른 관점을 보는 것은 즐거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