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의 유산 - 한국전쟁에서 이라크전쟁까지 세계 역사를 조종한 CIA의 모든 것
팀 와이너 지음, 이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청소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은 특징이 있다고 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혼돈이 나름대로의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치우려는 시도를 하기는 한다. 단지 청소를 결심하고 먼저 치워야 할 물건 A를 발견하고 치우는 도중 물건 B가 보여서 그 쪽으로 관심이 분산된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물건 C를 보게 되면 물건 A에 대해서는 전부 잊어버린다고 한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청소를 시도는 했으나 물건의 위치가 약간씩 바뀌었을 뿐 물건더미가 주변에 널려 있는 상황은 그대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청소를 잘 못하는 사람은 개인의 집중력의 문제에 국한되고 피해도 개인에 미치는 수준이지만 한 국가기관이 연이은 문젯거리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그대로 안고 간다면 그것은 또 다른 양상을 보인다. 그것이 바로 미국의 정보기관인 CIA가 안고 있는 문제였다. 이 책 '잿더미의 유산'은 CIA창설부터 사실상 국방부에게 흡수되어 유명무실해지기까지의 60년을 다루고 있다.

흔히 CIA에 대해서 떠올리면 세계최강의 정보기관이며 세계 대부분의 비밀공작이 CIA에서 이루어 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의 저자는 이 모든 CIA에 대한 신화가 CIA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CIA가 첩보활동을 통해서 얻어낸 정보 중에서 정말 핵심 정보인 것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나마도 제대로 된 첩보활동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히 그 국가에 대해서 불만을 품은 그 나라의 정보요원이 운 좋게 CIA에 넘겨준 정보가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 책에서 말하는 CIA의 실체는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첩보원하면 떠올리게 되는 사람은 제임스 본드인데 그 제임스 본드가 왜 영국 첩보원일까 하는 의문까지 품었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가장 잘 알려진 첩보원인 제임스 본드가 영국 정보기관 소속인 것을 제외하면 영화나 드라마 속의 CIA는 그야말로 전지전능하다. 안하려고 해서 그렇지 하려고 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하는 행동이 법의 테두리에서 이뤄진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말이다.

이 책에서 나오는 CIA는 사람들이 나쁜 쪽으로 생각했던 CIA의 모습이 사실이며 좋은 쪽으로 생각했던 CIA에 대한 것은 전부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갑자기 모든 허식의 갑옷을 벗기고 생살을 드러낸 CIA에 대해서 짧게 말하면 이렇다. 첩보활동을 하는 정보기관은 끊임없이 우수한 인력의 유입이 필요한데 CIA는 그 점에서 계속 실패를 했다. 그들에게 준비된 요원이란 것은 없으며 그런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작전을 세우고 진행해나갔다는 것이다.

더구나 첩보활동은 고도로 훈련된 요원들이 섬세하며 치밀하게 진행해나가는 것을 떠올리는데 CIA의 첩보활동에 있는 것이라고는 온갖 비밀로 덮어서 마련한 거대한 자금과 폭력, 운뿐이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실패는 전부 비밀로 덮어버리고 대통령에게까지 거짓을 말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CIA가 성공한 것은 몇 안 되는 경우였는데 그것은 대부분 운에 의한 것이었는데 한 나라의 정부의 전복에 '우연히' 성공하자 그 일을 크게 부풀렸고 그것을 바탕으로 거짓 신화를 쌓아올렸다는 것이다.

CIA는 자신들이 한 나라의 정부도 바꿀 수 있는 기관인 것 마냥 치장을 해왔지만 실상은 60년 동안 계속되는 실패를 거듭해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냉전시대에 소련에 무분별하게 요원들을 파견하고 그들은 그 과정에서 전부 죽어나갔는데도 그것이 성공적 작전이었다는 듯 과시했다는 것은 우습기까지 하다. 돈은 마구 퍼부으면서도 제대로 된 요원이 없어서 역정보에 시달리고 그것이 역정보라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나마도 운이 좋아서 귀중한 정보를 얻어도 오히려 그 정보를 제공한 사람을 이중첩자로 생각하고 심문을 계속 하는 등 여태 생각했던 CIA가 과연 한 때라도 있었는지 의문스럽기까지 했다.

모든 적대국가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없이 추측만을 하는 CIA는 끝내 내리막길을 걷고 만다. 내내 으르렁 거렸던 국방부에게 대부분의 권한을 빼앗겼으며 CIA의 업무 태반이 민간보안업체 소속의 계약직 사원에 의해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이 책은 CIA의 탄생부터 사실상의 죽음까지를 알리고 있다. 그 과정을 시간에 따라 서술해서 진행해나가는데 그 와중에 닉슨의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던지 케네디 대통령 암살사건의 전모, CIA에 의한 체 게바라의 죽음 등 다양한 사건과 CIA의 연관을 밝히고 있다.

그것이 아주 흥미로웠다. 허상이었던 CIA와 다른 실체를 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미국 역사상 여러 흥미로운 사건이나 다른 나라에 미국이 어떤 영향을 남몰래 끼치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상을 들여다보니 CIA라는 표현보다 cia에 가까운 CIA를 보여주는 '잿더미의 유산' 아주 인상 깊게 읽었다. 돈, 권력, 폭력을 마구 휘두른 정보기관의 실상이 실제로는 엉성하기 그지없다니 내내 경악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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