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 독자서평단 활동 종료 설문

•  서평단 도서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과 그 이유
'미트포드 이야기'가 가장 기억에 남네요.
폭력 같은 부담스러운 내용이 없는 터라
읽기는 편했지만 읽을 때는 좀 심심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요새는 워낙 부담스러운 내용의 책이 많아서 그런지
기억에 오래 남네요. 
신부님이 주인공인 책인 것도 그렇지만
언젠가 꼭 한 번 살아보고 싶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점도 좋았어요.
성경을 말하면 얌전해지는 개가 등장한 것도 신기했구요.
언젠가 미국에 간다면 실존하는 마을 미트포드에 가보고 싶네요.
 

•  서평단 도서의 문장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한 구절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중에서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도록 보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하지 않았다.
(P14)

이 부분이 가장 인상적이었어요.
읽을 때는 감정이 지나치게 짙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부분만은 지금 제 기분하고 일치하는 부분이 많은지
가장 기억에 남네요.


•  서평단 도서 중 내맘대로 좋은 책 베스트 5 
1위.  미트포드 이야기-청정마을 미트포드를 다룬 터라 마음 편하게 볼 수 있는 책이라서요. 요새는 도리어 이런 책이 흔치 않네요.

 

 

 

2위. 일년 동안의 과부-미트포드 이야기와 반대로 온갖 일이 살인부터 불륜까지 온갖 일이 일어나는 책이지만 작가의 필력이 뛰어난 터라 페이지가 술술 넘어가는 책이거든요.

 

 

3위. 건투를 빈다-김어준씨의 직설적인 조언이 때로는 통쾌하더군요.

 

 

 

4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독일의 대문호 괴테의 작품이기도 하지만 사랑의 폭풍 같은 순간이 잘 나타나 있었어요. 다만 자살을 미화한 것 같아 조금...

 

 

5위. 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이슬람 문화권에서 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충격적이었지만 인상 깊기는 하더군요.

 

 

 

 

어느새 독자 서평단 1기 활동 기간이 끝났다니 서운해지네요. 

덕분에 좋은 책을 여러 권 읽었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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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영어회화 측정기 - 당신의 영어 회화 실력은?!
Chris Woo 지음 / GenBook(젠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방긋 웃으면서 다가오는데 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사람이 경찰인 것도 자신이 범죄자인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은 처음 만난 사람이니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도 아니다. 사실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상대가 웃으면서 다가오는데 전력으로 도망친다는 것은 결코 예의가 아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외국인이고 '영어'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영어는 해결해야할 난제가 되어버렸다. 단순히 모르면 그만인 다른 나라의 언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어울렁증이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영어에 대해 강박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언어학에 소질이 있어서 다른 나라의 어떤 말이든 금방 익힐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그나마 학창시절에 배워서 글을 읽거나 듣는 정도는 어떻게든 넘기는데 말로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덕분에 세상에 하나의 언어가 있었는데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서로 다른 말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사람의 입에서 말이 전부 문자로 튀어나오고 그것을 일정 시간동안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허나 이런 망상에 빠진다고 해도 상황이 변하는 게 아니어서 결국 생각은 하나의 답을 내고 만다. 공부를 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밟아야 할 하나의 절차가 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읽기와 듣기라면 몇 가지 시험이 있고 요새는 말하기와 쓰기도 검증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 영어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영어회화 측정기'는 편리한 책이다.

일단 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읽어 나가면 되는 책이니 마음이 편하다. 더구나 제목이 영어회화 측정기라서 살짝 긴장했는데 그 측정의 척도는 객관식 문제였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번째 장까지는 읽기와 말하기에 가깝다면 나머지 두 개의 장만이 읽기와 듣기에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단어와 관련된 내용으로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단어의 예가 실려 있었다. 가령 drug와 medicine은 둘 다 약이지만 전자는 마약, 후자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파서 약을 먹었느냐는 말을 쓰고 싶을 때는 medicine을 사용하라는 설명이었다.

또 두 번째 장은 숙어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숙어는 가능하면 알아듣기 위해서만 기억해두는 것이 좋고 사용은 하지 말라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발음이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이 숙어를 사용하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무작정 외우기만 했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장과 네 번째 장에서는 각각 영어문법과 헷갈리는 표현을, 문화와 유머와 관련된 부분이 다섯 번째 장과 여섯 번째 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기억해두면 좋을 만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Do you have the time?'이라는 말이었다. 몇 시냐고 묻는 말인데 시간이 있느냐는 'Do you have some time?'과 헷갈리기 쉽다는 점이었다. the가 붙었을 때와 붙지 않았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사실 책 한 권으로 그 사람이 가진 실력을 알아내는 것은 다소 버겁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할 지 정도는 대강의 감은 잡히는 편이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장에 해당하는 문제를 얼마나 맞혔는지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눠 각기 다른 조언을 해주는 점도 꽤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에 해당하는 칭찬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하고 쑥스러워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이지만 약간의 자신감과 앞으로의 영어 공부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도와준 '나의 영어회화 측정기' 나쁘지 않았다. 언제야 벙어리 영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암담했지만 언젠가는 길의 끝이 보이리라는 희망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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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지 파트너
한정희 지음 / 민음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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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가진 성향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의 인생 속의 시간은 각기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유년기는 성장에 정신이 팔려서 나비를 쫓아가는 어린 아이처럼 그저 흘러가버린다. 청소년기만 해도 어른이 되서 몸살이 날 정도이든, 어린 시절을 좀 더 누리고 싶든 지겹지만 잘도 넘어간다. 반면 어른이 된 이후의 시간은 손에서 모래가 흘러나가는 것과 같다. 그것과 함께 하나의 거대한 충격이 온다. 자신이 유한한 시간을 살아가고 자신이 살아온 만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애써 외면하게 되는 이 사실은 나이를 먹을수록 무게를 더해간다. 한 해의 마지막은 대개 후련하기보다 씁쓸한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이번 한 해만은 알차게 보내겠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와 같은 기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암담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실 시간을 충실하게 보낸다는 것은 무리한 일이고 현재를 살라지만 인생의 절반이 지날 무렵에 우울함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외면을 하든 체념을 하든 그것은 자신의 선택이지만 이도저도 하지 못한 사람들은 극단적인 선택의 상황에 빠져들기도 한다.

우울한 회색지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하얀 종이위에 재현한 것이 이 책 '브리지 파트너'다. 책은 일곱 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첫번째 이야기부터 심상치가 않다. 주인공은 자신이 목을 맬 튼튼한 벨트를 찾은 이후 그 벨트를 목에 건 상태로 어디에서 목을 매야 할까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집 안에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만한 튼튼한 장소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난 번에 살던 집의 상들리에라면 자신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텐데 이사해서 아쉽다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자신의 모습이 우습다는 것을 알고서도 자살을 하려는 마음을 바꿀 생각이 없는 그녀에게 전화가 한 통 걸려온다. 오래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구였다. 친구는 그녀가 미국으로 여행을 왔을 때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은 것이 섭섭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루게릭 병에 걸린 다른 친구의 소식을 물어온다. 그 때 주인공의 머릿속에 세 명이 마지막으로 모였던 것이 떠오른다. 세 명은 미국으로 이민간다는 윤희때문에 모였었다. 그 장소에서 현임은 자신이 루게릭 병에 걸렸다고 고백했다.

그 때 그녀는 '죽어버리라고, 너에게 시련을 준 절대자 앞에서 오만한 모습으로 그냥 죽어버리라고' 말했다. 잔인한 말이었지만 항상 침착하고 냉정한 모습을 보였던 현임이었기에 그녀는 그렇게 반응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녀는 자신이 자살하기 전에 현임을 찾아가보기로 결심한다. 이 단편을 읽었을 때 첫머리부터 자살을 하려는 주인공의 모습에 충격을 받고 불치병에 걸린 친구에게 딱 잘라 죽으라고 말하는 그녀의 과거 모습에 경악했다. 원래 가진 성격 탓인지도 모르지만 그녀의 삶이나 생각의 방식이 극단적이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는 첫 번째 단편 '웃으면서 죽는 법'부터 마지막 단편 '브리지 클럽'에 이르기까지 우울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자신이 지금 보내고 있는 시간과 과거에 흘러간 시간, 미래에 다가올 시간을 견뎌낸다. 다만 그것은 비정상적인 자살에 대한 집착일 수도 있고 브리지에 몰두하는 일일수도 있다. '브리지 파트너'와 '브리지 클럽'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 속에나 등장한 다소는 낯선 느낌의 브리지를 하나의 매개체로 사용하고 있다. 다른 인생, 다른 시간을 걸어가는 타인들이 브리지라는 게임을 통해 서로의 인생을 교차하는 것이다.

단편이니 만큼 그들의 인생은 한 단면만이 부각이 된다. 그리고 인상적인 순간에서 끊긴 이야기의 다음은 알 도리가 없다. 그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색채가 짙은 터라 읽으면서 웃을 일은 없었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시간은 무채색이라 읽는 입장에서도 착잡한 기분이 들었다. 절반의 시간을 보내고 앞으로 살아갈 절반과 흘러간 절반에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브리지 파트너' 인상 깊게 읽었다. 앞으로 다가오게 될 시간을 두렵게 하기도 하는 책이었지만 이후를 궁금하게 하는 단편이라는 점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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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또르 씨의 시간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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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가진 시간이 무한한 줄만 알았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눈을 감고 맞춰보게 한 1분이 길기만 했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것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내일이 기다려졌다. 16년 동안의 학창시절을 보낼 동안 학교에 가장 일찍 간 것도 초등학교 때였다. 전 날 아무리 피곤했더라도 다음날 눈을 뜨면 모든 에너지는 재충전되어 있었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일조차 즐거운 일 중에 하나였다. 그 때의 시간은 끝이 없어보였고 사실 관심대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청소년기를 지나 다른 사람들이 어른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시간이 가속도가 붙는 것만 같다. 자신이 가졌던 시간들은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흘러가버리고 자신이 놓친 시간을 당혹해하는 어수룩한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마다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지적을 들었던 '오늘'이란 단어조차 지금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쓰는 것 같은 감흥에 빠져 들게 되었다. 현재를 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한 귀로 흘려버리고, 지나버린 시간을 아까워하면서도 지금을 또 흘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 불안해하고 시간은 이제 고민거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시점을 돌파하면 자신이 가진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느 책에서는 시간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세계를 계측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 시간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수 없는 입장에서는 시간은 절대 권력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가진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자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 현재를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진 시간이 유한함을 근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시간이 고민거리는커녕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엑또르씨의 시간여행'은 반갑기도 하고 뼈아프기도 하다. 고민거리를 정확하게 지적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자신이 쓸데없는 고민거리를 끌어안고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제목만 보면 영화 '백 투 더 퓨처' 같은 내용이 나올 것 같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한 정신과의사가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덧 젊지 않은 의사가 된 엑또르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자신의 시간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다고 푸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나타난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선택권이 없는 지금의 자신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소년에게 시간의 흐름은 너무 늦었다. 반면 일상에 치여서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빈의 경우에는 시간은 너무 빨랐다. 너무 빨라서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가진 유일한 자신만의 시간은 엑또르와의 상담시간 뿐이었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경우로는 마리 아그네스가 있었는데 그녀는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젊은 날로 되돌리고 싶었다. 싱싱하게 피어나던 그녀의 젊음은 점차 사라지고 주름살이 생긴 피부를 볼 때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황급히 노화방지크림을 발랐지만 그녀의 시간은 멈춰지지 않았다.
 





 


 

 

 

 

 

 

 

이 모든 상담들은 엑또르가 시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늙고 있음을 거부하고 염색을 하는 정신과 의사들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개가 몇 마리 있는지로 계산하는 환자를 볼 때에 더욱 그랬다. 가령 개의 수명은 대강 15년이라고 치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45년이라면 개 세 마리가 남았다고 하는 식이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리 틀린 셈법도 아닌데 이 방법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하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들 중에서 사람이 언젠가 나이 들어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사람에게 상대적인 시간과 그 사실을 직시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고민에 빠진 엑또르는 자신이 품은 고민에 답을 찾기로 한다. 중국에 있는 노스님을 찾아 답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여행은 이누이트족이 사는 마을, 중국으로 점점 이어지며 그는 자신만의 답에 가까워져 간다.

자신의 유한한 생명을 깨닫게 되는 순간 시간은 고민거리가 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결코 오지 않으며 우리는 항상 현재에 남는다. 그런데 그 현재조차도 계측하려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현재라는 시간은 대체 어디 있느냐는 엑또르의 물음은 당혹스러웠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답을 찾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 둔 채 여행을 떠난다. 그가 찾은 답은 납득이 가기도 하고 가지 않기도 한 것이었다.

현재를 살라는 말, 쉽지만 어려운 말이다. 지금도 의식하지 못한 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결국 어린 시절처럼 살 수 있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만큼 현재를 살았던 때도 하루가 즐거웠던 때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곳곳에 삽입된 삽화와 답을 찾기 위해 떠난 엑또르를 만날 수 있던 시간 '엑또르씨의 시간여행' 즐겁게 읽었다. 평소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하나하나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매일 눈을 뜰 때 기대감에 부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새로운 책을 만날 때의 설렘만큼은 현재를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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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
레오 김 지음, 김광우 옮김 / 지와사랑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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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레즌트 빌'의 인상 깊은 장면 중에 하나는 흑백이었던 화면이 컬러로 변해가는 순간이었다. 마을 이름 그대로 즐겁고 유쾌하지만 인간의 기타 어두운 부분이 없던 무채색의 마을에 두 남매가 나타나면서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지극히 가상의 공간이고 계산된 마을이었던 드라마 속의 공간 플레즌트 빌이 점차 살아 숨쉬고 인간의 욕망이 움직이는 곳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 변화는 흑백이었던 화면에 색이 나타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단순히 색이 나타난 것 만으로도 그 공간은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그런데 색이라는 것도 실상은 착각이라고 한다. 인간의 뇌에서 인식하면서 그렇게 받아들인 것뿐이라는 것이다. 빛의 반사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허위 정보인 셈이다. 하기야 동물들이 바라보는 세계의 색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하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름을 꽤 알린 생명 공학자다. 그런데 그가 낸 책의 제목이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이라니 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과학자들을 유물론자로 한정지어버린 편견 때문이었다.

저자는 각 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런 그가 책의 첫 머리에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를 꿈꿔왔었는데 친한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친구의 이름은 스탠리로 많은 부분을 공유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의 건강한 모습을 보았던 다음날 친구는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스탠리는 저자에게도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저자의 부모님이 위험하다고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살았고 친구는 죽었다. 지인의 죽음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지만 어린 나이에 친구가 죽는 것은 한결 충격적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 그는 과학자가 되는 길에만 몰두했고 친구의 죽음은 의식 깊은 곳에 묻어뒀다. 그런데 그가 이제는 신약을 개발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아픈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활기차게 웃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여성이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을, 그녀가 점차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었다. 죽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밝은 미소 속에서 언젠가 드리울 죽음의 그림자나 병색을 찾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아니 실제로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사유가 명료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신학이나 철학의 품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어디까지나 과학자이고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검증이 되었는지와 안 되었는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신학자나 철학자가 아닌 과학자가 생각하는 생명과 죽음의 이야기는 특별한 데가 있었다. 일단 그는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좀 더 근원으로 들어가서 설명을 시작하고 단위를 쪼개고 또 쪼갠다. 친구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우주의 아주 작은 단위인 유픽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빅뱅이 일어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형성되고 아무 것도 없던 우주에 온갖 것이 가득 차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생명이 생겨나고 온갖 우연이 가득 차는 우주를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설명으로 이어간다. 그 덕분에 이 책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책이라는 점을 살짝 잊어버릴 뻔 했다. 그렇게 작게 쪼개서 근원까지 내려갔던 이야기는 점차 확장되고 살이 붙어서 생명이 생겨나고 마음과 몸의 연관관계를 밝히는 데까지 불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학자가 인정하지 않을 임사체험에 대한 부분까지 나와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자는 과학자이므로 그런 체험들은 전부 과학으로 입증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 붙어 있다.

그런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다. 인간이 보는 세계는 실재하지 않다는 설명부터 생명체인 인간조차 하나의 에너지라고 보는 시각이 신선했던 것이다. 근원에 대한 철학자의 사유과정이 아니라 반드시 검증을 하는 과학자의 눈을 볼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읽을 수 있었던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 어둠 속에 덮인 무언가를 가만히 되짚어 가는 시간을 선사받은 기분이었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삶을 사는 방법이 기적이 없는 양 사는 것과 모든 것이 기적인양 사는 것이라면 현재 살아 있고 태어났다는 기적 자체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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