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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또르 씨의 시간 여행
프랑수아 를로르 지음, 이재형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어린 시절에는 자신이 가진 시간이 무한한 줄만 알았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이 눈을 감고 맞춰보게 한 1분이 길기만 했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것으로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매일 내일이 기다려졌다. 16년 동안의 학창시절을 보낼 동안 학교에 가장 일찍 간 것도 초등학교 때였다. 전 날 아무리 피곤했더라도 다음날 눈을 뜨면 모든 에너지는 재충전되어 있었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일조차 즐거운 일 중에 하나였다. 그 때의 시간은 끝이 없어보였고 사실 관심대상도 아니었다.
그런데 감정을 주체할 수 없었던 청소년기를 지나 다른 사람들이 어른이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고 보니 시간이 가속도가 붙는 것만 같다. 자신이 가졌던 시간들은 어느새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흘러가버리고 자신이 놓친 시간을 당혹해하는 어수룩한 어른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오늘 하루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기대하지도 않는다. 예전에는 글을 쓸 때마다 너무 많이 사용한다는 지적을 들었던 '오늘'이란 단어조차 지금 글을 쓰면서 오랜만에 쓰는 것 같은 감흥에 빠져 들게 되었다. 현재를 살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한 귀로 흘려버리고, 지나버린 시간을 아까워하면서도 지금을 또 흘려버리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아 불안해하고 시간은 이제 고민거리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시점을 돌파하면 자신이 가진 시간의 유한성에 대해서 고민한다. 어느 책에서는 시간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니고 변화하는 세계를 계측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 시간의 손아귀에서 풀려날 수 없는 입장에서는 시간은 절대 권력이다. 생각해보면 자신이 가진 시간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자체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 현재를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가진 시간이 유한함을 근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 시간이 고민거리는커녕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엑또르씨의 시간여행'은 반갑기도 하고 뼈아프기도 하다. 고민거리를 정확하게 지적해주니 고맙기는 한데 자신이 쓸데없는 고민거리를 끌어안고 있음을 자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제목만 보면 영화 '백 투 더 퓨처' 같은 내용이 나올 것 같지만 정작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한 정신과의사가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어느덧 젊지 않은 의사가 된 엑또르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이 자신의 시간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다고 푸념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님의 손을 붙잡고 나타난 소년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선택권이 없는 지금의 자신이 싫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 소년에게 시간의 흐름은 너무 늦었다. 반면 일상에 치여서 자신의 시간을 잃어버린 사빈의 경우에는 시간은 너무 빨랐다. 너무 빨라서 어디로 사라져 버리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가진 유일한 자신만의 시간은 엑또르와의 상담시간 뿐이었다.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경우로는 마리 아그네스가 있었는데 그녀는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젊은 날로 되돌리고 싶었다. 싱싱하게 피어나던 그녀의 젊음은 점차 사라지고 주름살이 생긴 피부를 볼 때마다 그녀는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황급히 노화방지크림을 발랐지만 그녀의 시간은 멈춰지지 않았다.


이 모든 상담들은 엑또르가 시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된다. 자신이 늙고 있음을 거부하고 염색을 하는 정신과 의사들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실감하게 된 것이다. 더구나 자신에게 남은 시간을 개가 몇 마리 있는지로 계산하는 환자를 볼 때에 더욱 그랬다. 가령 개의 수명은 대강 15년이라고 치고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45년이라면 개 세 마리가 남았다고 하는 식이었다. 파격적이긴 하지만 그리 틀린 셈법도 아닌데 이 방법을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끔찍하다며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들 중에서 사람이 언젠가 나이 들어 죽음을 맞게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음에도 말이다. 사람에게 상대적인 시간과 그 사실을 직시하거나 외면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고민에 빠진 엑또르는 자신이 품은 고민에 답을 찾기로 한다. 중국에 있는 노스님을 찾아 답을 구하기로 한 것이다. 그의 여행은 이누이트족이 사는 마을, 중국으로 점점 이어지며 그는 자신만의 답에 가까워져 간다.
자신의 유한한 생명을 깨닫게 되는 순간 시간은 고민거리가 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렸고 미래는 결코 오지 않으며 우리는 항상 현재에 남는다. 그런데 그 현재조차도 계측하려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렇다면 현재라는 시간은 대체 어디 있느냐는 엑또르의 물음은 당혹스러웠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모습이 그대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답을 찾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 둔 채 여행을 떠난다. 그가 찾은 답은 납득이 가기도 하고 가지 않기도 한 것이었다.
현재를 살라는 말, 쉽지만 어려운 말이다. 지금도 의식하지 못한 채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결국 어린 시절처럼 살 수 있다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만큼 현재를 살았던 때도 하루가 즐거웠던 때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곳곳에 삽입된 삽화와 답을 찾기 위해 떠난 엑또르를 만날 수 있던 시간 '엑또르씨의 시간여행' 즐겁게 읽었다. 평소 시간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을 하나하나 되짚어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매일 눈을 뜰 때 기대감에 부풀 수 있을 거라 생각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새로운 책을 만날 때의 설렘만큼은 현재를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