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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
레오 김 지음, 김광우 옮김 / 지와사랑 / 2009년 1월
평점 :
영화 '플레즌트 빌'의 인상 깊은 장면 중에 하나는 흑백이었던 화면이 컬러로 변해가는 순간이었다. 마을 이름 그대로 즐겁고 유쾌하지만 인간의 기타 어두운 부분이 없던 무채색의 마을에 두 남매가 나타나면서 일대 변화가 일어난다. 지극히 가상의 공간이고 계산된 마을이었던 드라마 속의 공간 플레즌트 빌이 점차 살아 숨쉬고 인간의 욕망이 움직이는 곳으로 바뀌어 가는 것이다. 그 변화는 흑백이었던 화면에 색이 나타나는 것으로 표현된다. 단순히 색이 나타난 것 만으로도 그 공간은 전혀 다른 공간이었다.
그런데 색이라는 것도 실상은 착각이라고 한다. 인간의 뇌에서 인식하면서 그렇게 받아들인 것뿐이라는 것이다. 빛의 반사에 의해 받아들여지는 하나의 허위 정보인 셈이다. 하기야 동물들이 바라보는 세계의 색은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과 전혀 다른 모습이라고 하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이름을 꽤 알린 생명 공학자다. 그런데 그가 낸 책의 제목이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이라니 좀 미묘한 기분이 들었다. 과학자들을 유물론자로 한정지어버린 편견 때문이었다.
저자는 각 장에서 자신의 경험을 말하면서 주의를 집중시킨다. 그런 그가 책의 첫 머리에 이런 말을 한다. 자신은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를 꿈꿔왔었는데 친한 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친구의 이름은 스탠리로 많은 부분을 공유한 친구였다. 그런데 그 친구의 건강한 모습을 보았던 다음날 친구는 관 속에 누워 있었다. 비행기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스탠리는 저자에게도 비행기를 태워주겠다고 했지만 저자의 부모님이 위험하다고 반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살았고 친구는 죽었다. 지인의 죽음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지만 어린 나이에 친구가 죽는 것은 한결 충격적이다.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없는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통해 죽음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 후 그는 과학자가 되는 길에만 몰두했고 친구의 죽음은 의식 깊은 곳에 묻어뒀다. 그런데 그가 이제는 신약을 개발하는 일을 하게 되면서 아픈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활기차게 웃고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여성이 말기 암 환자라는 사실을, 그녀가 점차 죽음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힘들었다. 죽음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는 밝은 미소 속에서 언젠가 드리울 죽음의 그림자나 병색을 찾기는 어려웠던 것이다. 그 때부터 그는 인간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탐구하기 시작한다. 아니 실제로는 이미 오래전에 시작된 사유가 명료화된 것일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신학이나 철학의 품으로 이야기가 넘어가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는 어디까지나 과학자이고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검증이 되었는지와 안 되었는지를 분명히 짚고 넘어간다. 신학자나 철학자가 아닌 과학자가 생각하는 생명과 죽음의 이야기는 특별한 데가 있었다. 일단 그는 이 주제를 파고들면서 좀 더 근원으로 들어가서 설명을 시작하고 단위를 쪼개고 또 쪼갠다. 친구의 죽음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우주의 아주 작은 단위인 유픽셀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빅뱅이 일어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형성되고 아무 것도 없던 우주에 온갖 것이 가득 차는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 과정에서 생명이 생겨나고 온갖 우연이 가득 차는 우주를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설명으로 이어간다. 그 덕분에 이 책이 '우리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책이라는 점을 살짝 잊어버릴 뻔 했다. 그렇게 작게 쪼개서 근원까지 내려갔던 이야기는 점차 확장되고 살이 붙어서 생명이 생겨나고 마음과 몸의 연관관계를 밝히는 데까지 불어난다. 그리고 대부분의 과학자가 인정하지 않을 임사체험에 대한 부분까지 나와 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저자는 과학자이므로 그런 체험들은 전부 과학으로 입증되어 있지 않다는 말이 붙어 있다.
그런 과정이 꽤나 흥미로웠다. 인간이 보는 세계는 실재하지 않다는 설명부터 생명체인 인간조차 하나의 에너지라고 보는 시각이 신선했던 것이다. 근원에 대한 철학자의 사유과정이 아니라 반드시 검증을 하는 과학자의 눈을 볼 수 있는 경험이라는 점이 특히 좋았다. 생명에 대한 새로운 사고를 읽을 수 있었던 '신을 보여주는 21세기 과학', 어둠 속에 덮인 무언가를 가만히 되짚어 가는 시간을 선사받은 기분이었다. 아직 그것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삶을 사는 방법이 기적이 없는 양 사는 것과 모든 것이 기적인양 사는 것이라면 현재 살아 있고 태어났다는 기적 자체를 기분 좋게 받아들일 기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