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어회화 측정기 - 당신의 영어 회화 실력은?!
Chris Woo 지음 / GenBook(젠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방긋 웃으면서 다가오는데 전력으로 도망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사람이 경찰인 것도 자신이 범죄자인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은 처음 만난 사람이니 불구대천의 원수인 것도 아니다. 사실 어떤 사람과 눈이 마주치고 상대가 웃으면서 다가오는데 전력으로 도망친다는 것은 결코 예의가 아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은 그 사람이 외국인이고 '영어'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영어는 해결해야할 난제가 되어버렸다. 단순히 모르면 그만인 다른 나라의 언어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실력을 나타내는 하나의 척도처럼 변해버린 것이다. 그래서인지 영어울렁증이라는 말이 익숙할 정도로 영어에 대해 강박적인 상황이 되어 버렸다. 언어학에 소질이 있어서 다른 나라의 어떤 말이든 금방 익힐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 그나마 학창시절에 배워서 글을 읽거나 듣는 정도는 어떻게든 넘기는데 말로 한다는 것은 또 다른 문제가 되어버린다. 덕분에 세상에 하나의 언어가 있었는데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서로 다른 말을 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한 번은 사람의 입에서 말이 전부 문자로 튀어나오고 그것을 일정 시간동안 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허나 이런 망상에 빠진다고 해도 상황이 변하는 게 아니어서 결국 생각은 하나의 답을 내고 만다. 공부를 해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밟아야 할 하나의 절차가 있다.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 되느냐 하는 것이다. 물론 읽기와 듣기라면 몇 가지 시험이 있고 요새는 말하기와 쓰기도 검증시험이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지만 자신이 어느 정도 영어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는지 궁금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영어회화 측정기'는 편리한 책이다.

일단 앞에 사람이 앉아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읽어 나가면 되는 책이니 마음이 편하다. 더구나 제목이 영어회화 측정기라서 살짝 긴장했는데 그 측정의 척도는 객관식 문제였다. 총 10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8번째 장까지는 읽기와 말하기에 가깝다면 나머지 두 개의 장만이 읽기와 듣기에 관련되어 있다. 첫 번째 장은 단어와 관련된 내용으로 사람들이 오해하기 쉬운 단어의 예가 실려 있었다. 가령 drug와 medicine은 둘 다 약이지만 전자는 마약, 후자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능하면 아파서 약을 먹었느냐는 말을 쓰고 싶을 때는 medicine을 사용하라는 설명이었다.

또 두 번째 장은 숙어와 관련된 내용이었는데 숙어는 가능하면 알아듣기 위해서만 기억해두는 것이 좋고 사용은 하지 말라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발음이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이 숙어를 사용하면 우스꽝스럽게 보일 수 있다는 이유였다. 무작정 외우기만 했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부분이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 번째 장과 네 번째 장에서는 각각 영어문법과 헷갈리는 표현을, 문화와 유머와 관련된 부분이 다섯 번째 장과 여섯 번째 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나하나가 기억해두면 좋을 만한 것들이 많았는데 그 중 하나가 'Do you have the time?'이라는 말이었다. 몇 시냐고 묻는 말인데 시간이 있느냐는 'Do you have some time?'과 헷갈리기 쉽다는 점이었다. the가 붙었을 때와 붙지 않았을 때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표현이었다. 사실 책 한 권으로 그 사람이 가진 실력을 알아내는 것은 다소 버겁다. 하지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해야 할 지 정도는 대강의 감은 잡히는 편이었다.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그 장에 해당하는 문제를 얼마나 맞혔는지에 따라 세 단계로 나눠 각기 다른 조언을 해주는 점도 꽤 마음에 들었다. 그 정도에 해당하는 칭찬을 들을 정도는 아닌데 하고 쑥스러워하기도 하고 부족한 부분이 이런 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한 권의 책이지만 약간의 자신감과 앞으로의 영어 공부 방향을 정할 수 있게 도와준 '나의 영어회화 측정기' 나쁘지 않았다. 언제야 벙어리 영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암담했지만 언젠가는 길의 끝이 보이리라는 희망을 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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