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참하라 - 상 - 백성 편에서 본 조선통사 우리역사 진실 찾기 1
백지원 지음 / 진명출판사 / 2009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역사는 항상 승자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패자가 기록을 남기려 해봤자 승자가 그 내용을 뒤집는 역사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결국 전해 내려오는 역사는 항상 승자가 조작한 것일 수밖에 없다. 덕분에 지배층에 대한 것은 미화된다. 기록을 남기고 보존하는 것이 그들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주류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의 인생은 한 줄 글로도 전해지지 않는다. 결국 후세에 사람들은 승자의 역사를 읽거나 승자에 무리에 끼지 못한 사람들의 인생을 추측해보는 수밖에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왕을 참하라'는 기이한 역사서다. 500년간의 조선사를 훑어 내려가고 있지만 저자가 보는 시각은 기존의 역사가 아니라 피지배층에 위치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입장을 바꾼 것뿐인데도 많은 내용이 다르다. 기존의 왕조를 합리화했던 안개를 걷어내고 고통 받던 사람의 입장에서 조선사를 들여다본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히 흥미롭기는 하다. 항상 합리화의 대상이었던 왕을 심하게는 '잘 죽었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조선의 27대 왕 중에서 명군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되는 왕은 단 두 명 세종과 정조뿐이다. 그리고 밥값을 한 왕은 광해군, 효종, 태종, 세조, 영조이고 많이 봐줘서 죽값을 한 왕은 성종과 숙종이라고 한다. 거기에 요절 등의 이유로 단기 재위한 왕 정종, 문종, 단종, 예종, 인종, 경종, 순종의 7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밥값은커녕 죽값도 못한 무능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왕에 대한 독설에 이어 조선에도 독설을 퍼붓는다. 명에 대한 사대주의에 기대고 많은 사람들을 노예처럼 괴롭힌 나라이니 진작 망했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어졌다. 기존의 딱딱한 역사책은 어디로 가고 독설을 넘어 욕설까지 퍼붓는 역사책인 것이다. 그것도 자신이 말하고 있는 대상인 조선에 대해서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고 비난을 퍼붓는다. 그게 다소 부담스러운 면이 없진 않았다. 자식, 며느리, 손자까지 죽였다고 어진 임금이 아니라 잔인한 임금이라며 비난한 인조나 무능한 소인배인 선조에 대해 '잘 죽었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살짝 웃음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느 시점을 지나면 욕설이 너무 난무한다는 생각도 없지 않았던 것이다. 문체 자체가 구어체라서 대부분 읽기 편하기도 하지만 그런 점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수렴청정을 하면서 정순왕후나 문정왕후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 맞으니 별로 좋게 보지 않았지만 꼭 나라를 망하게 하는 '암탉' 운운할 때는 거슬렸던 것이다.

또한 양반의 5% 이하였던 조선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너도 나도 양반이라고 나선다는 비난은 수긍이 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인 자신은 흔치 않은 성이므로 양반이라고 말하는 데에 와서는 쓴 웃음이 날 뿐이었다. 굳이 덧붙이지 않아도 좋을 사족이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거기에 책의 날개에 저자의 다른 책 소개가 있는데 본문 안에서 굳이 자신이 쓴 다른 책을 소개하는 부분까지 나오자 머리가 다 아파졌다.

이런 거슬리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이 책 '왕을 참하라'는 매우 재미있는 역사서 였다. 일단 술술 읽히는 데다가 많은 사람들이 명군이라고 해서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세종과 정조에 대해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또 일반과 다르게 세종은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처럼 날씬한 사람이 아니라 고기만 좋아하고 운동을 하지 않아서 뚱뚱한 사람이라는 설명이 나와서 이색적이었다. 세종은 책을 매우 좋아해서 눈에 문제가 올 정도였다는 말도 추가 되어 있었다. 물론 많이 알려진 업적에 대한 풍부한 설명도 이어져 있었고 정조가 그나마 두 번째로 명군인 까닭을 서얼에게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라는 말과 자세한 설명이 붙어져 있는 점이 좋았다.

하지만 정조가 장비처럼 우락부락한 인상이었고 활을 매우 잘 쏴서 50발을 쐈을 때 49발을 맞힌 적도 있다는 것은 몰랐던 부분이라 더 재미있게 읽었다. 심지어 못 맞힌 한 발은 신하들을 위해서 일부러 그리 한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그리고 북벌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왕으로만 생각했던 효종에 대한 후한 평가도 그렇고 광해군과 연산군이 왜 쫓겨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이 자세한 점이 좋았다.

조선의 역사를 전부 살펴보는 책이니 27명의 왕을 전부 하나하나 재조명한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먼저 조선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해서 27명의 왕의 잘한 점과 못한 점을 지적한다는 게 신선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비어나 속어는 자제해주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기는 하지만 비판적 시선으로 읽어낸 조선 역사라는 점이 특이하게는 했다. 비판적 시선으로 다시 읽어낸 조선 역사 '왕을 참하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조선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5%에 들어갔을 확률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왕처럼 화내라 -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분노의 심리학
크리스토프 부르거 지음, 안성철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사람은 감정에 휘둘리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도 좋은 감정보다는 안 좋은 감정에 더 크게 휘둘리게 된다. 하루 종일 기분 좋게 흘러가다가도 별 것 아닌 일로 다른 사람과 말다툼을 한 번 하고 나면 그 날 하루의 나머지 시간은 우울하게 흘러가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자신이 화내는 것인지 화가 자신을 휘두르고 있는 건지 모를 때가 있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감정적이라는 말은 좋은 의미보다는 나쁜 의미로 사용된다. 특히 다른 감정보다 분노의 경우 반드시 다스려야 하는 감정으로 치부된다. 부정적 감정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분노는 살짝 살짝 풀어서 한 번에 터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거나 분노를 없애보라고 말한다. 하지만 분노가 그렇게 쓸데 없는 감정일 뿐이라면 인간에게 분노란 감정이 왜 남아 있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책 '왕처럼 화내라'에서는 분노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준다. 뇌는 결국 감정에 휘둘리고 분노는 인간의 몸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분노가 사람에게 그렇게 큰 영향을 준다면 쓸데 없는 것일리도 단순히 없애야 할 성가신 것일리도 없다는데에서 이야기는 출발하고 있다. 분노에 대한 다양한 조언을 하고 있는데 그 전개 방식은 이렇다. 책에서는 각 장의 앞에 네 나라의 이야기가 나온다. 분노 대왕이 다스리는 분노 나라, 잔인한 폭군이 다스리는 버럭 나라, 분노를 금지하고 사업에만 매진하는 황금 나라, 있는 듯 없는 듯 조심스런 소심 나라다.

책을 진행해나가는 인물은 당연히 분노 나라의 고문으로 일하고 있는 콜롬보 주교다. 묘하게도 콜롬보 주교는 분노 나라에 살고 있지만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나온다. 영민한 두뇌를 가지고 있는 이 인물은 분노에 대해서 분석한다. 분노가 가진 고귀한 힘을 잘 다룰 줄 아는 분노 대왕을 보필하기 위해서다. 분노가 가진 에너지는 크지만 문제는 그 에너지가 큰 만큼 분노가 잘못 터지면 손해가 크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콜롬보 주교는 분노의 에너지를 적절하게 살릴 방법을 고민한다.

콜롬보 주교가 생각하기를 분노는 큰 에너지였다. 분노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고 할 정도로 분노하지 못하는 사람은 창의적이지도 못하고 물러난 왕 마냥 상황을 바꾸지 못한채 늘어져 있을 뿐이었다. 물론 분노하지 못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살 수 있을지는 모른다. 하지만 자신의 인생을 패배한 개처럼 살아간다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산다고 해도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렇기에 콜롬보 주교는 왕의 아들이 분노를 마음껏 발산하도록 장려하는 편이었다. 분노가 가신 자리에는 의욕이나 창의력 같은 큰 에너지가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분노는 열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것이 결코 지나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주 흥분해서 발작을 일으키면 그 행동이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경우가 많고 분노를 한 번 뿜어내고 나면 그 영향이 몇 시간 동안 간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무조건 폭군처럼 발산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에 분노하는지 왜 분노하는지 알아내라는 말도 있었다. 분노를 나쁘다고 삼킬 것이 아니라 제대로 분노하고 분노를 통해 상승의 기회로 삼으라는 것이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알 수 있고 분노로 충전된 에너지를 통해 움직이라는 것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은 계기와 행동의 시간차가 매우 짧다고 한다. 무언가를 깨닫게 되면 행동에 나선다는 것이다. 폭풍처럼 밀려오는 분노의 감정을 통해 상황을 확인하고 이후의 행동할 힘을 얻는다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또한 실패를 했을 때 실패를 계속 곱씹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 분노하라고 한다. 성공은 수많은 도전 속에 얻어지는 것이지 행운을 통해 내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실패는 성공을 위한 과정으로 여기고 그 상황에 분노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전반적으로 분노를 분석하는가 하면 일상 속이나 결혼 생활, 아이를 교육할 때 분노를 어떻게 활용할지가 나와 있는 점도 꽤 마음에 들었다. 앞에 읽은 내용을 다시 한 번 떠올리고 정리해 볼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예술가들이 분노가 창의력의 원천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부정적인 감정으로만 생각했던 분노에 대한 생각을 바꿔준 '왕처럼 화내라' 인상 깊게 읽었다. 앞으로는 분노를 누르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가슴 속의 분노를 훌륭한 에너지로 능숙히 전환할 줄 아는 분노 대왕이 되도록 해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샌드맨 The SandMan 1 - 서곡과 야상곡 시공그래픽노블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수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어린 아이는 많은 시간을 자면서 보내는 반면 어른이 될 수록,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자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한 때는 아무런 의문도 없던 자는 시간에 대한 의문이 생긴 적이 있었다. 언젠가 영원한 잠에 빠질 거라는 당연한 순리를 의식하게 된 탓이었다. 앞으로 계속 잠이 든 채 깨어나지 못하는 날이 올텐데 하루의 삼분의 일을 잔다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잔다는 것은 깨어 있을때의 에너지를 보충하는 일이기도 하다. 단백질 구조 이상으로 인해서 잠들지 못하는 유전병에 시달린 이탈리아 일가는 병이 발현되면 1년 이내에 사망하고 말았다.

잔다는 일은 사람의 생명을 좌우하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숙면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자는 동안 꿈을 꾸는 것이 숙면을 방해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품게 되고 자는 동안이나마 누릴 수 있는 꿈의 세계의 무궁무진함에 감탄하게도 된다. 흔치 않은 일이지만 꿈속에서 꿈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면 그 꿈의 향방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의 의지에 따라 결정된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의 꿈의 주인이 존재한다면 그 존재가 인간에게 펼칠 수 있는 영향력은 분명 거대한 것일 것이다.

아픈 사람에게 행복한 꿈을 선사해 평안한 잠이라는 큰 선물을 줄 수도 있고 못된 악당에게 평생 깰 수 없고 반복되는 악몽 속에 빠뜨려 그 인생을 위협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픽 노블 '샌드맨'에서는 바로 그런 꿈의 주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평소에는 관대한 면모도 보이는 샌드맨에게 문제가 생긴다. '악마왕'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남자가 자신이 이끄는 단체들과 함께 '죽음'을 잡아두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 하지만 붙잡힌 것은 오히려 꿈의 주인인 '샌드맨'이었다. 그는 자신의 힘을 응축시킨 핏빛 보석, 꿈의 모래, 왕의 투구를 쓰고 있었다. 사악한 원으로 이루어진 흑마술에 사로잡힌 그는 자신의 보물 세 가지를 잃어버리고 구속당한다.

사악한 악마왕은 죽음을 잡지 못했지만 꿈을 사로잡은 사실을 깨닫는다. 꿈을 사로잡은 순간부터 기이한 질병이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계속 잠들어 있으려 하는 사람, 잠들지 못하는 사람, 지속적인 악몽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온 것이다. 사람들은 계속 쓰러지지만 꿈을 사로잡은 남자는 결코 그 기회를 흘려버릴 생각이 없었다. 탐욕에 눈이 어두워 꿈의 주인에게 자신에게 세상의 권력을 달라고 요구한다. 변치 않는 생명, 무한한 힘, 복수하지 않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꿈의 주인의 대답은 항상 같았다. 그는 거절한 채 그대로 시간을 보낸다.

잠든 이들은 깨어나지 못했고 잠들지 못한 이들은 죽어갔다. 꿈의 주인을 사로잡은 흑마술사 단체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그들도 늙어가고 있었다. 포로의 영향력인지 그들도 평안한 잠을 빼앗긴지 오래였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씩 변해간다. 배신자가 나와서 단체의 모든 보물을 훔쳐간 것이다. 그 안에 샌드맨의 세 가지 물건도 들어 있었다. 샌드맨은 그저 기다렸다. 자신을 사로잡은 자가 늙기를, 시간 속에 틈이 생기기를 말이다.

그리고 악마왕이라고 불리던 자가 '늙은' 악마왕이 되고 그의 아들이 샌드맨에게 같은 요구를 한다. 샌드맨은 그 제안도 거절한다. 그렇게 잡힌지 70년이 흐른다. 옛 악마왕이라고 불리던 자의 아들도 늙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얻을 수 있었으나 거절당한 것에 매달릴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꿈의 주인이 바라던 틈이 생긴다. 샌드맨은 이제 자신의 복수를 행하려 하고, 자신의 권좌를 되찾으려 하며, 자신이 잃어버린 세 가지 보물을 되찾기 위해 나선다.

이때부터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뜻하지 않은 기회에 꿈의 주인을 사로잡은 인간들의 이야기에서 모든 꿈의 주인인 샌드맨의 입장에서 이야기가 흘러가기 때문이다. 샌드맨은 모든 상황을 예전으로 돌려놓으려 하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은 평안한 잠의 기회를 얻는다. 샌드맨은 인간이 아니고 그의 보물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은 음울한 편이었다. 특히 보석을 찾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을 그린 이야기는 작가인 닐 게이먼이 말하듯 '정말 끔찍한' 편이었다.

허나 정작 놀라웠던 것은 샌드맨의 태도였다. 1화에 나오는 말을 보면 샌드맨의 시간도 인간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서 흘러가는 것을 체감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한다. 시간에 따라 늙지는 않지만 70년을 원 안에서 갇혀 보냈다면 미칠 듯 지루한 것 마찬가지란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느 정도까지는 관대한 태도를 유지한다. 자신의 보물을 빼앗아 간 자들에 대해서 그리 잔인한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모래주머니를 찾는 것을 도와준 콘스탄틴이나 보석을 찾는 일을 도운 예전 저스티스 리그의 히어로들에게 보상을 해준다.

인간이 아니지만 인간의 감정을 어느 정도까지 이해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투구를 찾는 과정에서 나온 대결에서는 샌드맨이 내놓은 누구도 짓밟지 못하는 답은 정말 감탄스러웠다. 잔인한 부분이 없지 않아서 다크 판타지에 가까운 반면 그와 그의 동족인 '영원'들은 인간이나 다른 존재에 관대한 편이라 어둡게만 흘러가지는 않는 편이었다. 인상적인 이야기와 신선한 존재인 샌드맨을 다룬 '샌드맨 01-서곡과 야상곡' 재미있게 읽었다. 서곡이라는 말에 맞게 샌드맨이 힘을 되찾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어서 설명적인 부분이 많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색적인 맛이 있어서 좋았다. 저렇게 관대한 꿈의 주인이라면 존재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다만 그를 사로잡아서 자신의 탐욕을 채우려는 인간만 없다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내용도 모르는 영화제목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의 제목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진실은 좀 불편하다.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진실에서 눈을 돌려도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왜곡된 진실에 매달려 봤자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전에 한 친구에게서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여름 방학 동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남자 선배와 급격하게 친해졌다는 것이다. 거기까지야 무슨 문제겠냐만은 방학 동안은 연락이 잘 되던 선배가 방학이 끝나고 나니 연락이 뜸해졌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술을 마시면 전화를 한다고 했다.

선배에 대한 호감을 내비치면서 말하던 친구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인데 계속 보다보니 마음에 들더라고 말했다. 단지 비 오던 어느 날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아직은 여자 친구를 사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너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이다. 이쯤 되니 속에서 부글부글하고 무언가가 치밀었다. 하지만 친구의 감정을 생각하면 차마 이 책의 제목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완곡히 돌려 말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전부 허사였다. 그 선배한테 전화가 오자 순식간에 그를 만나러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다시 친구의 입에서는 후회의 말이 튀어 나왔다.

모든 걸 걸고 사랑하지 않아서 후회스럽다고 말한다지만 그 사랑도 걸만한 사람에게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왜 전화가 걸려 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렇기에 이 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가 속 시원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어떤 의미로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진실을 외면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상담자의 사연이 먼저 소개되고 그 사연에 대한 저자의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주제는 조금씩 다른데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은 동일하다.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서늘한 말인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책임 작가와 스토리 컨설턴트라고 한다. 리즈라는 이름의 책임 작가가 그래도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면 그렉이라는 이름의 스토리 컨설턴트는 그 헛된 기대를 몇 마디의 말로 전부 무너뜨린다. 가끔은 그 말이 너무 적나라해서 리즈가 '그렉이 싫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될 정도였다.

주제는 총 11가지로 남자가 전화부터 데이트까지 접근해오지 않는다는 것부터 바람피우는 경우,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내뱉는 경우, 술기운에만 당신을 찾는 경우, 당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경우 등 흔히 일어나지만 착각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여성에게 한정한 것이지만 말이다. 가령 전화를 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거나 데이트를 신청하지 않는 등 접근해오지 않는 것에 대해 여자들은 남자가 바쁘거나 지금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한다. 만약 정말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다면 이름을 모르고 전화번호를 몰라도 어떻게든 찾아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도 연락처도 아는데 전화조차도 걸지 않는다면 그 남자와 좋은 관계로 넘어갈 확률은 0%라고 한다. 특히 여자들이 바라는 좋은 관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 따라 한 번 바람피우는 것을 실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자들의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본 결과 사귀는 여성과 헤어질 것을 각오하지 않고 바람을 피운 남자는 없다고 한다.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헤어진 후에 매달리는 것은 정말 흔치 않게 그 여자의 소중함을 깨달았기에 일어나는 일일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남는 것이 싫기 때문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이상적인 다른 여자가 생긴다면 쪼르르 달려갈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전반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한 편이었다. 쓸데없는 관계에 매달려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든 좀 더 존중받고 진정 사랑받는 관계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상처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계속 감추려고 드는 경우가 많다. 연락하지 않는 남자를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는 안 되었다면서 떨어져 나갈 생각은 안 하는 남자를 상처 입은 영혼이라고 생각하면서 달래줄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 받는 것은 그 관계에 휘둘리고 있는 당사자다. 문자 한 번, 전화 한 통 할 만한 배려도 없는 사람을 붙잡고 헛된 희망만 키워가는 것이다. 섬뜩하지만 현실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재밌게 읽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선물해줘야 할 것 같다. 다음번에 또 그런 상담을 들으면 차마 말로는 하지 못 할테니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과학과 사회 1
피에르 주아네베로니크 나움 그라프 외 13인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드라마 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갈등의 요소 중에 하나는 출생의 비밀에 대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너는 네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흔한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적 기술이 발달하고 그것이 출산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후 영원히 묶여서 움직일 줄 알았던 출산과 성, 혈통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다소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얼마 전 본 미국 드라마 '보스턴 리갈'에도 이런 이야기가 등장했다.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변호사를 찾아와 자신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동일인물인지 알 수 있도록 요청해달라고 의뢰를 해왔다. 그 이유인즉슨 두 연인은 각각 익명의 정자 기증에 의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이다. 어머니 혼자서 아이의 출산을 결정하고 아이를 가졌는데 그 인공수정을 행한 곳이 같은 곳이며 비슷한 시기였다. 아이들은 서로의 비슷한 외모, 비슷한 취향에 호감을 가졌고 결혼을 꿈꾸고 있었는데 어머니들 쪽에서 아이들이 어머니만 다른 남매일까 봐 반대한다는 것이다.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두 연인은 근친상간적 상황을 미리 막기 위해 법원에 생물학적 친부를 공개하라는 강제명령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이미 출산과 성은 분리되어 있다. 인공수정에 성은 관련될 여지가 없고 아직은 자연적인 행위를 모방하고 있기에 남성의 유전자를 주입하는 형태로 되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단성 생식이 대세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미 가족의 형태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 대가족이 깨어지고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대부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편부나 편모에 의해 이루어진 가정이나 재혼으로 인해 생물학적인 부모와 키워준 부모가 다른 가정도 흔한 것이 되었다.

사실 일부일처제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관습에 의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출산, 성, 혈통의 분리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묘한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기존에 이미 출산과 성, 혈통이 분리되거나 그 셋의 균형이 맞지 않은 경우는 많았다는 것이다. 유희적 성행위를 하기도 하는 인간을 가족이라는 틀 속에 가두고 성과 출산을 하나로 묶어낸 것도 교회가 최근에서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대리모라는 말로 남아 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자신의 아내를, 정확하게는 자궁을 빌려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일에 금전적인 부분이 엉켜 있기는 했다.

또한 어느 부족의 경우에는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에 한 해 있고 불임인 여성은 여성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그 여성이 다른 남성 정도의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임신이 가능한 여성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여성은 그 부족 내의 일반적 가정을 꾸리고 남성의 역할을 하는 불임 여성 쪽이 남성 하인을 시켜 아이가 생기도록 한다고 한다. 여기서 생겨난 아이는 어디까지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의 아이로 간주된다. 이 부족에서는 혈통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혈통이란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의 인공수정이란 부분이 그 점을 강화시켜 줄지도 모른다. 기존의 성, 출산이라는 연결고리의 유지가 힘겨운 사람들이 기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유전자를 연결하는데 성공하거나 정 안되면 친족의 유전자를 빌려 흔히 생각하는 혈통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정자가 단순히 유전자를 넘겨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고 난자 쪽이 아이의 대부분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서는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부정된다. 생태계의 생물 95%가 양성에 의한 생식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는 설명만으로는 양성 생식의 우위를 설명하거나 검증할 수 없다고 해서 단성 생식에 대한 다른 생각을 품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자를 남성 쪽에서 유전자만 전달할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피에서 피로 전해 내려오는 유전자의 고리부터 의료적 기술의 개입으로 변화하는 성, 출산, 혈통의 관계까지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더구나 부모가 되는 일에 대한 사회적 기준까지 바뀐다고 한다.

또한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 있어서는 부모가 되고 싶다,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욕망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 자체가 딱히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고 풀어내는 부분은 감탄을 넘어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언젠가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거나 부모라는 개념이 희미한 세계가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성, 출산, 혈통에 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생각을 뒤흔든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인상 깊게 읽었다. 하기야 지금의 자신도 자신이라고 특정 짓는 순간에 이미 과거가 되어 만날 수 없는 마당에 변치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사 생물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왔던 생식에 대한 부분이라고 해도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