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그렉 버렌트 외 지음, 공경희 옮김 / 해냄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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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용도 모르는 영화제목을 보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영화의 제목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대부분의 진실은 좀 불편하다. 사람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은 날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진실에서 눈을 돌려도 현실이 변하지 않는다면 왜곡된 진실에 매달려 봤자 시간만 낭비될 뿐이다. 전에 한 친구에게서 푸념을 들은 적이 있다. 여름 방학 동안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남자 선배와 급격하게 친해졌다는 것이다. 거기까지야 무슨 문제겠냐만은 방학 동안은 연락이 잘 되던 선배가 방학이 끝나고 나니 연락이 뜸해졌다는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술을 마시면 전화를 한다고 했다.

선배에 대한 호감을 내비치면서 말하던 친구는 그다지 관심이 없던 사람인데 계속 보다보니 마음에 들더라고 말했다. 단지 비 오던 어느 날 선배가 이렇게 말했다고 했다. 아직은 여자 친구를 사귈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지만 너와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고 말이다. 이쯤 되니 속에서 부글부글하고 무언가가 치밀었다. 하지만 친구의 감정을 생각하면 차마 이 책의 제목처럼 말할 수는 없었다. 최대한 완곡히 돌려 말하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전부 허사였다. 그 선배한테 전화가 오자 순식간에 그를 만나러 가버리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지 얼마 후에 다시 친구의 입에서는 후회의 말이 튀어 나왔다.

모든 걸 걸고 사랑하지 않아서 후회스럽다고 말한다지만 그 사랑도 걸만한 사람에게 걸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상대가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있는데 그 사실을 모른 채 '왜 전화가 걸려 오지 않을까'하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것은 시간 낭비다. 그렇기에 이 책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가 속 시원했다.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자신에게도 차마 말하지 못했던 내용이기 때문이다.

책의 구성은 단순하다. 어떤 의미로는 알고 있지만 어떻게든 진실을 외면하고 관계를 유지하고 싶은 상담자의 사연이 먼저 소개되고 그 사연에 대한 저자의 답변으로 이루어져 있다. 각 장의 주제는 조금씩 다른데 그 근간을 이루는 것은 동일하다. 웃음이 나오는 동시에 서늘한 말인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의 책임 작가와 스토리 컨설턴트라고 한다. 리즈라는 이름의 책임 작가가 그래도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면 그렉이라는 이름의 스토리 컨설턴트는 그 헛된 기대를 몇 마디의 말로 전부 무너뜨린다. 가끔은 그 말이 너무 적나라해서 리즈가 '그렉이 싫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이해될 정도였다.

주제는 총 11가지로 남자가 전화부터 데이트까지 접근해오지 않는다는 것부터 바람피우는 경우, 헤어지자는 말을 쉽게 내뱉는 경우, 술기운에만 당신을 찾는 경우, 당신의 감정을 무시하는 경우 등 흔히 일어나지만 착각하기 쉬운 것들이었다. 어디까지나 여성에게 한정한 것이지만 말이다. 가령 전화를 한다고 해놓고 하지 않거나 데이트를 신청하지 않는 등 접근해오지 않는 것에 대해 여자들은 남자가 바쁘거나 지금의 관계를 깨고 싶지 않아서 다가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진실은 그저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은 것' 뿐이라고 한다. 만약 정말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다면 이름을 모르고 전화번호를 몰라도 어떻게든 찾아오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름도 연락처도 아는데 전화조차도 걸지 않는다면 그 남자와 좋은 관계로 넘어갈 확률은 0%라고 한다. 특히 여자들이 바라는 좋은 관계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에 따라 한 번 바람피우는 것을 실수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자들의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본 결과 사귀는 여성과 헤어질 것을 각오하지 않고 바람을 피운 남자는 없다고 한다. 실수가 아니라는 것이다. 헤어진 후에 매달리는 것은 정말 흔치 않게 그 여자의 소중함을 깨달았기에 일어나는 일일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혼자 남는 것이 싫기 때문에 매달린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도 자신에게 이상적인 다른 여자가 생긴다면 쪼르르 달려갈 것이 확실하다는 내용이었다.

전반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분명한 편이었다. 쓸데없는 관계에 매달려 시간과 마음을 낭비하지 말라는 것이다. 누구든 좀 더 존중받고 진정 사랑받는 관계를 누릴 가치가 있다는 것이었다. 상처 받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래서 계속 감추려고 드는 경우가 많다. 연락하지 않는 남자를 바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마음의 준비는 안 되었다면서 떨어져 나갈 생각은 안 하는 남자를 상처 입은 영혼이라고 생각하면서 달래줄려고 한다. 그런데 정작 그런 관계 속에서 상처 받는 것은 그 관계에 휘둘리고 있는 당사자다. 문자 한 번, 전화 한 통 할 만한 배려도 없는 사람을 붙잡고 헛된 희망만 키워가는 것이다. 섬뜩하지만 현실적인 진실을 드러내는 '그는 당신에게 반하지 않았다' 재밌게 읽었다. 아무래도 누군가에게 선물해줘야 할 것 같다. 다음번에 또 그런 상담을 들으면 차마 말로는 하지 못 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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