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과학과 사회 1
피에르 주아네베로니크 나움 그라프 외 13인 지음, 김성희 옮김 / 알마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드라마 속에서 흔히 사용되는 갈등의 요소 중에 하나는 출생의 비밀에 대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너는 네 아버지의 자식이 아니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드라마 속에서나 나올 법한 대사가 흔한 것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적 기술이 발달하고 그것이 출산에 개입하기 시작한 이후 영원히 묶여서 움직일 줄 알았던 출산과 성, 혈통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다소 극단적인 예긴 하지만 얼마 전 본 미국 드라마 '보스턴 리갈'에도 이런 이야기가 등장했다.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이 변호사를 찾아와 자신들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동일인물인지 알 수 있도록 요청해달라고 의뢰를 해왔다. 그 이유인즉슨 두 연인은 각각 익명의 정자 기증에 의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아이라는 것이다. 어머니 혼자서 아이의 출산을 결정하고 아이를 가졌는데 그 인공수정을 행한 곳이 같은 곳이며 비슷한 시기였다. 아이들은 서로의 비슷한 외모, 비슷한 취향에 호감을 가졌고 결혼을 꿈꾸고 있었는데 어머니들 쪽에서 아이들이 어머니만 다른 남매일까 봐 반대한다는 것이다. 설마 그런 일이 있으리라 생각하지 않았지만 두 연인은 근친상간적 상황을 미리 막기 위해 법원에 생물학적 친부를 공개하라는 강제명령을 받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이 이야기 속에서도 이미 출산과 성은 분리되어 있다. 인공수정에 성은 관련될 여지가 없고 아직은 자연적인 행위를 모방하고 있기에 남성의 유전자를 주입하는 형태로 되어 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단성 생식이 대세가 될 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이미 가족의 형태는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전통적 대가족이 깨어지고 부모와 자식으로 이루어진 핵가족이 대부분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편부나 편모에 의해 이루어진 가정이나 재혼으로 인해 생물학적인 부모와 키워준 부모가 다른 가정도 흔한 것이 되었다.

사실 일부일처제라는 것 자체가 사람의 관습에 의한 것이다. 그런 면에서는 지금 일어나고 있는 출산, 성, 혈통의 분리가 놀라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기술이 발달하면서 미묘한 방식으로 변해가고 있기는 하지만 기존에 이미 출산과 성, 혈통이 분리되거나 그 셋의 균형이 맞지 않은 경우는 많았다는 것이다. 유희적 성행위를 하기도 하는 인간을 가족이라는 틀 속에 가두고 성과 출산을 하나로 묶어낸 것도 교회가 최근에서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대리모라는 말로 남아 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자신의 아내를, 정확하게는 자궁을 빌려주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 일에 금전적인 부분이 엉켜 있기는 했다.

또한 어느 부족의 경우에는 여성이라는 개념 자체가 아이를 가질 수 있는 사람에 한 해 있고 불임인 여성은 여성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그 여성이 다른 남성 정도의 자금력을 가지고 있다면 임신이 가능한 여성과 가정을 꾸릴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여성은 그 부족 내의 일반적 가정을 꾸리고 남성의 역할을 하는 불임 여성 쪽이 남성 하인을 시켜 아이가 생기도록 한다고 한다. 여기서 생겨난 아이는 어디까지나 가장 역할을 하고 있는 여성의 아이로 간주된다. 이 부족에서는 혈통이라는 것 자체가 우리가 생각하는 상식의 범주에 들어 있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히려 혈통이란 부분에 있어서는 현재의 인공수정이란 부분이 그 점을 강화시켜 줄지도 모른다. 기존의 성, 출산이라는 연결고리의 유지가 힘겨운 사람들이 기술의 힘을 빌려 자신의 유전자를 연결하는데 성공하거나 정 안되면 친족의 유전자를 빌려 흔히 생각하는 혈통을 유지해나가는 것이다. 그것도 정자가 단순히 유전자를 넘겨주는 역할에 지나지 않고 난자 쪽이 아이의 대부분을 구성한다는 생각을 하면 얼마나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이 책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서는 기존에 생각하고 있던 많은 것들이 부정된다. 생태계의 생물 95%가 양성에 의한 생식을 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하는데 유리하다는 설명만으로는 양성 생식의 우위를 설명하거나 검증할 수 없다고 해서 단성 생식에 대한 다른 생각을 품게 하기도 한다. 심지어 정자를 남성 쪽에서 유전자만 전달할 뿐이라고 딱 잘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 피에서 피로 전해 내려오는 유전자의 고리부터 의료적 기술의 개입으로 변화하는 성, 출산, 혈통의 관계까지 복잡한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더구나 부모가 되는 일에 대한 사회적 기준까지 바뀐다고 한다.

또한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에 있어서는 부모가 되고 싶다, 자신의 흔적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는 욕망은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 자체가 딱히 본능적인 것이 아니라고 풀어내는 부분은 감탄을 넘어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 주었다. 언젠가 '매트릭스'의 세계처럼 부모가 누군지 알 수 없거나 부모라는 개념이 희미한 세계가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성, 출산, 혈통에 관해 가지고 있던 많은 생각을 뒤흔든 '성의 역사와 아이를 가지고 싶은 욕망' 인상 깊게 읽었다. 하기야 지금의 자신도 자신이라고 특정 짓는 순간에 이미 과거가 되어 만날 수 없는 마당에 변치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설사 생물의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해왔던 생식에 대한 부분이라고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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