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우디 앨런 단편소설집
우디 앨런 지음, 성지원.권도희 옮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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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우디 앨런에 대해서 받은 인상은 하나였다. 추레한 인상에 비쩍 마른 아저씨라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했던 것은 그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이 많은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나오길래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인지 알고 보기 시작했던 영화는 '우디 앨런표 블랙 코미디'였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들로 인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웃음 끝에는 씁쓸한 맛이 감도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 우디 앨런식의 유머를 이해하는 것도 좀 묘했을 터였다.

그렇기에 왜 아름다운 여배우가 추레하고 왜소한 아저씨와 이뤄지는 지 이해가 안 갔다. 그가 그 영화의 감독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런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일명 '우디 앨런표' 영화는 전부 피했다. 말만 많고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 등장하는 우디 앨런도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우디 앨런에 대해서 경악하게 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양녀로 삼았던 소녀가 성장하자 부인과 이혼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속사정이야 누가 알겠냐만은 그것만으로도 우디 앨런에게 거부감을 느끼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 우연히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우디 앨런의 영화인지도 모르고 휴 잭맨과 스칼렛 요한슨이 나온다기에 봤다. 그런데 어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나온 배우는 역시 또 '우디 앨런'이었다. 우디 앨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재미있었다. 드디어 우디 앨런의 유쾌하지만 비통한 농담에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생의 쓴 맛을 알아야만 웃게 되는 우디 앨런식 농담.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수록 우디 앨런의 농담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는데 한 가지만은 좋은 점도 생긴 셈이었다.

그 후 기묘한 제목의 소설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발견했다. 일단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은 우디 앨런의 단편 소설집이다. 영화를 통해 그의 유머를 즐겨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어 할 만한 내용이 가득 차 있다. 보통의 소시민이 어떤 상황에 빠지고 상황은 파국으로 밀려간다. 그리고 그 상황은 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넣으려다 실패한 부모는 크나큰 곤경에 처한다. 사립 유치원에 들어간 다른 아이들은 명문대에 진학할 터지만 아이는 힘든 일을 하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고 수치스러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사립 유치원 입학을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남자는 공포에 질려 아이에게 두 번째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를 쓴다. 물론 그 두 번째 기회는 공짜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뇌물부터 내부자 거래 정보를 주는 등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아야 생긴다. 게다가 그런 공모를 하러 간 식당에서 남자가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인 것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종업원들을 그를 거리로 쫓아낸다. 그리고 사태는 결코 수습되지 않고 최악을 향해 달려간다. 다른 이야기 속에서면 상황이 최악을 행해 내달리니 우울한 분위기가 깔릴 것이다. 하지만 우디 앨런식 농담에서는 그저 피식거리며 웃게 될 뿐이다.

소시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과장된 상황이 나오며 사건은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그것을 유쾌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끝에 씁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초콜릿을 먹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이었다. 이 책이 단편 소설집이니 거대한 판 초콜릿을 한 조각씩 똑똑 끊어서 입에 물고 녹여 먹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권을 삼키고 나면 우디 앨런의 유머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 덩이의 버섯을 사이에 둔 피 튀기는 혈투나 미키가 증인으로 소환되어 법정에서 진술하는 것처럼 과장으로 찬 유머지만 그것은 현실의 절묘한 감각이 녹아들어 있고 저자의 재기발랄함을 맛보기에는 충분했다. 아직도 우디 앨런이 좋지는 않다. 거부감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재기발랄함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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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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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만 해도 통일만 되면 낙원이 펼쳐질 것처럼 통일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토록 통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없고 통일이 된 이후에 대해 희망적 관측을 내놓는 경우도 많지 않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었기 때문이다. 흡수통일이 된다고 해도 경제적 상황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경우 경제력이 높은 쪽이 낮은 쪽을 상당히 많이 지탱해야만 한다. 그만한 경제력이 없다면 같이 몰락하게 된다.

그 불안한 예측을 소설로 그린 것이 '국가의 사생활'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뒤인 2011년에 남과 북이 통일되고 그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동화에서처럼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로 끝나면 좋겠지만 사람의 일인지라 쉽지가 않았다.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에는 각자의 사회체제로 지탱하고 있었다. 강산도 10년이 지나면 못 알아볼 정도고 요즘 거리는 1년만 지나도 길도 못 찾을 정도다. 그런 마당에 몇 십년간 떨어진 북한과 남한은 전혀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사투리가 심하지만 말이 통하고 민족이 같다는 공통점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것은 후천적 요소가 크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란 사람과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자란 사람은 사고방식조차도 다른 것이다. 아무리 서로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북한을 주적으로 취급하면서 한 나라라는 것을 강조했다지만 남한과 북한은 이미 전혀 다른 나라였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있는 무계획인 사람들에 의해 통일이 되어버린다. 통일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된 체제는 자본주의이니 남한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었다. 북한의 실업자들이 잔뜩 내려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 건너의 문제였다.

반면 누군가가 시키는 것에 익숙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신처럼 생각했던 이북의 주민들은 곤경에 처한다.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고방식까지 전부 바꿔도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가장 문제였던 것은 북한의 수많은 군인들을 실업자로 바꿨다는 사실이었다. 근 10년간을 복무한 군인들을 무조건 해산시킨다는 것 자체가 이미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사망선고였다. 실업자가 된 군인들은 소지하고 있던 무기들과 함께 사라졌고 그들은 대부분 조직 폭력배가 되었다.

엘리트 군인이었던 리강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조국이 통일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자괴감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가 속한 대동강이라고 불리는 조직 폭력단 내의 대부분은 군인 출신이었다.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살인기계가 되었지만 무참하게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통일 대한민국의 밤거리에 스며든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무법지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대동강의 단원 중 한 명이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를 죽인 것으로 보인 형사도 역시 대동강에 의해 살해되지만 사건은 명확하지 않았다. 주인공인 리강은 그 사실에 의문을 품고 조사에 나서지만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온갖 추악한 것들이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묘사되고 있는 현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더 암울해졌다. 소재가 인민군 출신 조직 폭력단 내의 살인사건이니 폭력적이고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잘라 넣어놓은 것 같은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미래라는 이름으로 심화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아예 없을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어둠을 자극하고 그 심연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기분이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고 있기도 하고 시간 축을 이리 저리 옮겨 다니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수많은 참고문헌에서 드러나듯 북한에 대해 세밀하게 조사하고 공을 들인 티가 나는 책이었다. 속에 숨어 있던 불안한 꿈을 직접 본 기분이었다. 제발 이런 미래와 마주하지 않기를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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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로 이야기 1>을 리뷰해주세요.
지로 이야기 1 - 세 어머니
시모무라 고진 지음, 김욱 옮김 / 양철북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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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에게 부모와 집은 하나의 세계와도 같아서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사는 집이 계속 바뀌고 어머니라고 여기는 사람이 계속 바뀐다면 아이 입장에서 혼란스러울 수 밖에 없다. 누구에게 정을 붙여야 할 지 알 수 없게 되니 자연히 방어적인 성격이 형성된다. 이 책 '지로이야기'의 지로 역시 혼란스러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어머니 오타미는 나름의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무사 집안의 아들이니 강하게 키우고 싶었던 것도 있고 학교 옆에서 자란다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 같아 교지기 집의 수양아들로 지로를 보낸다.

첫째 교이치 역시 교지기 집의 오하마에게 잠시 맡겼었다. 이번에 둘째 지로가 태어나자 어느 정도 큰 교이치는 데리고 오고 지로를 맡긴다. 지로는 형제들에 비해서 다소 못생긴 아이였다. 그래서 일까 할머니의 애정은 지로의 형과 동생인 교이치와 슌조에게만 쏠린다.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할머니와 형제들이 있고 가기만 하면 딱딱한 훈계를 늘어놓기 일쑤인 어머니 오타미가 있는 혼다가를 지로는 좋아할 수 없었다. 반면 교지기 간사쿠도 한 때는 잘 놀아주는 편이었고 유모인 오하마는 자신의 아이들보다 지로를 끔찍이도 챙겼다. 처음에는 교이치에 비해 못난 지로가 눈에 차지 않았던 오하마지만 정이란 것이 무서워서 언제부턴가 지로를 보고 '원숭이' 같다고 놀리는 사람이 있으면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굴었다.

자신을 사랑하는 유모 오하마, 같이 놀기에 좋은 오쓰루와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은 즐거운 것이었다. 허나 교이치 때와 마찬가지로 지로가 어느 정도 성장하자 혼다 가에서 사람을 보내온다. 둘째 아들인 지로를 데려가려는 것이었다. 지로의 입장에서는 널찍하고 쾌적한 혼다가는 정 붙일 데가 없는 끔찍한 장소였고 좁아터지고 냄새도 나는 교지기 방이야말로 자신이 살고 싶은 장소였다. 그래서 도망도 치고 했지만 끝내 끌려가고 만다. 아무리 사람을 보내도 지로를 데려오지 못하니 어머니 오타미가 직접 나타났던 것이다. 지로는 자신을 보내는 오하마가 야속하고 정이 가지 않는 오타미도 싫었다. 그래도 갈 곳이 없으니 혼다가로 들어가 야생동물처럼 버틴다.

식구들이 있는 곳에서 밥도 먹지 않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만 날쌔게 집어 먹었고 자신을 부를 만한 시간에 대나무 숲에 가서 낮잠을 잤다. 그나마 지로가 혼다가에 마음을 붙이기 시작했던 것은 아버지 슌스케의 덕이 컸다.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아버지의 모습이 싫지 않았고 그 애정이 넉넉했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슌스케는 일주일에 하루만 집에 온다는 점이었다. 지로는 그 무렵 난폭한 아이였다. 작은 동물의 생명을 빼앗는 것을 망설이지도 않았고 걸리지만 않는다면 형 교이치를 괴롭히는 것도 서슴치 않았다.

말로 내뱉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외톨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유모 오하마와 아버지 슌스케만이 자신을 아껴주는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는데 두 사람을 잘 만날 수 없으니 애정에 대한 갈망만 쌓여갔다. 형과 동생만 편애하는 할머니와 어머니에 대한 미움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런 마당에 형제들과 친해질 수 있을 리도 없었다. 지로는 혼다가에 있는 것이 갑갑했고 계속 밖으로 돈다. 멀리 외갓집인 마사키가에 오래 머물기도 했다. 규율을 따지는 엄격한 혼다가와 달리 마사키가는 아이들을 자유롭게 풀어주는 터라 지로 같은 말썽쟁이도 많았던 것이다. 사촌들과 자유롭게 놀 때의 지로를 봤다면 혼다가 사람들은 놀랐을 것이다.

그렇게 말썽을 부리고 자연아에 가까웠던 지로는 조금씩 성장해간다. 밉기만 했던 교이치가 곤경에 처하자 대신 싸워주기도 하고 슌조가 사고를 치자 그 죄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두 사람이 자신의 적수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시기가 온 것이다. 지로를 눈의 가시로 여기는 할머니가 괴롭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의 안정을 찾는다. 문제는 친 어머니 오타미와의 관계가 더없이 서먹했다는 점이었다. 정을 주지 않고 다가오지 않으려 하는 아이에게 계속 훈계만 하는 어머니이니 두 사람의 관계는 평행선을 그린다.

이후 할아버지의 죽음을 목도하기도 하고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지로는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에 대해 생각하기도 하고 삶에 대해 성찰해보기도 한다. 지로의 성장은 아주 천천히 일어난다. 하지만 어렸을 때의 막무가내로 응석받이인 지로를 생각하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마주하게 되는 지로는 아주 놀라웠다. 한 아이의 생각을 깊게 읽고 있기도 하고 어린 시절을 세밀하게 다루고 있는 터라 찬찬히 읽기 좋은 책이었다. 유모 오하마, 친어머니 오타미, 새어머니 오요시의 세 어머니를 가진 아이 지로의 성장기가 담담하게 서술된 것이 특히 좋았다.

 

-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당시의 시대상황을 내밀하게 읽을 수 있는 것과
한 아이의 성장을 그 아이가 품고 있는 생각을 통해 읽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플라이트'
사회에 불만만을 품고 있던 소년이 시간여행을 하면서
세상과 화해하는 법을 배운다는 내용의 성장소설이에요.
읽는 재미도 뛰어났구요.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아무래도 성장소설이니 만큼 10대 청소년과 아이를 둔 부모님에게 권하고 싶네요.
한 아이가 점차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 담담하게 서술되어 있어서 좋았거든요.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지로는 할머니가 야속하면서도 연민이 느껴져 무척 혼란스러웠다. 또 자신은 지금껏 가져보지 못한 존귀한 마음씨를 지닌 교이치에게 단순한 형제애보다 더 깊은 정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감정들 때문에 자기 앞에 놓인 진실이 비뚤어지거나 흐려지지는 않았다. 지로는 그 어느 때보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을 확연하게 느꼈다. 그래서 단순히 화를 내거나 섭섭해하거나 두려워하는 대신 나름대로 의식하고 판단하고 분별할 수 있었다.
(P425)

이 책은 알라딘 독자 서평단 도서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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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의 엘리베이터 살림 펀픽션 1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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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는 여러 모로 편리한 물건이다. 높은 층에 힘들이지 않고 빨리 올라 갈 수 있으니 이 이상 좋은 물건이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허나 그 편리한 것이 어느 날 이상을 일으키면 슬며시 불안해진다. 한 고층건물에 갔을 때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려고 했다. 투명한 엘리베이터로 내다보는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자주 이용하던 터였다. 그런데 도착한 엘리베이터가 한참 그대로 멈춰섰다가 도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분명 버튼도 눌러 놓은 상태여서 기다리던 사람이 전부 놀라고 말았다. 타려고 했던 것이니 다른 것을 이용하면 그만이었지만 만약 사람이 탔다가 못 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엘리베이터는 편리하긴 하지만 고장이 나서 만약 열리지 않는다면 갑갑한 밀실로 변해버린다. 편리한 기구와 불안한 밀실로 순식간에 전환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악몽의 엘리베이터'는 영리한 소설이다.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지만 반 정도는 불안감을 안고 있는 엘리베이터라는 장소를 소재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르락내리락 층을 오가는 엘리베이터처럼 읽는 사람의 마음을 쥐락펴락 하기도 하고 엘리베이터라는 장소가 가진 편리함과 불안감의 경계를 잘도 오간다. 형식은 일단 추리소설이지만 역자의 말대로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란 말이 적합할 정도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매번 읽는 사람의 예상을 뒤집어엎는 이 소설은 세 사람의 악몽으로 구성되어 있다. 하지만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사람은 네 사람뿐이고 그 외 관련자도 몇 된다. 구성 상 세 사람의 악몽으로 구성되어 세 사람의 관점에서 전개되지만 다 읽고 난 이후에 생각해보면 제목대로 모두의 악몽이다. 그 악몽이 잉태되는 엘리베이터에 한 남자가 탄다. 그의 이름은 오가와 준, 임신 9개월인 부인을 가진 남자였다. 평범한 아파트의 엘리베이터에 탔던 것은 송별회에 참석했다가 만취한 종업원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걸려온다. 배가 아프다는 것이었다. 오가와는 마음이 다급해졌고 집으로 돌아가려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에 탄다. 거기까지가 그의 기억에 있는 부분이었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깨어나 보니 엘리베이터 안에 누워 있었다. 세 사람이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마녀 같은 느낌에 곰 인형을 끌어안고 있는 여자, 오타쿠 같은 분위기를 풍기고 메뚜기 같이 생긴 남자, 수염이 지저분하고 양복을 입고 있는 아저씨였다. 그들은 오가와가 깨어나자 저마다 떠들어댄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을 종합해보면 오가와가 탄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급강하를 했고 그 와중에 오가와가 머리를 부딪쳤다는 것이다. 그 이후 엘리베이터는 밀실이 된 채로 움직이질 않는다고 했다. 오가와는 정말 기겁한다. 만삭인 아내에게 산통이 오는 상황에서 엘리베이터에 갇혔으니 그럴 만하기도 했다. 그는 다급하게 비상 버튼을 눌러 대지만 응답이 없었다. 주민이 모두 자는 새벽이라 담당자가 자리를 비웠거나 고장인 것 같았다. 더구나 갇힌 사람 모두 핸드폰도 손목시계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밖으로 연락을 할 수도 갇힌 시간을 가늠해 볼 수도 없었던 것이다.

오가와의 눈앞에는 부인 마나미가 배를 부여잡고 쓰러진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그는 이성을 잃고 탈출할 방법을 궁리하지만 어쩐지 3명은 남의 일인 것 같은 태도였다. 기괴한 3인조와 갇혀 버린 오가와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리지만 상황은 점차 악화된다. 서로의 비밀이 하나씩 풀릴 때마다 분위기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이미 구르기 시작한 돌은 모든 것을 부술 때까지 멈춰 서지 않을 기세였다.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이야기가 넘어갈 때마다 처음의 의문은 풀려나가지만 새로운 의문이 자라나고 이야기는 알 수 없는 쪽으로 흘러간다. 마지막에 가서야 프롤로그부터 쌓여왔던 모든 의문이 풀려 나간다. 악몽은 이야기의 주역들이 엘리베이터에 오르기 전 부터 시작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랜 만에 영리하게 재미있는 소설이라 꽤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앞으로 엘리베이터를 탈 때의 불안이 늘어났다는 쓸 때 없는 덤까지 붙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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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플랜 - 세계사를 지배해 온 슈퍼파워의 숨겨진 계획
짐 마스 지음, 전미영 옮김 / 이른아침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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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컨스피러시'에서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만 보였던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진짜라는 것이 증명된다. 하지만 보통의 음모론은 다소 괴짜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자신이 예전에 받은 마음의 상처를 뒤덮기 위해 외계인에게 납치되었다는 기억을 지어낸 남자의 이야기나 자신의 몸에 마이크로 칩이 이식되어 정부에서 자신을 통제한다는 망상처럼 쓴웃음이 나는 것이 대부분이다. 미국드라마 '본즈'의 주요인물 중 하나인 하진스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그는 늘상 음모론을 입에 달고 살지만 실제로 증명된 것은 없다.

하지만 정말 비밀의 역사가 없을까. 인간은 단 하나의 진리인 권력을 탐닉해왔다. 그 권력을 잡은 자들은 자신이 잡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역사상에도 버젓이 증명되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끔찍한 것들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고 우리가 모를 어딘가에서 모든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딱히 없을 법하지는 않다. 인간이 상상하는 모든 것은 현실로 이루어진다는 말도 있는 것이다. 그런 비밀의 역사를 다룬 것이 이 책 '다크 플랜'이다. 권력을 잡은 자들이 계획된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권력을 잡은 어둠의 세력은 보통 생각하는 정치인들이 아니라 비밀집단에 소속되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현재 정재계를 꽉 잡고 있는 집단부터 예전의 비밀단체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와 함께 관련된 역사를 다루고 있는데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도 꽤 되었다. 은행재벌 로스차일드 가문이라든지 모건, 록펠러 가문, CFR, 빌더버그 같은 들어본 집단부터 스컬&본즈처럼 다소 생경한 이름까지 다양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들의 이익이 첨예하게 얽히면서 현대사가 엮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쟁을 다룬 많은 서적들이 주장하는 것과 달리 전쟁이 그것 자체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거나 인간의 욕망의 특성상 끝이 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으려는 집단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기 때문에 끝나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비밀집단의 욕망에 의해서 전쟁이 일어나고 이어지는 것이니 인간의 욕망에 의해 전쟁이 계속 생긴다는 견해가 딱히 틀린 것이 아니기는 하다.

한편 베트남 전쟁, 한국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이 세계단일정부를 만들어내기 위한 계획의 일부였다는 부분에서는 오싹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일부러 갈등을 만들어 전쟁을 일으키고 폭격을 해달라는 제안을 거절하면서 상태를 유지하고 이익보다 전쟁비용이 더 들면 단호히 전쟁을 그만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패배는 단 하나의 계획을 위한 포석이 된다고 한다. 계획상으로만 보면 나쁜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그들의 이익을 위한 적절한 방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쟁이 무슨 시뮬레이션 게임도 아니고 그 가운데 죽어가는 사람은 실제 사람이며 전쟁의 비용도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역겨운 이야기였다.

히틀러조차도 실은 로스차일드 가문의 숨겨진 아이일지도 모르고 비밀집단에서 그를 키우고 조종했다는 이야기에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거기에 막달라 마리아가 죄인이 아니라 결혼을 앞둔 처녀였을 뿐인데 오역으로 인해 죄인으로 분류되고 당시의 위정자들의 오만한 생각으로 인해 매춘부로 규정되었다는 부분은 좀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가 부부였고 그 사이에 아이가 있었으며 후에 프랑크 족과 결혼해 메로빙거 왕조를 세웠다는 것이다. 걸림돌이 될 거라고 생각한 권력자들이 전부 삭제한 역사라고 한다.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는 했다.

하지만 모든 음모론이 그렇듯이 어디까지가 맞는 이야기는 알 수 없다. 증명되지 않은 역사이기 때문이다. 역사는 결국 승자의 것이고 그 승자가 정보를 조작한다면 언제까지고 그림자 속의 역사일 것이다. 그들이 필요에 의해 드러내지 않는 한 말이다. 그나마 예전 프리메이슨에 대한 책을 출판하려했던 남자가 살해되고 책도 간신히 출판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자유로운 시대가 되기는 한 것 같다. 계획된 역사에 대해 주장하는 책이 버젓이 나와 있으니 말이다. 허나 이 자유가 혹시 누군가가 잠시 풀어 놓은 자루 속에 들어온 공기 같은 것일까 봐 슬며시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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