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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 - 우디 앨런 단편소설집
우디 앨런 지음, 성지원.권도희 옮김, 이우일 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예전에 우디 앨런에 대해서 받은 인상은 하나였다. 추레한 인상에 비쩍 마른 아저씨라는 것이다. 그런데 특이했던 것은 그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이 많은 영화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이었다. 아름다운 여배우가 나오길래 보통의 로맨틱 코미디인지 알고 보기 시작했던 영화는 '우디 앨런표 블랙 코미디'였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대사들로 인해서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웃음 끝에는 씁쓸한 맛이 감도는 그런 것이었다. 하지만 그 때는 그런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이 우디 앨런식의 유머를 이해하는 것도 좀 묘했을 터였다.
그렇기에 왜 아름다운 여배우가 추레하고 왜소한 아저씨와 이뤄지는 지 이해가 안 갔다. 그가 그 영화의 감독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그런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일명 '우디 앨런표' 영화는 전부 피했다. 말만 많고 재미도 없을 뿐만 아니라 배우로 등장하는 우디 앨런도 마음에 안 들었기 때문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우디 앨런에 대해서 경악하게 하는 기사가 올라왔다. 양녀로 삼았던 소녀가 성장하자 부인과 이혼하고 그녀를 아내로 삼았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속사정이야 누가 알겠냐만은 그것만으로도 우디 앨런에게 거부감을 느끼기는 충분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이후 우연히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보게 되었다. 정확하게는 우디 앨런의 영화인지도 모르고 휴 잭맨과 스칼렛 요한슨이 나온다기에 봤다. 그런데 어째 내용이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나온 배우는 역시 또 '우디 앨런'이었다. 우디 앨런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번에는 재미있었다. 드디어 우디 앨런의 유쾌하지만 비통한 농담에 웃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인생의 쓴 맛을 알아야만 웃게 되는 우디 앨런식 농담. 차라리 몰랐다면 더 좋았으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나이가 들수록 우디 앨런의 농담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이 드는 것이 두려웠는데 한 가지만은 좋은 점도 생긴 셈이었다.
그 후 기묘한 제목의 소설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먹었다'를 발견했다. 일단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이 책은 우디 앨런의 단편 소설집이다. 영화를 통해 그의 유머를 즐겨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재미있어 할 만한 내용이 가득 차 있다. 보통의 소시민이 어떤 상황에 빠지고 상황은 파국으로 밀려간다. 그리고 그 상황은 과장으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아이를 사립 유치원에 넣으려다 실패한 부모는 크나큰 곤경에 처한다. 사립 유치원에 들어간 다른 아이들은 명문대에 진학할 터지만 아이는 힘든 일을 하는 직업을 갖게 될 것이고 수치스러운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사립 유치원 입학을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남자는 공포에 질려 아이에게 두 번째 기회를 만들어주기 위해 애를 쓴다. 물론 그 두 번째 기회는 공짜로 생기는 것이 아니고 뇌물부터 내부자 거래 정보를 주는 등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아야 생긴다. 게다가 그런 공모를 하러 간 식당에서 남자가 '바로 그 아이'의 아버지인 것이 밝혀지자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고 종업원들을 그를 거리로 쫓아낸다. 그리고 사태는 결코 수습되지 않고 최악을 향해 달려간다. 다른 이야기 속에서면 상황이 최악을 행해 내달리니 우울한 분위기가 깔릴 것이다. 하지만 우디 앨런식 농담에서는 그저 피식거리며 웃게 될 뿐이다.
소시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과장된 상황이 나오며 사건은 파국을 맞는다. 그런데 그것을 유쾌하게 보게 되는 것이다. 끝에 씁쓸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초콜릿을 먹는 것 같은 그런 감각이었다. 이 책이 단편 소설집이니 거대한 판 초콜릿을 한 조각씩 똑똑 끊어서 입에 물고 녹여 먹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한 권을 삼키고 나면 우디 앨런의 유머를 즐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한 덩이의 버섯을 사이에 둔 피 튀기는 혈투나 미키가 증인으로 소환되어 법정에서 진술하는 것처럼 과장으로 찬 유머지만 그것은 현실의 절묘한 감각이 녹아들어 있고 저자의 재기발랄함을 맛보기에는 충분했다. 아직도 우디 앨런이 좋지는 않다. 거부감도 느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의 재기발랄함만은 부정할 수가 없다. 영화에서도 소설에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