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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사생활
이응준 지음 / 민음사 / 2009년 4월
평점 :
초등학교 때만 해도 통일만 되면 낙원이 펼쳐질 것처럼 통일을 부르짖는 목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토록 통일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도 없고 통일이 된 이후에 대해 희망적 관측을 내놓는 경우도 많지 않다. 동독과 서독의 통일에서 우리의 미래를 읽었기 때문이다. 흡수통일이 된다고 해도 경제적 상황이 상당히 차이가 나는 경우 경제력이 높은 쪽이 낮은 쪽을 상당히 많이 지탱해야만 한다. 그만한 경제력이 없다면 같이 몰락하게 된다.
그 불안한 예측을 소설로 그린 것이 '국가의 사생활'이다. 지금으로부터 2년 뒤인 2011년에 남과 북이 통일되고 그 이후의 삶을 그리고 있다. 동화에서처럼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다'로 끝나면 좋겠지만 사람의 일인지라 쉽지가 않았다. 북한과 남한으로 나뉘어 있던 시절에는 각자의 사회체제로 지탱하고 있었다. 강산도 10년이 지나면 못 알아볼 정도고 요즘 거리는 1년만 지나도 길도 못 찾을 정도다. 그런 마당에 몇 십년간 떨어진 북한과 남한은 전혀 다른 나라나 마찬가지였다. 사투리가 심하지만 말이 통하고 민족이 같다는 공통점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을 구성하는 것은 후천적 요소가 크다. 자본주의 체제하에서 자란 사람과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자란 사람은 사고방식조차도 다른 것이다. 아무리 서로를 나라로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북한을 주적으로 취급하면서 한 나라라는 것을 강조했다지만 남한과 북한은 이미 전혀 다른 나라였다.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있는 무계획인 사람들에 의해 통일이 되어버린다. 통일 대한민국을 지배하게 된 체제는 자본주의이니 남한 사람들은 큰 문제가 없었다. 북한의 실업자들이 잔뜩 내려오기는 했지만 그것은 하나 건너의 문제였다.
반면 누군가가 시키는 것에 익숙하고 자신의 지도자를 신처럼 생각했던 이북의 주민들은 곤경에 처한다. 사고방식도 다른 사람들과 경쟁해야 했던 것이다. 그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사고방식까지 전부 바꿔도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다. 가장 문제였던 것은 북한의 수많은 군인들을 실업자로 바꿨다는 사실이었다. 근 10년간을 복무한 군인들을 무조건 해산시킨다는 것 자체가 이미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사망선고였다. 실업자가 된 군인들은 소지하고 있던 무기들과 함께 사라졌고 그들은 대부분 조직 폭력배가 되었다.
엘리트 군인이었던 리강도 다르지 않았다. 그는 조국이 통일되면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자괴감은 나날이 심해지고 있었다. 그가 속한 대동강이라고 불리는 조직 폭력단 내의 대부분은 군인 출신이었다. 애국심이라는 이름 아래 살인기계가 되었지만 무참하게 버려진 사람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통일 대한민국의 밤거리에 스며든다. 화려한 네온사인 아래 무법지대를 형성한 것이다. 이야기 자체는 대동강의 단원 중 한 명이 살해당하면서 시작된다. 그를 죽인 것으로 보인 형사도 역시 대동강에 의해 살해되지만 사건은 명확하지 않았다. 주인공인 리강은 그 사실에 의문을 품고 조사에 나서지만 그가 마주하게 된 것은 온갖 추악한 것들이었다.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는 것도 그렇지만 묘사되고 있는 현실이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아 더 암울해졌다. 소재가 인민군 출신 조직 폭력단 내의 살인사건이니 폭력적이고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현실을 그대로 잘라 넣어놓은 것 같은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미래라는 이름으로 심화된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아예 없을 것 같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기존에 있던 어둠을 자극하고 그 심연으로 눈을 돌리게 하는 기분이었다.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고 있기도 하고 시간 축을 이리 저리 옮겨 다니고 있기 때문에 혼란스러운 부분도 많았다. 하지만 수많은 참고문헌에서 드러나듯 북한에 대해 세밀하게 조사하고 공을 들인 티가 나는 책이었다. 속에 숨어 있던 불안한 꿈을 직접 본 기분이었다. 제발 이런 미래와 마주하지 않기를 막연한 희망만을 품고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