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 - 시대를 초월한 인생 지침서 5 시대를 초월한 인생 지침서 5
조지 사무엘 클라슨 지음, 북타임 편집부 옮김 / 북타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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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게 살아도 만족하면서 살 줄 안다면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일을 치열하게 사는데도 텅 빈 지갑을 갖게 되는 것이 기분 좋을 수는 없다. 돈에 발이라도 달렸는지 술술 빠져나가버리고 어느 순간 빈 지갑을 발견하게 된다. 누군가 집 밖을 내다보니 붉은 십자가 투성이라고 그 십자가가 꽂힌 곳마다 자신의 땅이면 좋겠다는 말을 했었다. 거기까지는 아니라도 어린 시절의 소망을 친구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의외로 비슷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바로 '슈퍼마켓 주인'이다. 슈퍼마켓의 물건들이 상품이라는 생각을 잘 하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는 수북한 과자가 있는 가게 주인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가끔 꿈이 큰 친구는 백화점 주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지금이야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주인을 꿈꾸지는 않지만 갖고 싶은 물건은 점차 늘어난다. 신나게 놀고 배만 차면 족했던 어린 시절에는 과자가 욕망의 대상이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다른 영역까지 넘보게 된다. 그렇게 치면 아직도 백화점 주인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만족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지금은 안다. 하지만 기왕이면 부자로 살고 싶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는 것일 것이다. 가난이 곧 불행은 아니지만 부는 좀 더 많은 기회를 제시한다. 자신이 기다리던 일에 뛰어들 수 있느냐와 없느냐는 대체로 돈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나면 부자가 되고 싶다는 마음을 포기할 수가 없다.

같은 시간 같은 일을 해도 누군가는 알토란처럼 돈을 모으고 누군가는 부족한 통장 잔고에 한숨 쉬게 된다. 왜 그럴까. 황금의 도시 바빌론에서 제일의 부자로 소문난 알카드의 말에 따르면 간단한 부의 법칙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 <연금술>은 노예에서, 맨바닥에서 혹은 빚더미에서 존경받는 부자로 거듭난 인물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형식은 평생을 열심히 일했는데도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고 그 가난을 대물림하는 사람들이 부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러 가는 식으로 전개된다.

첫 번째 이야기에서 알카드는 부의 비밀은 간단하다고 말한다. 수입의 10분의 1은 무조건 저축해서 모으라는 것이다. 그렇게 10년이 지나면 한 해의 수입이 고스란히 종자돈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돈이 모자라서 쪼개 쓰는 판에 수입의 10분의 1을 저축할 수 있을까 싶지만 10분의 9로도 충분히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면 가능하다고 한다. 만약 빚이 있다면 10분의 1은 저축, 10분의 7은 생활비, 10분의 2는 빚을 갚는데 쓰라고 한다. 반드시 10분의 1은 저축을 해나가야 하고 그렇게 해서 모은 10분의 1의 돈에 일을 시키라고 한다. 돈이 자식을 낳고 그 손자에 손자까지 불리고 모든 돈에 꾸준히 일을 시켜서 불려 나가라는 것이었다. 그것을 반복하면 부자가 되는 것도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이야기에서는 황금의 도시 바빌론에도 가난한 사람들이 있어 근심하는 왕의 이야기가 나왔다. 왕은 도시 최고의 부자 알카드에게 사람들이 부의 비밀을 배워 부유해질 수 있도록 강연을 하라고 한다. 알카드는 그 강연에서 7가지 부의 비밀을 밝힌다. 수입의 10분의 1은 저축하고 돈에게 일을 시키라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부의 비밀도 좋았지만, 세를 내고 사는 것보다 대출을 받아서라도 집을 구입하는 것이 좋다는 것처럼 시대와 관련 없이 통용될 만한 내용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알카드가 밝힌 기본적인 법칙들도 그랬지만 여윳돈이 생겼을 때 있을 법한 고민들을 풀어주는 마손의 조언도 마음에 들었다. 돈을 빌려주는 대금업자 마손에게 한 남자가 찾아온다. 돈이 아니라 조언을 들으러 왔다는 것이다. 여동생이 남편의 사업자금을 빌리러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것이었다. 마손의 대답은 타인의 짐을 대신 짊어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랬다가는 돈도 그 사람도 모두 잃게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부에 대한 기본 법칙, 돈을 모으는 방법, 돈을 빌려줄 때 주의할 것들, 빚을 갚는 방법 같은 반드시 알아두어야 하지만 등한시 했던 것들에 대한 설명이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지는 점이 가장 좋았다.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지는 않지만 행복해지는데 필요한 것들을 돈으로 구할 수는 있다. 돈이 없으면 불편하고 구차한 경우가 많다. 그런 마당에 부에 대한 강력한 법칙이라니 귀가 솔깃해질 수밖에 없었다. 당장 거액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알카드의 7가지 법칙을 따르다보면 얇아만 졌던 지갑이 점차 통통하게 살이 오를 날도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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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인공들
아일린 페이버릿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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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책을 읽다보면 자신이 그 소설의 주인공인 것처럼 이입하게 될 때가 있다. 자신이라면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결말을 바꿔 놓았을 거라고 분개하기도 하고 주인공과 같은 심정을 맛보면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 모험은 거기에서 끝이 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의 즐거움은 그런 곳에서 나온다. 평생 바뀔 일 없는 자기의 시각이 아니라 타인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된다. 그래서 소설가 닉 혼비가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에서 번역서를 읽으면 '주파수가 맞지 않는 라디오를 듣는 것' 같다고 불평했는지도 모른다. 이입이 이루어지려면 작가의 호흡이 가깝게 다가와야 하는데 번역서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입의 대상이었던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실제로 만난다면 어떨까. 어린 시절의 수다쟁이 앤이 튀어나와 같이 놀 수 있다면 즐거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주인공들은 지극히도 자기중심적이다. 더구나 비극의 여주인공들이 가장 어려운 시기에 튀어나와 잠시 쉬고 간다면 그리 기분 좋을 것 같지는 않다. 대부분의 소설이 그렇듯 그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소설 속의 인물을 실제로 만난다는 것은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끊임없이 자신의 고난만을 떠드는 인물과 같이 있는 시간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을까.

바로 이런 일이 이 책 <여주인공들>의 주인공인 페니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아름다운 숲이 뒤편에 펼쳐진 민박집 프레리 홈스테드에서 살고 있는 페니의 일상은 대체로 평화로운 편이었다. 요리사인 그레타 아줌마의 솜씨는 뛰어났으며 엄마가 강압적인 성격인 것도 아니었다. 단 하나 문제되는 것이 있었다면 홈스테드에는 수시로 '여주인공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스칼렛 오하라나 보바리 부인 같은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이 홈스테드에 가끔 출몰했다. 그들은 갑자기 나타났으며 얼마간 쉬다가 갑자기 사라졌다. 현대의 복장으로 나타났기에 그 책을 읽지 않았다면 잘 알 수 없기는 했다. 하지만 여주인공들은 지독히도 자기중심적이었고 끊임없이 자신의 이야기만을 쏟아냈다.

그런 여주인공들이 나타날 때마다 엄마는 모르는 척하고 적당히 맞장구를 쳐줄 뿐이었다. 엄마는 대단한 독서광이었으므로 여주인공들이 어떤 책에서 어떤 부분에서 나왔는지 대화의 내용으로 대강 짐작이 가능했다. 그러나 결코 그들의 운명을 바꾸려 들지는 않았다. 달래주고 위로하고 비위를 맞춰줄 뿐이었다. 엄마의 여주인공들에 대한 애정은 대단한 것이어서 페니는 가끔 자신보다 그들이 우선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이 절정에 달한 것은 페니가 13살이 되어 사춘기를 겪고 있기도 했지만 어느 책에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도 없는 데어드르가 그녀의 방을 빼앗아 갔기 때문이다.

데어드르는 계속하여 울고 신세한탄을 하는 등 시끄럽게 굴어서 다른 손님들이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덕분에 엄마는 데어드르를 손님방에서 먼 곳으로 옮겨 주었는데 그 곳이 페니의 방이었던 것이다. 페니의 엄마는 심지어 페니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았다. 페니는 분노에 차서 밤에 숲으로 산책을 나간다. 밤의 숲은 위험하다는 엄마의 경고를 일부러 무시한 것이다. 페니는 머릿속으로 온갖 분노의 말을 내뱉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말이 달려오는 것 같은 소리였다. 주변을 둘러보자 웬 말에 탄 남자가 페니를 쫓고 있었다. 남자의 용건은 간단했는데 데어드르를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데어드르조차도 어느 이야기에서 나온 지 알 수 없으니 남자가 악당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페니의 모험이 이제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페니가 사는 곳 프레리 홈스테드는 상당히 신기한 공간이다. 책 속의 인물들, 주로 여주인공이 나타난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거기에 그런 인물들과 아무런 위화감 없이 지내는 페니, 페니의 엄마 앤마리, 요리사 그레타 아줌마도 대단하다. 페니의 일상은 여주인공들이 들락날락 하면서 점점 꼬여 간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세 사람만의 비밀이 데어드르와 그녀를 쫓는 코노르의 등장으로 사건으로 발전해간다. 여주인공들에게서 엄마의 사랑과 자신의 위치를 되찾고 싶은 소녀의 질투, 여주인공을 쫓아온 남자 주인공에 대한 동경 등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터라 읽으면서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지나치게 이입했기 때문이다. 페니의 앞날이 어떻게 될 지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도 없었고 안절부절 못하면서 읽어나갔다. <잉크스펠>처럼 책 속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여주인공들>처럼 일상 속에 여주인공들이 튀어나오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그들의 강렬한 개성에 밀려서 자신이 밋밋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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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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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에는 생명의 유한성에 대해서, 죽음의 두려움에 빠져 있던 때라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누군가 같이 죽어줄 것도 아니고 같이 죽는다고 해도 죽음은 제각기 찾아오는 것이니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그 때 내 앞에 있던 친구는 '넌 참 차갑구나'라고 답했다. 그 대답에 멍해졌다. 딱히 결혼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도 아니고 어쩌다 그렇게 이야기가 번져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살다 혼자 죽는다는 인식이 차갑다라는 말로 이어진다는 것에 당황했었다.

사실 여태껏 혼자 살다 죽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적도 없다. 얼마 전 맞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까지 그랬다. 반 농담이지만 혼자 사는 사람의 최대 공포는 죽은 다음 아무도 모른 채 애완동물에게 반쯤 뜯어 먹힌 채로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애완동물에게 반쯤 뜯어 먹힌 채 발견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정작 물어뜯어 줄 애완견도 없지만 말이다. 그나마 지금은 결혼 적령기도 늦추어졌고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인식도 전보다는 양호해졌다.

혼자 살아도 함께 살아도 불편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어떤 쪽을 선택하더라도 후회는 남는다. 가지 않은 길에 매번 돌아가서 다시 살아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가능하지는 않다. 사람의 삶이 그런 것이라면 결국 어떤 삶을 사느냐 그것에 만족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런데 유독 결혼에 관해서는 완고한 입장을 가진 사람이 많다. 친구말대로 차가워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혼자 살든 같이 살든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감 놔라 배 놔라 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언니들, 집을 나가다>는 신선하지만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회통념 상 미혼인 사람이 독립하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자기가 먹고 살만큼 번 성인이 독립하는 것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족이라는 구성이 갑갑하고 능력되는 사람은 나가도 좋고 혼자라는 것이 거북한 사람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지 28개의 목소리는 혼자 선다는 것의 어려움이나 고통에 대한 열변을 털어 놓는다. 정작 진짜 혼자 산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오기가, 주변의 시선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엄습한다는 것이다.

혈연에 대한 집착이 심한 경우 부모는 자식의 인생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오히려 그런 부모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런 반항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데 가족이라는 족쇄로 사람을 묶으려드니 싫은 사람은 싫을 만도 하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혹은 결혼이라는 울타리로 인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게 되면 불만도 생긴다.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울분이고 벗어나고 싶겠다는 마음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비혼이라는 개념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혼이 편한 사람은 그 쪽으로, 결혼이 편하지 않은 사람은 안 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각기의 이유로 홀로 그리고 담백한 연대감의 같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선택은 개인의 몫으로 남기 마련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자신의 욕망을 중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들의 욕망이라고 해봤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시간을 자신이 누리고 싶다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대학시절 교양 수업 교수님이 시어머니의 '착하다'는 말이 싫다고 열변을 토한 척이 있었다. 어른들의 착하다는 말은 성품이 곱다기보다 자신의 의견에 잘 따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좀 나쁘면 어떤가. 당사자가 행복하면 충분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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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눈물 - 한니발보다 잔인하고, 식스센스보다 극적인 반전
라파엘 카르데티 지음, 박명숙 옮김 / 예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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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다. 독자들의 눈을 끌고 싶다면 글의 첫 머리에 강렬함을 남기라고. 액션이든 유혈극이든 집어넣어서 독자가 다음 장을 읽지 않을 수 없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마키아벨리의 눈물>은 성공한 셈이다. 책이 시작하자마자 한 남자가 깨어난다. 남자는 자신이 어느 컴컴한 지하실에 묶여 있음을 깨닫는다. 딱히 유명하지도 않지만 근근이 들어오는 일감에 먹고 사는 화가였다. 그가 왜 알 수 없는 지하실에 묶이게 된 것일까. 남자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몸은 단단한 죔쇠에 조여져 있었고 입에는 강철 재갈이 물려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기억을 더듬어간다. 자신이 왜 이런 곳에서 있게 된 것인지 떠올려보는 것이다. 얼마 전 남자는 뜻하지 않은 큰 일감을 받았다. 평소라면 유명한 화가를 부를 만한 고객이 그에게 일감을 맡긴 것이다. 그래서는 그는 자신의 모든 재능을 짜냈다. 쇠락해버린 자신의 꿈을 되살릴 기회 같았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손질에 여념이 없던 그 때에 자신의 아틀리에에 누군가가 들어왔다. 자신이 그것을 확인한 순간 침입자가 그를 공격했고 화가는 의식을 잃었다. 거기까지가 그가 기억하는 부분이었다. 남자는 낙담한다. 자신이 잡혀 온 이유도 알 수 없었던 데다가 구원의 희망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남자들이 내려온다. 화가는 온 힘을 다해 도와달라고 외치려 했지만 금세 깨닫는다. 지하실로 내려오는 자들은 구원자가 아니라 납치범 일당이라는 것을 말이다. 당혹하고 겁에 질린 화가에게 내려온 남자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이후 잔혹한 고문이 계속된다. 화가가 죽는 것이 낫다고 여길 때쯤 한 남자가 그에게 무언가를 묻는다. 정직한 답의 대가는 신속한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었다. 화가는 답하고 그의 심장에 비수가 파고든다.

무고한 한 남자가 납치되고 고문당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덕분에 팩션을 그리 즐기지 않는데도 계속 다음 장을 넘겨 나갔다. 화가에게 구원의 손길이 오기를, 최소한 범인들이 합당한 대가를 치르길 바라게 되었기 때문이다. 화가의 시체는 조각조각 나서 강에 버려진다. 하지만 범인들은 시체를 굳이 숨길 생각이 없었고 시체는 곧 발견된다. 메디치가가 떠난 피렌체를 다스리고 있던 소데리니 장관은 자신의 수하와 함께 이 의문의 살인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한다. 살인은 이제 시작되었고 꽃의 도시 피렌체는 음모의 그림자가 드리운 채 피로 물들어간다.

첫 머리는 너무 잔혹했고 전개 과정은 긴장감이 넘쳤다. 주인공으로 등장한 니콜로 마키아벨리를 압도할 정도의 시작이라서 잠시나마 마키아벨리가 모략의 대가라는 것을 잊게 되었다. 책에서 등장한 마키아벨리는 흔히 생각하는 악의 대명사나 위대한 사상가 이전에 아직 공부중인 청년 서기관이다. 친구들과 소박한 술집에서의 담소를 즐기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의 목숨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기도 한다. 그런 그가 음모의 한복판에 뛰어든다. 몇 번이나 생명의 위협을 받고 연쇄살인과 피렌체 공화국을 뒤흔들 음모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작가는 영리하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키아벨리적' 면모를 숨겨 놓는다. 잔혹한 범죄가 음모와 이어지고 이야기가 반전을 거듭하는 터라 꽤나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르네상스의 수호자 같았던 메디치가가 몰락한 이후의 피렌체는 어둠으로 뒤덮여 있다. 권력의 그림자가 항상 그렇듯 그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와 빼앗는 자가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싸움이 연쇄살인으로 드러났고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마키아벨리와 친구들이 탐정 노릇을 하면서 그 한복판에 휘말리게 된다는 설정이 좋았다. 단지 언제나 역사는 이긴자의 것이라는 점이 서글프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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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인간 - 2 드레스덴 파일즈 2
짐 버처 지음, 박영원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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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리 포터>에 열광했던 것은 현실과 허구가 교묘하게 뒤섞인 전개가 있었기 때문이다. 해리 포터를 흔히 청바지를 입은 마법사라고 부른다. 언뜻 생각하기에 마법사는 아더왕의 시대에나 등장할 케케묵은 소재 같지만 현실의 팍팍함이 견디기 힘들 때는 그것을 뛰어넘는 누군가를 바라게 된다. 피를 마셔야만 견딜 수 있는 뱀파이어처럼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이한 재능을 가지면 되는 존재가 된다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일 것 같다.

하지만 힘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이고 현대 사회에서 실제 마법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보기보다 만만한 일은 아닌 듯하다. 예전에 봤던 TV시리즈인 <사브리나>에서도 마녀가 등장했다. 심지어 브래드 피트를 소환까지 하는 소녀 마법사가 등장했지만 그곳에서도 제약이 있었다. 자신이 마녀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고 마법과 관련한 심판기관이 존재했던 것이다. 해리 포터의 세계도 다르지 않아서 청소년 마법사인 해리 포터는 머글들 틈에서 마법을 쓰면 안 되게 되어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해리 드레스덴의 경우에는 더하다. 그는 성인 마법사이므로 그의 힘을 제한할 자는 없다. 하지만 보호자가 없다는 것은 모든 것을 홀로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심지어 그는 예전에 자신을 죽이려고 한 마법사를 죽였다는 이유로 마법사들의 심판 기관인 화이트 평의회에 요주의 인물로 찍혀 있었다. 그가 사람을 마법을 통해서 죽이려고 한다면 그는 즉결처형에 처해 질 터였다. 1권에서는 화이트 평의회 내에서 그를 죽이려고 하는 자가 있는지 해리는 끊임없는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그 와중에 의뢰를 받는데 그것은 그가 가난하기 때문이다. 마법사와 연금술사가 다르기는 하지만 가난한 마법사라니 당혹스럽기도 했다. 해리 드레스덴은 마법사라기보다 마법을 쓰는 탐정에 가깝다. 그것도 실수도 많고 몸이 성할 날이 흔치 않은 탐정이다. 마법을 쓰는 필립 말로랄까. 기사도 정신에 사로잡혀 있고 선한 의도로 움직이지만 덕분에 인생은 진창에 처박혀 있다. 그나마 입에 풀칠을 하면서 살아보고자 전화번호부에 '마법사'로 광고를 올려 두었지만 마법사를 믿지 않는 현대 사회에서 사기꾼 취급을 받으니 제대로 된 의뢰가 들어올 리가 없다. 그런 마당에 들어온 의뢰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집세는커녕 끼니도 걱정해야 하는 처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해리의 주 수입원이었던 경찰 카린 머피의 수사 의뢰는 1권에서 그녀를 보호하려고 정보를 숨긴 터라 뚝 끊기고 말았다. 경찰의 동료에서 잠정적 범죄자로 지위가 격하된 것이다. 그런 해리에게 오랜만에 머피가 연락한다. 해리가 정보를 숨긴 터라 머피마저도 내사과에 시달리는 처지가 되었고 오랜 우정은 산산조각 났지만 괴이쩍은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짐승에게 잔인하게 뜯어 먹힌 것으로 보이는 시체는 시카고에서 유명한 악당인 마콘의 보디가드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에는 마콘을 잡아들이려는 FBI도 연관된다. 그들은 초자연적 사건 수사를 전문으로 하는 머피도 해리도 무시하지만 해리는 오랜 우정을 회복시키기 위해 그리고 도시를 휘젓고 다니는 살인마를 잡기 위해 사건에 뛰어든다. 물론 먹고 살려니 자신의 주 수입원인 머피의 청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도 큰 몫을 했다. 그러나 사건에는 늑대인간이 끼어 있었다. 그것도 위어울프, 헥센늑대, 라이칸슬로프를 비롯한 온갖 늑대무리가 사건을 휘젓고 다니면서 평소 해리가 빠져있던 진창이 도시 안으로 번지는 결과를 낳고 만다. 유능한 마법사지만 마법으로 결코 인간을 해쳐서는 안 되고 무일푼에 고생길만 끝이 없는 마법사 해리 드레스덴의 사건 수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드레스덴 파일즈 2>는 독특한 소설이다. 현대 사회 속에서 마법사가 있고 그 마법사가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초자연적 사건을 수사한다는 설정이 그렇다. 하지만 그가 가진 능력에 비해서 닥쳐오는 고난은 크고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 한다는 것이 마법이라고 해서 결코 만능일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전장으로 뛰어든다. 그럼에도 그가 얻을 수 있는 것은 간신히 밥은 먹고사는 수입원과 사기꾼이라는 조롱이 전부인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일까. 해리 포터는 해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긴장은 했어도 그가 방학을 맞아 집에 돌아올 때마다 평범한 일상에 안심했었다. 반면 같은 해리라도 해리 드레스덴은 돌아갈 일상이 곧 전장이므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마법을 쓰는 필립 말로라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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