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 집을 나가다 - 가족 밖에서 꿈꾸는 새로운 삶 스물여덟 가지
언니네트워크 엮음 / 에쎄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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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 때 친구들과 노닥거리다가 결혼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에는 생명의 유한성에 대해서, 죽음의 두려움에 빠져 있던 때라 이렇게 답했다. 어차피 누군가 같이 죽어줄 것도 아니고 같이 죽는다고 해도 죽음은 제각기 찾아오는 것이니 혼자 살다 혼자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이다. 그 때 내 앞에 있던 친구는 '넌 참 차갑구나'라고 답했다. 그 대답에 멍해졌다. 딱히 결혼에 대해서 반대했던 것도 아니고 어쩌다 그렇게 이야기가 번져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혼자 살다 혼자 죽는다는 인식이 차갑다라는 말로 이어진다는 것에 당황했었다.

사실 여태껏 혼자 살다 죽는 자신의 모습을 그려본 적도 없다. 얼마 전 맞선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까지 그랬다. 반 농담이지만 혼자 사는 사람의 최대 공포는 죽은 다음 아무도 모른 채 애완동물에게 반쯤 뜯어 먹힌 채로 발견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있다. 지금으로서는 결혼을 위한 결혼을 하는 것보다는 애완동물에게 반쯤 뜯어 먹힌 채 발견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한다. 정작 물어뜯어 줄 애완견도 없지만 말이다. 그나마 지금은 결혼 적령기도 늦추어졌고 혼자 사는 사람에 대한 인식도 전보다는 양호해졌다.

혼자 살아도 함께 살아도 불편한 점은 있기 마련이다. 단 한 번뿐인 자신의 인생을 어떤 쪽을 선택하더라도 후회는 남는다. 가지 않은 길에 매번 돌아가서 다시 살아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도 가능하지는 않다. 사람의 삶이 그런 것이라면 결국 어떤 삶을 사느냐 그것에 만족하느냐는 자신에게 달린 것이다. 그런데 유독 결혼에 관해서는 완고한 입장을 가진 사람이 많다. 친구말대로 차가워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이 혼자 살든 같이 살든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감 놔라 배 놔라 할 입장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언니들, 집을 나가다>는 신선하지만 당연한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사회통념 상 미혼인 사람이 독립하는 것을 안 좋게 보는 시각도 있지만 자기가 먹고 살만큼 번 성인이 독립하는 것이 그리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가족이라는 구성이 갑갑하고 능력되는 사람은 나가도 좋고 혼자라는 것이 거북한 사람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해도 괜찮은 것이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가족들은 그렇지 않은지 28개의 목소리는 혼자 선다는 것의 어려움이나 고통에 대한 열변을 털어 놓는다. 정작 진짜 혼자 산다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데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오기가, 주변의 시선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엄습한다는 것이다.

혈연에 대한 집착이 심한 경우 부모는 자식의 인생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고 오히려 그런 부모에게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친다. 그런 반항은 자연스러운 것이라는데 가족이라는 족쇄로 사람을 묶으려드니 싫은 사람은 싫을 만도 하다. 사람이 살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혹은 결혼이라는 울타리로 인해 자신의 욕망을 억누르게 되면 불만도 생긴다.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울분이고 벗어나고 싶겠다는 마음도 이해가 가는 것이다. 그들이 일관되게 주장하는 비혼이라는 개념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결혼이 편한 사람은 그 쪽으로, 결혼이 편하지 않은 사람은 안 하면 어떤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각기의 이유로 홀로 그리고 담백한 연대감의 같이를 선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선했다. 삶의 방식은 다양하고 선택은 개인의 몫으로 남기 마련이다.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자신의 욕망을 중시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것이 뭐가 있겠는가. 그들의 욕망이라고 해봤자 자신의 인생이라는 시간을 자신이 누리고 싶다는 것뿐인데도 말이다. 대학시절 교양 수업 교수님이 시어머니의 '착하다'는 말이 싫다고 열변을 토한 척이 있었다. 어른들의 착하다는 말은 성품이 곱다기보다 자신의 의견에 잘 따른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좀 나쁘면 어떤가. 당사자가 행복하면 충분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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