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 무당집 1 - 공포의 방문객
양국일.양국명 지음 / 청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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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 되면 여기저기서 흘러나오기 시작하는 이야기가 있다. 바로 귀신에 대한 이야기다. 차를 타고 가면서 본 귀신부터 학교에 등장하는 귀신까지 등장 범위가 넓기도 하다. 그런 시간이 되면 피해 다니기 바쁜 편이라 여름 극장가도 별로 즐겁지 않다. 다른 영화를 보러 들어가도 공포 영화 예고편이 나오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스티븐 킹이고 짜증스러울 때는 공포소설을 집어 든다. 공포소설을 읽게 하는 것이 호기심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 경우에는 감정을 대신 폭발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어느 이야기나 그렇지만 공포소설은 분위기가 중요한 터라 스산한 겨울보다는 장마철의 습기를 빨아들인 늦여름이 적격이다. 늦여름에 무더위가 감정을 고조시키고 그것이 정점에 달했을 때 등장하는 귀신은 여태껏 쌓인 긴장감과 다른 감정들을 일순간에 폭발시킨다. 그리고 오싹함만이 남는 것이다. 스티븐 킹의 소설에 등장하는 초자연적 대상들은 사악함의 총체 같은 느낌이지만 우리나라 공포소설에 등장하는 귀신들은 부정적 감정들이 모인 집합체 같은 느낌이라 원한처럼 개인적 감정들이 잘 녹아든다. 그 부의 감정에 읽는 사람이 품고 있던 어두운 감정들이 전부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다만 대체로 공포소설은 통쾌하다기보다 음습하고 찝찝한 결말을 맞는 것이 보통이기는 하다. <붉은 벽돌 무당집>도 공포 소설의 도식적인 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위험이 분명한데도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그에 따른 저주나 귀신이 달라붙어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우울하거나 후련한 결말을 맞는다는 전개 말이다. 하지만 읽을 때의 느낌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밤에 혼자 읽기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오싹했지만 책을 덮은 다음에 그 이미지가 따라올 정도로 무섭지도 않았고 기분 전환용으로는 충분했다.

이야기는 두 가지가 교차된다. 자살시도 후 몇 달 동안 식물인간 상태였던 한 소녀가 깨어난다. 가족들은 무작정 기뻐하지만 동생만은 누나의 행동이 석연치 않다. 자신을 귀여워하던 누나의 모습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그 곳에 있는 것은 엉뚱한 사람 같았던 것이다. 그나마 전혀 다른 사람이라면 차라리 나았을 텐데 그것은 누나의 모습을 한 섬뜩한 존재로 보였다. 진규는 누나의 비밀을 풀기로 결심한다.

한편 동아리 모임으로 모였던 학생들은 우연히 묘한 이야기를 듣는다. 흔한 학교 괴담처럼 대학교 구 도서관 건물에서 귀신이 나온다는 이야기였다. 흔한 괴담들과 달랐던 것은 귀신을 목격한 당사자가 직접 이야기를 했고 실질적 피해가 속출하고 있었던 점이었다. 시험공부를 하던 고등학교 여학생 세 명이 귀신을 보았고 무서워서 차마 귀신을 쳐다보지 못한 한 명은 불안에 떨고 있었다. 더구나 귀신을 직접 본 두 명은 의문의 죽음을 맞았으며 또 한 명은 정신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다. 평소 초자연적 현상에 관심이 있던 우민은 그 도서관에 방문해보기로 한다. 아무 일 없을 줄 알았지만 귀신은 실제로 나타나고 같이 간 은정은 사라지고 만다. 그녀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오랜 시간 식물인간이었다가 의식을 찾았지만 오싹함만을 주게 된 누나를 조사하는 동생의 이야기와 구 도서관을 조사하다가 짝사랑하던 여자 친구를 잃어버린 남자의 이야기가 교차하면서 이야기는 긴장감을 더한다. 두 사람에게는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마지막 반전이 더해지면서 이야기는 결말을 맞지만 그로 인해서 공포감은 반감되었다. 전설의 고향에서 급하게 훈훈한 마무리를 보는 기분이랄까. 앞서 잡아 놓은 긴장감이 무뎌지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비오는 밤 혼자 읽기는 부담스러웠고 책을 읽는 동안에만 느낄 수 있는 긴장감을 맛보는 것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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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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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의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면 어떤 부분은 마모된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그것은 무뎌진 것인지 단단하게 성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를 변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성장일 수도 있고 서로를 증오하는 나쁜 변모일 수도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 가운데 사람과 부딪히며 변해간다. 만화 <백귀야행>에 초혼술을 하려면 3년간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사람과의 소통의 도구인 말을,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 하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절을 견디지 못해 다시 불러내려는 사람에게 주변 모든 사람과의 단절을 3년 동안 견뎌야 해낼 수 있는 술이라는 것 자체가 초혼술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침묵이 무겁듯이 사람은 단절을 견디지 못한다. 단절의 시간 동안은 변화하지 않은 자신만을 계속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의로 그리고 타의에 의해 단절된 천재 소녀 루는 또 다른 단절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홈리스 소녀 노와 교류하게 되었다. 노에게 손을 내밈으로써 단절된 자신을 도왔던 것이다. 루가 노에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느꼈던 것은 그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루와 노가 만났던 것은 기차역에서였다. 루는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이별의 감정이 흘러 넘치는 기차역에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아이큐가 160이라 또래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해력을 가지고 있던 루는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고립된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수업에 들어가면 지루해서 견딜 수 없었고 몇 번의 월반을 거듭하다보니 고등학생 속에서 수업을 듣는 꼬마가 되어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급우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다. 그나마 학급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뤼카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집에 가면 우울증에 빠져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엄마와 두 사람을 억지로 견디고 있는 아빠와 마주해야 했다.

그런 마당에 태연히 물건을 빼앗아 가는 강렬한 개성의 홈리스 소녀 노의 출현은 루에게 충격이었다. 우울의 늪,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백과사전을 외우고만 있던 루는 세상물정에 해박한 노가 놀랍기만 했다. 첫 만남은 강렬했지만 짧게 끝났고 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만남이 이어졌던 것은 루가 노숙자에 대한 발표 과제를 맡으면서 부터였다. 루는 노에게 허락을 구하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어린 나이에 매번 술을 마시는 노, 그런 노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공간과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루의 즐거움이었다. 초반에는 노가 두려웠지만 상처 받은 두 소녀는 서로에게 끌린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듯이 루는 노와 친해진다. 동생 타이스가 죽은 이후 잠들어 버린 채 깨어나지 않은 것 같은 엄마를 둔 루는 노의 분노를 슬픔을 이해하려 한다. 최소한 엄마처럼 자동인형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는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노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몇 살 어린 루는 좀 특이한 존재였다. 루와 대화를 하는 동안 배를 채울 수 있고 따뜻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시선으로 보지 않는 특이한 여자애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 만남이 어떻게 끝날 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발표가 끝나자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만날 이유는 사라진다. 루는 성공적으로 발표를 끝내지만 노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노는 기차역 앞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루는 자신이 여우를 길들인 것인지 자신이 길이 든 여우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노를 찾아 나선다. 두 소녀는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해나간다. 그 성장의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 지 알 수 없었지만 루는 노의 손을 놓지 않는다. 천재지만 소외된 소녀의 시각으로 본 사회는 어둡다. 가난하고 추운 겨울의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루는 노에게 손을 내민다. 단절의 세계에서 소통의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성장하려 한다는 증명이었을 것이다. 노숙자, 빈곤, 도시의 고독까지 사회문제를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 소설이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독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는 않지만 그 희망의 꽃이 과연 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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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물고기 - 물고기에서 인간까지, 35억 년 진화의 비밀
닐 슈빈 지음, 김명남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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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텔레비전에 나와서 춤을 추는 연예인을 보고 있노라면 같은 사람의 몸으로 어떻게 저렇게 움직일까 신기할 때가 있다. 같은 종에 대한 쓸데없는 감탄을 하게 될 때가 있는가 하면 인간의 몸에 있는 쓸데없는 부위에 대한 의문을 금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아직 진화가 덜 된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어떨 때는 존재 자체가 놀라워서 신이 인간을 만들어 냈다는 말을 믿고 싶을 때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진화론을 믿고 있다. 적어도 원숭이에서 인간으로 진화되었다는 말을 듣지 않고 있을 때는 그렇다.

하지만 인간이 물고기에서 진화가 되었다는 말에는 잠시 망설였다. 어딘가에서는 시작점이 있었겠지만 물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고 때로는 인류의 먹을거리가 되고 마는 물고기가 먼 선조라는 말에는 잠시 망설여졌다. 다윈이 인간의 존엄성을 뭉갰다고 비난하는 사람과 순간 비슷한 심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딸꾹질 같이 성가시고 대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는 흔적들을 생각해보면 그럴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에 잠기게 된다. 신이 사람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왜 불필요한 것들이 있을까. 처음부터 완벽하게 태어나면 좋겠지만 인간의 몸은 의외로 잔고장이 잦다.

거기에 고치기 힘든 질병도 많다. 그것이 모두 진화의 결과이며 아직 진화의 과정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것이 이 책 <내 안의 물고기>다. 저자 닐 슈빈은 고생물학자로 '틱타알릭'이라는 물고기 화석을 찾은 사람이다. 단순히 큰 물고기 화석이라면 그렇게 놀라울 것이 없었겠지만 '틱타알릭'은 놀랍게도 팔이 달려 있으며 '목'도 있다. 종과 종을 나누는 경계에 있는 생명체인 것이다. 배아 상태에서는 물고기, 닭, 인간 등 다른 종도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하지만 그 진화의 중간 단계는 빠져 있다고 한다. 마치 누군가 1000조각 퍼즐을 뒤엎은 다음 맞추고는 있지만 아직 테두리밖에 맞추지 못한 상태라는 것이다.

인류는 적절한 순간에 태어났겠지만 태어날 때까지 무수히 많은 진화의 과정을 겪어왔을 것이다. 철학의 근원에 있는 것도 존재에 대한 의문이라면 고생물학도 인간의 기원을 파고 들어간다. 어떻게 진화를 거쳐서 인간이 되었는지를 알려 하는 것이다. 그 잃어버린 고리가 바로 '틱타알릭'이라고 한다. '폐어'와 마찬가지로 무시무시한 자연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친 인간의 선조인 것이다. 모습을 보면 과연 인간의 선조인가 의아해지지만 닐 슈빈이 종을 나누는 기준과 각 과정의 인간과의 유사성을 말해주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점차 그 사실을 받아들이게 된다.

거기에 뼈보다 이빨이 먼저였다는 것처럼 흥미로운 사실이 간간히 더해지면서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몸이 생겨난 것은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많은 산소가 생겨난 이후에 일어난 일이고 먹기 위해서 뼈가 아니라 이빨이 먼저 생겨났다는 것이다. 그 이빨이 생겨나는 과정에서 비롯되어 뼈부터 깃털이 생겨날 수 있게 되었고 인간의 선조라고 할 수 있는 팔 달린 물고기 '틱타알릭'은 무시무시한 이빨과 덩치를 자랑하는 육식 물고기를 피해 물 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계속 이어지는 연쇄 고리의 끝에 서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단지 인간이 딸꾹질을 하는 것은 올챙이와 공통점을, 탈장은 물고기에서 진화한 흔적이고 말을 하게 되면서 질식의 위험에 시달리게 되었다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인간이 진화하지 않고 처음부터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병에 걸릴 일도 잔고장을 일으킬 일도 적었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미생물에서 진화를 거듭해왔고 활발한 물고기, 활발한 양서류, 활발한 파충류, 활발한 포유류를 거쳐 게으른 현대인이 되었다. 진화의 과정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해서 병을 얻기도 하고 아직 덜 진화된 부분으로 인해 딸꾹질 같은 성가신 경험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몸이 진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은 놀랍지만 처음부터 지금에 맞게 형성되었다면 좋았을 걸 하는 무리한 욕심도 남는다. 그리고 미래에는 어떤 진화를 거쳐 어떤 모습으로 남게 될 지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언젠가 지금의 인류의 모습을 지금 우리가 '틱타알릭'을 보는 시각으로 보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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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생거 사원 - 발췌 지만지 고전선집 392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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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여주인공들>에서는 다양한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이 잠시 쉬고 가는 민박집이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 속의 여주인공들은 대개 비슷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터라 그 곳에 살고 있는 소녀에게는 짜증거리 그 이상은 되지 못했다. 묘하게도 어떤 소설이든 여주인공이 방에 들어서면 여러 명의 남자들이 경탄의 눈으로 돌아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현실 같지 않은 외모에 무지가 사랑스러움으로 변환되는 여주인공들은 좋을 때도 있지만 너무 비슷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인 <오만과 편견>의 여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은 예외인 셈이다. 엘리자베스는 다아시와의 첫 만남에서 '봐 줄만 하다'라는 무례한 소리를 들었고 외모가 아닌 총명한 두뇌로 감탄의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제인 오스틴의 다른 소설 <노생거 사원>은 그런 면에서 아주 큰 예외인 셈이다. 오스틴의 재치와 풍자는 이번 소설에서 아주 빛을 발한다. 오스틴은 <노생거 사원>의 여주인공 캐서린 몰랜드를 묘사하면서 아예 캐서린이 여주인공답지 않은 평범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후에 가꿔서 가장 예쁜 시기에도 '이제 거의 예쁘다'라는 소리를 듣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두뇌 쪽은 어떨까. 말솜씨로 고집불통 다아시를 압도하던 엘리자베스 베넷 수준을 떠올렸다면 기대를 꺾는 것이 나은 수준이었다. 보통의 여주인공들이 추종자를 줄줄 달고 다녀야 했다면 캐서린 몰랜드 양의 일상은 고요 그 자체였다.

한적한 시골 생활을 하고 있었고 특별한 가난도 특별한 풍요도 없었다. 그렇다고 어머니가 그녀를 낳으면서 돌아가셨다는 비극적인 출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위로 오빠가 셋, 아래로도 동생들이 여섯인 10 남매였다. 전부 사이도 좋았고 몰랜드 가족은 건강했다. 이 여주인공답지 않은 평범한 숙녀가 굳이 독특한 점이 있다면 '망상'이었다. 고딕 소설을 많이 읽어서 낡은 성이나 사원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외모, 잘 속는 머리 어느 것 하나 여주인공답지 않은 캐서린이었지만 그녀가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면 친절하고 따뜻한 마음씨였다. 우둔한데가 있었지만 옳고 그름을 분간할 줄은 알았다.

그런 캐서린에게 달콤한 봄날이 찾아온다. 옆집의 지주 앨런 부부가 젊은 숙녀인 캐서린을 데리고 휴양지인 바스로 간 것이다. 앨런 부인은 지나치게 치장에 신경 쓰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좋은 사람이었고 즐겁게 말벗이 되어주는 젊은 숙녀에게 사교계의 즐거움을 선사하기로 결심한다. 그렇다고 캐서린이 파티장에 나타났을 때 모든 신사들이 주목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어서 캐서린은 따분한 시간을 보낸다. 다만 춤이 끝나자 두 명 정도의 신사가 그녀를 예쁜 소녀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그녀의 마음은 다소 우쭐해졌다.

그녀의 일상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틸니씨가 등장하고 이사벨라 소프라는 젊은 숙녀를 만나면서 부터였다. 그 때부터 그녀의 일상은 움직인다. 그렇다고 해서 소용돌이 정도는 아니고 배 위에서 멀미하는 정도 수준의 흔들림이었다. 오스틴의 작품은 거의 읽어보았지만 노생거 사원은 미처 읽어보지 못했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읽고 나니 좀 더 빨리 읽어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오스틴의 재기발랄함도 그렇지만 주인공 캐서린 몰랜드의 우둔함까지 사랑스러웠던 것이다. 무엇 하나 감상 소설의 여주인공답지 않다는 묘사가 더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노생거 사원에 품는 그녀의 비정상적인 상상도 즐거웠다. 고딕 소설이었다면 방 어딘가에 비밀의 방으로 가는 통로가 있었겠지만 그녀가 묶게 된 노생거 사원의 실상은 하인들도 잔뜩 있는 활기찬 곳이며 현대적으로 잘 꾸민 곳이었던 것이다. 많은 편견들이 부서지는 순간을 보는 것도 오스틴이 소설을 하찮게 여기는 시각들을 비난하는 순간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로 절묘하게 재구성된 <제인 오스틴의 미로>에서는 오스틴의 다른 작품들에 등장하는 여주인공들이 엘리자베스 베넷을 비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녀의 후광에 밀려 자신들이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스틴의 재치로 인해서 이번 <노생거 사원>의 캐서린 몰랜드도 엘리자베스 베넷 못지않았다. 설사 그녀의 외모나 교양 수준이 여주인공답지 않았다 해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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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렌지비치 - 꿈꾸던 삶이 이루어지는 곳
앤디 앤드루스 지음, 강주헌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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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가 아니고 아래를 보면서 살라지만 항상 만족할 줄 모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연봉의 만족도는 우습게도 친구들 사이에서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한다. 적은 연봉이라도 자신이 어울리는 무리 속에서 높은 수준이라면 만족하지만 1억이 넘는 억대 연봉이라도 친구들이 그 배를 번다면 불만을 품게 된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창 시절 들은 이야기 중에서 이런 것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부자인데도 항상 자기 집은 가난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주변의 집은 대지만 1천평이 넘는데 자기 집만 1백평이라 동네에서 무시당한다는 것이다.

아직 이 한 몸 누일 땅조차 내 명의로 된 것이 없는 입장에서는 기막힌 이야기였다. 상대적 박탈감이 자신을 가난하게 한다면 만족이야말로 행복으로 가는 한 걸음일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관점을 바꾸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흘러흘러 오렌지 비치까지 흘러들어온 사람들은 각자의 고통을 안고 있었다. 아름다운 마을, 평화로운 사람들이었지만 누군가는 밤중에 일어나 걱정거리에 분통을 터뜨리거나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주인공 앤디 역시 그랬다. 토굴 같은 임시 거처에서 자신의 불안한 미래에 불만만을 토했다. 그런 그 앞에 홀연히 존스가 나타난다.

노인임이 분명한 하얀 머리칼, 맑은 수정처럼 파란 눈, 나이도 인종도 짐작할 수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피부색은 묘해서 보는 관점에 따라 까맣게 그을린 백인, 흑인, 히스패닉, 동양인 등 어떤 인종으로도 보였다. 존스는 자신을 친구처럼 대하라면서 분노로 가득 찬 앤디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는 앤디에게 낡은 세 권의 책을 내민다. 역경을 딛고 성공을 이룬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앤디는 책을 읽고 조금씩 불만이 아니라 만족을 느낄 줄 알고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으로 변해간다. 그렇게 2백 권의 책이 모여 <폰더 씨의 위대한 하루>를 지은 지금의 앤디 앤드루스가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를 변화시켰다는 존스의 이야기는 실제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지만 안에 들은 이야기는 무척 인상적이었다. 관점이 틀려서 싸우던 부부를 존스는 간단히 화해시킨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서 이혼을 요구한 상태인데도 그랬다. 존스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하지만 그 표현의 방식이 엇갈려 있기 때문에 전해지지 않은 것일 뿐이라고 답한다. 사람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은 네 가지가 있다고 한다. 행동과 배려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 칭찬의 말을 빌리는 것, 스킨십을 통한 것,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중요시하는 것까지 천양지차라는 것이다. 그들이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줘야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즉, 상대의 관점으로 사랑해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그런 식으로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많이 놀랐다.

또한 사람들의 대부분의 불안과 걱정은 그 사람의 머릿속에서만 존재한고 한다.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떨어질 걱정은 아니지만 걱정을 위한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걱정을 떨치기 위해서는 객관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자신의 걱정을 무시만 하려고 들면 그 걱정은 멀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 집요하게 달라붙는다. 그런 걱정조차도 너무 똑똑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고 존스는 말한다. 그러므로 논리적으로 판단해서 걱정을 떨치라는 것이다. 정말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만약 일어난다면 어떻게 대처할지 생각해보라는 것이다.

그 외에도 이제 자신이 늙어 쓸모가 없다고 느낀 여인에게 존스가 한 말이라든지 함께 늙어갈 수 있는 결혼 상대자를 고르는 법, 일에 있어서 사소함의 중요성처럼 인생 속에서 놓치기 쉬운 행복의 열쇠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처음 책을 집어 들어서는 디자인이 예쁘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제는 안에 담긴 내용 쪽에 더 관심이 간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 자신이 꿈꾸던 삶을 이룬다는 것 의외로 간단할 지도 모르겠다. 관점을 바꾸면 실패도 없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간단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짓누르고 있던 실패도 고통도 실은 별 것 아닌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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