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소녀
델핀 드 비강 지음, 이세진 옮김 / 김영사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과의 사이에서 부대끼며 살아가다보면 어떤 부분은 마모된 것 같은 감각을 느낀다. 그것은 무뎌진 것인지 단단하게 성장한 것인지 알 수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서로를 변화시킨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좋은 성장일 수도 있고 서로를 증오하는 나쁜 변모일 수도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성장하며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그 가운데 사람과 부딪히며 변해간다. 만화 <백귀야행>에 초혼술을 하려면 3년간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있었다. 사람과의 소통의 도구인 말을, 사람 사이에서 살면서 하지 않기는 정말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단절을 견디지 못해 다시 불러내려는 사람에게 주변 모든 사람과의 단절을 3년 동안 견뎌야 해낼 수 있는 술이라는 것 자체가 초혼술의 불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침묵이 무겁듯이 사람은 단절을 견디지 못한다. 단절의 시간 동안은 변화하지 않은 자신만을 계속 돌아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의로 그리고 타의에 의해 단절된 천재 소녀 루는 또 다른 단절의 시간 속에 살아가는 홈리스 소녀 노와 교류하게 되었다. 노에게 손을 내밈으로써 단절된 자신을 도왔던 것이다. 루가 노에게 집착에 가까운 애정을 느꼈던 것은 그때문이었을 것이다. 처음 루와 노가 만났던 것은 기차역에서였다. 루는 영화 속에서나 보았던 이별의 감정이 흘러 넘치는 기차역에서 사람들을 관찰한다.

아이큐가 160이라 또래보다 월등히 뛰어난 이해력을 가지고 있던 루는 자신의 재능으로 인해 고립된다. 자신의 나이에 맞는 수업에 들어가면 지루해서 견딜 수 없었고 몇 번의 월반을 거듭하다보니 고등학생 속에서 수업을 듣는 꼬마가 되어 있었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급우들과 쉽사리 어울리지 못했고 친구도 없었다. 그나마 학급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는 뤼카만이 그녀에게 다가왔다. 집에 가면 우울증에 빠져 정상 생활을 할 수 없는 엄마와 두 사람을 억지로 견디고 있는 아빠와 마주해야 했다.

그런 마당에 태연히 물건을 빼앗아 가는 강렬한 개성의 홈리스 소녀 노의 출현은 루에게 충격이었다. 우울의 늪,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백과사전을 외우고만 있던 루는 세상물정에 해박한 노가 놀랍기만 했다. 첫 만남은 강렬했지만 짧게 끝났고 루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그 만남이 이어졌던 것은 루가 노숙자에 대한 발표 과제를 맡으면서 부터였다. 루는 노에게 허락을 구하고 인터뷰를 진행한다. 어린 나이에 매번 술을 마시는 노, 그런 노에게 잠시나마 따뜻한 공간과 음식을 나누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루의 즐거움이었다. 초반에는 노가 두려웠지만 상처 받은 두 소녀는 서로에게 끌린다.

어린 왕자가 여우를 길들이듯이 루는 노와 친해진다. 동생 타이스가 죽은 이후 잠들어 버린 채 깨어나지 않은 것 같은 엄마를 둔 루는 노의 분노를 슬픔을 이해하려 한다. 최소한 엄마처럼 자동인형처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노는 살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반면 노의 입장에서 자신보다 몇 살 어린 루는 좀 특이한 존재였다. 루와 대화를 하는 동안 배를 채울 수 있고 따뜻한 공간에 있을 수 있다라는 이점도 있었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시선으로 보지 않는 특이한 여자애에 호기심이 생겼던 것이다. 그 만남이 어떻게 끝날 지 알 수 없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다가간다.

발표가 끝나자 두 사람이 '공식적으로' 만날 이유는 사라진다. 루는 성공적으로 발표를 끝내지만 노를 찾아 나선다. 하지만 노는 기차역 앞에서 사라진지 오래였다. 루는 자신이 여우를 길들인 것인지 자신이 길이 든 여우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노를 찾아 나선다. 두 소녀는 서로를 변화시키고 성장해나간다. 그 성장의 끝에서 무엇을 발견하게 될 지 알 수 없었지만 루는 노의 손을 놓지 않는다. 천재지만 소외된 소녀의 시각으로 본 사회는 어둡다. 가난하고 추운 겨울의 세상인 것이다. 하지만 그런 루는 노에게 손을 내민다. 단절의 세계에서 소통의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그녀가 성장하려 한다는 증명이었을 것이다. 노숙자, 빈곤, 도시의 고독까지 사회문제를 섬세하게 그려낸 성장 소설이라 보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독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는 않지만 그 희망의 꽃이 과연 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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