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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ㅣ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평점 :
고등학교 3학년 때 반의 위치는 2층이었다. 1학년이 4층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거리로 교실에 올라가 공부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심지어 교무실 바로 위에 위치한 교실이어서 조금만 떠들어도 당장 3학년 학생 주임을 맡고 있던 담임 선생님이 뛰어 올라 오셨다. 공부만 하면 모든 것에 면죄부를 받는 고3 시기는 갑갑한 동시에 자유로웠다. 공부를 제외한 다른 아무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놀랍도록 뻔뻔한 때였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시기였지만 한 편으로는 이 시기도 언젠가 추억으로 회상할 날이 오게 될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교정에 나갔다. 소화시킬 겸 산책을 할 생각이었지만 곧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일로 변질되었다. 당시 대학과 관련한 소문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귀신을 보거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을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으면 대학에 간다는 것이다. 근거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열을 올렸다. 화단 울타리에 기대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는 건 좀 묘했다. 그 때 '언젠가 이게 추억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실제로 그게 고3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경시 대회나 수시 면접을 보러 가서 떤 일 등 당시로는 더 강렬한 기억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은 어둠 속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고 교정에서 떨어지는 잎을 잡겠다며 뛰어다니던 친구들의 모습만 반짝거리는 기억으로 남았다. 엉뚱하지만 소중한 기억, 그런 반짝거리는 기억의 조각 같은 것이 이 책 <닌자걸스>다. 닌자걸스의 주인공 은비, 지형, 소울, 혜지 4명은 나름의 고민을 품고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부모님에게 휘둘리는 인생이란 것도 한몫했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자식의 인생도 내 인생'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나온다. 언젠가 부모와 자식이 분리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부모와 자식은 유난히 밀착되어 있다. 거기에 중동사 교수님은 시어머니의 '착하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어른의 착하다는 말은 당신의 뜻대로 잘 따라준다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계속 듣고 있자면 착하지 않은데도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자신을 억누르고 착하게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해 오싹하다고 했다.
그래서 <닌자걸스>의 네 명은 착하기를 거부한다. 부모님의 기대에 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꿈을 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는 아니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바도 알고 공부도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머리와 자신이 품은 꿈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자 살짝 고개를 돌린다. 아역 탤런트 출신이지만 살이 찌자 번번이 오디션 테스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은비, 늦둥이라 과보호의 대상이며 키가 작아 고민인 소울,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만 모란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지형, 모든 게 완벽하지만 전교 꼴찌를 달리는 혜지까지 이들 엉뚱소녀 4인방은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 장애를 부각시키는 대상이 바로 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심화반인 '모란반'이다. 성적이 전부인 것 마냥 열등감을 심화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이제 이 네 명은 모란반 폐지를 위한 공작에 돌입한다. 등장인물도 그렇지만 그리 무거운 분위기의 성장소설은 아니었다. 현실의 한 토막을 잘라낸 것 같아 회상에 잠기게도 되고 그들의 고민에 공감도 갔다. 중반부에 다소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마지막 부분의 깔끔한 마무리가 그런 느낌을 가시게 해주었다. 주변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계속 풍선처럼 흔들려야 하는 시기가 십대라면 역시 추억은 할지언정 결코 다시 십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