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바조 : 극적이며 매혹적인 바로크의 선구자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 12
로돌포 파파 지음, 김효정 옮김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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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뭉크는 오랫동안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화가로써의 명성을 누렸으며 장수했다. 그럴 수 있었던 데에는 그가 자신이 가진 불안을 모두 화폭에 쏟아 넣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그는 건강하게 살 수 있었지만 동시에 그의 그림은 그의 심상을 드러낸 것이 되었다. 어지간한 포커페이스의 소유자가 아니고서는 우울한 날에 내내 웃고 있기 힘들다. 하물며 온 정신과 재능을 쏟아 부어야 하는 작품에 그 사람의 정신 상태가 반영되지 않기는 어렵다.

카라바조의 그림을 처음 본 감상도 그랬다. 이런 그림을 그린 사람이라면 분명 어느 틈에 있어도 두드러진 개성을 드러내며 다소 공격적 성향이 짙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봤던 그림의 제목은 '성 토마의 불신'이었다. 예수님이 살아 돌아왔음을 믿지 못하고 창자국에 기어이 손가락을 찔러 넣는 남자가 그려져 있었다. 의심하는 표정 정도가 아니라 상처를 기어이 헤집으며 확인하는 남자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거기에 성자를 거칠은 하층민처럼 그렸다는 설명까지 이어지자 호기심이 일었다.

당시로도 충격적인 그림을 과감하게 표현해낸 화가의 삶이 이색적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그림으로 표현해낸 개성의 소유자라면 그 개성은 카라바조에게 걸림돌로 작용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 <카라바조>를 보면 그 예측은 대강 맞아 들어간다. 그는 화가로써의 재능으로 인해 대성하지만 동시에 수많은 적을 만들었고 그가 품은 폭력성으로 인해 몰락했다. 카라바조의 이름은 미켈란젤로로, 그를 극찬한 자는 같은 이름의 사람에게 비견될 만하다며 극찬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천재란 평가를 받는 걸 감안하면 후한 평가였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카라바조의 재능이 거장의 그것임은 분명했다. 색의 사용에 있어서도 빛의 사용에 있어서도 그렇지만 그의 그림이 주는 극적 긴장감과 압도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림을 주문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카라바조의 강렬한 개성이 양날의 검이었던 것 같다. 명성이 드높아져 그의 그림을 사려는 자가 많았으나 동시에 그림이 거절당해 같은 내용을 다시 그려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보수적인 고객의 입장에서 그의 재능은 가치가 있었지만 그의 개성은 너무 강렬해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 하기야 그의 작품 중 폭력성이 처음으로 표출된 '유딧과 홀로테르네스' 같은 경우 부담스럽기는 하다. 게다가 카라바조는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열을 올릴 만한 사항들을 과감히 무시하고 지나가는 면이 있었다. 그의 일생과 작품을 함께 보면서 가장 당혹했던 것은 몰락이 살인으로 인해 시작되었다는 부분이었다.

정치 싸움에 휘말려 살인을 하고 도피해 추방령이 내렸고 몰타 기사단에 입단해 사회 지위를 유지하나 했다. 그는 그 곳에서도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려 도망친다. 거장의 붓을 그가 품은 검이 부러뜨린 것이다. 많은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생애 초기에서 극적인 말년에 이르기까지 강렬하게 살아간 카라바조의 삶은 할 말을 잃게 만들었다. 그의 그림만큼 실제 인생도 강렬했던 것이다. 그의 그림은 집에 걸어두고 싶은 종류의 그림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명화의 증거가 그 압도감이라면 카라바조의 그림은 그 가치가 충분하다. 또한 그런 그림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카라바조의 재능이 큰 몫을 차지하지만 그의 강렬한 인생이 반영된 탓도 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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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수기업열전 - 국내 최강 기업의 라이벌전 그리고 비하인드스토리
정혁준 지음 / 에쎄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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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을 하는 것도 좋지만 가끔 혼자서 하면 완급을 조절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렇기에 마라톤을 할 때 보면 우수한 선수에게는 페이스를 조절하는 사람이 함께 달린다. 그 사람이 함께 뛰어서 선수가 제 기량을 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흔치 않게 페이스를 조절하는 사람이 그대로 달려가 우승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대체로 함께 달려줄 상대가 누구인지가 중요한 경우가 많다.

때로는 자신의 기량보다 한참 위인 사람을 라이벌로 보는 경우도 있다. 그 사람을 목표삼아 자신을 끌어 올리는 것이다. 최고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도 자신에게 무서운 기세로 다가오는 사람이 자극제가 된다. 나태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누구와 경쟁 관계에 있느냐 어떤 관계를 형성하느냐가 중요하다. 이것은 인간 관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기업간에도 중요하다. 서로의 등을 보고 달려 기술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도 하고 잘하던 부분을 더욱 특화시켜 명실공히 최고의 자리에서 군림하기도 한다.

이런 기업 간의 경쟁 관계와 그에 따른 발전을 읽어낸 것이 이 책 <맞수기업열전>이다. 맞수기업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삼성과 LG를 필두로 하여 경쟁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여러 기업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1등 기업과 2등 기업으로 나뉘어 설명하고 있는데 1등 기업은 왜 1등 기업이 되었는지 보통 후발 주자로 뛰어든 2등 기업이 어떻게 선주자로 나선 기업의 영역을 빼앗아갔는지에 대한 설명이 흥미로웠다.

요새 많이들 치열한 시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블루오션을 열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실 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엄청난 자금력이 필요하고 시장을 만들어야 하는 처지라 실패할 위험도 큰 것이다. 그래서 2등 기업으로 묘사된 기업 쪽이 조금은 영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장이 열린 참에 들어가 자리를 뺏는 것도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1등 기업보다 한 가지만 낫게 하면 그 점유율을 빼앗을 수 있다는 말이 떠올랐다. 1등과 2등이 싸울 때 전혀 다른 전략을 사용하는 3등과 같은 맥락이었다.

반대로 1등 기업 쪽에서는 다른 기업이 시장에 들어오는 것이 점유율을 내릴 수는 있지만 전체 시장이 넓어지는 효과를 가져 올 수 있으므로 이익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맞수야 말로 발전에 가장 필요한 동반자인 것이다. 옥션과 G마켓처럼 따로 또 같이 성장하는 곳이 있고 다음과 네이버처럼 엎치락뒤치락 하는 곳이 있는 등 상태는 다양하지만 맞수 기업의 이야기는 그렇기에 발전이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수긍을 자아냈다.

언뜻은 LG가 전자 분야에 들어와 삼성을 위협한 것 같지만 덕분에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색상은 뛰어나지만 그만큼 눈에 피곤한 제품과 색은 좀 약하다 부드러운 제품처럼 다양한 제품을 만날 수 있다는 강점도 있었다. 더구나 책 <커넥션>에서 보면 하나의 발명은 더 큰 발전을 낳는다. 이 책 <맞수기업열전>에서도 언급된 기업이 또 다른 기업을 잉태하게 하기도 하고 전혀 다른 발전을 낳기도 한다. 결국 혼자서 어느 정도의 속도를 달려 나갈 수 있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달리면 어떤 전략을 쓰느냐도 중요하다. 그런 경쟁이 다양한 발전을 가져 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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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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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닌자걸스>에는 4명의 엉뚱 소녀가 등장한다. 그들이 시험공부를 하는데 시간 내에 시험범위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자 실없는 제안을 한다. 텔레파시를 써보자는 것이다. 각자 잘하는 과목이 있으니 그 과목을 잘하는 사람이 문제를 다 푼 후 답안을 나머지 3명에게 송신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텔레파시를 연습한다. 숫자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연습이었는데 첫 번째 시도에서는 모두 같은 숫자를 말한다. 이후 그 때가 유일하게 마음이 맞은 순간이었다.

텔레파시로 컨닝을 하겠다니 엉뚱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지만 가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되는 때가 있다. 머릿속으로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같이 있는 상대가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가 그렇다. 갑자기 그 노래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비슷한 환경 아래 비슷한 외부자극을 받아 일어난 일일 테지만 가끔은 현실이 소설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 <픽션>에서 만큼은 현실이 소설을 못 쫓아간다.

<픽션>의 전체 제목은 <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 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이다. 제목만 읽어도 어처구니없지만 이런 제목인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한 개의 서문과 열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단 책의 서문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시리즈의 저자 레모니 스니켓이 썼다고 한다. 그 내용은 책 안의 소설들은 어느 것 하나 지루한 것이 없으므로 지루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짤막하게 지루한 이야기들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이것도 재미있다.

열 편의 단편 소설 역시 닉 혼비, 닐 게이먼, 조너선 사프란 포어처럼 명성으로도 기발함으로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작가들이 쓴 터라 어느 것 할 것 없이 재미있다. 그래서 하나를 고를 수 없어서 책의 제목에 다 넣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몇 가지만 살짝 살펴보면 들판 하나만한 작은 나라의 축구 이야기 (닉 혼비), 화재를 겪은 이후 지나치게 소심해진 남자(조지 손더스), 여름 캠프에서 벌어진 일(켈리 링크), 한심한 도적을 속여 넘기는 묘안(리처드 케네디), 고양이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소년(샘 스워프)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던 것은 책 제목의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버린 부모'에 해당하는 <그림블>이었다. 그림블은 열 살 소년의 이름으로 꽤 영리한 편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부모는 그 영리함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소년만 집에 두고 5일 간의 여행을 떠난다. 이 모든 사실은 집안 곳곳에 붙은 메모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소년은 당황하지 않고, 아니 당황한 것치고는 침착하게 메모의 말을 따른다. 이 단편이 독특했던 것은 소년을 돌봐주어야 할 대부분의 어른들이 너무 바쁜 탓에 하나같이 메모만 남겨두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현대 도시임에도 이상한 나라에 그림블만 홀로 남은 것 같은 감흥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그림블>의 작가 이름은 클레멘트 프로이트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손자라고 한다. 그 외에도 하나같이 쟁쟁한 작가군단의 단편집이라 각 단편을 읽을 때마다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하느라 바빴다. 하나하나 재미있었지만 그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 분위기는 동화 같은 느낌이 강했다. 아이들이 자기 전에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너무 재미있어서 쉽게 잠이 들지 않거나 듣자마자 무섭다고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선에서겠지만 말이다. 역시 아직은 현실보다 소설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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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근 돌의 도시 - 생각이 금지된 구역
마누엘 F. 라모스 지음, 변선희 옮김 / 살림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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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은 그것이 가진 정보 전달력에도 불구하고 바보상자라는 비난을 들어왔다. 그도 그럴 것이 뿌려주는 정보의 양에 비해 흡수되는 양이 적고 비판적 상상력을 키워줄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반면 책이나 음악은 상상의 여지가 있어 자유롭다. 읽거나 들을 때조차 다른 생각들이 끼어든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금지된 곳이 있다면 어떨까. 비주얼 비전이라는 텔레비전에서 방송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사실이 되어버리는 세계 말이다. 책이나 음악 같은 것은 모두 금지되어 있으며 생각은 극소수를 위한 세계, 이 책 <둥근 돌의 도시>는 그런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묘사된 분위기가 밝은 것도 있지만 언뜻 보기에 그리 나쁜 느낌은 아니었다. 책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 책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생지옥이지만 전쟁도 범죄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생각은 비주얼 비전 프로그램 제작자나 세계 대통령에 한한 것으로 보였다. 그들도 그리 사려 깊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멍청한 양 떼가 몰려다니는 평화로운 세계였다. 거리는 잘 정비되어 있었고 비주얼 비전에 보도되면 즉시 유행이 되었으며 대부분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거리를 한 남자가 달려간다. 정확하게는 내리막길이었다. 남자는 달리면서 환희에 차 있었다.

그 남자가 바로 이 책 <둥근 돌의 도시>의 주인공 카르멜로였다. 남자는 몇 가지 점을 제외하면 평범한 말단 공무원이었다. 하나는 내리막길을 보면 전속력으로 달리지 않고는 못 배긴다는 점이었다. 덕분에 몇 번이나 차에 치여서 병원 신세를 진 터였다. 그럼에도 내리막길을 보면 달리지 않고는 못 배겼고 달리는 동안은 행복의 절정을 느꼈다. 그런 그가 정신병원에 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버지가 '행성 간 업무부' 장관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카르멜로는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고민 중인 연인도 있었으며 내리막길을 볼 때 마다 요리조리 장애물을 피해가며 달릴 수 있었다.

사거리마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차를 능숙히 피해가며 카르멜로는 내리막길을 달려간다. 그런데 하나 서글픈 점은 내리막은 끝나는 곳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 점이 늘 아쉽다는 생각을 하며 카르멜로는 어떤 여자를 지나친다. 낯이 익은 여자였다. 그에게 말을 걸려는 것처럼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그는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으므로 곧 멀어졌다. 이제 그의 시야에 한 사람이 들어온다. 자신의 앞을 달리고 있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자신보다 먼저 내리막길의 끝에 도달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카르멜로는 달리는 속력에 박차를 가한다. 그러자 경쟁자를 따라잡을 수 있었는데 치졸하게도 앞서 가던 남자는 들고 있던 핸드백으로 그를 밀치려 들었다.

남자가 왜 핸드백을 들고 있을까에 대한 의문을 뒤로 하고 카르멜로는 남자의 공격에 방어한다. 그러다 우연히 핸드백을 빼앗은 후 차에 치이고 만다. 주의가 흐트러져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평소에도 몇 번씩 치었던 차종으로 궁합이 안 맞기도 했다. 카르멜로는 익숙하게 병원에서 깨어나는데 이때부터 그를 둘러싼 세상이 변해 있었다. 말을 걸었던 것 같은 여자는 세계 대통령이었고 카르멜로가 되찾은 핸드백의 주인도 그녀였다. 앞서가던 남자가 멸종된 줄 알았던 범죄자였던 것이다. 이 일로 카르멜로는 영웅이 된다.

비주얼 비전에서는 그에 대한 것이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은 무분별하게 그가 얼마나 잘생기고 매력적이며 뛰어난 영웅인지를 생각 없이 받아들인다. 심지어 세계 대통령조차 그랬다. 이 일은 파장을 더해가고 대통령 자리를 노리는 자들은 이를 기회로 이용한다. 세계 대통령만이 가지고 있는 둥근 돌 안에는 금지된 책이 있었고 이것을 둔 쟁탈전은 점차 열기를 더해간다.

책과 음악이 금지된 세계에서 둥근 돌을 둔기로 쓴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음악은 고문의 수단이 되기도 하고 나오는 사람들은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본인들이 진지해서 더 우스운 코미디 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노리는 둥근 돌이 살인무기로 사용된다는 점, 카르멜로를 비롯해서 우스운 인물들과 헛웃음을 불러일으키는 반전이 즐거웠다. 더구나 이야기가 끝나는 줄 알았는데 에필로그, 에필로그 후의 이야기, Fin이라고 계속 이야기를 덧붙여 끝없이 이야기를 늘이는 작가의 재치에 한층 유쾌했다. 가장 우스웠던 점은 과장되긴 했지만 지금의 현실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점이었다. 오히려 현실에는 전쟁과 범죄가 버젓이 자리하고 있으니 현실이 더 나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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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자걸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7
김혜정 지음 / 비룡소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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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3학년 때 반의 위치는 2층이었다. 1학년이 4층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최소거리로 교실에 올라가 공부하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심지어 교무실 바로 위에 위치한 교실이어서 조금만 떠들어도 당장 3학년 학생 주임을 맡고 있던 담임 선생님이 뛰어 올라 오셨다. 공부만 하면 모든 것에 면죄부를 받는 고3 시기는 갑갑한 동시에 자유로웠다. 공부를 제외한 다른 아무 것에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놀랍도록 뻔뻔한 때였다.

시간이 멈춘 것만 같은 시기였지만 한 편으로는 이 시기도 언젠가 추억으로 회상할 날이 오게 될 거라는 생각도 했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친구들과 교정에 나갔다. 소화시킬 겸 산책을 할 생각이었지만 곧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을 잡으러 뛰어다니는 일로 변질되었다. 당시 대학과 관련한 소문이 두 가지 있었는데 귀신을 보거나, 나무에서 떨어지는 잎을 땅에 떨어지기 전에 잡으면 대학에 간다는 것이다. 근거도 없는 이야기였지만 나를 제외한 모두가 열을 올렸다. 화단 울타리에 기대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친구들을 보는 건 좀 묘했다. 그 때 '언젠가 이게 추억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실제로 그게 고3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었다. 경시 대회나 수시 면접을 보러 가서 떤 일 등 당시로는 더 강렬한 기억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런 것들은 어둠 속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고 교정에서 떨어지는 잎을 잡겠다며 뛰어다니던 친구들의 모습만 반짝거리는 기억으로 남았다. 엉뚱하지만 소중한 기억, 그런 반짝거리는 기억의 조각 같은 것이 이 책 <닌자걸스>다. 닌자걸스의 주인공 은비, 지형, 소울, 혜지 4명은 나름의 고민을 품고 있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부모님에게 휘둘리는 인생이란 것도 한몫했다.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에서 '자식의 인생도 내 인생'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나온다. 언젠가 부모와 자식이 분리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부모와 자식은 유난히 밀착되어 있다. 거기에 중동사 교수님은 시어머니의 '착하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고 했다. 어른의 착하다는 말은 당신의 뜻대로 잘 따라준다는 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말을 계속 듣고 있자면 착하지 않은데도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자신을 억누르고 착하게 행동하는 자신을 발견해 오싹하다고 했다.

그래서 <닌자걸스>의 네 명은 착하기를 거부한다. 부모님의 기대에 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꿈을 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은 소위 말하는 문제아는 아니다. 부모님이 걱정하는 바도 알고 공부도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는 머리와 자신이 품은 꿈이 다른 방향을 가리키자 살짝 고개를 돌린다. 아역 탤런트 출신이지만 살이 찌자 번번이 오디션 테스트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은비, 늦둥이라 과보호의 대상이며 키가 작아 고민인 소울,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만 모란반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지형, 모든 게 완벽하지만 전교 꼴찌를 달리는 혜지까지 이들 엉뚱소녀 4인방은 부모님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고민한다.

그 장애를 부각시키는 대상이 바로 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심화반인 '모란반'이다. 성적이 전부인 것 마냥 열등감을 심화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이제 이 네 명은 모란반 폐지를 위한 공작에 돌입한다. 등장인물도 그렇지만 그리 무거운 분위기의 성장소설은 아니었다. 현실의 한 토막을 잘라낸 것 같아 회상에 잠기게도 되고 그들의 고민에 공감도 갔다. 중반부에 다소 지루한 감도 없지 않지만 마지막 부분의 깔끔한 마무리가 그런 느낌을 가시게 해주었다. 주변의 기대와 자신의 꿈 사이에서 계속 풍선처럼 흔들려야 하는 시기가 십대라면 역시 추억은 할지언정 결코 다시 십대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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