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 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
닉 혼비.조너선 샤프란 포어.닐 게이먼.레모니 스니켓 외 지음, 이현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소설 <닌자걸스>에는 4명의 엉뚱 소녀가 등장한다. 그들이 시험공부를 하는데 시간 내에 시험범위를 끝낼 수 없을 것 같자 실없는 제안을 한다. 텔레파시를 써보자는 것이다. 각자 잘하는 과목이 있으니 그 과목을 잘하는 사람이 문제를 다 푼 후 답안을 나머지 3명에게 송신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텔레파시를 연습한다. 숫자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연습이었는데 첫 번째 시도에서는 모두 같은 숫자를 말한다. 이후 그 때가 유일하게 마음이 맞은 순간이었다.

텔레파시로 컨닝을 하겠다니 엉뚱하기 짝이 없는 발상이지만 가끔 그런 엉뚱한 생각을 품게 되는 때가 있다. 머릿속으로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는데 같이 있는 상대가 그 노래를 부르기 시작할 때가 그렇다. 갑자기 그 노래가 떠올랐다는 것이다. 물론 비슷한 환경 아래 비슷한 외부자극을 받아 일어난 일일 테지만 가끔은 현실이 소설 같을 때가 있다. 하지만 이 책 <픽션>에서 만큼은 현실이 소설을 못 쫓아간다.

<픽션>의 전체 제목은 <픽션 ; 작은 나라와 겁나 소심한 아버지와 한심한 도적과 자식보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엄마와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버린 부모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새와 위험하지 않은 대결과 이상한 휴대 전화와 당신이 모르는 뉴욕의 비밀>이다. 제목만 읽어도 어처구니없지만 이런 제목인데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은 한 개의 서문과 열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단 책의 서문은 <레모니 스니켓의 위험한 대결> 시리즈의 저자 레모니 스니켓이 썼다고 한다. 그 내용은 책 안의 소설들은 어느 것 하나 지루한 것이 없으므로 지루한 사람을 위해 자신이 짤막하게 지루한 이야기들을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심지어 이것도 재미있다.

열 편의 단편 소설 역시 닉 혼비, 닐 게이먼, 조너선 사프란 포어처럼 명성으로도 기발함으로도 누구에게 뒤지지 않는 작가들이 쓴 터라 어느 것 할 것 없이 재미있다. 그래서 하나를 고를 수 없어서 책의 제목에 다 넣었다는 것이다. 그 내용을 몇 가지만 살짝 살펴보면 들판 하나만한 작은 나라의 축구 이야기 (닉 혼비), 화재를 겪은 이후 지나치게 소심해진 남자(조지 손더스), 여름 캠프에서 벌어진 일(켈리 링크), 한심한 도적을 속여 넘기는 묘안(리처드 케네디), 고양이보다 사랑받고 싶었던 소년(샘 스워프) 등이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재미있던 것은 책 제목의 '아이를 두고 페루로 가버린 부모'에 해당하는 <그림블>이었다. 그림블은 열 살 소년의 이름으로 꽤 영리한 편이었다. 하지만 소년의 부모는 그 영리함을 지나치게 신뢰한 나머지 소년만 집에 두고 5일 간의 여행을 떠난다. 이 모든 사실은 집안 곳곳에 붙은 메모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소년은 당황하지 않고, 아니 당황한 것치고는 침착하게 메모의 말을 따른다. 이 단편이 독특했던 것은 소년을 돌봐주어야 할 대부분의 어른들이 너무 바쁜 탓에 하나같이 메모만 남겨두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 있었다. 현대 도시임에도 이상한 나라에 그림블만 홀로 남은 것 같은 감흥을 주는 것이다.

심지어 <그림블>의 작가 이름은 클레멘트 프로이트로,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의 손자라고 한다. 그 외에도 하나같이 쟁쟁한 작가군단의 단편집이라 각 단편을 읽을 때마다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하느라 바빴다. 하나하나 재미있었지만 그 작가 특유의 분위기가 잘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전체적 분위기는 동화 같은 느낌이 강했다. 아이들이 자기 전에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너무 재미있어서 쉽게 잠이 들지 않거나 듣자마자 무섭다고 울음을 터뜨리지 않는 선에서겠지만 말이다. 역시 아직은 현실보다 소설이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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