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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펄 벅 지음, 정연희 옮김 / 길산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르트르는 '인생은 B(Birth)와 D(Death) 사이에 C(Choice)이다'라고 말했다. 삶과 죽음의 사이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는 말이다. 사람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고 사람의 삶은 수많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을 남기고 흘러간다. 하지만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그것에 대한 선택을 강요받을 때 사람들이 흔히 하게 되는 선택은 둘 중 하나다. 상황을 회피해 도망치거나 맞서는 것이다.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연민을 품어온 펄 S. 벅의 책 <새해>에서도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순탄한 결혼 생활을 해왔지만 한 통의 편지가 부부의 삶을 뒤흔든다. 얼마 후면 주지사에 출마할 것이고 부유한 집안, 아름다운 아내를 가져 세상 부러울 것이 없던 남자 크리스는 자신에게 온 한 통의 편지에 과거의 기억을 떠올린다. 현재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불리고 있는 그이지만 젊은 시절에는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었다. 로라와 결혼한지 3일 만에 입대하게 되었고 그가 가게 된 곳은 한국이었다. 전쟁에 가서 모든 일상과 결별을 하게 된 그는 큰 혼란에 빠졌었다.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것도 그랬지만 아예 다른 차원에 떨어진 것 마냥 다른 나라가 너무나 낯설었다.
아니 싫었다. 아내 로라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지만 과연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그 상황에서 한국 여자 수니야를 만나게 되었다. 댄스홀에 나타난 다른 여자와 다르게 수줍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크리스는 그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고 둘 사이에서는 아이도 태어났다. 하지만 그는 돌아왔고 돌아가겠다 약속했지만 결코 수니야에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의 아기가 소년이 되어 아버지를 찾는 편지를 보내 온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이었다.
정치인에게 스캔들은 치명적이었고 혼혈 아들의 존재가 어떤 걸림돌이 될지 알 수 없었다. 심지어 사생아였던 것이다. 아내에게조차도 어떻게 털어놓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크리스는 아내 로라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아이의 존재를 알린다. 혼자서는 감당하기에 벅찬 일이었기 때문이다. 해양 약학자인 로라는 충격을 받지만 하나의 결론을 내린다. 남편을 버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을 예전처럼 존경을 할 수 없으나 사랑하고 있었고 그가 없는 삶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로라는 낯선 땅 한국으로 아이를 만나러 가기로 한다. 그것도 혼자서였다. 아이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남편의 외도 상대인 수니야를 만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를 갖지 못한 자신, 하지만 저 땅 건너편에는 남편의 아이를 가진 여자가 있었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네 명이라고 할 수 있다. 참전 당시에 한국인 아내와 아들을 얻었으나 버리고 그 존재조차 잊고 살았던 남자, 남편에게 숨겨진 아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여자, 하염없이 떠나간 남자를 그리워한 여자 그리고 한국에서도 미국인에도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아이다.
각자의 입장을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변명 같이 느껴지고 편협한 시각이 담겨 있는 부분도 꽤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예전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그리려 한 부분이라던지 혼혈아가 느낄 슬픔 등이 마음을 끌었다. 한국에서는 미국인이고, 미국에서는 한국인이라면서 자신은 대체 누구냐며 울부짖는 아이의 말은 마음이 다 아파졌다. 그것을 점차 따뜻하고 끌어안는 로라의 모습은 사람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품은 시선이 느껴져서 마음이 따뜻해졌다. 네 사람은 각자의 선택을 한다. 그들의 선택은 각각의 결과를 남기고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삶과 죽음 사에서 수많은 선택 가운데 가장 어려운 선택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