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자 - 속수무책 딸의 마지막 러브레터
송화진 지음, 정기훈 각본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고등학교 시절 단짝 친구는 모녀 사이는 '애증의 관계'라고 말했다. 당시에는 그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학교에 가서 친구들이 엄마와 싸웠다는 표현을 쓸 때마다 기이하게 여겼던 나였기 때문이다. 부모와 싸울 수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부모한테는 일방적으로 '혼나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온순한 양처럼 산 덕분에 캠프파이어를 할 때마다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아이들조차도 이해 못했는데 모녀 사이가 애정과 증오가 교차하는 관계라는 말은 당혹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늦은 사춘기 비슷한 시기를 거치고 솜털만 한 반항심을 품게 된 지금은 그 말을 약간은 이해한다. 그리고 그게 자연의 순리라는 생각도 한다. 자식은 부모와 부딪히고 그들을 넘으려는 반항심을 품는다. 그런 식으로 성장을 하는 것이다. 알을 깨지 않으면 태어날 수 없는 새처럼 성장하기 위해서 부모와 부딪히는 일도 생긴다. 그 과정에서 분노나 증오처럼 부정적 감정도 싹트지만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애정은 그래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애증의 관계라는 말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 모녀 사이가 애증의 관계라는 친구의 말에 그대로 들어맞는 모녀가 있다. 영화 <애자>를 소설화한 책 <애자>의 주인공인 모녀다. 둘 다 억척스러운 면을 품고 있으면서도 섬세한 면을 잃지 않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닮은 꼴 모녀라는 생각도 드는데 정작 본인들을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가 답답할 뿐인 모녀였다. 딸인 애자는 애자대로 다리가 불편한 오빠만 감싸는 엄마가 짜증스러웠다. 억척 맞기 이를 데가 없는 엄마가 때로는 창피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반면 엄마는 엄마대로 딸이 마땅찮았다. 공부도 잘 하고 해서 기대를 해볼까 하면 툭하면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공부를 잘 해서 걱정이 없나 했더니 선생님이 대학을 못 갈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성적이 아니라 출석일수가 부족해서 졸업을 못 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비가 오는 날에는 학교를 빼먹고 바다에 가서 시를 썼다는 기가 막힌 딸인데다가 성격은 툭하면 울컥해서 싸움질을 일으키기 일쑤이니 속에서 천불이 일었다. 닮았지만 그래서 더 부딪히고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는 모녀관계였다.

능청맞은 사투리로 표현되는 그들의 모녀 관계는 때로는 웃음을 자아냈지만 평행선과도 같아서 접점이 없어보였다. 만나기만 하면 싸우지만 차마 그 손을 놓지는 못하는 관계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인 최영희가 암이 재발하면서 닿지 않을 것 같은 평행선은 하나의 선처럼 가까워진다. 어린 시절 부모는 신과도 같고 아이가 자랄수록 그들은 늙어가지만 자식의 입장에서는 부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누구나 죽는 걸 알지만 그 누구나에 자신의 부모는 들어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어른이 된 이후에도 마찬가지였고 말썽꾸러기 딸 애자는 혼란에 빠진다. 언제나 든든하게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던 엄마가 아프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은 땅이 꺼지는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처음에는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의 밑바탕이 드러날수록 눈물을 흘리게 되었다. 소설 속 애자의 어머니는 다른 누군가의 어머니일수도 자신의 어머니일수도 있었던 것이다. 모성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신화라는 말도 있고 엄마라고 모든 걸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자식으로써 부모와의 이별을 두려워해야 하는 입장에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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