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새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15
마르턴 타르트 지음, 안미란 옮김 / 들녘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사람의 생각은 구름과도 같다. 언뜻 보면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지만 막상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하면 안개처럼 흩어져 버린다. 그래서 초능력 중에 가장 말이 안 되는 것이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이라고 한다. 목적지를 향해 그냥 걸을 때조차 머릿속에는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그저 인식하지를 못 할 뿐이다. 오늘따라 거리에 사람이 많다거나, 눈이 부시다는 것부터 어제 본 책의 내용까지 온갖 것이 뒤섞인 생각이 반짝이다 스러지기 때문에 생각을 한 당사자조차 자신의 생각을 전부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런데 심지어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어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정확하게 찾아내는 능력이라니 과장도 그런 과장이 없다.

하지만 그렇기에 사람의 생각을, 심리를 그대로 묘사한 책이 흥미롭다. 사람의 뇌는 감정에 따라 휘둘리고 감정에 휘둘린 뇌는 그 생각까지 움직인다. 그런 사람의 심리를 묘사한 책인 <검은 새>는 그 중에서도 살인 용의자로 몰린 남자와 그 아내의 마음속을 끄집어낸다. 그런데 이 책을 끌어가는 이 두 사람의 행동과 생각은 묘한 데가 있다. 사건 자체는 간단한 편이다. 한 여자가 실종되고 내연관계로 보이는 남자가 용의자로 몰린다. 마침 두 사람이 다투는 것이 목격된 데다가 그 여자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남자였기 때문이다.

경찰은 실종된 채 나타나지 않는 여자가 살해된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선다. 그런데 용의자로 몰린 이 남자는 실험실의 연구원인데 기이한 것을 연구하고 있었다. 쥐가 서로 잡아먹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내고 있다는 것이다. 덕분에 굶주린 쥐를 잔뜩 가지고 있었고 경찰은 남자가 여자를 죽인 후 쥐에게 먹여 흔적을 없앤 것이 아닌가 궁금해 한다. 전대미문의 살해방식에 언론까지 들썩이고 남자는 정황증거뿐인데도 잡혀가 구금된다. 그제서야 아내는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지만 이내 마음을 추스르고 남편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모은다.

표면상으로는 그랬다. 하지만 이야기의 시작 자체가 내연녀인 제니를 바라보는 남편 토마스의 시각으로 시작된 데다가 사람의 생각을 읽어낸 책이 그렇듯 우물 안에서 하늘을 올려다 본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내에 대한 회의, 연인에 대한 욕망, 일상에 대한 무료함과 아이를 가지고 싶다는 간절함이 뒤섞인 채 그는 아내와 대화를 한다. 일상 속에서는 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못하는 남자지만 실험실에서는 쥐의 머리를 떼어내는 데 일말의 망설임도 보이지 않는 남자가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가능할 지의 문제는 읽는 사람의 마음도 복잡하게 만든다.

게다가 남편이 잡혀간 이후 혼자서 사건을 풀기 위해 나선 아내 레오니의 태도는 그런 심정을 더한다. 남편의 외도에 대한 분노와 충격,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비탄과 상황을 견디려는 강인함이 묘한 색채로 뒤섞이는 것이다. 레오니는 남편에게 편지를 쓸 때는 복수하고 싶은 마음과 억지로 밝게 있으려는 마음이 교차하면서 가식적인 편지를 쓰기도 한다. 반면 마음을 그대로 담으려 하는 일기에 쓴 수사일지는 모든 기대에 배신당한 여인의 비탄과 의혹이 솔직하게 드러난다.

읽으면 읽을수록 구름을 만지려 하늘에 올라갔으나 구름의 실체가 안개 같은 것이었음을 실감한 느낌이었다. 심리추리소설이라는 말에 맞게 세심한 심리묘사를 보이지만 초반은 우울하면서도 약간은 지루하게 전개된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가면서 깊이 있는 인물 묘사로 자리 잡힌 캐릭터들이 움직이면서 사건의 숨은 전말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상상 이상의 결말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실마리도 전부 제시되어 있어서 꽤 공정한 추리소설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의 생각의 한 뭉텅이를 베어 내어 글로 바꾼 것 같은 책이라 읽는 내내 누군가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원하는 정보만 읽어낼 수 있으니 흔치 않은 경험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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