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빛 매드 픽션 클럽
미우라 시온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정신을 판단할 때 보통 멀쩡함과 광기로 나눈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이고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멀쩡함이란 것은 얇은 막에 감싸인 것과도 같은 상태로 어떤 면으로는 지극히 부자연스러운 상태이기도 하다. 카오스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이 규칙적으로 떨어졌다고 판단하는 모양이 더 기괴한 경우이듯이 보통은 광기에 사로잡힌 것이 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생각의 흐름이라는 거대한 물을 얇은 막으로 둘러싸고 있는 것 같은 사람의 정신, 그 막이 터지는 순간 사람은 광기에 휩싸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막이 일정 정도를 넘은 충격에 터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광기만 남고 이미 새어나온 광기로 인해서 그 사람은 예전의 그 사람과 같을 수 없음에도 삶은 계속된다. 전쟁에 나갔다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면 그 사람들에게는 전쟁이 오히려 일상적이고, 평화로운 지금의 상태를 도리어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한다. 이미 폭력적 현실을 경험하고 그것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나면 평화라는 공백의 시간은 그들에게는 더없이 비정상적인 것이 되고 만다는 것이다.

이 책 <검은 빛>에서는 거대한 폭력에 노출되어 광기에 휘말리고 또 다른 폭력을 행사하면서 폭력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삶은 계속되지만 예전과 결코 같은 것은 아니다. 전쟁에 나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구는 것이다. 그들에게 결코 안식은 없고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는 '척'만 한다. 그 폭력에 휘말린 세 사람이 좀 더 그 여파에 시달리게 된 것은 그들이 살던 곳이 섬이라는 점이 한 몫을 했다. 많은 추리 소설의 배경으로 섬이 등장하기도 했던 것은 외부사람들에 대한 배타적 경계심, 섬사람끼리의 결속력을 드러내는 폐쇄성 때문이었다.

더구나 주요 등장인물인 노부유키, 다스쿠, 미카가 거대한 폭력에 휘말려 모든 것을 잃는 순간은 사춘기 무렵이다. 자신의 인격이 사춘기 시절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당시의 시각과는 상당히 다른 면으로 사물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어린 시절은 어른이 된 이후에 생각하기에는 비정상적이며 폐쇄적인 시간이다. 그런 시기를 섬에서 보낸 세 사람은 쓰나미로 인해 모든 것을 잃는다. 자신의 세계 전체가 휩쓸려 간 것이다. 그리고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거대한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희생자만이 남는다.

그들의 마음에는 각자 거대한 구멍이 생기고 이내 희생자는 가해자로 변한다. 폭력에 휩쓸린 자는 폭력에 익숙해지고 무감각해지며 그것을 일상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너무 큰 충격으로 인해서 도덕적 해이 상태에 빠진 탓도 있었다. 그렇게 충격적 시간을 보낸 세 사람은 성인이 되고 다시 조우하게 된다. 제목에서 느껴지듯이 이 책에서 구원은 없다. 그저 폭력에 희생되고 폭력을 휘두르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전혀 관계 없어보이던 인물조차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또 다른 폭력의 희생자를 낳는다.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의 연쇄 고리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는 것은 진부해보이지만 잔혹한 진실이었고 그렇기에 이들에게는 구원은 없었다. 그저 자신을 덮쳐왔던 폭력이 언젠가 다시 자신을 덮칠 날만을 기다리며 숨죽인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었다. 작가의 다른 작품과 다르게 유난히 암울한 내용이라 읽으면서 당혹스러울 때가 많았다. 게다가 폭력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은 사람들의 정신이란 참혹한 것 이상이라 눈을 돌리고 싶을 때도 많았다. 평화가 가장 기이한 공백 상태이며 기만적 거짓말이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그럼에도 평화를 바라는 것은 사람이 품은 모순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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