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 라이프
윌리 블로틴 지음, 신선해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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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호시 신이치의 쇼트쇼트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밤에 잠을 잘 수 없게 된 남자는 잠을 되찾기 위해 일에 몰두한다. 낮에는 회사의 정식 직원으로 밤에는 같은 회사의 야간 경비원으로 일했다. 그러자 집은 별 필요가 없는 공간이 되었다. 간단한 샤워는 회사에서 가능했고 짐을 둘 곳 정도가 필요할 뿐이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집을 세를 주고 집이 없는 생활을 해나갔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몸은 일정 시간 이상 깨어 있기 어렵다. 방전이 된 몸은 재충전을 위해 잠을 청한다. 안전하게 잠을 자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 그것이 집의 가장 큰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목돈이 생겼다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사람들에게 보통 물어보면 대개 집을 사겠다고 말한다. 호시 신이치의 소설 속의 남자가 아닌 이상 일정 주거지가 필요하고 안전하게 잠을 잘 곳이 필요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직업을 구해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일정 주거지가 없다면 직업을 구하기 어렵다는 것도 이유가 될 수 있다. 게다가 안심할 수 있는 자신만의 장소인 집은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하루의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자 자신이 보내고 보낼 시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 <모텔 라이프>의 주인공인 플래니건 형제는 미래에 대한 희망도 과거에 대한 따스한 추억도 희박한 편이었다. 그들에게는 집이 없었다. 도박 중독이었던 아버지가 떠나버린 이후의 집은 서글펐지만 차라리 편안했었다. 새로운 빚쟁이의 위협을 받을 염려는 최소한 없었던 것이다. 아버지가 그들을 버렸다는 원망은 남아 있었지만 형제의 어머니는 굳건하게 그들을 지켰다. 병마가 그녀를 덮치기 전까지는 그랬다. 형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그들의 어머니는 죽음을 맞는다. 공부에 특별히 취미가 있던 것도 아닌 형제는 가능한 어머니의 유언대로 학교를 마치려 했지만 금세 학업에 흥미를 잃는다.

앞으로의 앞날이 두려웠을 수도 있고 그저 하기 싫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형인 제리 리는 그림에 재능이 있었지만 막일을 하는 직장을 구하고 동생인 프랭크는 야구를 할 동안은 다녔지만 억눌린 분노를 폭력 사건으로 터뜨린 뒤 학교를 그만둔다. 이후 형제는 이 직업 저 직업을 전전하며 모텔 생활을 이어간다. 가진 것도 살 집도 특별한 기술도 없이 살아가는 형제는 천천히 타락의 길을 걷는다. 그렇다고 해도 범죄에 손을 댄 것까지는 아니었고 술에 젖어 사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는 정도였다.

형인 제리 리가 술에 절은 프랭크를 깨우던 어느 날까지는 말이다. 제리 리는 여자 친구와 싸우고 무작정 차를 몰고 있었다. 그때 한 소년이 나타났고 소년은 그 자리에서 차에 치여 사망했다. 병원에 데려다 주려 했지만 이미 늦어 있었다. 프랭크는 소년의 시체를 병원 근처에 내려놓고 멍청하리 만큼 착한 형을 차에 싣고 그대로 동네를 떠난다. 모텔을 전전하는 형제들, 그들에게 미래도 갈 곳도 없다. 형제의 현재와 과거가 오가며 그들이 모텔에서 겪었던 일들이 되살아난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동생인 프랭크가 만들어내는 이야기 속에서나 존재한다. 형제는 원하는 미래에 기반한 환상적이되 서글픈 이야기를 말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 책 <모텔라이프>에는 불운한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덕분에 그들에게 있는 것은 희망도 꿈도 아니다. 그저 다음 날이 되면 깨지 않았으면 할 정도의 절망 속에서의 공허한 환상이다. 바라는 미래를 말해보면서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뿐이라고 되뇌어 봐도 그들의 앞날에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있는 것이라고는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뿐인 것 같은 터널 속에 갇힌 그들의 인생은 현실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아서 더욱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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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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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집은 세계의 전부고 부모는 신과도 같다. 점차 성장해가면서 그 세계가 넓어지고 부모는 어느 순간 넘어서야 할 존재로 변해간다.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넘어서야 할 존재가 없다면 어떨까. 어디까지 성장해야 할지 멈춰야 할지를 가늠할 수 없는 것이다. 사람은 무리를 지으며 살아간다. 그 안에서는 규율이 있고 살아가기 위해 형성해야 하는 인간관계가 있다. 그것은 때로는 성가시지만 어떤 것을 배워야 할 때 편리하기도 하다. 자신이 처음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아이의 첫 스승이며 역할 모델인 부모는 그런 면에서 아주 중요한 편이다. 물론 편부, 편모 가정에서도 전혀 문제가 없을 수 있다. 양쪽 다 있다고 해서 더 잘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쪽만 있다고 해서 부족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편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동네 사람들이 전부 적대시하고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일종의 폭력에 시달리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것도 지극히 불합리하고 편협한 것 말이다. 이 책 <네 번째 빙하기>에서는 미혼모인 엄마에게서 태어난 혼혈 소년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사실 아이는 아이일 뿐 혼혈이든 아니든 미혼모의 아이든 아니든 전혀 관계없다. 그런데도 동네에서 시달림을 받는 것은 이방인에 대한 폐쇄적 태도에다가 지극히 보수적인 편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와타루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출발선에서부터 불리했다. 논리적이면서도 사려 깊은 엄마에게 잘 교육받은 아이임에도 비난의 대상이 된 것이다. 어려서 같이 잘 놀던 친구들조차도 부모님의 영향으로 점점 멀어져만 갔다. 게다가 와타루는 아버지를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유학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는 임신을 한 상태였고 와타루의 엄마는 나중에 말해주겠다는 말만 하고 와타루에게 아버지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에 비해 엷은 색의 눈동자와 머리카락, 다른 얼굴형은 시골에서는 확실히 튀는 모습이었다. 다르다는 것을 나쁘게 받아들이는 동네 사람들은 와타루 모자를 철저히 배제한다. 학교에서도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지만 와타루는 또래보다 성장이 빠른 편이라 신체적인 힘 면에서는 우월했다. 맞지는 않지만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엄마 말고는 믿을 사람도 친한 사람도 없던 아이는 점점 자신의 아버지를 궁금해 하고 독특한 결론을 내린다.

자신의 아버지는 크로마뇽인이라는 것이다. 뿌리를 더듬어 올라간 시도는 좋았지만 너무 많이 올라간 셈이었다. 그것에 대한 나름의 논리도 있었는데 와타루의 엄마가 유전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있다는 점이 컸다. 와타루는 엄마가 러시아에 갔을 때 크로마뇽인을 부활시키는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실험체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다른 아이들과 다른 외모도 그로 인한 것이고 빙하기가 체로 걸러내듯 다른 생명체를 남겨 두었듯이 자신도 다음 빙하기가 오기를 기대한다.

그때부터 와타루는 자신만의 기지를 만들고 석기를 만든다. 아버지의 흔적을 느끼고 사냥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자신 안의 가득한 힘을 방출하기 위한 일이기도 했고 외로움을 달래는 그만의 놀이였다. 비웃음의 대상이 될 때도 자신은 크로마뇽인의 자식이라서 다른 것이라며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와타루는 그렇게 한 발자국씩 성장해간다. 그 성장은 때로는 가슴 아프고 때로는 웃음이 난다. 소년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지만 그 당사자의 독특한 발상이 인상적인 책이었다. 와타루가 긴긴 성장을 끝마친 순간에는 깊은 감동까지 느낄 수 있었다. 크로마뇽인과 현대인의 잃어버린 고리라는 간극을 성장이라는 줄로 채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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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은 죽었다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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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으로서 가장 화가 날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의뢰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홈즈조차도 자신이 돌려보낸 의뢰인이 그날 밤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심하게 자책했었다.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의뢰인을 날씨가 안 좋은 밤에 혼자 돌려보내 위험에 빠뜨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홈즈의 경우에는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 말고는 대부분의 의뢰인이 죽었지만 말이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추리소설 <의뢰인은 죽었다>는 묘하게도 탐정이라면 가장 싫은 만한 상황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전작 <네 탓이야>와 마찬가지로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냉소적이지만 남의 부탁을 쉽사리 잘 거절하지 못해서 항상 위험에 휘말리고 마는 하무라 아키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가난에 익숙하고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는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는 흔히 생각하는 명탐정은 아니다. 홈즈처럼 들어오는 의뢰인의 모든 것을 읽어내지도 못하고 책 제목이기도 한 단편 <의뢰인은 죽었다>에서는 위험에 처한 사람의 상담을 받지만 미온적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자살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하무라 아키라는 본래 사람들하고 지나치게 친해지지도 않는 편이고 남의 일이라고 무조건 머리를 들이미는 타입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아니 사건이 그녀를 잡아당긴다. 정확하게는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악의가 그녀를 좋은 먹잇감이라고 착각한다. 냉소적인 모습의 뒤에는 불독보다 끈질긴 탐정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작에서 친 언니한테 살해당할 뻔 하기도 하고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죽이려고 튀어나온 아줌마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전부 그녀의 탓이고 네가 친절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은 친절하게 죽어주거나 모든 가진 것을 넘기라는 의미였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친 언니 스즈가 죽은 다음에도 주변 사람들의 악의는 천천히 스며든다. 9개의 단편에는 복잡한 트릭은 숨어 있지 않지만 일상 속에서 겪었을 만한 이웃의 악의가 무섭게 변질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하무라 아키라의 생활수준이 대폭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녀의 끈질긴 조사태도와 경험을 높이 산 하세가와 탐정 사무소에서 계약 탐정으로 일하게 되서 간간이 수입이 들어오는데다가 종이장보다 얇은 이불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냉기를 견뎌야 했던 셋방을 떠나 멀쩡한 아파트에 얹혀살게 된 것이다.

다만 집주인이나 집주인의 어머니의 등쌀로 인해서 반강제로 사건을 맡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더구나 그녀는 계약 탐정이므로 탐정 사무소를 통해서 정식 의뢰를 해야 하는데도 억지로 일을 떠맡긴 후 뻔뻔스럽게도 무료로 해달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의뢰를 받고 성실히 이행을 한다. 그럼에도 모든 조사가 끝난 후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반응이다. 진실이 자신의 입맛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뻔뻔스런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몇몇 단편에서 흑막으로 등장하는 남자까지 있어서 하무라 아키라는 좀 더 곤경에 처하기도 하였다. 전작에서는 친 언니인 스즈가 매번 그녀의 돈을 갈취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무너뜨렸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없는 터라 하무라 아키라에게도 약간은 소중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사람들을 위협하니 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점점 시리즈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며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악역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단편에서의 악역은 숨은 악의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새로운 악역의 등장으로 다음 권을 좀 더 기대하게 되었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뜨거운 다정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그녀가 돌아올 때가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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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on Walk 문워크 - 마이클 잭슨 자서전
마이클 잭슨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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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래야 잊혀지지 않는 것이 스타의 숙명인지 오늘 아침에도 마이클 잭슨에 대한 뉴스가 텔레비전을 장식했다. 마이클 잭슨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 이유가 아버지가 지나치게 엄격했다는 것을 넘어선 이유였다는 것이 뉴스의 내용이었다. 친구에게 한 육성 녹음에서 마이클 잭슨은 아버지가 자식들을 쇠사슬로 때렸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연해하는 것도 잠시 다음 사건소식으로 넘어가면서 마이클 잭슨에 대해 떠올렸던 생각은 서서히 지워졌다.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무렵이라서 사실 그에 대한 것은 자세히 몰랐다. 어느 날 텔레비전을 켜니 영화가 하고 있었고 웬 잘생긴 백인 남자가 춤을 추면서 노래를 하고 있었다. 아마도 <문워커>일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때부터 마이클 잭슨에 대해 약간은 관심이 생겼다. 그가 흑인이라는 것도 그 이후에나 알았다. 이후 뮤직 비디오에서 보게 된 마이클 잭슨은 그저 유명한 연예인이었고 수많은 스캔들 속에서 몰락한 가수였다.

하지만 그의 노래에서 만큼은 주변의 변하는 평가와 아무 관계없이 그저 푹 빠질 수 있었다. 대학생 시절 MP3 플레이어를 가득 채우고 있던 노래는 마이클 잭슨의 것이었다. 그의 전성기는 20년 정도 지나 있었고 마이클 잭슨에게 가지고 있는 것은 막연한 호감뿐이었지만 <빌리 진>이나 <맨 인 더 미러>를 등하굣길에 숱하게 반복해서 들었다. 그러면서 빌리 진이라는 인물이 혹시 실존하는 것일지 빌리 진이 가진 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니라고 하는 가사가 그와 관계가 있는 것일지 조금은 관심을 갖기도 했다.

이 책 <문워크>는 마이클 잭슨 본인이 서른 살에 쓴 자서전이다. 마이클 잭슨이 이 책을 낸 이후 20년 가까이가 지났으니 지금과는 한참 다른 이야기기도 하다. 덕분에 사람들이 궁금해 하고 그를 몰락으로 이끌었던 스캔들에 대한 내용은 없다. 하지만 읽으면서 내내 머릿속에 그의 노래를 울리게 하는 내용은 가득하다. 음악 속에 자란 어린 시절, 아버지의 기타를 서로 치고 싶어서 안달했던 형제들의 이야기, 그들의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가 매니저를 자청하면서 여기저기 쇼에 참가하게 했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마이클 잭슨은 어린 나이에 데뷔했고 성인이 되어서까지 최정상의 자리에서 계속 군림했다. 그러나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인생에서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어린 시절 노래를 하고 춤을 배우는 어린 마이클에서 성인이 되어 <스릴러>나 <배드>앨범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하는 그의 마음은 항상 같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움직이면 춤을 출 수 있고 입을 열면 노래가 흘러나오는 재능이 자신에게 있었다고 한다. 다이애너 로스와 함께 공연한 영화 <더 위즈>에서는 마이클 잭슨이 한 번 보기만 하면 안무를 익혀서 같이 공연하는 배우들을 곤란하게 했다는 내용도 있었다.

그는 열정에 사로잡혀 계속 노래하고 춤췄으며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자신을 향해 열광하는 사람들을 피해 호텔방에 숨어 있으며 갑갑하기도 하고 친한 사람들에게 작은 장난을 치면서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지배하는 음악 속에 한없이 즐거워했고 오로지 진지하게 음악에 몰두했던 것이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스타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음악인 마이클 잭슨이 보였다. 빌리 진은 실존 인물이 아니지만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고 주장하는 이상한 여자들은 있었다는 이야기처럼 신변잡기적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가 자신의 생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스릴러>가 큰 인기를 끌고 나서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는 한결같이 진정한 예술가였다. 그것이 지금 그를 '전설이 되었다' 하게 만드는 힘이고 그의 죽음에 탄식하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그의 노래는 남았지만 앞으로 새로운 노래는 더해지지 않을 것을 생각하면 한없이 아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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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6 03: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인 본능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살인자 추적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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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드라마 <CSI>가 크게 흥행을 하면서 수사가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하는 수사관이 많다고 한다. DNA분석이 드라마처럼 금세 끝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증거가 완벽하게 모아진 범죄 사건은 그리 흔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배심원들은 완벽한 증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말이다. 더구나 법의곤충학자 마르크 베네케가 밝힌 것처럼 감식관들은 수사관이 아니므로 수사를 하거나 멋 부리는 일도 없어서 실제와 비교하면 웃음이 나오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실적인 면이 있는 드라마라서 범죄자들이 그것을 보고 학습한다는 것이다. 예전이라면 남겨 놨을 증거들을 깨끗하게 치우고 사라진다고 한다.

게다가 과학에는 100%란 있을 수 없다. 예전 주부 대상 아침 방송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확인해주는 것이 DNA분석이었다. 그런데 과학자는 매번 99.99% 친족임이 확실하다고 답했다. 과학에 100%는 있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매번 법관이 가능하냐, 아니냐를 예, 아니오로 답하라고 하면 곤경에 처한다. 무엇이든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비록 0.01%라고 해도 말이다. 마르크 베네케의 세 번째 책 <살인본능>에서 그는 법의곤충학자로써 살인사건을 들여다본다. 진실을 탐구하려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이 섞이고 미궁에 빠진 사건들부터 0.01%의 가능성과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변호사들이 피의자를 풀어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래서 전 권에 등장했던 사건들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한때의 미식축구 스타를 지금은 빚더미에 시달리는 남자로 바꿔놓은 OJ 심슨 사건이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살인현장에 심슨의 혈액이 뿌려져 있었고 심슨의 집에는 그의 전처의 혈액이 묻어 있었으며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고 있었는데도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을 주장해서 승소한 경우였다. 그런데에는 지극히 편파적인 배심원과 엄청난 비용을 받는 변호사들의 치밀한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고 한다. 마르크 베네케는 그 사건의 허점과 과학수사의 한계에 대한 선을 긋는다.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를 하게 돕는 것이 그의 일이라면 편견이든 무엇이든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구축하는 것이 법관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묘했던 것은 사건을 다루는 그의 시각이었다. 전에는 과학수사에 초점을 맞춰서 차가운 진실만을 읽어냈다면 이번에는 사건의 허점에 대해서 많이 말하는 터라 진실 너머의 의혹과 약간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물론 과학자의 눈으로 본 살인사건은 차갑고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사건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날이 선 비판이 보였다. 이런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마르크 베네케는 범인들의 잔인함에 놀라기도 경찰들의 실수에 탄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그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은 범인의 동기였다. 아버지 뎅케라고 불렸던 살인자는 평소 이웃 사이에 평판이 좋았다.

거지나 부랑자가 돌아다니면 집으로 들여서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사람을 먹는 엽기범죄자였다. 집으로 들인 사람에게 대필을 부탁하고 피해자가 눈을 돌린 틈에 공격을 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웃들은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거지가 살려달라고 뛰쳐나왔을 때조차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거지가 완강히 뎅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자 경찰은 할 수 없이 뎅케를 유치장에 가둔다. 그 날 밤 뎅케는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 경악한 경찰이 부고를 어찌 전할까 고민하며 그의 집에 가자 시체 토막이 잔뜩 나왔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화염방사기를 난사하고 창을 휘둘러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도 뎅케도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증거는 그대로 남아서 과학자, 수사관, 법관이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범인이 입을 다물고 나면 사건은 얼마정도 안개에 잠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에 따라 공범과 거래하는 악마와의 거래도 이루어지고 아무리 봐도 유죄인 죄인이 풀려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미궁에 빠질 사건들을 밝힌 단 하나의 횃불인 과학수사가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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