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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본능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살인자 추적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미국 드라마 <CSI>가 크게 흥행을 하면서 수사가 더 어려워졌다고 토로하는 수사관이 많다고 한다. DNA분석이 드라마처럼 금세 끝나는 것도 아니고 모든 증거가 완벽하게 모아진 범죄 사건은 그리 흔치 않다고 한다. 그런데 배심원들은 완벽한 증거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처럼 말이다. 더구나 법의곤충학자 마르크 베네케가 밝힌 것처럼 감식관들은 수사관이 아니므로 수사를 하거나 멋 부리는 일도 없어서 실제와 비교하면 웃음이 나오는 내용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사실적인 면이 있는 드라마라서 범죄자들이 그것을 보고 학습한다는 것이다. 예전이라면 남겨 놨을 증거들을 깨끗하게 치우고 사라진다고 한다.
게다가 과학에는 100%란 있을 수 없다. 예전 주부 대상 아침 방송에서 잃어버린 가족을 확인해주는 것이 DNA분석이었다. 그런데 과학자는 매번 99.99% 친족임이 확실하다고 답했다. 과학에 100%는 있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매번 법관이 가능하냐, 아니냐를 예, 아니오로 답하라고 하면 곤경에 처한다. 무엇이든 가능성은 있기 때문이다. 비록 0.01%라고 해도 말이다. 마르크 베네케의 세 번째 책 <살인본능>에서 그는 법의곤충학자로써 살인사건을 들여다본다. 진실을 탐구하려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선입견이 섞이고 미궁에 빠진 사건들부터 0.01%의 가능성과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변호사들이 피의자를 풀어준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그래서 전 권에 등장했던 사건들이 군데군데 나타난다. 한때의 미식축구 스타를 지금은 빚더미에 시달리는 남자로 바꿔놓은 OJ 심슨 사건이 그 대표주자라고 할 수 있다. 살인현장에 심슨의 혈액이 뿌려져 있었고 심슨의 집에는 그의 전처의 혈액이 묻어 있었으며 모든 증거가 그를 가리키고 있었는데도 불가능에 가까운 가능성을 주장해서 승소한 경우였다. 그런데에는 지극히 편파적인 배심원과 엄청난 비용을 받는 변호사들의 치밀한 언론 플레이가 있었다고 한다. 마르크 베네케는 그 사건의 허점과 과학수사의 한계에 대한 선을 긋는다. 증거를 바탕으로 수사를 하게 돕는 것이 그의 일이라면 편견이든 무엇이든 이용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을 구축하는 것이 법관의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묘했던 것은 사건을 다루는 그의 시각이었다. 전에는 과학수사에 초점을 맞춰서 차가운 진실만을 읽어냈다면 이번에는 사건의 허점에 대해서 많이 말하는 터라 진실 너머의 의혹과 약간의 감정이 섞여 있었다. 물론 과학자의 눈으로 본 살인사건은 차갑고 날카로운 면이 있었다. 사건을 그대로 들여다보면서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날이 선 비판이 보였다. 이런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마르크 베네케는 범인들의 잔인함에 놀라기도 경찰들의 실수에 탄식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그가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은 범인의 동기였다. 아버지 뎅케라고 불렸던 살인자는 평소 이웃 사이에 평판이 좋았다.
거지나 부랑자가 돌아다니면 집으로 들여서 먹을 것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사람을 먹는 엽기범죄자였다. 집으로 들인 사람에게 대필을 부탁하고 피해자가 눈을 돌린 틈에 공격을 하고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웃들은 아무도 그를 의심하지 않았다. 피투성이가 된 거지가 살려달라고 뛰쳐나왔을 때조차 그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 거지가 완강히 뎅케가 자신을 죽이려 했다고 주장하자 경찰은 할 수 없이 뎅케를 유치장에 가둔다. 그 날 밤 뎅케는 목을 매 자살했다고 한다. 경악한 경찰이 부고를 어찌 전할까 고민하며 그의 집에 가자 시체 토막이 잔뜩 나왔다는 것이다.
이유 없이 초등학교에 들어가 화염방사기를 난사하고 창을 휘둘러 수많은 사람을 죽인 살인자도 뎅케도 그들의 동기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증거는 그대로 남아서 과학자, 수사관, 법관이 이야기를 재구성해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정작 범인이 입을 다물고 나면 사건은 얼마정도 안개에 잠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에 따라 공범과 거래하는 악마와의 거래도 이루어지고 아무리 봐도 유죄인 죄인이 풀려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기에 미궁에 빠질 사건들을 밝힌 단 하나의 횃불인 과학수사가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