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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뢰인은 죽었다 ㅣ 탐정 하무라 아키라 시리즈 2
와카타케 나나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탐정으로서 가장 화가 날 때는 언제일까. 아마도 의뢰인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일 것이다. 홈즈조차도 자신이 돌려보낸 의뢰인이 그날 밤에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는 사실을 알고 심하게 자책했었다.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의뢰인을 날씨가 안 좋은 밤에 혼자 돌려보내 위험에 빠뜨렸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홈즈의 경우에는 <바스커빌 가의 개>에서 말고는 대부분의 의뢰인이 죽었지만 말이다. 와카타케 나나미의 추리소설 <의뢰인은 죽었다>는 묘하게도 탐정이라면 가장 싫은 만한 상황을 제목으로 하고 있다.
전작 <네 탓이야>와 마찬가지로 단편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는 냉소적이지만 남의 부탁을 쉽사리 잘 거절하지 못해서 항상 위험에 휘말리고 마는 하무라 아키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가난에 익숙하고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장점이라는 여탐정 하무라 아키라는 흔히 생각하는 명탐정은 아니다. 홈즈처럼 들어오는 의뢰인의 모든 것을 읽어내지도 못하고 책 제목이기도 한 단편 <의뢰인은 죽었다>에서는 위험에 처한 사람의 상담을 받지만 미온적으로 대처한다. 그리고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자살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하무라 아키라는 본래 사람들하고 지나치게 친해지지도 않는 편이고 남의 일이라고 무조건 머리를 들이미는 타입도 아니다. 그런데도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아니 사건이 그녀를 잡아당긴다. 정확하게는 사건을 일으키는 사람들의 악의가 그녀를 좋은 먹잇감이라고 착각한다. 냉소적인 모습의 뒤에는 불독보다 끈질긴 탐정의 모습이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전작에서 친 언니한테 살해당할 뻔 하기도 하고 프라이팬을 휘두르며 죽이려고 튀어나온 아줌마도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했었다. 전부 그녀의 탓이고 네가 친절했다면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 말은 친절하게 죽어주거나 모든 가진 것을 넘기라는 의미였다. 상황은 변하지 않았고 친 언니 스즈가 죽은 다음에도 주변 사람들의 악의는 천천히 스며든다. 9개의 단편에는 복잡한 트릭은 숨어 있지 않지만 일상 속에서 겪었을 만한 이웃의 악의가 무섭게 변질된 것을 볼 수 있다.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하무라 아키라의 생활수준이 대폭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녀의 끈질긴 조사태도와 경험을 높이 산 하세가와 탐정 사무소에서 계약 탐정으로 일하게 되서 간간이 수입이 들어오는데다가 종이장보다 얇은 이불로 바닥에서 올라오는 차가운 냉기를 견뎌야 했던 셋방을 떠나 멀쩡한 아파트에 얹혀살게 된 것이다.
다만 집주인이나 집주인의 어머니의 등쌀로 인해서 반강제로 사건을 맡게 되는 경우가 꽤 있었다. 더구나 그녀는 계약 탐정이므로 탐정 사무소를 통해서 정식 의뢰를 해야 하는데도 억지로 일을 떠맡긴 후 뻔뻔스럽게도 무료로 해달라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주인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어 의뢰를 받고 성실히 이행을 한다. 그럼에도 모든 조사가 끝난 후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반응이다. 진실이 자신의 입맛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뻔뻔스런 사람들은 모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몇몇 단편에서 흑막으로 등장하는 남자까지 있어서 하무라 아키라는 좀 더 곤경에 처하기도 하였다. 전작에서는 친 언니인 스즈가 매번 그녀의 돈을 갈취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무너뜨렸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없는 터라 하무라 아키라에게도 약간은 소중한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런 사람들을 위협하니 그녀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점점 시리즈의 구색을 갖추기 시작하며 주인공과 주변 인물들, 악역의 틀이 잡히기 시작했다. 단편에서의 악역은 숨은 악의를 유감없이 드러내는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새로운 악역의 등장으로 다음 권을 좀 더 기대하게 되었다. 겉은 차갑지만 속은 뜨거운 다정한 탐정 하무라 아키라, 그녀가 돌아올 때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