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래픽 - 운전습관과 교통체계에 숨겨진 인간의 비이성적 본성 탐구
톰 밴더빌트 지음, 김민주.송희령 옮김 / 김영사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고등학교 시절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다가 차에 치일 뻔한 적이 있었다. 뒤에서 질주해오던 차를 미처 피하지 못한 것이다. 아파트 단지 안은 도로가 아닌 건물에 따른 부속대지로 생각했으므로 방심한 탓도 있었겠지만, 단지 안을 고속도로인 것처럼 질주한 차의 탓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치일 뻔한 것이 놀랍기도 하고 당황해서 잠시 멈칫했더니 운전석의 창문이 내려가고 운전자가 입을 열었다. '잘 보고 다녀!'라는 성난 목소리였다. 이어 창문은 다시 올라갔고 차는 아까 일은 없던 일인 듯 다시 질주해서 사라졌다.

당시에는 운전자가 이상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생각했지만 정작 이 책 <트래픽>을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많은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으면 평소의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을 보인다. 더없이 소심한 사람이 자신의 차 앞에 끼어든 다른 차의 버릇을 고쳐줘야 한다며 기어이 추월을 한 후 그 앞을 느리게 달리려 하거나 신호위반은 예사로 하는 속도광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대학시절 점잖은 것으로 유명했던 교수님조차 자신의 앞에 끼어드는 자전거는 확 받아버리고 싶다는 말을 해서 나를 놀라게 했었다.

사람들은 차에 탄 순간 차는 자신인 것처럼 받아들이면서 정작 다른 차 안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것 같은 태도를 취한다. 인간 간의 소통 수단 중에 중요한 것 두 가지는 말과 눈빛인데 그 두 가지가 차 안에서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혼자 떠들어도 앞 차에 전해지지 않고 눈을 서로 맞추기도 어렵다. 그렇게 되면 다른 차에 대한 비인격화가 이뤄지고 평소에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쉽다는 것이다. 더구나 내 차 앞에 끼어들은 다른 차가 아니라 '저 자식이 내 앞에 끼어들었다'며 흥분하는 운전자가 많다고 한다.

그런데 그 분노를 직접 전할 수 없으니 속도를 올리거나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반면 조수석이나 뒷자리에 앉는 경우 차를 자신으로 표현한 말을 하는 경우도 없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때문에 특별히 다른 차가 끼어들거나 추월을 해도 크게 흥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관적이어서 자신이 운전자, 자전거 이용자, 보행자 중 어느 쪽에 속하느냐에 따라 생각이 바뀐다고 한다. 운전자가 되면 다른 쪽들이 거슬리고 반대로 보행자가 된다면 자전거와 차가 위협거리로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독특했던 것은 사람의 마음의 왜곡이 자신이 평균 이상의 모범 운전자라고 착각하게 만들고 교통사고로 16분의 1명꼴로 사망한다는 말을 들어도 그것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남이 보기에는 위태위태한 운전을 하는데도 자신은 모범 운전자이며 다른 사람들이 운전을 엉망으로 한다고 불평한다는 것이다. 더구나 자동차를 운전한다는 것은 생각 외로 복잡한 정보를 연이어 처리해야 하는 일인데 사람의 뇌는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잘 하지 못하고 그에 따라 사고가 일어나기 쉽다고 한다.

로봇도 사람처럼 운전하기 어려워할 정도로 많은 정보를 분석해야 하는 것이 운전이라 그에 따른 집중력은 쉽사리 바닥을 보인다는 것이다. 익숙하다고 생각해서 긴장하지 않다보면 어떻게 운전해서 집에 왔는지 명확히 기억나지 않을 때가 있다고 한다. 이때 사고가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위험한 길이 안전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이 온 정신을 다해 운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내용 외에도 도로를 더 건설해도 교통 정체가 줄어들지 않는 이유라든지 각국의 교통 문화가 어떻게 다른지 등 교통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느낌이라 다채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학술적인 느낌이 있는데도 읽기가 재미있어서 읽는 내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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