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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Che, 회상 -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 회고록
일레이다 마치 지음, 박채연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몇 년 전 서점에서 체 게바라에 대한 평전을 봤을 때 이런 의문이 들었다. 왜 이 사람에게 이렇게 주목을 하는 걸까. 위대한 혁명가라고 하지만 갑자기 왜 아르헨티나 출신의 혁명가에게 이렇게 열광을 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여러 번 이 주제에 대해서 생각해봤지만 의문에 대한 뚜렷한 답은 얻지 못한 채 시간은 그저 흘러갔다. 그 동안 '체 게바라'라는 이름을 접하게 되는 일은 점점 많아졌다. 책을 들고 지나가는 사람의 손에서, 서점의 진열대에서, 신문의 한 귀퉁이에서.
그를 소재로 한 책, 영화가 늘어갈수록 또 하나의 의문이 나를 괴롭혔다. 사람들은 정말 그를 이해하려 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저 소비하고 있을 뿐 일까. 반항아라고 하면 흔히 제임스 딘을 떠올린다. 정작 그가 출연한 영화도 보지 못했지만 영화에 나온 이미지가 곧 그가 되며 대중은 그저 그 이미지를 소비한다. 이제 혁명가는 곧 체 게바라라는 공식이 등장한 것인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을 때쯤 유행은 어느 정도 수그러들었다. 어디까지나 전에 비해서.
얄궃게도 유행이 수그러들자 그에 대한 호기심은 더 늘어났다. 어떤 사람이기에 남미와 극동아시아라는 공간, 냉전시대와 글로벌주의가 범람하는 현재라는 시간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프랑스 지성을 대표하는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샤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가리켜 '우리 시대의 가장 완전한 인간이었다.' 라고 평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혁명군을 이끌었으며 쿠바 혁명을 성공시킨 이력,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제3세계 해방을 꿈꾼 사람. 열세인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미국의 제국주의의 물결에 대항한 거인. 그의 수많은 이력과 샤르트르의 극찬이 그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그로 인해서 나도 모르게 그에 대한 이미지만을 소비하면서 체 게바라에 대해 말하는 이 회고록을 펼쳤다. 체 게바라의 부인이자 함께 일해 온 혁명동지 알레이다 마치가 펴낸 그에 대한 이야기는 지극히 개인적이었다. 그래서 더 생생한 체 게바라에 대한 기억을 읽어낼 수 있었다. 40년 동안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에는 한 사람에 대한 연정, 존경, 행복, 아픔까지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친다. 볼리비아의 한 오두막에서 살해된 체 게바라의 유해가 30년 만에 발굴되면서 이제야 그와의 사랑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그의 아내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알레이다 마치는 지식욕이 큰 여성이었고 교육의 기회를 갈구했다. 그녀는 연이어 상급학교로 진학했다. 그런데 그녀가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 쿠바는 쿠데타에 휩싸였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쿠데타에 대항할 세력을 미리 막기 위함이었으리라. 교육을 원하는 이에게 기회는 제공되지 않고 폭정이 이어졌다. 불합리한 상황 속에서 그녀는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고 혁명의 바람을 부르는 측에 섰다. 점차 혁명의 중추를 담당하게 될 수록 그녀는 혁명군을 이끄는 체 게바라에게 가까워졌다.
그리고 체 게바라가 사람을 보는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평한 첫 만남과 오해로 인한 엇갈림이 그녀의 기억에서 떠오른다. 첫 만남에서는 엇갈렸지만 후에 그녀는 체 게바라의 개인 비서로 일하게 된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회상하면서 알게 된 체 게바라의 심정과 행동, 그녀에 대한 연심이 계속 담담하게 서술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이 흐르기 시작하는 동안 격렬하게 혁명이 전개되고 쿠바혁명 성공 직후 알레이다 마치는 체 게바라와 공식적으로 결혼한다. 행복했던 시간과 쿠바 변혁의 시간이 흐르고 체 게바라는 또 다른 여정에 나선다. 제3세계 해방의 길로.
한 사람에 대해서 온전히 읽어낼 수 있는 기록 같은 것은 없다. 설사 그것이 그 사람이 직접 작성한 일기라 해도. 하지만 함께 혁명을 위해 싸웠으며 외롭지만 감정이 없는 것처럼 굳건히 견뎌 온 한 사람을 옆에서 지탱해 준 사람이라면 다른 누구보다 그에 대해서 자세히 서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체 게바라는 양면적이다. 게릴라전의 명수이며 적은 수의 사람으로 혁명을 성공시킨 전략가, 신혼 직후 먼 곳으로의 순방을 떠나야 할 때 아내의 동행이 특혜라면서 거부할 정도의 원칙주의자, 행복한 미래를 마다하고 죽음의 위협이 판치는 세계로 돌아가 자신이 믿는 신념을 지키려는 혁명가 체 게바라가 있다. 이 쪽이 여태까지 드러났던 그의 모습이다. 반면 어른이라고만 생각하고 그의 보호를 원하는 한 여성에 대한 연정을 숨기지 못하는 연인이며 감성적인 시를 읊는 시인이자 죽을 지도 모르는 길을 떠나기 전 아버지 친구인 늙은 라몬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마지막으로 아이들과의 시간을 보내는 아버지로서의 체 게바라가 있다.
그의 사후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웅시 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가 회고하는 그의 모습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간 '사람'의 모습이다. 그렇기에 샤르트르가 말한 완전한 인간이라는 평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기에 할 수 있는 수많은 고민, 아픔을 넘어 자신이 바라는 미래를 꿈꿨던 체 게바라. 21세기에 읽게 된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 체 게바라 그가 꿈꾸고, 싸웠으며, 죽어간 시간의 기록 '체Che, 회상'. 많은 사람이 추앙하는 영웅의 옆을 지켰으며 그 사람의 아이 넷을 키워낸 여성의 회고록을 읽고 나서야 왜 사람들이 체 게바라에 열광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떠올려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