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편지
이원규 지음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가난을 두고 이렇게 많이들 말합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불편할 뿐이라고 말입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돈이란 것이 묘해서 쓰려고 들면 얼마든지 쓰게 되지만 딱히 많이 쓰지 않아도 먹고 사는데 큰 지장은 없습니다. 다만 음식점에 가서 정확한 가격은 쓰여 있지 않고 '시가'라고 쓰여 있는 것은 못 사먹겠다 싶은 정도구요. 즉, 돈이 없다는 것은 불편함 그 이상은 아닙니다. 아직도 다른 나라 중에 그런 곳이 있기는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가난이란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절대적 빈곤보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 느끼게 되는 상대적 빈곤에 가깝습니다. 밥을 먹는다면 좀 더 맛있는 것을, 집에서 산다면 좀 더 넓은 집에서 살고 싶다는 거지요.

그런데 여기 한 끼 식사 값이 5천원이 넘으면 거북스럽고, 장이 열렸을 때 3천 원짜리 잔치국수를 먹고 나면 뿌듯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차피 다 먹고 사는 건데 뭘 그러냐는 거지요. 이 사람이 바로 이 책 '지리산 편지'의 저자 이원규 입니다. 일명 지리산 시인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돌아다니는 즐거움을 자연 속의 즐거움을 누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산문집이지만 확실히 소설가의 감성으로 쓴 산문집과 시인의 감성으로 쓴 산문집의 느낌은 다르구나 싶었습니다. 자연을 벗 삼아 여유를 누리고 소박한 삶을 살기 때문이라기보다 그 감상을 전하는 느낌이 남달라서요. 산문 사이에 자신의 시나 다른 문인의 시가 실려 있기도 하고 적절한 순간에 절묘하게 사진이 자리 잡고 있으니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산에 둘러싸인 기분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이 책을 우체국을 거치지 않고 바로 독자에게 전해지는 '화살편지'라고 칭하고 있는 만큼 한 줄 한 줄이 친한 사람에게서 오랜만에 날아온 반가운 편지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여여하신지요'라는 말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계절에 따라 지인에게서 오는 편지처럼 구성도 봄에서 겨울까지 흘러가기에 봄에서 시작되어 겨울에서 끝나는 이야기구나 해서 조금 섭섭했는데 다시 봄이 오면서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봄에서 시작에서 다시 봄에서 끝나는 이야기라니, 그 순환이 기쁘기도 하고 흐뭇하기도 하더군요.

특별한 일 없어도 특별한 일상을 글로 풀어낸 책이라 모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60년을 함께 살며 금강혼식까지 치른 노부부의 이야기였습니다. 얼마 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혼자 남은 여든 세 살의 할머니가 아침저녁으로 할아버지 무덤에 들러서 안부를 묻고, 그 무덤 옆에 앉아 하염없이 섬진강을 내려다본다는 부분을 읽으면서 애잔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할머니의 마음을 생각해 자신의 시집을 슬며시 가져다 준 시인의 마음이나 그 마음을 알아채신 건지 책값과 풋고추, 막걸리 한 병이 담긴 봉지를 툇마루 위에 놓아두신 할머니의 마음이 따뜻하게만 느껴졌습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각박해졌다고들 많이 말합니다. 아침 출근시간에 사람들을 보면 바쁜 얼굴로 뛰고 있는 경우가 많구요. 현대인의 병폐를 무관심이라고도 합니다. 이 책의 말을 빌자면 마음의 발톱이 너무 길어진 탓 같습니다. 동물은 발톱이 너무 길면 걷기도 힘들다고 하는데 너무 길어진 마음의 발톱을 방치해서 자신은 물론이고 남도 할퀴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봤습니다.

사람이 사람과 함께 자연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여유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 볼 기회였구요. 마음의 여유를 잃고 있는 와중에 잠시 여유를 즐길 수 있었습니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지리산 시인의 산문집 '지리산 편지'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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