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 와세다 대학 탐험부 특명 프로젝트
다카노 히데유키 지음, 강병혁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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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가끔 생각하게 되는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은 그 뒤에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즉,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 건전지가 방전되는 것과 같아서 죽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는 일회용 인간이면 어떻하나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귀신 이야기나 환상적인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기존의 과학적 지식과 맞지 않지만 과학적으로 밝힐 수 없는 무언가가 있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은 보통 생각 속에 그치지 실제로 호수 속의 정체불명 생명체를 찾으러 콩고에 가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법이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었다. 네시가 아니라 콩코에 있는 텔러호의 수수께끼 생명체 무벰베를 찾겠다는 생각을 한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와세다 대학 탐험 동아리 학생들로 환상의 괴수를 찾겠다는 그리고 그 증거를 남기겠다는 꿈을 가지고 탐험을 계획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구나 웃어버린다. 허황된 이야기란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허나 그 꿈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점차 생겨난다. 리더인 다카노가 의욕적으로 일을 전개한 탓도 있겠지만 꿈을 쫓아 오지로 떠날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라니, 그 꿈을 지원해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난 탓이었을 것이다. 이 책 '환상이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의 저자이기도 한 다카노는 탐험부에 이 계획을 알리고 일을 추진해나간다. 먼저 콩고에 있는 생물학자 닥터 아냐냐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고 콩고에 먼저 방문해보기도 한다.

그 후 본격적으로 탐험대를 구성해나간다. 여러 기업에 원조를 부탁해서 기자재를 모으고 무벰베를 찾고 싶은 대원들을 모은다. 그 안에는 대학교 탐험 동아리 학생들이 주를 이루지만 모험의 꿈을 가진 일반인들도 들어 있었다. 어렵사리 콩고 정부의 협조를 얻고 기자재와 식량 등 필요한 짐을 챙겨서 탐험에 나선 원정대는 꿈에 부푼다. 거기에 함께 나선 닥터가 실제 무벰베를 본 적이 있다고 해서 그 꿈은 점점 커진다.

콩고 드래곤이라고 하는 무벰베는 주로 텔레호에서 목격되었다고 하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그 목격횟수가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닥터와 함께 텔레호 주변에 있는 마을에 방문한 원정대는 그 마을에 도움을 청한다. 물론 그에 상응하는 돈을 지불하는데 이것이 초반부터 문제가 된다. 처음 협상을 하는 것도 쉽지 않았고 짐을 옮기는 사람들이 식량을 빼돌린 것이다. 나중에 이로 인해서 식량 문제까지 겪게 된다.

더구나 외지인이 들어와서 마을에 문제가 생겼다고 가이드가 돌아가는 문제까지 생긴다. 부족해진 식량, 생각만으로는 천국 같을 줄 알았던 텔레호에서의 생활은 벌레의 습격이 줄을 잇는다. 점차 대원들은 지쳐가고 무벰베를 찾기 위한 조사는 계속되지만 기자재까지 말썽을 일으킨다. 거기에 닥터와도 슬슬 불화의 조짐이 싹튼다.

텔레호에서 40일 동안 머무르려던 것이 처음 원정대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거의 없듯이 원정대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한다. 대원이 고열에 시달리기도 하고 식량이 부족하다보니 점차 의욕이 떨어져간다. 자신이 대체 이런 오지에서 무엇을 하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원정대의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현지인들과 부딪히기도 하고 식량이 부족해서 사냥을 통한 조달에 나서는 이야기도 재미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아했던 것은 원정대의 탐험지가 콩고였다는 점이었다. 지금의 콩고는 내전이 있는 땅인데 원정대의 탐험기 안에서의 콩고는 나름대로 평화로운 땅이었다. 현지인과 불화가 있기는 하지만 닥터 아냐냐가 느낀 바와 달리 탐험대원 자체를 위협하지는 않아서 전반적으로 평온했던 것이다. 그 이유는 탐험대의 탐험이 있었던 연도가 1988년이었다는 것에 있었다. 그 이후 콩고는 혼란의 시기에 빠져버렸고 내전지역이 되었던 것이다. 여행자의 머릿속에나 있는 가난하지만 여유로운 아프리카가 아니라 전통이 숨쉬지만 지역마다 통용되는 논리가 다르고 인간적인 아프리카를 만날 수 있는 점이 좋았다. 식량을 빼돌렸으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와서 이름을 지어달라는 뻔뻔한 포터가 있는 땅,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있는 아프리카를 재발견한 기분이었다. 탐험대의 꿈의 기록 '환상의 괴수 무벰베를 찾아라'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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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로드
랍 기포드 지음, 신금옥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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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나라일수록 잘 알아두어야 한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어느 외국인이 한국인은 전부 일본어와 중국어에 능통할 줄 알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밀접하게 붙어 있는 나라인데다가 역사가 서로 얽히고설켜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말을 들을 당시에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하는 외국인이네 하고 생각했지만 요새 들어서는 그런 필요성을 느끼기도 한다. 동북아시아에 사는 이상 주변국으로 있는 일본과 중국의 영향에서 무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들어 부쩍 중국이나 일본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째 알면 알 수록 미궁에 빠지는 기분이 든다. 하기야 몇 년 동안 알고 있던 사람도 전혀 예상치 못한 면을 발견하는 마당에 주변국이라지만 아예 다른 문화 속에서 살고 있으니 그런 느낌을 받는 것도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특히 중국은 알면 알수록 묘하다. 처음 중국에 대해서 알려고 들자 알게 된 것은 막연하게 알고 있던 중국은 이미 실제 중국과 너무 멀다는 것이다.

같은 한자문화권, 유교문화권인데다가 중국사도 어느 정도 배운 터라 그저 막연하게 가깝게 여겼었는데 말 그대로 '가깝지만 먼 나라'가 중국인 듯하다. 일단 양파의 껍질을 벗기는 것 마냥 알면 알수록 혼란스럽다. 공산주의를 주장했었지만 경제가 무너지자 자본주의를 받아들여서 그런지 사회구조가 더 독특한 느낌이다. 흔히 미국을 인종의 용광로라고 많이들 말한다. 중국도 그런 면에서 여러 소수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다양한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중국은 여러 민족의 용광로라기보다 각각이 양파의 껍질 하나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신흥 부자들은 너무 부유하고 앞서 가고 있지만 농민이나 핍박받는 소수민족의 경우에는 이 이상 지치고 피곤할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중국에서 살고 있는 중국인들도 혼란스럽게 느끼는 중국이라서 읽는 내내 혼란은 더했다.

이 책 '차이나 로드'는 제목대로 중국을 가로 지르는 312번 도로를 따라 여행한 어느 기자의 여행기다. 상하이에서 시작되어 카자흐스탄 국경 앞의 코르가츠라는 작은 도시에서 끝나는 여행은 무려 4825킬로미터를 달려야 한다. 혼란의 중국에서 살고 있는 여러 사람들을 바라보는 영국인 기자의 시선은 서양인이라 그런지 동양인이 받아들이는 중국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 있다. 물론 에이즈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는 시각은 비슷하지만 말이다.

중국에 대해서 애증어린 시각을 보이는 저자는 중국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중국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풀어놓고 있다. 일단은 여행기지만 중국의 내밀한 속을 알고 싶어서 떠난 여행이라 그런지 일반 관광객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주변 정경을 묘사하거나 사진을 찍기보다 중국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중국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여행을 하다가도 버스에서 만난 의사에게 분노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의사는 가족계획을 담당하는 의사였는데 태아를 낙태한 이야기를 별 죄책감도 없이 풀어낸다. 8개월 된 아기, 태아나면 살 수 있는 아기를 엄마의 뱃속에서 죽이기도 하고 산 채로 태어나면 미리 준비한 양동이에 익사시킨다는 이야기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자에게 말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어를 하지 않는 나라 쪽이 오히려 문제가 있다면서 말이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의사가 두 아이의 엄마이며 평범한 주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그 이야기를 끔찍하다고 여기면서도 그 의사와 대립을 원하지는 않았다. 그런 모습에 분개를 하게 되기도 하지만 정작 중국의 아침음식에 대한 한탄을 늘어놓는 저자의 모습을 보면 웃게 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의 가난한 농촌 마을을 지나면서도 맛있는 음식은 마음껏 접할 수 있다고 좋아하던 저자가 왜 중국의 아침이 쌀죽과 야채 짠지로만 이루어져 있는지 모르겠다면서 한탄을 하는 것이다.

허나 여행기인데도 책의 전체적 분위기는 그리 가볍지 않다. 매춘부, 에이즈 환자, 티베트 사람이지만 중국어를 가르치는 교사, 트럭 운전기사 같이 주류가 아닌 사람이 중국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의견을 듣기도 하고 그런 상황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풀어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행은 여행지를 구경하는 것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된 사람의 이야기도 큰 몫을 차지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가 만나게 된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는 인상 깊은 경우가 많아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여태 알 지 못했던 중국의 속 이야기를 여행기로 풀어 놓은 '차이나 로드'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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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거나 말거나!
리플리 엔터테인먼트 지음 / 보누스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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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란 것은 묘한 특성이 있어서 보편적인 면모가 있는가 하면 그 나라에 밖에 없는 독특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그 문화권에 있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일들이 다른 문화권 사람들에게는 한없이 기괴한 모습인 경우도 있는 것이다. 하기야 현재의 모습을 과거의 사람들이 봤다면 이거야 말로 있을리 없는 공간, 있을 수 없는 일들 투성이 일테니 지금의 삶 자체가 옛 사람들에게는 '믿거나 말거나'의 상황인 셈이다.

반 농담 식으로 하게 되는 '믿거나 말거나'의 이야기들은 그야말로 기발한 것들이 가득하다. 저자인 로버트 리플리는 원래 스포츠에 관한 카툰을 그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끝없는 영감이 샘솟는 타입이 아니었던 터라 곧 소재가 고갈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리게 된 것이 스포츠에 관한 기묘한 이야기들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이 또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서 점차 각지의 기묘한 정보를 카툰으로 그리고 또 그런 것들을 모으는 탐험가이자 카툰 작가로 거듭났다고 하니 저자의 인생도 묘한 면이 있는 셈이다. 더구나 그가 죽음을 맞이한 후에 그를 기념하고자 지은 건물이 나무 한 그루를 가지고 통째로 지은 교회라는 점을 보면 그의 인생도 여러 가지의 '믿거나 말거나'였던 것 같다.

사람은 자신이 믿는 대로만 세상을 보는 터라 '이런 일이 정말 있을 수 있나'하는 이런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책의 구성은 16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서 4장 동물, 7장 초능력, 10장 몸을 제외하면 전부 유쾌하게 읽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저 3개의 장들에서는 '믿거나 말거나' 특유의 기괴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물론 사진과 함께 말이다. 다리가 8개인 송아지, 머리에 뿔이 달려 있는 사람, 자신의 신체를 괴상하게 접거나 꺾을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놀랍지만 충격적이라서 빠르게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제외하면 워낙 신기한 이야기들이라 읽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전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야기 몇 가지의 예를 들어보면 2장 우연에 등장하는 섬뜩한 인과응보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베라 체르마크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한다. 그리고 그 외도 사실을 베라가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격분해서 3층 창문에서 뛰어내렸는데 마침 그녀가 떨어지는 자리에 남편이 있었다. 남편 위로 떨어져 베라는 살았고 남편은 그 자리에서 죽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인상적이어서 몇몇 사람에게 말했는데 듣는 사람의 반응은 상이한 것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 인과응보라는 말대로 잘 된 것이라고 했지만 어떤 사람은 오히려 남편을 죽이고 살아남은 부인이 기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표시했다. 하지만 당사자의 심정이 어땠을지는 몇 줄의 글로 알 수 있는 일은 아니고 그 일이 우연치고는 섬뜩한 놀라움을 준다는 것은 분명했다.

다른 이야기로는 4장 동물에 등장하는 타조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타조의 다리는 매우 강력한 것이어서 한 번의 발차기로 사자도 때려잡을 수 있다고 한다. 멸종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놀라운 날지 못하는 새 타조가 여태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을 알았다고나 할까. 이런 이야기를 알았으니 앞으로 텔레비전에 타조농장이 나올 때마다 움찔 할 것 같다. 이런 사실도 모르고 타조 앞에서 웃고 있는 리포터가 불안해서 말이다. 거기에 하나 더, 타조의 눈은 뇌보다 더 크다고 한다. 뇌보다 눈이 더 크고 다리가 강력한 생물인 타조, 어느 생명체가 그렇지 않겠냐만은 타조는 여러 가지로 신기한 생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외에도 묘비에 자신은 자고 있으니 썩 사라지라는 문구를 남긴 여배우의 이야기나 식인 상어의 뱃속에서 나온 수영복 두 벌의 이야기, 샤갈은 물건을 살 때 수표로 지불했는데 그의 사인의 가치가 더 커서 사람들이 그 수표를 현금화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이 책 '믿거나 말거나'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사실 몇 줄 되지 않는다. 그런데 그 몇 줄 되지 않는 이야기가 오히려 상상력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내용이 신기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이야기가 독수리에 물려간 두 살배기 아기의 이야기나 14살 소년이 골프수업 중에 습격을 받은 이야기처럼 습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만 나오고 그 뒷이야기가 실려 있지 않다. 그래서 더 그 이야기의 다양한 결말을 떠올려 보게 되는 것이다.

짧지만 기묘한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것이라 책을 읽는 내내 놀라고, 감탄하고, 결말을 상상해보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 반복이 즐거워서 책이 더 두꺼웠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람이 상상하는 일은 대부분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더니 그 실제 증거물을 본 기분이다. 물론 제목대로 진실여부는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읽는 내내 즐거웠으니 그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양한 이야기로 읽는 거대한 인류사 박물관 '믿거나 말거나' 정말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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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락쿠마의 생활 - 오늘도 변함없는 빈둥빈둥 생활 리락쿠마 시리즈 2
콘도우 아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부광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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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백귀야행'의 주인공 리쓰는 요마소설의 작가였던 할아버지를 닮아서 영능력이 뛰어난 편입니다. 그래서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을 보게 되고, 요마에 시달리는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영능력이 있어서 요마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영능력의 파편조차 없어서 인식도 못하는 사람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 백귀야행의 세계에 살고 있는 리쓰가 싫어하는 계절은 바로 여름입니다. 여름의 더위에 점차 이쪽과 저쪽의 경계과 희미해지고 그 열기 속에 뒤섞여 있을 리 없는 존재들이 날뛰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괴가 아니라 해도 여름의 더위 속에서는 정신이 몽롱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녹는다기보다 자신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날씨는 비가 오기 직전이라 습하고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입니다. 체감기온도 불쾌지수도 높아서 이런 날이라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아니라 옷깃만 스쳐도 싸움이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더위에 땀이 나는 건지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더위에 길을 걷고 있자니 이유 없이 다가와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더군요. 물론 인내심이 뚝 끊긴 얼굴로 노려보자 그 사람이 도망치기는 했지만 날씨 하나로 여유가 사라진 일상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시비를 거는 사람도 제 자신도 말입니다.

오늘만 해도 더위에 불쾌지수가 최고치까지 오른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날이었다면 웃으면서 넘어갈 일도 전부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날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책 '리락쿠마의 생활'을 읽고 나니 웃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얄팍한 책이라서 부담 없이 읽겠다 싶은 점도 있었지만 표지의 곰이 아주 귀엽더군요. 옆에 노란 병아리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과 대비되어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목대로 리락쿠마입니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이 곰돌이는 이름에서 보여주듯 제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귀차니스트 곰입니다. 영어의 휴식을 말하는 Relax와 일본어의 곰을 말하는 쿠마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이름 리락쿠마는 먹고 자고 뒹굴 거리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사람이 실제로 이렇게 산다면 몸 어딘가에 버섯이 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곰이 하는 짓이라 그리 밉지 않습니다. 남의 방에 얹혀살고 있으면서 집주인이 경단을 사올 것을 기대하기도 하고 핫케이크를 좋아하는지 그것을 고집해도 말입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보다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목 그래도 리락쿠마의 대책 없는 생활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칠칠맞지만 사랑스러운 곰의 하루란 태평하기 그지없는 터라 주제별로 나눌 것도 없어서 그런지 그저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한 쪽에는 뭔가 의미 있어 보이는 한 줄의 문장이 쓰여 있고 옆에는 그 말을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리락쿠마의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집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문장의 옆에는 핫케이크 가루를 끌어안고 있는 리락쿠마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핫케이크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 리락쿠마에게 은근히 따진다고 빈정거리는 병아리가 앉아 있는 터라 문장에 납득하다가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고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핫케이크 가루를 고집하는 '고집'이라니 우스우면서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 줄의 문장으로 주목을 끌고 리락쿠마의 해석에 웃게 하는 구조라서 읽다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지'와 피식 웃는 패턴이 반복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몸에 쌓인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은근히 마음을 끄는 면이 있습니다. 허나 120쪽 남짓한 얇은 책을 읽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면 그 책을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메시지와 리락쿠마의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웃게 되는 책 '리락쿠마의 생활' 여유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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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월 - 열대 오지에서 보낸 한 달
김수영 지음, 박병혁 사진 / 황소자리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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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너무 가난했고 열심히 일했지만 먹고 살기도 빠듯했습니다. 소년은 견디다 못해 도시로 나갔고 도시에서 좀 더 나은 보수의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소년에게 운이 좋다고 했지만 소년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소년은 이제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은 여전히 고된 것이었지만 소년은 더욱 노력했습니다. 소년은 이제 청년이 되었고 그런 청년의 능력을 눈여겨 본 사업가가 그에게 다른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이제 책임있는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뛰어난 성과를 올리는 그의 모습에 주변에서도 능력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청년은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후에 사업가가 은퇴하고 그의 사업체를 인수한 청년, 아니 중년이 되어버린 그는 사장이 되었습니다. 그의 사업은 승승장구했고 그는 이제 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만족을 몰랐습니다. 좀 더 자신을 채찍질하고 위로 위로 향했습니다. 이제 그는 노인이 되었고, 죽음이 머지않은 순간에 깨달았습니다. 평생을 행복하기 위해 살았지만 행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물어보면 '행복'이라고 답합니다. 간혹 '성공'이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지만 성공하면 행복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행복한 인생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셈입니다. 하지만 막상 누구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만 더 가질 수 있다면, 저 자리까지 승진할 수 있다면 하는 여러 가지 조건을 걸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고 채워지지 않는 독을 붓다보면 행복하기란 요원한 일입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책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기 위해 살지 말고 지금 당장 행복해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같은 일상을 살다보면 그게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책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깨어날 수 있음을 감사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가끔 생활에 염증을 느끼게 됩니다. 가장 소중한 보물이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가족'이라고 답하게 됨에도 그 가족이 무겁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거울로 마주하게 된 자신의 모습이 지치고 초라해 보일 때 더욱 휴식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이 책 '안식월'의 저자도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신이 시인임에도 먹고 사느라 대필 작가로 나섰고 그 과정에서 관심도 없었던 수많은 책을 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점점 지쳐갔고 어느새 쓰는 힘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인생의 중반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지만 생활에 지쳐갔던 겁니다. 저자의 어머니는 '도시락을 안 싸는 날이 그렇게 오길 바랐는데 막상 도시락을 싸지 않는 날이 오자 젊음이 다 지나갔다'는 한탄을 했다고 합니다. 일이 잔뜩 몰려 있는 것도 알지만 거울에 비친 자신의 눈이 항상 충혈 되어 있고 아이들조차 무겁게 느껴진 그 순간 저자는 한 달간의 안식월을 가지기로 결정합니다.

사실 아이의 엄마라는 입장, 프리랜서로 일감이 몰려 있는 입장, 한 남자의 아내라는 입장에서 한 달간의 안식월을 결정한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인생의 중반에 도달했을 뿐이니 아직 생은 길고 한 달을 쉬고 다음 반을 행복하게 지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그만한 값어치가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녀는 또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안식월이라고 해서 한적한 곳에서 쉬다가 오겠다고 결심한 것이 아니라 고행을 하는 선승 같은 생활을 하고 싶어서 일체의 전자제품이 되지 않는 열대 오지에서 한 달을 보내기로 결심합니다.

살다보면 답답하게 느껴지는 순간이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꽤나 이입을 하면서 읽어 나갔습니다. 노트북 전지는 이미 방전되었고 어찌 된 일인지 노트북에서 개미가 나오는 상황에서 저자는 평안을 느낍니다. 현대사회와 완전한 단절이 된 상황이었던 겁니다. 책으로나마 그런 행적을 따라 가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던 것이 특히 좋았습니다. 사진이 그리 많이 들어 있지 않지만 열대 오지에서의 생생한 한 달을 느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마지막은 가족에게 돌아오면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그와 함께 현실로 돌아오면서 책을 덮었습니다. 일상 속의 짧은 휴식을 즐길 수 있었던 '안식월'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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