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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락쿠마의 생활 - 오늘도 변함없는 빈둥빈둥 생활 ㅣ 리락쿠마 시리즈 2
콘도우 아키 지음, 이수미 옮김 / 부광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만화 '백귀야행'의 주인공 리쓰는 요마소설의 작가였던 할아버지를 닮아서 영능력이 뛰어난 편입니다. 그래서 보지 않아도 좋을 것을 보게 되고, 요마에 시달리는 인생을 보내게 됩니다. 영능력이 있어서 요마에 시달리는 사람보다 영능력의 파편조차 없어서 인식도 못하는 사람이 더 강하다는 생각이 드는 백귀야행의 세계에 살고 있는 리쓰가 싫어하는 계절은 바로 여름입니다. 여름의 더위에 점차 이쪽과 저쪽의 경계과 희미해지고 그 열기 속에 뒤섞여 있을 리 없는 존재들이 날뛰기 때문입니다.
사실 요괴가 아니라 해도 여름의 더위 속에서는 정신이 몽롱해질 때가 있습니다. 이쪽과 저쪽의 경계가 녹는다기보다 자신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날씨는 비가 오기 직전이라 습하고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입니다. 체감기온도 불쾌지수도 높아서 이런 날이라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 아니라 옷깃만 스쳐도 싸움이 일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더위에 땀이 나는 건지 몸이 녹아내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더위에 길을 걷고 있자니 이유 없이 다가와서 시비를 거는 사람이 있더군요. 물론 인내심이 뚝 끊긴 얼굴로 노려보자 그 사람이 도망치기는 했지만 날씨 하나로 여유가 사라진 일상을 보내고 있는 셈입니다. 시비를 거는 사람도 제 자신도 말입니다.
오늘만 해도 더위에 불쾌지수가 최고치까지 오른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날이었다면 웃으면서 넘어갈 일도 전부 짜증스럽게 느껴지는 날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이 책 '리락쿠마의 생활'을 읽고 나니 웃으면서 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얄팍한 책이라서 부담 없이 읽겠다 싶은 점도 있었지만 표지의 곰이 아주 귀엽더군요. 옆에 노란 병아리가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것과 대비되어 더 그렇게 느껴진 것 같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제목대로 리락쿠마입니다. 남의 집에 얹혀사는 이 곰돌이는 이름에서 보여주듯 제 하고 싶은 것만 하는 귀차니스트 곰입니다. 영어의 휴식을 말하는 Relax와 일본어의 곰을 말하는 쿠마가 합쳐져서 이루어진 이름 리락쿠마는 먹고 자고 뒹굴 거리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사람이 실제로 이렇게 산다면 몸 어딘가에 버섯이 자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곰이 하는 짓이라 그리 밉지 않습니다. 남의 방에 얹혀살고 있으면서 집주인이 경단을 사올 것을 기대하기도 하고 핫케이크를 좋아하는지 그것을 고집해도 말입니다. 오히려 그런 행동을 보다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하고 짜증스러웠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낍니다. 어딘지 모르게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하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책의 구성은 간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목 그래도 리락쿠마의 대책 없는 생활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칠칠맞지만 사랑스러운 곰의 하루란 태평하기 그지없는 터라 주제별로 나눌 것도 없어서 그런지 그저 흘러가는 느낌입니다. 한 쪽에는 뭔가 의미 있어 보이는 한 줄의 문장이 쓰여 있고 옆에는 그 말을 어디까지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리락쿠마의 그림이 실려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고집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는 문장의 옆에는 핫케이크 가루를 끌어안고 있는 리락쿠마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 핫케이크가 제일 맛있다고 하는 리락쿠마에게 은근히 따진다고 빈정거리는 병아리가 앉아 있는 터라 문장에 납득하다가 피식 웃어버렸습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고집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자신이 좋아하는 핫케이크 가루를 고집하는 '고집'이라니 우스우면서 귀엽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한 줄의 문장으로 주목을 끌고 리락쿠마의 해석에 웃게 하는 구조라서 읽다보니 '그것도 맞는 말이지'와 피식 웃는 패턴이 반복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몸에 쌓인 긴장이 풀리는 것 같아서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다 읽고 생각해보면 그리 대단한 메시지가 들어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은근히 마음을 끄는 면이 있습니다. 허나 120쪽 남짓한 얇은 책을 읽고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면 그 책을 읽어 볼 가치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순한 메시지와 리락쿠마의 빈둥거리는 모습을 보면서 웃게 되는 책 '리락쿠마의 생활' 여유가 필요할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