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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 허영만, 박영석, 김태훈, 캠퍼밴 타고 대자연의 성찬을 맛보다 ㅣ 탐나는 캠핑 3
허영만.김태훈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살아가다보면 울화가 치미는 일도 겪게 된다. 그럴 때마다 성질을 다 부리면서 일을 마무리할 수 있다면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도 없겠지만 모든 일에 그런 식으로 공격적으로 대처한다면 인간관계가 완전히 끊기는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질 않을 것이다. 결국 화가 나도 철벽방어용 미소로 얼버무리거나 넙죽 엎드리는 식으로 넘어가야만 하는 일이 많다. 그렇게 참다보면 어딘가에는 발산할 곳이 필요한데 보통 사람들이 원하는 일탈이라면 역시 여행이다. 그런데 여행을 생각할 때 낯선 곳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일단 낯선 곳은 불편한 점이 많다. 쉬러 갔다가 피로만 더 쌓여서 돌아오는 것이다. 만약 여행을 하면서 숙식 걱정이 없고 원할 때 언제든 쉬면서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그 이상 좋은 것이 없을 것이다.
이 책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에서 말하는 여행이 바로 그런 것이다. 쉬고 싶을 때 언제든지 쉴 수 있는 여행이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길 수 있는 여행이다. 다만 운전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 책에서처럼 자기 차라고 다른 사람에게 운전대를 넘기지 않을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다. 캠퍼밴에는 여행자가 원하는 대부분이 다 있다. 침실, 욕실, 요리를 할 수 있는 주방이 여행자가 원하는 여행지로 자동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운전을 하는 수고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창밖으로 풍경을 즐기다가 졸리면 잘 수 있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다닐 필요 없이 신선한 현지 식재료를 사면되니 편안한 점이 많다. 뛰어난 운전사와 요리사가 있어야 여행의 즐거움이 더 커지기는 하겠지만 말이다.
여행의 즐거움은 같이 간 사람들과의 관계가 반 이상인 경우가 많다. 이 책에서는 그런 의미로는 매우 훌륭한 편이다. 유명 만화가이며 프로 여행자인 허영만, 여행 칼럼니스트 김태훈, 탐험가 박영석, 허영만의 친구인 김봉주, '도전지구탐험대'PD 였던 허정까지 다섯 명이 여행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꽤나 즐겁다. 처음의 뉴질랜드 북섬 여행은 탐험가 박영석이 있어서 든든한 편이었다. 여행 전문가 정도가 아니라 극한 상황 전문가인 것만 같은 박영석은 뛰어난 요리사에 못하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 가오리까지 낚는다. 그가 다른 일이 있어서 여행에서 빠지게 되는 것이 너무 아쉬울 정도였다. 뛰어난 요리사가 빠진 여행은 식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그 빈자리를 훌륭하게 채워주는 사람이 등장하는데 노총각 경력이 긴 허정 PD였다. 만들었던 프로그램 탓도 있겠지만 익숙한 여행자인 그가 훌륭한 요리사이자 형님들의 뒤치다꺼리를 하는 막내역할을 자원한 것이다.
이런 여행자들의 관계를 지켜보는 것도 재밌었지만 가장 큰 즐거움은 역시 뉴질랜드에 대해서 알아갈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뉴질랜드에 대해서는 키위새, 과일 키위 밖에 떠올리지 못했었는데 두 가지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하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돌고래들이 그 사람들의 주위를 원을 그리면서 돌았다고 한다. 거기에 사람들을 점차 해변으로 밀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런 돌고래들의 행동에 사람들은 그 원을 벗어나려 했지만 돌고래가 노련하게 막아서 그 시도는 번번이 좌절되었다. 당황한 사람들은 주변을 돌아봤는데 3미터가 넘는 백상아리가 그들을 향해서 돌진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돌고래들이 사람들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지켜준 덕분에 그 사람들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에 감탄하면서 책을 읽다보니 여행자들의 낚시까지 달리 보이는 느낌이었다.
다른 이야기는 뉴질랜드가 난민에 대해 취한 태도였다. 난민들은 부유한 나라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자신들을 받아줄 나라를 찾아서 일단 부유한 나라 쪽으로 가보지만 그런 나라일수록 난민을 잘 받아주려고 하지 않는다.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이익은 거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 생색만 내고 난민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뉴질랜드에서는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땅 끝에 있는 나라고 여기까지 온 난민들은 여러 나라를 거쳐서 그 곳에 도착한 것이라는 것이다. 땅 끝까지 온 사람들을 쫓는 다면 그 사람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으니 죽음밖에 남은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이익보다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야 한다는 말로 이야기는 끝이 나고 뉴질랜드에서는 결국 난민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섬에 보통 있는 폐쇄성이 없는 나라이며 자연이 풍부하게 살아있는 나라라니 다시 한 번 감탄하게 되었다.
그 외에도 일출로 붉게 물든 등대나 아름다운 풍경이 찍힌 사진,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해낸 만화, 상황에 빠져들게 하는 글이 마음을 현혹했다. 다 읽고 나니 언젠가 여행을 한다면 반드시 캠퍼밴을 타고 뉴질랜드를 여행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였다. 다만 캠퍼밴 안까지 따라 들어올 만큼 먹성 좋은 새나 벌레 방지제를 바르지 않으면 상당한 고통을 안겨주는 벌레에 대한 부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허나 모든 것이 완벽하게 통제된 상황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고 오랜 만에 마음에 드는 여행지를 마음에 드는 방식으로 여행한 내용을 읽을 수 있는 점이 좋았다. 거기에 캠퍼밴을 빌리는 자세한 내용은 물론 여행 경로까지 소개된 점이 마음에 들었다. 언젠가 한 번쯤 꼭 하고 싶은 여행을 담은 '뉴질랜드 캠퍼밴 여행' 정말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