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는 어디 있나요
하명희 지음 / 북치는소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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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풍경처럼 그윽한 소설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 사이에서 눈사람의 심장 소리가 들린다.
문장 사이로 오름 위의 떠 있는 소슬한 달빛과 바다를 지나온 바람의 안부가 느껴진다.


고요는 어디 있는가?
그녀는 말한다.


"세상 구석구석에서 자기의 가장 좋은 것을 주고받는 그 잠깐이 모여 저녁의 고요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동안 고요를 홀로 있는 것과의 연계 속에서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작가는 '관계'를 말한다. 현명하게도 그 관계가 생의 찰나라는 것 역시 놓치지 않는다. 사랑하는 이들이 주고 받는 생의 짧은 반짝임이 '고요'였고 '행복'이었으며 '생의 진짜 의미'다.그래서 하명희 작가의 소설 속에는 외롭거나 힘든 사람은 있지만 혼자 있는 사람은 없다. 언 땅을 파던 노인도, 참새를 돌봐주는 예술가들도, 남의 찻잔을 오래 간직하고 있던 치매 노인도.하물며 눈사람마저도 함께 있다.


 소설 속 고요가 나그네의 겨울처럼 쓸쓸하지 않은 이유는그녀의 생이 누군가의 편에 함께 서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여전히 무심하고 존재는 못처럼 녹이 슬어가기 마련이다.겨울의 심장을 만진 우리들의 손은 제대로 펴지도 못할 만큼 곱아 있다.하지만 '하수관을 폴짝 뛰어다니던' 그녀는 '보리차'를 끓인다.

그녀의 손에서 짙은 프랑스 홍차향이 아니라 소박하고 훈훈한 향이 난다.


몇 몇 더 애정이 가는 작품은 있지만 하나 하나를 이야기하지는 않으련다.

나는 하루에 한 두 장 씩 아껴 읽었다. 핸드폰으로 찍어 위아래로 빠르게 넘기는 사진이 아니라 필름 카메라로 찍어 인화한 사진을 넘겨보듯 말이다.한 장 한 장 글로 인화한 사진이 주는 여운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내가 특별해서가 아니다. 글이 그렇게 요구했다. 나는 그 지시를 충실히 따랐다.


언제부터인가 책 선물을 하지 않았다. 독서의 취향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명희 작가의 책을 읽고 나니 저녁의 고요를 나누듯 책을 선물하고 싶어진다.

꼭 이런 메모를 남기고 싶다."몰아보는 드라마처럼 다루지 말고 한 주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하루 하루 읽었으면 좋겠어요."


벚꽃을 기다리지 말고 눈사람이 사라지기 전에 읽기를 권한다. 믿어도 좋다.

p.s) 지금부터는 사족이다.
<고요는 어디 있나요?>를 읽고 나서 나는 던컨 브라운의 Give me, take you를 계속 들었다. 노래와 닮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CMylB85NsW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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