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활에 변동이 심해서 글을 올릴 여유가 없네요... 어지러운 생각을 잊으려고 책은 읽고 있는데 리뷰를 쓸 엄두가 안나서 당분간 잠수모드로 들어갑니다. 서평단 등의 책들만 납기에 맞춰 올릴 거고 빠른 시일 내에 어지러운 문제가 정리되면 나타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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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7-02-09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리하시고 맘 편하실때 돌아오세요^^

마노아 2007-02-1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돌아오시기를 기다릴게요~
 
미야자키 하야오 살림지식총서 194
김윤아 지음 / 살림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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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애니메이션의 대명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근 작품 세편을 통해 그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찾아간다. <원령공주>,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세편의 작품을 통해 작가가 파악한 결론은 밝고 순수한 작품들의 대명사인 작가의 숨어 있는 목적은 일본의 신도와 그를 통한 최근 우경화 되고 있는 일본인들의 잠재의식을 표현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극동의 고대 신화에서부터 최근 일본의 정치 사회적인 현상들까지 비록 적은 분량이지만 다양한 예시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설명해 나간다.

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설마하는 생각이 아직은 크다. 시대적 지리적 정의를 내리기는 힘들지만 그 세작품들을 통해 자연 파괴나 인간의 욕망, 전쟁들을 벗어난 다른 세상을 꿈꾸는 하야오의 꿈을 보았었다면 너무 비논리적인 논거들이 될까? 전작들의 따스한 느낌들을 다 무시하고 최근의 몇편을 통해서 그의 감춰진 실체를 파헤쳤다는 건 조금 무리가 아닌지 모르겠다. 정말 최근 하야오의 성향이 바뀌었다면-아니 감춰졌던 진실이 그것이라면- 최근작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이 빠질 수 밖에 었었겠지만 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 사이의 <고양이의 보은>은 쏙 빼먹었을까?

작가는 여지껏 심증만 있던데서 물증도 잡았다는 분위긴데 난 아직 심정적으론 하야오편이다. 하지만 언제 시간을 내서 곰곰히 이작품들을 다시 볼 필요는 있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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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4-27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나에게 성경과도 같은 것인데..
왠지, 울컥거려지는 기분입니다. (긁적) 작가도 나름대로 연구를 했겠지만.
저 작품들 안에 깊이 들어 있는 철학이나 삶과 사랑은 보이지 않는건가?
어쨌든, 상당히 주관적이긴 하지만, 저 역시 안티님 편의 입장입니다.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반양장)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청미래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알랭 드 보통의 책을 한 번 읽어 보고 싶었다. 최근작 <동물원에 가기>를 읽으면 왠지 유행과 시류에 따라 가는 듯한 느낌이 싫어서 다른 책을 찾다 선택했다. 다 읽고 역자 후기를 봤더니 작가가 25살에 쓴 첫작품이었다. 만약 내가 10년만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아마 보통에 푹 빠져서 지금쯤 그의 작품은 거의 다 소장하고 있었을 거다. 하루키처럼... 하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내 위치에서 정말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이었지만 그렇게 빠져들긴 어려웠다. 왜냐구? 사랑 이야기니까..

왜 그녀를 사랑하는지 정말로 다양한 방법과 도구들을 이용해 증명하려고 든다. 처음엔 두사람의 인연을 확률로 우연이 아닌 필연임을 강조하더니 마르크스주의, 예수 컴플렉스에 각종 철학사조와 심리학 등 온갖 인문 사회과학이 다 동원된다. 하지만 이런 눈물 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떠나고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한다.

이책을 읽는 내내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허진호감독의 <봄날은 간다.> 유지태는 라면 한그릇(?)에 넘어가 사랑을 시작하고 그녀를 보고 싶어 서울에서 동료들이랑 술마시다 밤에 택시를 타고 그녀가 사는 강릉까지 한달음에 달려간다. 헤어지자는 여인의 말에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명대사를 던지지만 끝내 겨울에 만났지만 여름이 지나지 않아 헤어지고 만다. 한쪽은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논리적 철학적 논거를 통해 재미있게 사랑을 해설하고 한쪽은 담담한 시선으로 사랑의 열병에 걸린 모습을 그려낸다. 젊은 남자가 사랑에 빠지면 어떤 모습인지를 보면 그걸 뭘로 표현해도 똑같은 결론을 가져오는 건 아닌가 싶다.

김윤아의 목소리로 불리워지는 노래보다 그 옛날 백설희의 목소리에 담긴 <봄날은 간다>가 더 사랑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나도 이제 나이를 먹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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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3 0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제목보고 왔는데 아 이 책이었군요. 이거 참 좋아합니다. 보통씨. 이 책 리뷰를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 결국 못썼어요. 쓰기 너무 힘들더라구요.
 

1.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2. 스위스 예술기행

3.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1, 2

4. 차베스 미국과 맞짱뜨다.

5. 네가 있어 행복했어.

6  노란 코끼리

7. 사랑해 파리

8. 옳고도 아름다운 당신

9. 천년여우 여우비

10. 희망을 찾아서 7

11. 그 산을 넘고 싶다.

12.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13. 소녀와 비밀의 부채 1, 2

14. 미야자키 하야오

1월에 심히 무리를 한 스코어로 보인다. 그리고 소설에 많이 치우친 느낌이고.....딱히 싫어하고 나쁘진 않지만 무의식적으로 균형을 맞추고자 하는 강박감이 있다. 그래서 폭넓게 다양하게를 외치며 사는 건 아닌지도 모르겠다.

지금 읽고 있는 건 <성경 왜곡의 역사>. 평소 접해보지 못했던 분야들을 책으로라도 접해보고 생각의 폭을 넓혀봐야지. 그런데 이런 식으로 독서를 해서 그런지 깊이가 떨어지는 느낌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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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7-02-01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보셨군요. ^^

물만두 2007-02-01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나도 겹치는 책이 없네요^^

antitheme 2007-02-02 0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 무리했습니다.
물만두님 / 제가 조금 독특하죠.
 

교보에서 리뷰어로 뽑힌 <소녀와 비밀의 부채> 리뷰입니다. 남자인 저도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네요.

농경사회가 발전하며 가족 구성원의 노동력을 비교하고 재산의 되물림 등의 과정을 통해 아들로 대표되는 남성은 가족이라는 집단에서 권력을 지닌 지배자가 되고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이거나 얼마전 일본의 정치인이 말했다는 '애 낳는 기계' 정도로 취급받는 시절, 불과 백여년전 중국에서도 그랬단다.

가난한 농부의 둘째딸로 태어난 나리는 할머니와 어머니를 통해 '어릴 적엔 아버지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뒤에는 아들을 따른다'는 삼종지도를 교육 받고 좋은 혼처에 시집을 가기 위한 조건이란 명목으로 뼈가 으스러지고 깨지는 고통을 감내하며 어린 나이에 전족을 한다. 우연히 명문가에 동일한 사주를 가진 설화와 라오통을 맺으며 가난한 농부의 천덕꾸러기 둘째딸에서 명문가의 며느리이며 그로인해 친정이 자리를 잡는 귀인이 된다.

한없이 다정하고 친밀하기만 했던 랴오통 설화와의 누슈를 통한 우정과 애정은 아편중독자 아버지로 인한 가족의 몰락으로 명문가의 딸에서 천한 백정의 아낙으로 전락한 후에도 이어지지만 환경의 차이로 인해 서로에 대한 애정은 있지만 시련들과 오해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야 만다.

삼종지도로 대변되는 사회적 관습적 정신적 억압과 전족으로 표현되는 여성성의 억압은 라오통이라는 부부보다도 우선되는 관계를 통해 다져진 우정조차도 비틀어 버리고 만다. 루마님이라는 지위를 갖게된 나리는 어느덧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설화에게 라오통이며 친구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전족의 아픔을 강요했던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으로 관습과 풍습이라는 사회적 권력의 모습으로 천대하고 모욕을 주는 모습으로 변해간다. 누슈라는 여성만의 언어(문자)를 통해 애정을 쌓아가던 것도 표음문자인 한계-사실은 변해버린 나리의 시각으로-로 인해 제대로된 소통이 이루어지지 못한다.

여성들이 이젠 세상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고 많은 희생을 통해 이제는 조금씩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지게 되고 있지만 자신의 시각이 바뀌고 있음을 느끼지 못하는 나리처럼 아직도 보이지 않고 느끼지 못하는 곳에선 설화처럼 고통 당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문화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라질 뻔한 누슈가 이제는 보호받는 문화가 되고 여성의 상품성(?)을 높이는 전족이 사라진 풍습이 된 것처럼 세상의 여성들이 남성과 동등한 대접을 받기를 남자의 한사람으로서도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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