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땅으로 내려오다 - 철학을 내 것으로 만드는 "생각 교과서"!
김민철 지음 / 그린비 / 2007년 11월
장바구니담기


지혜란, 지식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체득하여 그와 관련된 상황이 주어질 때 최선의 판단을 도출해 내는 정신적 능력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암기를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모든 지식을 그 원리에서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며, 거기에는 '따져묻기'가 필수적인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 원조격인 사람들에 대해 알아볼 시간이다.-25-26쪽

시민 개개인은 자신의 양심에 의거해 어떠한 법이 '악법'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가 있다. 그러나 그 개개인의 판단이 올바른 것임을 보장할 수 있는 방법은 공개적인 토론과 합의를 거쳐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 내는 방법 밖에는 없다. 시민 불복종 운동이란, 다수의 구성원들로 하여금 특정한 법에 대해 다시 한번 심의해 볼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법을 어기는 행위를 가리킨다.-58쪽

변증법적 발전이라는 개념에는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이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주장이나 이론이 나와도 거기에 비판과 반론, 그리고 종합이 필연적이라면 변화를 피할 수는 없다. 그로부터 다시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전제는,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는 점이다. 우리는 완벽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접근해 나갈 뿐인 것이다.-64-65쪽

"알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일 따름이다. ...... (<대학>에서는) "마치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듯이 하고, 악취를 싫어하듯이 하라"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는 것은 앎에 속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것은 행동에 속한다. 아름다운 여인을 보게 되면 이미 스스로 좋아하게 되는 것이지, 본 후에 좋아해야겠다고 마음먹는 것은 아니다." (왕양명)

김민철 曰 "양명은 논변 과정에서 우리가 범하기 쉬운 오류 한 가지를 직접 보여주고 있다. '아름다운 여인을 좋아하는 것'은 과연 행동에 속하는가? 대화자 스스로가 이른바 '언어적 입법자' 노릇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무언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은 '감정'이고, 감정은 행동의 영역보다는 심리상태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그것을 '행동'이라고 정의내려 놓고 논변을 하자고 한다면,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68쪽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유한성을 뛰어넘고자 하는 데서 문제는 시작된다. 유한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었다면 별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의 유한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영혼, 혹은 이성은 이 세계의 유한성을 벗어난 신의 세계에 속한다고 생각해 왔다.

경험과 관찰을 초월해 있는 것을 선험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탐구하다 보니, 현실성이 전혀 없는 주장이라도 논리적인 모순만 없다면,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해서, 그럴싸하기만 하다면 형이상학적인 이론으로 대접받았다. 하지만 황금으로 뒤덮인 산이나 뿔 달린 말인 유니콘이 논리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해서 그것들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104쪽

'객관적'과 '보편적'의 의미는 영어로 풀이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객관적'에 해당하는 'objective'는 '사물, '대상'을 의미하는 'object'의 형용사이다. 따라서 '객관적'이란 '대상적'이라는 뜻이다. 파란색으로 보이는 물체가 있다고 하자. 보는 사람이 파란색 안경을 끼었기 때문에 그것이 파란색으로 보인다면 그것을 객관적인 관찰이라고 할 수 없다. 대상의 성질을 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상 자체에 파란색이 있다면 누가 보더라도 그 대상은 파란색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빨간색으로 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대상의 객관적 성질을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객관적'이란 '보는 사람과 무관하게 누가 보더라도' 라는 의미를 가진다.-108쪽

'보편적'이란 말에 해당하는 'universal'은 우주를 의미하는 'universe'의 형용사이다. 중국의 고대 문헌 가운데 하나에서는 '우주'(宇宙)에 대해 "상하사방(上下四方)을 우(宇)라고 하고, 고금왕래(古今往來)를 주(宙)라 한다"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 풀이대로라면 '보편적'이란 '동서고금의 어느 누가 보더라도'의 뜻이 된다. 역시 '객관적'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절대적'은 영어보다 한자로 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絶對'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對을 끊다(없애다)'로, '비교할 상대가 없다'라는 뜻이다. 무림의 고수에게 상대할 자가 없다면 그를 '절대지존'이라 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평가하는 것을 '절대평가'라 한다. 따라서 어떤 주장에 대해 아무도 그에 상대할 만한 반론을 제기할 수 없어야 절대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108쪽

자비의 원칙이란 토론의 원칙 가운데 하나로,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상대방의 의도를 비판할 때는 그가 상상 가능한 최선의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자비의 원칙은 토론의 핵심 원칙 가운데 하나이다. 상대방을 비난할 목적으로 그 의도를 날조하려 한다면, 비난 못할 행동이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편향된 시각을 가지고 토론에 임한다면 올바른 토론이 이루어질 리 없다. 편견을 배제한 열린 마음이야말로 공정한 토론의 필수조건이며, 자비의 원칙은 그러한 태도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118-120쪽

데카르트에 따르면 우리는 세 종류의 관념을 가진다. 첫째는 외부의 사물에 의해 촉발되는 외래관념(外來觀念)이다. 소리나 빛, 추위, 고통 등이 그에 해당한다. 두번째는 인어나 도깨비, 유니콘처럼 인간들이 만들어낸 인위관념(人爲觀念)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번째로 외적인 요인이나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야말로 순수한 지성(知性)의 작용으로 마음속에 저절로 생겨나는 관념이 있다. 자아에 대한 관년ㅁ, "X와 Y가 같고, X와 Z가 같다면 Y와 Z는 같다"와 같은 수학적 공리와, 앞의 신 존재 증명에서 언급한 바 있는 "원인은 언제나 결과 이상이다."라는 철학적 공리(公理), 그리고 신에 대한 관념 등이 그것이다. 이를 본유관념(本有觀念)이라고 부른다.-168쪽

언어도 사회생활의 산물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언어도 존재할 수 없다. 언어란 기본적으로 타자와의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회에 속하지 않은 인간은 언어를 습득할 수 없고, 언어를 사용하는 사회의 문화적 산물인 지식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설사 자연인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다.-220-221쪽

불교에서는 모든 현상이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기 때문에,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결국 '세계관의 전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고통도 기쁨도 예외는 아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기쁨이나 고통이 모두 부질없이 공허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사실을 깨닫고 세상을 다시 본다면 이 세상이 바로 극락일수 있는 것이다.-274쪽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속담은 민주주의의 정신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사공이 원하면 배가 산 아니라 땅 속으로라도 가야한다. 지식인의 역할은 배가 산으로 가면 곤란한 이유를 잘 설명해줌으로써 국민들로 하여금 무지로 인한 비자발적인 행위를 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286쪽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외적인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사람이 민주사회의 시민일 수는 없다. 데모크라토피아를 지향하는 사회에서는 마땅히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율적 존재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태어날 때 동물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인간다운 삶을 살 기회를 충분히 주어져야 한다. 그 역할은 국가와 사회가 져야 하며, 그러한 역할을 할 수 있는 국가가 바로 복지국가인 것이다.-332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식 e - 시즌 2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2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한 권의 좋은 책은 열 갈래 다른 독서의 시작"이라는 뒷날개의 김주하 아나운서의 코멘트가 이 책의 성격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특정한 하나의 지식이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기보다 여러 짧은 지식들을 축약해 제시하는 이 책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각 꼭지에 소개된 여러 다른 책들을 자발적으로 살펴보는 동기를 마련해준다. 좋은 책이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에 대해 답은 여러가지로 나올 수 있지만, 그 중 하나는, 좋은 책은 '그 책을 통해 다른 책을 손에 들게 만드는 책' 이라는 대답이다. 사실, 각 꼭지 말미에 소개된 책들은 묵직한 제목과 대중적(?)이지 못한 주제 때문에 관심없는 사람이 쉽게 손에 들지 못하는 책들이다. 하지만, 지식e 를 통해 그 책의 존재를 알게 되고, 관심을 갖게 된다면 <지식e>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얼마전 1권을 읽었고 바로 2권을 손에 들었다. 1권이 마음을 겨냥했다면, 2권은 머리를 겨냥한다. 하지만 1권과 2권이 각각 마음과 머리를 독점하지 않고, 1권은 '마음에서 머리로', 2권은 '머리에서 마음으로', 적잖은 충격을 준다. 나열된 어떤 사실에 대한 담담한 서술과 제시된 객관적인 지식에 대한 요약은 사실을 인지하고 지식을 습득하게 하지만, 그건 과정이고 수단에 불과하다. 궁극적으로 사실과 지식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은, 세상을 좀 더 넓게 멀리 바라볼 수 있는 시야와 마음의 움직임이다. 知識으로 시작했지만 우리는 智識을 얻게 된다. 이 책을 떠나서, 우리가 知識을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삶의 지혜를 얻기 위함일 것이다. 우리가 공부를 한다함은 내 앞에 놓여진 텍스트를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텍스트를 통해 내 사유를 확장해나가기 위함일 것이다. 

  달달 외워 머리 속에 아무리 많은 지식을 채워넣어봐야 다 쓸데 없다. 나 이 정도 안다, 며 누군가를 향해 자기지식을 자랑하고 내세우는데는 유용할지 모르겠지만, 그것 뿐이다. 나는 수많은 지식을 암기하고 시험치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청소년들과 온갖 시험준비생들을 볼 때 안쓰럽다.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국가적 시선에서 바라봤을 때도 - 난 이런 관점을 싫어하지만 -  이건 지나친 국력 낭비다. 고등학생들은 시험을 위해 오늘도 열심히 무언가를 암기하고 있고, 공무원 시험, 사시, 행시, 기술고시, 임용시험, 언론시험 등등의 시험준비생들 역시 매일매일 두꺼운 수많은 책들을 암기하고 있다.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하기 힘들다고 해서 이런 식으로 암기왕을 뽑는 구조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건 변명에 불과하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쓰여진 글자가 아니라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의 행간읽기다. 창의력을 강조하면서 공부법과 선발방식은 여전히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읽어내야 할 것이, 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에둘러 꼬집고 있는건 아닐까. 
  


댓글(7)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ephistopheles 2008-01-20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자는 1권보다 2권이 못하다..하기도 하지만 전 2권에서 만난 사실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더군요..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다보니요.

다락방 2008-01-20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2권은 1권과는 다르게 충분히 좋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프락사스님의 리뷰도 좋으네요.
:)

이잘코군 2008-01-21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권 둘 다 좋았습니다. 짦은 글과 사진이 마음을 動하게 하더라고요.

2008-01-22 19: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네꼬 2008-01-24 17: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2권은 아직 안 봤는데, 아프님 리뷰 읽으니까 안 읽을 수 없겠는데요. 아프님 리뷰 너무 잘 써. -_-

이잘코군 2008-01-24 21:55   좋아요 0 | URL
아핫, 요새 귀찮아서 그냥 생각나는 것만 쓰고 아니면 말고 식이에요. 잘쓰긴요, 귀찮아서 그냥 끄적이는걸로 족하고 있어욤. 전만큼 리뷰에 욕심이 안나요. 다른데 신경써서 그런건지.

수아빠 2008-06-09 14: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e>에 관한 설문조사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http://blog.naver.com/image2two 에 오셔서
내용을 확인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지식 e - 시즌 2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2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12월
절판


10대 때에는 거울처럼 지내지요
선생님 부모님 그리고 친구들
자꾸 비추어보고
자꾸 흉내내고

그러다 20대쯤 되면
주관적이든 일반적이든 객관적이든
나름대로 가능성도 있고
나름대로 기대도 있고
뭔가 스스로를 찾기 위해
좌충우돌 부대끼면서 지냅니다
자신감은 있어서 일은 막 벌이는데
마무리를 못해서 다치기도 하고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유리처럼 지내지요
자극이 오면 튕겨버리던가
스스로 깨어지던가
그러면서 아픔 같은 것들이 자꾸 생겨나게 되고
또 비슷한 일들이 일어나면
더 아프기 싫어서 조금씩 비켜나가죠

일정부분 포기하고
일정부분 인정하고
그렇게 지내다보면
나이에 'ㄴ'이 붙습니다
서른이지요
그때쯤되면
스스로의 한계도 인정해야 하고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도
그렇게 재미있거나 신기하거나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답답함
재미없음
그 즈음에
그 나이 즈음에
모두들 비슷한 느낌들을 가지고 있더군요

(김광석)-356-358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깐따삐야 2008-01-20 2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이건 김광석 앨범에서 들었던 이야긴데요?
'서른 즈음에' 부르기 전에 김광석이 읊조렸던 이야기...

이잘코군 2008-01-21 00:02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 이런 것도 어떻게 기억하고.

네꼬 2008-01-24 17:11   좋아요 0 | URL
내가 먼저 얘기할걸. (아프님이 깐따삐야님 기억력 칭찬한 거 맞죠?)
 
지식 e - 시즌 1 가슴으로 읽는 우리 시대의 智識 지식e 1
EBS 지식채널ⓔ 엮음 / 북하우스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이 책이 한참 팔릴 때가 대략 1년전인거 같은데 - 책 생일이 2007년 3월이니 1년은 안 됐구나 - 이제와서 읽고 감동받은 나는 참 느리다. 매주 일간지 토요일자 신간 서적란을 확인하고, 온라인 서점이나 오프라인 서점을 가끔씩 돌아댕기는 나는, 이 책을 무지하게 많이 접하긴 했다. 표지와 제목은 너무나 익숙하다. 그런데, 유명세에 서점에서 대략 훑어본 결과 - 오른손으로 책 전체를 빠르게 쭈루룩 넘겨봄 - 에이 별로 내가 원하는 책은 아닌 거 같다. 그냥 기획용 상품으로 딱 팔아먹기 좋게 나왔네, 하는게 당시의 내 반응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책은 그렇게 훑어보면 안 되는 거였다. 한 꼭지씩 천천히 읽다보니 이 책이 보여지는 것 이상으로 꽤나 큰 마음의 움직임을 이끌고 온다는 사실을 알았고, 손에 쥔 채로 끝까지 다 읽어버린 몇 안 되는 책이 되어버렸다. 그렇게 빨리 읽지도 않았고 꽤나 시간을 들여 읽었음에도 각각의 장들이 내게 주는 감동이 너무나 다채롭고 강렬하여 놓을수가 없었다. 때로는 분노케 하였고, 때로는 어느 글 한 줄이 나를 울려버렸다. 펑펑 눈물 쏟고 운건 아니지만, 닭똥같은 눈물 뚝뚝 흘린 것도 아니지만,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가에 촉촉한 방울이 맺히곤 했다.

  솔직히 당시 상품용 책이네, 하고 지나쳤던 이 책을 다시 주목하게 된 건, 지인이 올린 게시물 때문이었다. 그 게시물에는 이 책의 서문(?)이 담겨있었는데, 그 글은 이러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은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 현학적인 수사가 아니라 마음을 움직이는 메세지입니다. 빈틈 없는 논리가 아니라 비어 있는 공간입니다. 사고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지식은 엄격히 구분짓는 잣대가 아니라 경계를 넘나드는 이해입니다. 말하는 쪽의 입이 아니라 듣는 쪽의 귀입니다. 책 속의 깨알같은 글씨가 아니라 책을 쥔 손에 맺힌 작은 땀방울입니다. 머리를 높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낮게 하는 것입니다."

  이 시구절같은 대구를 이루는 짧은 문구들은 내 마음을 움직였고, 이 책을 간절히 원하도록 만들었다. 여기 적힌 짧은 문구는 내 삶에서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내 마음을 열어보여준 것 같은 느낌이다. 누군가 내 마음을 열어서 살펴보고 그걸 멋드러진 글로 옮겨놓은 듯한. 특히나 "암기하는 정보가 아니라 생각하는 힘입니다"라는 부분이 그랬다. 서문(?)의 문구들 답게 본문의 내용들은 매우 짧지만 강렬했고 그 글들은 '지식'보다는 분명 '생각'에 닿아있는 것이 확실했다.  

  이 책은, 책을 잘 읽지 않는 사람, 책을 읽고 싶어하지만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 혹은 생각하지 않고 타인의 삶을 복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면 딱이다.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매우 유용한 책이다. 앙드레 지드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권의 책을 책꽂이에서 뽑아 읽었다. 그리고 그 책을 꽂아 놓았다. 그러나 이미 나는 조금 전의 내가 아니었다." <지식e>는 거기에 딱 들어맞는 생각과 마음을 움직이는 책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책이다. 이렇게 마구 찬사를 늘어놔도 지나치지 않은 책이다.


* 책 서문을 뻬빠로 작성해주신 라주미힌님께, 이 책을 선물해주신 웬디양님께 감사.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웽스북스 2008-01-13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지난 추석 때 이 책 100권을 선물했다니까요~ ㅋㅋㅋ
(물론 회사용으로 한거지만 ㅋㅋ)

Mephistopheles 2008-01-13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지식공감은 짤막하게 EBS에서 방송해줍니다. 그것도 한 번 보세요.
2. 이 책의 가장 장점 중 하나는 책 속의 책이라고 보고 싶어요. 책 속에 주석으로 달린 책들 또한 호락호락 가볍게 볼 수 있는 책이 한 권도 없어보이더군요.^^

웽스북스 2008-01-13 02:27   좋아요 0 | URL
흐흐 저 막 리스트도 만들어놨다니까요

이잘코군 2008-01-13 0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청님 / 아 이거 짧게 그냥 대충 끄적이기만 하고 자려고 했는데 한번 쓰기 시작하면 끝을 모르는군요. -_- 내가 이 시간에 깨어있는건 흔한 일이 아닌데...

웬디양님 / 넵 100권. 웬디양님 혼자서 - 다 산건 아니지만 - 이 책을 엄청나게 팔아주셨군요. 북하우스에서 감사편지라도 보내야겠는걸요.

메피스토님 / 그거 한번 봐야겠어요. 한번도 안 봤는데 언제 하는건가요. 저도 각 장마다 끄트머리에 적혀있는 책 목록을 봤는데, 묵직한 것들이더군요. 이 책을 보고나서 그 책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Mephistopheles 2008-01-13 02:30   좋아요 0 | URL
책을 꼼꼼히 읽으셨다면 아마도 언제 방송하는지 나올텐데요..이히힛..
(빨간책에 나오나..??)

웽스북스 2008-01-13 02:30   좋아요 0 | URL
것두 그렇지만 이런 따뜻한 지식들을 많은 사람들에게 읽게 해서 좋았어요 그 사람들이 다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ㅋ 근데 아프님 진짜 이시간에 안주무시는 거 오랜만이다, 오늘 늦잠잤죠? ㅋㅋ

이잘코군 2008-01-13 02:33   좋아요 0 | URL
어제 11시에 집에서 나가서 신천에서 친구들이랑 술마시다가 기절해서 택시타고 새벽에 4시쯤 들어와 자곤 아침에 10시쯤 일어나고 안 잤는데...

웽스북스 2008-01-13 02:38   좋아요 0 | URL
저도 이제 불 끄고 컴퓨터 끌건데요, 살청님이나 메피님이야말로 정말 언제 주무시는지, 특히 메피님은 참, 신기하더라는, 혹시 가수면 상태에서도 알라딘 들어오시는 거 아니죠? ㅋㅋㅋㅋ

아프님 그나저나 신천에서 집까지 택시 탔으면, 택시비좀 나왔겠는데요? ㅋ

Mephistopheles 2008-01-13 02:40   좋아요 0 | URL
그니까 웬디양님은 저를 신기한 것 투성이로 보는 것이 분명하군요.

이잘코군 2008-01-13 02:41   좋아요 0 | URL
근데 술 값은 누가 냈는지... -_- 저는 택시비만 냈다는.

얼음무지개 2008-01-13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아직 못 읽었고, EBS에서는 방송하는 건 종종 보고 있어요. 처음 보자마자 마음을 사로잡았던 방송이었죠. 짦은 5분도 채 되지 않는 분량인데두요. 저런 방송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인지...

다락방 2008-01-13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거 시즌2도 지하철안에서 읽다가 막 눈물이 고였어요. 시즌2의 전태일이 울렸고, 스티비원더가 울렸고,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이 울렸고, 마지막 편집자의 말들도 울렸구요.

마노아 2008-01-14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기 나온 책 목록 전부 마이리스트로 옮겼어요. 맨 처음 이 책 소개해준 분이 메피스토님, 전 메피님께 감사를,책 선물해주신 멜기세덱님께 감사를.. ^^

꼬마요정 2008-01-14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어야 할 책들이 너무 많네요..
행복하다고 해야겠죠?
언제부턴가 책을 읽지 않는 나를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뭐, 그런 때도 있는 거겠죠.. ^^;;
첫 시작을 이 책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리뷰입니다.
고맙습니다~^*^

이잘코군 2008-01-14 2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음무지개님 / 방송은 아직 못봤는데 한번 보고 싶네요 저도. :) 매우 강렬했습니다. 짧은 글들이. 영상도 그렇겠죠?

다락방님 / 저도 어느 부분에선 분노가, 어느 부분에서 눈물이...

마노아님 / 이 책 꼭지 끄트머리에 써있는 책들 또한 무시할 것들이죠. :)

꼬마요정님 / 읽을 책은 많은데 마음의 여유가 없습니다. 편안히 책을 읽을 날이 빨리 왔음 좋겠습니다.

바람돌이 2008-01-14 2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송시간 모르셔도 검색어 지식채널e 찾아서 EBS들어가면 늘 공짜로 전체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습니다.
www.ebs.co.kr/homepage/jisike 홈페이지는 여기고요. 아 회원가입은 하셔야 되고요.

이잘코군 2008-01-15 08:04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08-01-15 10:55   좋아요 0 | URL
이건 저도 감사합니다. :)

웽스북스 2008-01-15 13:03   좋아요 0 | URL
어 이건 저도 감사합니다 ;)

수아빠 2008-06-09 14: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e>에 관한 설문조사로 도움을 받고 싶은데요
http://blog.naver.com/image2two 에 오셔서
내용을 확인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조한혜정 지음 / 또하나의문화 / 200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실제 학교를 운영하고 책임져야 할 교장, 교감 선생님이나 행정가들이 보면 참 싫어라할 책이다. 실제로 조한혜정 교수는 책의 후반부 즈음에 교장, 교감들과 토론회(?) 비스므리하게 자리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학교 현장에 와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가 있느냐, 현직 교사도 아니지 않느냐 는 등의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싫은 소리는 이런 식으로 적절한 발언을 할 적임자가 아니라는 핑계를 삼아 잘못되었다, 고 인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일전에 강준만이 문학권력을 비판했을 때 누군가가 강준만을 향해 문학인도 아니면서 어쩌구 했던 발언이 생각난다.

  조한혜정은 교장, 교감, 행정가들이 싫어할 만큼 '親 학생'적인 입장을 취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조한혜정이 학교는 전반적인 상황이나 분위기보다는 학교에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자신만의 꿈을 일찌감치 찾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학교를 바라보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잘못이 아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기술,가정 교과, 도덕 교과 등을 통해 진로선택과 자아찾기에 몰두하도록 가르치면서, 정작 자아를 일찌감치 찾은 아이들이 제대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자기를 찾아가는 길을 막는건 모순이다. 

  아마도 그 분이 그 분이 맞는거 같은데, 최근 시사IN에 칼럼을 쓰는, 이쁘장한 젊은, 하지만 표정은 시니컬하면서 생뚱맞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김현진씨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그 분과 조한혜정 교수가 주고받은 편지글까지 고스란히 책 안에 실려있다. 김현진씨는 자퇴 전 시절 학교에서 영화를 찍겠다고 교장샘의 양해를 받아 몇분 가량의 영상을 담아내려 했던거 같은데 이런저런 이유로 제제를 당했고, 이후 사상이 의심되는 학생이니 가까이 하지 말 것, 불순분자 등의 빨간딱지를 얻어맞은 듯 하다. 결국 그는 자퇴했고, 센터에서 자신의 꿈을 키웠으며, 한국종합예술대학 영상원을 통해 재능을 살리고 있는 듯 하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내세우는 학교의 이념이나 교훈, 교육 목표는 '창의적인 사람'이다. 어느 학교고 창의성을 강조하지 않는 걸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정작 교육 현실을 보고 있자면 '창의성'은 어느별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혹시 작년엔가 열 두 행성에서 제외하기로 했다던 그것 대신에 새로 집어넣은 또다른 행성? 창의성은 '생각함'으로부터 시작한다. 맨날 창의성 강조하면서 영재교육 시키고 경시대회 문제 같은거 주고 풀라고 해봐야 창의성에 전혀 도움 안 된다. 생각하는 개인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런데 대개 학교는 생각하는 개인과 이런저런 실험을 하고자 하는 개인을 '허가'하지 않고 있으니 교육 목표와 현실이 따로 놀고 있는 형국이다.

  김현진씨는 결국 그리하여 학교를 나와 자신의 생각과 재능과 창의성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영화는 어찌되었는지 아직 알 수 없다만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토대로 책도 냈고, 가장 많이 팔린다는 시사주간지에도 이름과 얼굴을 내밀고 글을 내보내고 있다. 그를 특별하게 보고 싶진 않다. 그를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그가 자퇴한 시절부터 진절머리나게 받아봤을 것이고, 단지 자퇴했다는 이유로,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로 집중조명을 받는건 그저 스포츠 신문의 가십거리에 불과하다. 그런 화려한 관심에 그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책은 조한혜정 교수의 글이지만 마치 나는 조한혜정의 글을 통해 김현진씨를 만난 느낌이다. 아마도 그건 조한혜정 교수가 드는 예의 상당 부분이 김현진씨의 것으로부터 비롯되었고, 중간에 들어있는 꽤나 긴 편지글이 내 머리에 강하게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 곳곳에는 김현진씨의 사례 말고도 그 시절에 방황한 나의 경험들이 자리잡고 있다. 나는 단지 결단력이 약했고, 용기가 없었으며, 스스로에 대해 확신에 차지도 못했기 때문에 끙끙 앓으면서 3년을 버텨 냈던 것이다. 나는 언제고 하나의 개인으로 봐주길 원했다. 지금이나 그 시절이나 그랬다. 한 학교의 학생이 아니라, 어른 이전 단계의 청소년이 아니라, 한 명의 개인이고 싶었다. 자유를 갈구하고, 내 생각을 펼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하며 살고픈 그런 한 명의 개인이고 싶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3년은 내게 그걸 허락치 않았고 고민했으며 떠돌았다.

  아버지는 없는 돈에 학원을 보내주셨고, 과외도 시켜줬으며, 책이 필요하다면 언제고 넉넉히 책값을 건네주셨다. 어머니는 몸에 좋다는 각종 과일을 깎아 내 책상에 대령해주셨고, 아침에는 쥬스까지 손수 만들어 속을 든든히 채워주셨다. 그건 분명 고마운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걸 두 분은 모르셨다. 두 분의 고마운 행동은 내가 열심히 공부를 할 수 있다, 는데 촛점이 맞추어졌을 뿐 나란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맞춰져있지 않았다. 학교 선생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적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을 때는 주위에서 온갖 관심을 받았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들 사이에서 잊혀진 존재였다. 관심과 배려는 언제나 성적에 비례했다. 그걸 몸으로 확실히 느꼈다.

  "경제주의 사회에서 부모 자식 관계는 이미 나빠질 대로 나빠져 왔다. 경제 성장 과정에서 돈을 버느라 바빴던 부모들은 부모 노릇을 자녀의 학비를 대고 피아노를 사주고 생일 파티를 해주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모의 능력은 자녀가 원하는 것을 소비할 수 있게 자금을 대는 능력에 비례하게 되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자신들이 "계속 부모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괴로워한다. 충분히 돈을 주지 못하는 부모에 대한 적개심과 충분히 돈을 줄 수 있는 경우에는 존경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은 괴로워한다. 자녀들은 지금까지 "공부만 잘해 달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따라 부모를 위해서 공부를 했는데, 지금 그 공부가 앞으로 자신이 살아갈 세상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속았다고 느끼고 있으며, 마음 깊이 원망과 적개심을 품고 있다."

  내가 경험하고 느꼈던 그것들을 지금의 청소년들도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다수는 경험하면서도 모르고 있다. 먼 훗날 그들은 지금을 기억하며 부모님을 원망할지도, 선생님을 원망할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아예 생각지도 못하고 그냥 살아갈수도 있다. "공부만 잘해 달라"는 암묵적인 요구는 자신을 잊게 만든다. 그들이 원하는건 '공부 잘하는 누구'이지 그냥 '누구'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10여년전 나는 무척이나 괴로웠다. 하지만 당시의 내 나이 또래의 지금의 아이들 역시 같은 괴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자신을 잊게 만들고 있다. 분명 교과서는 자신을 찾으라 말한다. 하지만 그건 교과서이기 때문이다. 교과서는 언제나 바른 말만 하므로. 현실은 그렇지 않은데도.  

  "우리는 인류대 합격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학교에 들어왔다. 선배의 빛난 얼을 오늘에 되살려 안으로 절대 정숙의 자세를 확립하고 밖으로 모의 수능 점수 향상에 이바지할 때다. 이에, 우리의 나아갈 바를 밝혀 학습의 지표로 삼는다. 적당한 학습지와 믿을 만한 과외로 사탐과 과탐을 외우고 익히며 타고난 저마다의 어문계열 지망의 꿈을 계발하고 우리의 방학을 약진의 발판으로 삼아 밤샘의 힘과 침묵의 정신을 기른다. 자기 반의 이익을 앞세우며 위선과 이유 없는 반항을 묵인하고 불신과 비난이 어색하지 않는 사제 관계의 전통을 이어받아 공감대 없고 타성에 젖은 수업 정신을 북돋운다.

  우리의 내신과 수학 능력을 바탕으로 학교가 발전하며 학교의 융성이 곧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육성회비와 등록금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학교의 운명을 좌우하는 막강한 배후로서의 학부모 정신을 드높인다. '반A고'(경쟁하는 학교 이름) 정신에 투철한 '愛석차 愛통계'가 우리의 삶의 길이며 대명 세계의 이상을 실현하는 기반이다. 길이 후배에 물려줄 영광된 고합격률 대명의 앞날을 내다보며, 이기심과 욕심을 지닌 근면한 학생으로서, 전교생의 '죽어지낸 3년을 모아 줄기찬 노력으로, 새 합격률을 창조하자."

(3학년 7반 허은영이 1996년 국민교육헌장을 풍자해 쓴 글)

  1996년에 이런게 있었는줄도 몰랐다. 그런데 찬찬히 읽다보면 어째 그때나 지금이나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 2016년에는 뭔가 좀 달라져있길 바란다면 그건 공상(空想)에 불과하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돌이 2008-01-13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가 바뀌는게 먼저일까요? 사회가 바뀌는게 먼저일까요? 때로는 이런 논의들이 갑갑합니다. 사회는 점점 천민자본주의의 강도가 심해지고 학벌간 격차가 점점 커지는데 교육만 보고 변해라 변해라 합니다. 한쪽에서는 좀 더 경쟁을 심화시키라 하고 한쪽에서는 경쟁이 아닌 공생의 교육을 하라 합니다. 여기서 어느쪽이 옳으냐는 분명하겠지요. 하지만 사회는 오른쪽으로 오른쪽으로 가면서 학교는 왼쪽으로 가야한다는 당위성. - 여기서 수많은 현실적인 갈등들이 나오잖아요.

이잘코군 2008-01-14 21:43   좋아요 0 | URL
그쵸. 사회는 '경쟁'할 것을 종용하고 있고, 학교에서는 공생의 교육을 해야한다고 하고. 학교에 '경쟁'의 바람이 본격적으로 불기시작하면, 학교가 아니라 학원이라고 불러야할 것 입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현실은 거기까지 와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