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출근을 핑계삼아 일찍 잠들었던 그날의 프로그램, 100분 토론을 '다시보기'했다. 알고 지내는 지인이 나와서라기보다는 - 먼저 본 분들에 의하면 열심히 노트에 필기하는 모습밖에 안나왔다고 - 삼성 결과에 매우 심히 엄청나게 불만족스러운, 그간 삼성 제품 열심히 사다 썼던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는가 궁금해서이다. 수사결과가 결과로 그치지 않고 100분 토론까지 이어진 건, 결과야 어찌됐든 미리 계획되었던 것이겠지만, 그만큼 논란이 많이 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었기 때문일 터다.

  화제의 김용철 변호사를 더 이상 왜곡된 언론이나 찌라시 신문쪼가리를 통해 보지 않고, 온전히 생방송으로 구경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도 했고, 먼저 본 분들에 의하면, 함께 나온 김상조 교수란 분이 참으로 옳은 말만 논리정연하게 빠득빠득 말씀 잘 하셨다기에, 또 반대진영에 나온 한 교수가 전화연결된 시청자로부터 "저 교수 왜 나왔어요?"라는 말을 들었다기에, 이거 또 어떤 대화가 오갔기에 그랬을까, 하는 궁금증, 그리고 더불어 지인을 티비로 보는 겸 해서 '다시보기'를 통해서라도 뒤늦게나마 보게 된 것. 

  디워 이후로 처음 본 100분 토론인거 같은데, 꽤나 재밌었다. 100분 토론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의 일종으로 보인다. 어디서 이한유 교수 같은 분을 섭외한건지. 그 분 발언할 때마다 그 바로 뒤에 앉으신 호랑나비 무늬의 브라우스를 입고 나오신 이쁘장한 여자분의 표정이 아주 재밌었다. 그리고 그건 방송을 보고 있는 내 표정과 같았다. 더불어 손석희 교수 또한 사회자이기에 자기의견을 말하지는 못하지만, 당황스러운 모습을 몇 번 보여주더라는. 디워 이후 다른 100분 토론을 본 적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그때만큼의 '후끈'은 아니었어도 충분히 '무한도전'이나 '1박2일'이나 '라인업'이나 '무릎팍도사' 보다 재밌었다.

  100분 토론에서 김용철 변호사나 김상조 교수가 충분히 반대진영이 납득할만한, 이해할만한 근거를 바탕으로 발언했다고 본다. 금융실명제도 잘못되었고, 자식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것에 대해 상속세를 무는 것도 잘못이라는 등의 발언과 합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 정말 이건 상식 이하의 발언이다 - 반대진영도 충분히 수긍할 만한, 아니 '수긍할수밖에 없는' 내용이었다. 김상조 교수 덕분에 끄덕끄덕 많이 했고, 이한유 교수 덕분에 많이 웃었다. 그리고 김용철 변호사 같은 사람 덕분에 대한민국에서 아직까지 살 맛 난다.

  100분 토론을 시청하고, 저녁에 한겨레 신문 <책과 생각>을 넘겨보니 최재봉 기자의 '김성동의 분노와 문학 현실'이라는 글이 눈에 띈다. 나는 전혀 듣도보고 못한 작가이다보니 블로그에서 몇몇 사람들이 지적한 바 있음에도 자세히 읽지 않았다. 그러나 기사를 읽어보니, 사건이 복잡할 것도 없는지라, 알고 있는 그대로가 다 였다. 한 명은 추리소설가고 다른 한 명은 '한국문학' 대표작가에 들만한 분인 듯 하다. 그런데 문학과 지성사가 작년 11월에 '한국문학선집 1900-2000'이라는 네 권짜리 책을 내면서 그 둘을 혼동하여 하나로 묶어 해설을 달아버렸다는 것인데(해설자는 충북대 국문과 이익성 교수), 작가의 항의로 잘못나간 사실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수정하거나 해설자와 출판사 대표가 사과를 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고작 보내온 메세지가 "수정하겠다"인데, 아니 무슨 배짱으로 작가에 대해 알지도 못하면서 그 따위 해설을 달고, '한국문학선집'이란 거창한 제목으로 그 따위 책을 낸단 말인가. 그것도 창비와 함께 대한민국 대표 문학 출판사로 손에 꼽히는 곳에서. 너무 부끄럽고 얼굴 빨개질만한 실수를 저질러서 자신들도 당혹스러워서 그런건지 모르겠다만,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내놓은 책들을 전량 걷어들여 수정하겠다고 하면 끝날 일이 왜 여지껏 지속되는지 모르겠다. 여기저기 시끄러워지고 이목이 집중되니깐 지난주에야 작가에게 사과를 한 것 같은데, 너무 늦었다. 너무. 명색이 문학 대표 출판사라는 곳과 대학 교수가 작가 하나 완전히 죽여버린 꼴이다.

  왜 나는 이 기사를 읽으면서 삼성이 떠올랐을까. 하나는 재벌기업이고, 하나는 거대 출판사인지라 분야도 다르고, 다루는 내용물도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사건 내용과 맥락 또한 다 다르다. 그런데, 한 가지 같은 점이 있는데, 잘못하고도 잘못을 시인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문학과 지성사야 지난주에 겨우 사과했다고 하니 그나마의 책을 만드는 출판사로서의 양심은 지킨셈(?)인데, 그야 시끄러워지니깐 뒤늦게 그리한 듯하고. 삼성은 아무리 시끄러워져도, 대한민국이 그 문제를 가지고 난리가 나도, 증거내놔, 로 일관하고 있으니, 이런 걸 보고 '삼성스럽다'라고 해야할지.

  아니 잘못한거 잘못했다고 그냥 말하는게,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말하는게, 뭐 그리 어려울까. 눈에 뻔히 보이는 잘못을 해놓고 잘못하지 않았다고, 내가 뭘 잘못했냐고 빠득빠득 우기고, 증거내놓으라며 그 사이 이리저리 손쓰고 자기들이 가진 증거 없애는 거보다, 그냥 깔끔하게 아 미안하다, 그동안 관행이었기 때문에 그랬다,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 순수하게 연구에만, 제품 개발에만 신경쓰도록 하겠다, 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게 뭐 그리 어렵다고. 어쩌면 문학과 지성사가 한참 뒤늦게라도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던 건, 이미 내놓은 출판물에 명백히 증거가 드러나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증거를 책을 산 모든 이들, 사지는 않아도 서점에서 책을 찾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만인에게 접촉가능한 증거물이기 때문에, 빼도박도 못하고 잘못을 시인했는지도. 

  사과에 정말 인색한 사람들이 많다.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오늘은 어디를 갔다가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나보다 몇살 어려보이는 한 청년이 DMB 핸드폰을 이용해 - 이게 티비 볼 수 있는 핸드폰 맞나? - 음량을 아주 크게 해놓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버스 안엔 빈 자리가 곳곳에 있었다. 사람들이 많지도 않고, 그들 모두 거의 조용히 있었으니, 티비 소리는 매우 컸을 수밖에 없다. 무슨 프로그램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막 대화를 하다가 푸하하하 크게 웃고 하는 걸 보면 오락 프로그램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대화내용은 들리지 않는다. 대화를 한다는 사실, 웃는다는 사실만 감지될 뿐. (소리가 커도 내용이 들리진 않는다.)

  나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 너무 시끄러워서 한 마디 할까 하다가 참았다. 그러면서 눈으로 몇 번 흘겨줬지만, 그 사람은 열심히 작은 액정에 몰입해 있는지라 나의 이런 눈초리를 느꼈을 리 없다. 그런데 앞에 있는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다른 청년이 뒤를 돌아, 너무 시끄럽잖아요, 버스 혼자 쓰는거 아니잖아요, 볼륨 좀 줄여주세요, 라고 말을 하는 것이다. 열심히 티비 보던 청년이 다소 황당한 표정을 짓다가, 받아들이고 핸폰을 아예 꺼버리지 않았다면, 나도 한 마디 더 추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물리적으로 그 분보다 거리를 두고 있었다.) 상황이 그쯤에서 마무리 됐으니 다행이지.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사실 그런 말을 하면서 상대방이 원하는 건, 볼륨을 줄이거나 핸드폰을 끄는 행위이지, 사과가 아니다. 당연히 사과가 있어야겠지만, 이상하게도 우리는 공공장소에서의 에티켓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당사자로부터 사과를 바라지 않는다. 잘못을 인지했다면 행동을 수정하는 건 당연하고, 나아가 피해를 준 사람들에게 사과를 해야할텐데 그러지 않는다. 사과를 하기엔 피해 본 이들이 어디 멀리 있거나 접촉 불가능한 영역에 있는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과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도 바라지 않는다. 행동을 수정해준 것만으로도 고맙기에. 정말 고마워해야하는지 모르겠다만.

  어떤 잘못된 행위에 대해 지적했을 때 자신의 행동을 수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누군가 잘못을 저질러도 주변에서 쉽게 그에게 한 소리 날리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지하철에서 그런 사람들 부지기수로 봤다. 그런데 한 번도 그렇게 지적한 적이 없다. 왜냐. 한 두 명이 아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지적해서 바로 행동을 수정해준다면 좋겠지만, 그러리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피차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와 그 사이에 언쟁이 오갈 것이고, 그곳에 있는 다른 이들의 시선이 몰릴 것이고, 여러 구경꾼들 앞에서 구경거리를 제공해주는 역할밖에는 못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적을 했을 때 상대방이 수정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은, 미리 전개상황을 예상해버리고 체념하는 나에게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상황을 여러번 목격했기에, 이미 아 그런 상황은 이렇게 전개되는구나, 에 대한 어떤 시나리오가 머리에 박혀있고, 그렇게 될거라면 에이 그냥 지나치자고 생각하게 되곤 한다. 삼성 사건도 그런게 아닐까. 분명 잘못된 일인줄 알지만, 지적해봐야 나만 피곤하고, 그러다보니 다들 못 본 채 지나가고, 그런데 갑자기 어떤 정의로운 분께서 혼자 총대를 메고 그거 잘못아니냐, 지적하니 당사자는 인정하지 않고, 사람들의 시선은 몰리고, 그들 중 누군가가 저 파렴치한, 어쩌고 하면서 상황은 이상하게 흘러가고, 그러다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결국 그들은 사과하지 않은 채 발을 뺐으며, 구경꾼들은 에이 어디 이렇게 될거 모르고 있었나, 다 알고 있지 않았나, 문제제기한 놈만 안됐지, 하면서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간다. 작년엔가 접한 일본 기차 사건이 떠오른다. 한 남자가 혼자 앉은 젊은 여자 옆에 가서 흉기를 들이대고 성추행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사람들이 많았음에도, 그들은 그 남자의 협박에 아무 일 없다는 듯 신고도 하지 않았고, 결국 그 여성은 기차 화장실에서 그 남자로부터 성폭행 당했다.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한결같이, 기관사에게도 경찰에게도 신고조차 하지 않았다. 

  잘못을 저지르고 사과를 하지 않는 이들에게는 마땅한 처벌이 가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사과하지 않아도 전과 같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준 모든 사람들도 죄값을 치뤄야 한다. 김성동 사건은 그 사실을 안 여러 사람들의 목소리로 인해 뒤늦게나마 출판사로부터 사과를 받았지만 - 그것도 미흡하다 - 삼성 사건은 이런저런 권력자들의 비호에 의해, 돈에 의해, '경제성장'이라는 유령에 의해, 그렇게그렇게 덮어졌다. 김용철과 사제단은 여기서 그치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졌고, 삼성을 내버려둔 이들은 그 댓가를 톡톡히 치루게 될 것이다. 

  100분 토론에서 어떤 여자분이 전화로, 삼성 사건을 지켜보면서 자기는 삼풍백화점 사건이 떠올랐다고 했다. 괜찮겠지, 문제 없겠지, 하고 내버려뒀다가 한번에 무너졌다는 말. 그리고 그것이 지금 이러한 결정을 내린 그들과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는 국민들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미래라는 사실. 우리는 사과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 한 마디씩 해야 하지 않을까. 모두가 소리 높여 그들에게 너 잘못한거 아니냐, 인정해라, 사과해라, 말한다면 그들도 마지 못해 뒤늦게라도 사과를 하게 되지 않을까. 어쩌면 삼성을 향해 한 마디씩 하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핸드폰으로 시끄럽게 티비를 보는 이들을 향해 뭐라고 한 마디씩 하는 것보다 쉽다. 직접 대면할 일도 없고, 서로 얼굴 붉힐 일도 없으니.

  사과해라. 삼성아. 사과하자. 잘못했다고 사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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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8-04-27 0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성동 이라는 사람이 두 명인데"가 아니고, 한 사람은 추리소설 작가 '김성종', 다른 사람은 <만다라>의 원작자 '김성동'입니다. 둘다 유명작가입니다. 혼동한다는 것부터가 난센스이고 어이없는 일이었습니다...

이잘코군 2008-04-27 00:56   좋아요 0 | URL
아 이름도 다르군요. 수정하겠습니다. 김성종, 김성동. -_- 아니 이름도 다른데 왜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한대요.

Mephistopheles 2008-04-28 22:56   좋아요 0 | URL
"감성돔"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아 나의 뇌구조는 나도 잘 모를 때가 있어요..

이잘코군 2008-04-29 00:37   좋아요 0 | URL
메피님 그거 개그에요? -_-a

Mephistopheles 2008-04-29 01:19   좋아요 0 | URL
개그라뇨...단지 회가 먹고 싶을 뿐입니다.

Jade 2008-04-27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00분토론 보셨군요. 양 이씨패널에 대한 네티즌들 의견을 검색해보다가 참 웃지못할 의견들을 많이 만났어요. 특히 김상조 교수와 김용철 변호사에 대한 험담...논리적 비판이라기 보단 감정적 분노에 더 가깝기에 험담이란 말이 적절할듯 하네요. 삼성에 대한 그들의 시각은 판단이라기 보단 종교더라구요. 어딜가나 말로 설득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다시한번 깨닫는 기회였어요.

이잘코군 2008-04-27 00:57   좋아요 0 | URL
-_- 끌어들이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신도가 되고 참들 어쩌다 그리 됐는지. 무서운거죠 이런게.

다락방 2008-04-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성동'과 '김성종'은 제가 오늘 본 신문(어제 신문이지만 오늘 봤어요)에도 나왔어요. 읽다가 덮어버리기는 했지만.

지하철안에서 DMB 핸드폰을 이어폰 없이 보는것고 아주 불쾌하고, 시끄럽게 통화하는 것도 싫어요. 최근엔 영상통화까지 하더군요. 내참. 기가막혀서. 말씀하신대로 무슨 말인지는 정확하게 들리지도 않아요. 아마 그래서 더 짜증스러운지도 모르겠어요. 시끄럽고 큰데 웅얼대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영상통화까지 더해져서 대중교통 이용이 더 소란스러워졌어요.

내가 왜 저인간들 통화하는걸 들어야 하지? 내가 왜 저인간들 얼굴을 봐야하지?

왜 많은이들이 불편해하고 불쾌해하는 것에 대해 당사자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아무리 내 생각과 같진 않다지만 기본적인 예의나 에티켓에 대해서는 다들 알고 있는거 아닌가요?

잘못을 하지 말아야죠. 그런데 잘못을 하게됐다면 사과를 해야죠. 사과를 해야함이 마땅하죠. 내가 잘못했다, 고 상대에게 말하는것이 당연한거예요.

그런데 저 일본 기차 사건 말이지요. 그게 막상 내 눈앞의 현실이 된다면 나는 신고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모두가 하나가 되서 그에게 덤빈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한 개인만이 신고를 한다거나 맞선다거나 하면 그 흉기가 자신의 앞에 들이밀어질 텐데, 그걸 감수하고 용기를 내어 신고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누군가 한명이 먼저 용기를 낸다면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씩 따르긴 하겠지만 누구든 그 처음의 한명이 되려고는 하지 않을테니 말이지요. 무서워요. 무섭고 불쾌한 일들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본래 페이퍼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성폭행범들은 다 죽여버려야 될 것 같아요. 거세하거나. 한 여자의 인생을 완전 송두리째 망가뜨리는거니깐요.

이잘코군 2008-04-27 09:03   좋아요 0 | URL
DBM에, PMP에, 뭐 각종 영상장비들 다 동원되더라고요 요새는. 전에는 엠피쓰리나 씨디피에 이어폰을 꽂고 크게 듣는 사람들 정도가 문제였는데, 요새는 아예 대놓고 켜고 들으니까요. -_-

살면서 잘못 숱하게 저지르고 다니지만, 잘못했으면 잘못했다 말하면 되는거죠. 그리고 다시 안 하면 되는거죠. 잘못했다는 말 한 마디 하는 것을 못하는, 아니 안하는, 그리고 사과를 받아내지 못하는 풍토가 조성되고 있습니다.

일본 기차 사건은, 성폭행범이 그 여자를 뒤로 데리고 간 뒤에도 시간이 있었지만 아무도 신고하지 않았다 해요. 그니까 성폭행 당하고 있는 그 시간에도 모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있었다는거죠. -_-

가넷 2008-04-27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백분토론 봤는데, 재미있었어요. 저도 이 교수님 발언 할때 뒤에 계신 분이 참 예뻐 보이더라구요(????)

이잘코군 2008-04-27 08:58   좋아요 0 | URL
네 저도 그 분 유심히 봤어요. 아무래도 가넷님과 저는 비슷한듯. (뭐가?)

야클 2008-04-27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드립니다. 맨날 염장성 페이퍼만 올려서.

이잘코군 2008-04-27 16:42   좋아요 0 | URL
아니 이게 누구십니까. 야클님! :) 야클님은 염장질 계속해도 돼요. 자극받아서 빨랑 저두 결혼(동거)해야죠.

도넛공주 2008-04-27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사과를 잘 하는 편인데,사과를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충고도 가끔 들어요."너 그러면 사회생활 못한다"는게 그이들의 요지랍니다.자세히 좀 설명해주지.음.

이잘코군 2008-04-27 21:31   좋아요 0 | URL
흐음, 명백히 잘못한 것에 대해서 사과를 하는 건 당연한건데 말여요. 잘못인지 아닌지 명확치 않은 것은 더 생각해봐야 하겠지만.

Mephistopheles 2008-04-27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과 안하는 이유가 간단하죠. 자신들이 한 행동이 절대 잘못이라고 생각을 않하는 거죠..^^
모두가 잘못이라해도 잘못이 아니라고 하는 것...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이잘코군 2008-04-27 23:41   좋아요 0 | URL
-_- 글쵸. 그거죠. 정신상태가 제대로 박히지 않았다는 것. 아 길게 말했는데 메피스토님이 한 줄로 요약하시네요. 크크.
 
미셸 푸코 살림지식총서 25
양운덕 지음 / 살림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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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그것을 지니고 그것을 행사하는 주체로 설명하지 않고 권력이 주체 없이 행사된다고 볼 필요가 있다.

푸코는 권력을 어떤 개인, 집단, 기구가 소유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망으로 본다. "권력, 그것은 제도도 아니고 구조도 아니며, 어떤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권한도 아니다. 그것은 한 사회의 복합적인 전략적 상황에 붙여진 이름이다."(푸코, 1976, 122)-17-18쪽

푸코는 특정한 권력 관계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담론을 생산하고 축적하고 유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즉, 권력은 '진리'를 생산함으로써 작용한다. 이처럼 개인에 관한 진리가 권력의 작용조건이라면 근대 권력의 특성이 억압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생산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47쪽

"권력은 진리 추구를 제도화하고 (학교, 군대, 병원, 감옥에서) 전문화하고, 그에 대해서 보상하거나 처벌한다. 이처럼 권력 관계는 상품, 부를 생산하는 것처럼 진리를 생산한다. 진리의 담론은 (부분적인) 결정권을 지니며, 권력의 효과를 실어 나르고 가동시킨다. 이처럼 개인들은 (권력의 효과를 지니고 있는) 진리의 담론 안에서 재판 받고, 선고받고, 분류도고, 일을 강요당하며, 사는 방식은 물론이고 죽는 방식까지 지정받는다."(푸코, 1997, 22-3/43)-48-49쪽

푸코는 전면감시장치가 권력의 작용을 '자동적인 것'으로, 비인격적인 것으로 만드는 점에 주목한다. 이 장치는 비주체적으로 작용한다. 곧 이 장치가 확보하는 권력의 원천에 특정한 인물이 있을 필요는 없다. 여기에서 누가 권력을 행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라도' 이 장치를 작동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장치를 작동시키는 의도나 동기에 따라서 기능이 달라지지 않는다. 즉, 이 장치의 효과는 주체의 의도와 무관하다. 전면감시장치를 장난삼아서 이용하는 경우이거나 진지하게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려는 철학자의 지적 호기심이거나, 몰래 훔쳐보기 위한 것이거나에 상관없이 이 장치는 '똑같이' 작용한다. 재미로 작동시키는 쪽이 덜 효과적인 것도, 진지한 쪽이 더 바람직한 것도 아니므로 (주체의 의도보다는) 이 장치가 산출하는 일정한 효과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푸코, 1975, 203-4/298)-54쪽

각주7) 푸코는 서구의 경제적 도약이 가능하려면 자본축적뿐만 아니라 '인간축적을 관리하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실제로 인간과 자본의 축적은 상관적이다. 그러므로 인간을 부양하면서 동시에 생산 기구를 확장하지 않는다면 인구축적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 반대로 누적된 집단을 유용하게 노동하도록 하는 기술은 자본축적운동을 가속화한다. 즉, 생산기구상의 기술적 변화, 노동 분업, 규율 절차를 정교하게 하는것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된다. 이런 지적은 자본주의의 생산적 토대가 생산기구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는 절차들을 자동적으로 만들어낸다고 보는 견해를 보완할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자본주의 경제의 확장은 그 구체적인 작동을 가능케 하는 규율 권력을 낳았고, 그것을 일반화한 양식, 힘과 신체를 복종시키는 방식인 정치 해부학은 다양한 정치기구나 제도로 이용된다. -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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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놉티콘 : 제러미 벤담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4
제러미 벤담 지음, 신건수 옮김 / 책세상 / 2007년 7월
구판절판


감옥의 세 가지 원칙

고통 완화의 원칙 : 장기간의 강제 노동을 선고받은 수감자의 일상적인 상황이 건강 혹은 생명에 해를 끼치거나 치명적인 신체적 고통을 동반해서는 안 된다.

엄격함의 원칙 : [수감이라는] 모욕적인 처벌을 당하는 것이 가장 불우한 계층의 사람만인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생활, 건강, 신체적 편안함 외에, 수감자에게 죄 없고 자유로운 가난한 사회 구성원보다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경제성의 원칙 : 생활, 건강, 신체적 편안함, 필요한 교육, 수감자의 미래 소득 외에, 경제성은 관리에 관한 모든 대상 중에서 가장 먼저 고려되어야 한다. 공공 비용을 지출해서는 안 되며 어떤 목적을 위해 가혹함이나 관대함을 이용해서도 안 된다. -36쪽

오랫동안 절대 고립 상태에 놓이게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 본성에도 위배된다. 이는 아주 중요한 경제성이라는 이유를 들어서도 논박할 수 있다. 즉 절대적 고립에는 막대한 건축 비용이 지출된다. 그리고 채광과 청결 유지, 환기에도 그 비용이 배가된다. 또한 개인 수용실[독방]은 공간이 너무 제한적이어서 두세 명도 공동 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작업 선택의 여지가 축소된다. 마찬가지로 이 방식은 숙련된 기술자에게서 도제 교육을 받게 할 방법이 없을 뿐 아니라 고립에 의한 의기소침은 무리에 의해 이루어지는 공동 노동에서 발생하는 활력과 경쟁심을 파괴함으로써 작업에 영향을 미친다. -48쪽

여기서부터 [해제 - 파놉티콘과 근대 유토피아] 발췌

행복이란 행위자의 행복이 이나리 행위에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의 행복이다. 따라서 벤담에 따르면 모든 입법의 목표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어야 한다. 또한 그는 유용성의 원리에 입각해 모든 처벌은 고통을 수반하는 악이므로 '더 큰 악을 배제할 가능성이 있는 한에서만' 사용해야 한다고 했다. 즉 공리주의 입장에서 처벌이 합리적일 수 있는 경우는 처벌이 범죄자를 교화하거나 그에게서 사회를 보호함으로써 더 이상의 범죄를 막고 다른 사람들이 처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범죄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할 때다. -74쪽

벤담은 여기서 이 감시 권력이 가시적이지만 확인할 수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세운다. 감시탑에서는 모든 것이 보이지만 각 수용실에서는 감시탑의 상황을 알 수 없다. 즉 감시의 주체가 드러나지 않는 것이다. 누가 감시하는지 모르지만 항상 감시되고 있는 상태,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파놉티콘이다. 그리고 푸코가 분석했듯이 이 장치는 자동 규율 장치로 확장된다. 수감자는 항상 자신이 감시받는다고 느끼고 스스로를 감시하며 자기 통제를 내면화한다. -90-91쪽

파놉티콘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가?

첫 번째는 공간 규모가 확대될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 때문이다. 시각적인 한계 때문에 감시탑에서 각 수용실을 감시하기 어렵다. 그래서 파놉티콘의 연장선상에서 계획된 어떤 감옥은 감시탑에 망원경을 달아두기도 했다. 두 번째는 수용해야 할 인원이 너무 많다. 그런데 완전한 파놉티콘은 많은 수감자를 수용할 수 없었고 공간이 턱없이 부족한 당시 상황에서 이는 사치로 여겨졌다. 세 번째는 당대 사람들의 인식이다. 박애주의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기에 파놉티콘은 무척 비인간적으로 여겨졌다. 네 번째는 새로운 공간 모델의 등장이다. 특히 널리 확산된 미국 모델들(주로 방사형)은 부분적으로는 파놉티콘의 원리를 따르지만 보다 넓은 수감 공간을 확보해주며 보다 인간적으로 여겨져서 굳이 힘들여서 벤담의 모델을 적용할 필요가 없었다. -106쪽

어번 시스템은 수도원 모델에 근거한 것으로, 사회 자체를 복제함으로써 범죄자가 '사교성의 습관'을 회복시켜 사회적 개인으로 자리 잡도록 훈련시킨다. 펜실베이니아 시스템은 엄격한 개인 고립 생활 속에서 각 수감자에게 내면의 양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즉 어번 방식이 본질적으로 활력을 되찾은 사회 자체였던 데 비해, 펜실베이니아 방식은 소멸되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삶이었다. 파놉티즘은 이 두 체계 중 펜실베이니아 방식을 통해 더 비중 있게 실현되었지만 벤담의 노동과 인간 개선에 관한 관점은 어번 방식과 유사하다. -114-1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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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4-22 0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선생님은 이 책을 인정하지 않겠군요 ㅋㅋ

이잘코군 2008-04-22 09:03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근데 말여요. 신기한건 이 책 각주1번에 파놉티콘이 외래어 표기규정에 맞다고 되어있어요. 그래서 그렇게 표기했다고. -_- 그럼 교과서랑 선생님이 틀린거에요. 학생 답 맞게 해야돼요.
 
그들만의 상식 - 좌파 자유주의자 변정수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2
변정수 지음 / 모티브북 / 2005년 3월
절판


물론 '자치'는 그 본래적 의미에서부터 '국민'이라는 이념적 절대 권력이 현실적으로 결코 절대적인 권력을 가질 수는 없다는 전제를 함의하고 있다. 요컨대 '국민' 자신으로부터 또는 좀더 정확히 말하면 '국민' 상호 간에 통제되거나 견제될 수밖에 없는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국민'이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가 현실에서 의미를 가질 때에만 실현될 수 있는 일이다. 그러한 이유로 마치 '국민'이 단일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통합적 주체이기라도 한 양 들먹여지는 '국민의 총의'따위는 존재할 수도 없을 뿐더러 존재해서도 안 된다. 또는 만일 혹시라도 그러한 것이 존재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도 틀림없이 누군가에 의해 적절한 절차에 따라 견제되어야만 하는 것이지 그 자체로 '절대적이고 최종적인 권력'일 수 없는 것이다. 이 자명한 이치를 무시하는 것은 '주권재민'이라는 원리에 대한 심각한 오독이며 심지어 도발적인 모욕이다.-18-19쪽

그러니 지금 이 시대에 정작 '민주주의'를 위협하며 '헌정 질서'를 유린하고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헌법재판소가 마땅히 수행해야 할 기능을 부인하며 '국민'이 그것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쿠데타적 발상'이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며, 심지어 '국민'의 이름으로 '탄핵 반대'의 슬로건을 전유함으로써 대통령의 탄핵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1/5 가량의 '국민'들을 졸지에 '비국민'으로 내모는 것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물며 다양한 정치적 의사의 표현은커녕 그 존재마저도 말살하려는 제도적 장치의 핵심인 국가보안법을 폐지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국민'들이 어떻게 감히 '민주주의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절대 주권자'를 자임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강조하거니와 국민이 절대적 주권의 담지자일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그 '국민'이 다양한 정치적 의사를 가진 주체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사이에 상호 견제가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19쪽

내가 느끼기에 '정규직'이라는 것, 특정한 기업에 정규적으로 고용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사회적 '신분'이다. 따라서 설령 (대개는 화이트칼라에 속하는 업종에서) 어느 '계약직'노동자가 실제로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거나, 또는 성과에 따라서는 더 좋은 조건으로 '재계약'을 맺을 수도 있다고 해도, '비정규직 차별'의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다. 그것은 차라리 '정규직'으로 취업하지 못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에 근거한 사회적 '차별'의 측면이 더 강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오해 없기를 바라지만)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조차조 그러한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다. -33-34쪽

다만 그 이유(대기업 선호)를 조금이라도 제거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자신의 직업에 떳떳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보장되는 길 말고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신분'을 이유로 사회적으로 무시당하거나(가장 극명한 예르 들자면 결혼 시장 따위) 제도적인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면, 또는 그런 차별에 직면한 개인에게 적절한 사회적 보장이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보장한다면 도대체 누가 '무한경쟁'에 자신의 삶을 매몰시키는 어리석은 길로 뛰어들겠는가.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차별 철폐'를 위해서는 '정규직 채용'을 기피하고 '비정규직' 채용을 확대하려는 개별 기업의 '악덕'을 성토하고, 그것을 법제도적으로 규제하려는 노력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다. '비정규직 차별'은 어쩌면, 생목숨을 자살로 몰아간 저 극악한 기업들 이전에, 사회 보장으로 해결해야 할 영역을 개별 기업에 떠넘겨 노사가 투쟁하고 협상해야 할 문제로 교묘하게 은폐해 버린 국가가, 그리고 '정규직'을 일종의 '신분'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져 버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저지르고 있는 죄악인지도 모른다.-34-35쪽

국가보안법은 국민이 자발적 의사에 따라 정치 결사에 가담하는 것을 가로막고 처벌하는 법이며, 자신이 가진 특정한 그 정치 사상을 표현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며, 특정한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 의사를 언론이나 집회를 통해 밝히는 것을 가로막는 법이다. 이것은 법을 빙자한 폭력이다. (중략)

국가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란 가령 이런 것이다. 무장 세력이 군사적인 공격을 가해 오거나, 경제적 이해 집단이 최소한의 생활 기반을 박탈하려는 압력을 가해 오거나, 강제로 오래된 생활 습관이나 삶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생각의 내용을 바꾸도록 강박을 가해 온다거나 할 때이다. 그런데 국가보안법이 군사적 공격을 막아 주는가 아니면 경제적 압력을 막아 주는가. 하물며 국가보안법이 지켜 준다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내용을 핵심적으로 구성하는 양심의 자유와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위협을 막아 주기는커녕 앞장서서 위협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이 필요하다는 것이 '국보법 사수'를 외치는 자들의 적나라한 고백이 아닌가. -60-61쪽

사실 관계를 정확히 파악하지 않은 채 막연한 인상만으로 욕설을 퍼부어대는 '무책임'을 '비판'이라고 착각하곤 하는 것은 이제 더이상 '일부 네티즌'들의 예외적인 일탈 행위가 아니지만, 그보다 더욱 확당한 일은 그러한 '비판'(?)이 애당초 결여하고 있는 사실 관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도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격으로 더욱 격렬한 비난이 되돌아오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왈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비판도 못하냐."는 데는 할 말을 잃을 지경이다. 이쯤 되면 잘 알지도 못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왈가왈부하는 것이 과연 '의견'으로서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따질 계제조차도 아니다. 아예 그런 '무책임'이 표현의 자유를 가진 '네티즌'의 당연하 ㄴ권리라는 것이다. (중략) '책임'을 동반하지 않은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는 엄연한 사실이 변하지는 않는다. 하물며 '무책임'을 당연한 권리로 전제한 '참여'란 그 자체로 형용모순이다.-225-2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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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왕국의 게릴라들 - 삼성은 무엇으로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가
프레시안 엮음, 손문상 그림 / 프레시안북 / 2008년 2월
평점 :
품절



  오늘 오후 삼성특검 발표가 났다. 결과야 신문, 티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대로다. 김용철 변호사와 천주교정의사제단을 비롯한 이 책에 등장하는 김상조, 노회찬,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은 모두 그간 뻘짓하느라 고생했다. 어떡하냐, 그렇게 뻘짓했는데 아무런 소득도 없고. 삼성은 굳이 애써 돈 들여가며 변호사를 고용할 필요도 없이 정부가 국선 변호사를 고용해 열심히 해준 결과를 얻어냈고, 뭐 이건희 회장와 사모님, 아들내미가 티비에 얼굴 좀 비춰주고, 검찰청에 왔다갔다 발품 좀 팔긴 했지만, 택시비도 안드니깐 뭐 손해볼거야 없지. 누구는 티비에 얼굴 한 번 내보이고자 몸도 파는 세상인데, 공짜로 얼굴 보여주고 얼마나 좋냐 그래. 

  손문상 화백이 이건희와 이재용 캐리커쳐를 왕관까지 씌워줘가며 참 멋지게 그려줬는데, 손문상 화백이 왕관을 씌워줘서 결과가 이렇게 나온게 아닐까. 정말 그런건가. 대한민국에서 대통령보다 더 센 권력이 딱 두 개 있다. 삼성과 김앤장이다. 나란히 두 권력에 대한 비판서가 출간 되었건만, 그저 그들을 비판할 수 있는 책을 출간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로부터 소송을 당하거나 해코지를 당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가보다. "삼성이란 절대 권력에 맞서 싸운 사람들 이야기"라는 카피는, '진실'이다. 삼성은 절대 권력이 맞고, 절대 권력이 맞기 때문에 아무리 증거나 나오고, 잘못한 이들이 자백을 하고 해도 쓰러질 수 없는거다. 왜냐면 절대 권력이니까.

  김용철 변호사 이전에 노회찬과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이 오래전부터 참 열심히 싸워줬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언론에는 비춰지지도 않고 서운하게시리. 잠잠하다 싶었는데 삼성의 절대 권력을 나눠먹던 김용철 변호사가 어느날 갑자기 뻥하고 터뜨려 세상의 모든 카메라를 받더니 카메라만 받고 끝났다. 이제부터 김용철 변호사는 조직의 배신자요, 돈 되니까 들어갔다 열심히 돈 받아먹다 돈 안주니까 여지껏 돈 준 회사 해코지한 나쁜 놈이요, 세상의 모든 카메라를 독차지했으니 이기주의자요, 가족보다, 회사보다, 지인보다, 정의를 사랑했으니 가정파괴범이요, 세상에 가족도 친구도 없는 놈이다.

  삼성특검 발표가 나자 어떤 이는 벌써 예언을 하기도 하더라. "속보입니다. 이건희 회장 건강상 이유로 형집행정지" 몇날몇시에 나올 기사인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운 미래에 보게 될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휠체어 타고 나와서 건강상의 이유로 형집행이 정지되었다는 기사를, 그리고 초췌한 모습으로 병원에 실려가는 모습을. 그렇게 또 한바탕 시끄러운 사건은 세상 모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갈 것이다. 그리고 삼성은 다시 또 열심히 국가를 지배할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과 검찰과 국세청과 기타 권력있는 모든 이들에게 자기가 가진 재산을 조금씩 나눠주며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자. 그 옛날 단군왕검의 홍익인간 정신처럼, 세상을 붉고 이롭게, 아니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서.

  짜고치는 고스톱 흥미진진하게 잘 봤다. 프레시안북과 프레시안 기자들, 그리고 인터뷰에 응해준 이 책 표지에 이름찍힌 김용철, 사제단, 심상정, 노회찬, 김상조, 이상호, 김성환 모두 수고했다. 짜고치는 고스톱에 흥미를 더해줘서. 냅다 그냥 짜고 치면 보는 사람은 재미없다. 중간에서 딴지도 걸어주고, 씨발씨발 하면서 화도 내고 해야, 아 이 게임이 어떻게 진행될까 궁금하다, 이런 마음이라도 가져보지. 노회찬, 심상정 두 사람은 그래도 나름 권력을 가졌던(?) 국회의원으로서 뭐라도 해보려고 했을텐데, 이제 국회의원 뺏지도 반납하게 됐으니 그것두 힘들게 됐고. 에라이. 당신같은 사람들 없으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냐. 뭘 보고, 뭘 믿고 살아가냐.

  김용철 변호사, "너무 힘들어 그만하고 싶다"고, 이제는 지쳤다고 했다는데, 그 정도면 참 열심히 했습니다. 근데 하던 건 마저 하고 쉬었으면 합니다. 거 왜 있잖아요. 해외 언론 BBC나 NHK에 공개하겠다던 그 동영상, 그거라도 마저 찍고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 나쁘다. 삼성. 이건희. 참 나쁜 기업이다. 참 나쁜 회장이다. 그냥 잘못한거 잘못했다고 인정하고 벌받고 깔끔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면 되지 않느냐. 잘못한거 잘못했다 인정하면 모두에게 용서받을 수 있을텐데 왜 인정을 안하냐. 그리고 니들 특검. 그게 한다고 한거냐. 증거 다 나왔구만 뭘 인정이 안 돼 안 되긴. 왜 이건희가 인정 안하면 증거 불충분인거야? 증거로서 효력이 없는거야? 그런거야? 에이, 참 못됐다. 어쩜 그래. 돈 없는 내가 그동안 열심히 꼬박꼬박 세금 내줘가면서 조사하라고 응원해줬구만 어떻게 내 돈을 그렇게 써. 얼마 안되는거 기껏해야 니들 밥 값 밖에 안되겠지만. 에이, 그래도 그러는거 아냐.

  애초 터뜨렸던 주요 국가 기관의 수장들에게 들어갔던 뇌물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그러니까 그 뇌물로 국가를 장악하려 했던 이야기는 쏙 들어가고, 이건 뭐 별 것도 아닌 것만 -우리에겐 별 것 맞지만, 삼성에겐 별 것 아닌 - 죄로 인정해서 불구속기소 어쩌고 하는 꼴이라니. 아주 오래전에 지강헌이 했던 그말, 그대로 맞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말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경험해서, 이제는 말하기조차 민망하고 식상한, 유전무죄 무전유죄. 별 거 있겠어. 돈 있으면 다 되는 세상인데. 그러니 OECD 국가 중에서 대한민국 청소년의 물질추구욕구지수가 월등히 앞선 1위를 달리지. 맨날 보는게 돈으로 다 해결하는건데,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얘네들이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도, 돈만 벌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다 얘들을 탓할게 못돼.

  에혀. 그만하자. 리뷰는 잡소리로 대신한다. 절대 권력에 맞서 뻘짓한 이들의 분투기를 꼭 보자. 10년동안 떠들어도 언론에서 안 다뤄주는데 이 책이라도 읽어서 이들의 한 이라도 풀어주자. 책 읽고 이들의 뻘짓에 공감한다면 한두 줄이라도 열심히 뻘짓했다고 써주자. 혹시 블로그 어디에 써놓으면 읽어줄지도 모르니깐. 다음 뻘짓 타자는 누가 될까. 언제까지 다음 타자를 기다려야 할까. 누가 될지 모르지만 김용철, 사제단, 김상조, 노회찬, 심상정, 이상호, 김성환보다 더 끈질기고 무식하게 물고 늘어졌으면 한다. 이들보다 더 무대뽀로 들이댈 뻘짓타자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사람들이 한 것만으로도 나는 너무나 이들이 대단해보인다.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 같아서. 나는 절대 권력에 들이대기엔 지은 죄도 많고 해서 언론에서 김용철보다 더 심하게 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섭다.  

 "빨리 양심선언 하라. 그게 살 길이다. 우리가 당신을 죽이자고 이러는건 아니니까. 빨리 양심선언을 해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이정도 되는 재벌이 있었다' 그렇게 긍정적인 얘기를 할 수 있게 하고, 그걸 토대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도록 하자. 노사 갈등이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런데 삼성에서는 그 자체가 범죄 수준이다. '페어플레이' 하자는 얘기다. 납치하고, 끌고 가고 하지 말고... 그러면서 건설적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이 됐으면 좋겠다." (양심수 김성환)

  바꾸자. 조용히 말하면 안 듣는다. "삼성아, 그러지마라. 형이 비자금 만든다고 패고 국민 우롱한다고 패고. 어떤 이씨 父子는 불법으로 살아가길래 기분나뻐! 그래서 패고. 그렇게 형한테 맞은 놈들이 사열종대 앉아 번호로 연병장 두 바퀴다." (잉크냄새님)   

p.s. 나는 앙가주망철학네트워크의 토삼성격문 발표 이후로 삼성 불매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불매운동만이 그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동영상을 제작해 해외 방송사로 내보내겠다는 김용철 변호사와 전 방송국 피디의 작업을 지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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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4-18 09: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성건 뭐든 안보고 안 쓰려고 노력합니다. 신문은 3월 1일자로 바꿨고 카드는 진즉에 폐기했고...가전제품도 몽땅 L모 기업이죠.
어제 뉴스보다 요거 나오니까 우리남편 '에잇~C'하면서 채널 확 바꿨는데, 거기서도 나오더라니.ㅠㅠ

이잘코군 2008-04-18 09:32   좋아요 0 | URL
저는 외면하면 더 안 될거 같아서 더 보고 분노하려고 해요. 많이 알고 많이 보고 많이 분노하고 많이 쓰고, 그러면서 알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공감대를 이루어 많은 이들이 분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삼성카드는 저도 연계된게 하나 있었는데, 알라딘 신한카드였나 뭐였나, 한 번도 쓰지는 않았지만 없애버렸습니다.

마노아 2008-04-18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의 마이리뷰 또 타셔야겠습니다. 같이 버럭버럭! 그래서 저도 애니* 핸드폰 싫어합니다. 죽어라 싸이온..;;;;

이잘코군 2008-04-19 00:05   좋아요 0 | URL
저도 이번에 싸이언으로 바꾸고 문자질 느려졌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