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복귀했습니다.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감당하기에 너무나 화가 나고 미칠 것만 같은 일들이 다양하게 일어났기에 도대체 어디서부터 말씀드려야할지 모르겠습니다. 그제, 어제 퇴근하고 피곤한 몸 이끌고 11시 15분까지 버티고 오느라고 힘들어서 오늘은 쉬려 했습니다. 하지만, 어제 제게 속삭인 분이 계셔서 그 분과 함께 하기 위해, 그리고 또 인터넷으로 동영상, 뉴스 등을 찾아보면서 직장에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결국 또 연 삼일째 청계천으로 향했습니다.

  내 인생 삼십년 동안 거리에서 시위니 집회니 하는 것들을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청계천에 모인 일반 소시민들처럼 저도 동영상과 뉴스를 보고 도저히 뜨거워지는 몸을 주체할 수 없어 그래, 나가자 하고 나갔던 게 벌써 삼일째입니다. 정말 피곤합니다.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고, 직장에서 일하고 퇴근하고 청계천에 모여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손피켓들고, 거리로 나가 계속 걷고 뛰고. 피곤합니다. 그래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왜. 한 번 나가봤더니 이건 머릿수 싸움입니다.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다음날 조중동엔 이렇게 나옵니다. 촛불시위 서서히 사그라들어. -_- 

  오늘도 청계천에 갔습니다. 도착하니 딱 7시. 사람들은 이백여명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아직 시작도 안했습니다. 곳곳에 산발적으로 퍼져있었습니다. 앞쪽에 자리를 잡고 홀로 앉아 고래고래 또 소리를 질렀습니다. 승주나무님이 오셨다가 가셨고, yayanim님과 그 분이 아는 동생분은 저와 함께 행진대열부터 함께 했습니다. 오늘도 역시나 중고생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습니다. 교복을 입고 오는지라 안 띌 수가 없습니다. :) 오늘 무대엔 열일곱번이나 참석했다는 안양예고 촛불소녀가 올라와 그 앞에 모인 만여명의 사람들을 뭉클하게 해주었습니다.

  집회는 아홉시반경에 끝나 또다시 행진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행진은 오분도 지나지 않아 막혀버렸습니다. 전경들이 쫙 깔려있었습니다. 청계천에서 종로로, 명동으로, 광화문으로, 시청으로 통하는 모든 통로를 다 닭장차로 다닥다닥 붙여 막고, 빈틈엔 전경을 수십명씩 배치했습니다. 닭장차는 보도블록 위까지 올라와 있었고, 청계천에서 연애하던 연인들과 노부부, 그리고 청계천 주변 건물의 직장인들까지도 못가게 막았습니다. 시위대는 분산되어 양쪽에서 구호를 외쳤습니다. "불.법.주.차.차.빼.라.", "집.에.가.자.비.켜.라.", "애.엄.마.를.보.내.줘.라.", "이.명.박.은.물.러.가.라."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습니다.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여러 구호가 난무하다가 한 명이 크게 외치면 다들 따라했습니다. 수십명의 전경은 시청방향으로 통하는 곳에 오와 열을 갖춰 무장하고 비켜주지 않았습니다. 거리 시위를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까지도 못가게 막았습니다.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막았습니다. 우리를 에워싼 전경대열의 뒤쪽에 있는 구경하는 시민들이 보다못해 함께 구호를 외쳐줬습니다. "불.법.주.차.차.빼.라.", "집.에.가.자.비.켜.라." 그래도 꿈쩍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업고 온 애엄마만 보내주자고 말해도 꿈쩍도 안했습니다. KBS, MBC, MBN, 한겨레 등등의 많은 언론이 그 광경을 취재했습니다. 내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분명 그들이 보도블록 위까지 치고 들어와 막고 있는 건 '불법'이었습니다. 이 전경들과 경찰들을 잡아가야 마땅했습니다. 그네들이 그동안 그렇게 외치던 불법이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네들 치면 불법이랍니다. 어이가 집을 두 번 나갔습니다. 한 번 나간 어이는 다시 나가기도 쉽습니다. 돌아오는가 싶더니 이젠 멀리 나갔습니다. 원.천.봉.쇄. 그곳은 섬이었습니다. 그들은 우리를 거대한 섬에 가뒀습니다. 집에도 못가게. 쓰바. 누가 보도블록 위에다 주차를 그따위로 해. 똑바로 세운 것도 아니고 도로에 세로로 걸쳐서. 애엄마도 안보내주는 이 꼴통들에게 말이 먹힐 거 같지 않아 시위대는 청계천으로 돌아갔습니다. 모두 흩어져서.

  청계천엔 어떤 잔머리 잘 돌아가는 시위자 한 명이 생각해냈는지 원천봉쇄 당한 그 섬에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청계천이었습니다. 누가 만든? 이명박이 만든! 아 이명박이 만든 청계천이 이렇게 고마울 때가. 아니 이명박이 이렇게 고마울 때가. 흐흐. 쓱삭쓱삭. 좋았어. 요때만큼은 칭찬해줄게. 사람들은 오와 열 없이 삼삼오오 그곳으로 줄을 이었습니다. 청계천으로 내려갔습니다. 가다보면 길이 나올 것이므로. 연인들이 참 많았습니다. 시위대가 삼삼오오 뭉쳐 구호를 외치며 지나가는데도 열심히 키스하더라고요. -_-;;; 좀 그르타. 낭만적인 자리도 아닌데. 연인이 꽤나 많더군요. 살짝 부럽기도. 므흣.

  흩어진 시위대는 청계천을 따라 쭉 가다가 계단을 발견하고 위로 올라갔습니다. 아웃백 스테이크가 있는 그곳이었던거 같은데, 위에선 누군가가 빨리 올라오라고 소리치고 있었습니다. 왜 그럴까 싶었는데, 올라가봤더니 수십명의 전경들이 또 포진해 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또 그리 가는걸 알고서. 그런데 이 녀석들이 마구 달려오더니 오와 열을 갖춰 전진하는 것입니다. 아직 올라오지 못한 많은 시위자들은 어떡하라고. 그러니까 다시 원천봉쇄를 하려했던거지요. 아 나오면 집에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중권이 형의 말마따나 꼭지가 돌았습니다. 에이 쒸벌. 나 집에 안가! 정말 안가려고 했습니다. 순간 가장 먼저 떠오른게 직장인데, 에이 내년 연차 끌어다가 쓰지머. 대리님께 부탁해서 연차 올리자. 그런 생각이 들더라는.  

  내 옆의 누군가가 스크럼을 짜자고 했고, 나를 포함한 건장한(?) 젊은(?) 남정네들이 다리 위의 전경과 마주보고 스크럼을 짰습니다. 우리 뒤에도 한 줄 더 짰습니다. 대치하자는게 아니라, 싸우자는게 아니라, 아직 못올라온 시위대가 다 올라올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시위대가 다 올라오고 우리는 스스로 스크럼을 풀고 거리로 나갔습니다. 드디어 거리로 나갔습니다. 삼삼오오 흩어진 시위대는 여전히 산발적으로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발견했습니다. 한 뭉텅이의 거대한 시위대 대열을. 아니 이들은 어떻게 벌써 빠져나왔지. 내가 꽁지에 붙어있었던건가. 양측이 만나자 너무 반가웠던지 모두 함성을 질렀습니다.   

  어렵게 거리행진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이 거대한 무리는 그제, 어제와 비슷한 코스대로 다시 저벅저벅 걸었습니다. "이.명.박.은.물.러.나.라.", "평.화.행.진.보.장.하.라.", "협.상.무.효.고.시.철.회." 어떤 시위자는 불평했습니다. 전에 걸렸던 그 코스잖아! 가면 뻔히 보이는데 어쩌자고. 그러나 우리는 뒤꽁지에 있었기에 방향을 틀 수 없었습니다. 다시 흩어지면 모두 연행될 것이므로. 함정으로 가더라도 뭉쳐서 가야합니다. 지금 이 시간 아마도 경찰과 또 대치중이겠지요. 아니면 벌써 연행됐거나. 중간에 빠져나오기 매번 미안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매일 참석할 수 있으므로 이 못난 직장인은 여기서 나왔습니다. 꼭 경찰 대치 바로 전 상황에서.
  
  청계천에서 있었던 한 가지 사건을 빼먹었습니다. 위 난간에도 닭장차가 다닥다닥 붙어있었고, 전경들이 길을 막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난간에 한 중년 남녀가 난간 안쪽으로 가고자 했으나 그들은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러면 청계천으로 떨어지는 방법밖에는 없는데 어쩌라고. 청계천으로 향하던 이들은 잠시 멈추었습니다. 안전을 보장하라고, 난간 안으로만 들어가게 해달라고 사정사정했으나 그들은 놔주지 않았습니다. 한겨레 카메라맨와 기자가 도착했고, 그 장면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핸드폰, 디카 등의 플래쉬가 작렬했습니다. 이것도 내일 뜰겁니다. 난간 안쪽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 했는데 그들은 허가하지 않았습니다. 떨어지라는거죠.  

  곳곳에서 분노를 금치 못할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원천봉쇄해놓고 건드리면 불법이다, 이 지랄 하고 있으니 건드리지도 못하고, 그냥 다음날 아침까지(?) 그곳에서 버티라는 말인지 어쩌라는건지. 아니겠죠. 다음날 아침까지 그곳에 있다 온전히 빠져나오지도 못하겠죠. 차가운 공기가 스며드는 새벽이 오면 그들은 기다렸다 지친 우리들을 기습하여 닭장차로 끌고 가려는 수작이겠죠. 이번엔 천 단위로 잡아가려고. 닭장차가 무지 많기는 했으나 그 인원이 다 들어가기엔 어려워보이던데. 좀 더 차를 가지고 오던가 아니면 그냥 보내주던가 해야지. 집에 가겠다는데 왜 보도를 막아. 불법 어쩌고 꿍시렁꿍시렁하더니 지네들이 몸소 불법을 저지르고 있어요.

  참, 아까 무대에 오른 어떤 인권 무슨 단체 아저씨 왈, 차도에서 돌아다니는건 벌금 20만원인지 50만원인지가 다라고 합니다. 그러니 연행하는건 그네들이 불법을 저지르는거라고. 현행법상으로 따져도. 이런 미친. 그럼 여태 이것도 제대로 모르고 당한거잖아. 쟤들이 불법 막 저지르는거 눈으로 지켜보면서. 고작(?) 20만원주면 땡치는걸. (20만원이 뉘집 애이름이냐.) 월드컵 때 남의 차 벅벅 긁고다니고 벌거벗고 다닌 애들은 왜 안 잡아가고, 응~!, 평화행진하는 시위자들은 잡아가겠다고 지랄이야 지랄은. 법을 적용할거면 매번 똑같이 적용하든가요. 아니면 말든가. 그나마 이것도 법을 적용해도 지금 이대로가 아니라며. 응? 왜 데려가. 데려가길. 가슴에 불덩이만 점점 뜨거워집니다. 분노는 갈수록 배가 됩니다. 왜? 와서 본게 너무 많으니까.

  미국이 압박해서 장관고시 하겠다고 했답니다. 아마도 내일. 고시되면 촛불집회는 시청에서 합니다. 월드컵 사진을 재현해봅시다. 머릿수 싸움입니다. 미국 광우병 쇠고기 건에 대해 시위대와 같은 의견이시라면 머릿수 늘려주십시오. 동의하지 않는다면 그건 당연히 올 필요가 없는거고요. 동의하신다면 -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만 - 머릿수를 늘려주시기 바랍니다. 만명정도로는 얘네가 꿈쩍을 안하네요. 십만은 모여야 되나 봅니다. 장관고시되면 시청입니다. 그리고 토요일은 네시반부터 마로니에 공원에서 시청으로 행진한답니다. 참고하시길. 집회는 매일 열리니 혹시 오늘 할까 하는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장관고시 안하면 청계천 소라광장으로, 하면 시청으로, 토요일은 마로니에로. 당신의 분노를 보여주십시오. 촛불을 들어주십시오.

p.s. 위에 적힌 내용은 모두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거짓이라면 난 이명박보다 못한 놈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심한 욕이잖아. 부시보다 못한 놈<이명박보다 못한 놈.)



* 제가 있던 곳입니다. 인도까지 원천봉쇄한 '불법' 경찰들이 아기 엄마를 안 보내주고 있습니다. 
   (사진은 오마이뉴스에서 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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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필휘지
    from perfect stranger 2008-05-29 03:27 
    이 런 개 ㅅ ㄲ 들 을 봤 나 . . . . 민 중 의 지 팡 이 냐 아 님 민 중 의 홍 두 깨 냐
 
 
순오기 2008-05-29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기막힌 현실이 매일 중계되는데... 날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오늘 아이들이 일기를 쓰는데, 수입소 문제를 글감으로 한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었어요. 집에서 부모님이나 TV로 보니까 4학년 아이들도 알건 다 알더군요. 그 일기를 읽으며 여기가 '광주'확실하구나 새삼 느꼈답니다.

이잘코군 2008-05-29 01:31   좋아요 0 | URL
아이들도 알거 다 알아야 합니다. 숨기려해도 숨길 수 없는 현실이죠. 젖먹이일 때 일어났던 광주항쟁이라 '기억'하는 바 하나도 없으나, 영상과 사진으로 본 그 장면이 맞습니다. 초기 광주입니다.

마노아 2008-05-29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로니에가 대학로죠? 마로니에가 두 개 있단 소리를 들어서... 아프님 고생 많으셨어요. 내일 봐요.

이잘코군 2008-05-29 01:31   좋아요 0 | URL
네 대학로에요. :) 내일 봐요.

2008-05-29 0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9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전호인 2008-05-29 08: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과 정의를 가진 많은 분들의 노력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수고많으셨어요

이잘코군 2008-05-29 09:10   좋아요 0 | URL
오늘은 조국교수 강연회에 당첨되어 거기를 가려합니다. 갔다가 끝나고 시위대에 동참하려 합니다. 오늘 고시한다 하더라고요.

무스탕 2008-05-29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매일 아프님의 글을 보면서 난 여기서 같이 발을 구르고 있어요.
정말 같이 동참하지 못해 속상하고 아쉽고 화가 납니다.
아프님.(다른 분들도 물론!) 몸 다치지 않게 조심하세요.

이잘코군 2008-05-29 09:52   좋아요 0 | URL
넵! 감사.

2008-05-29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9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9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9 1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8-05-29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일 피곤하시겠네요.
엊그제는 부산에서도 있었다던데...
저도 토요일쯤엔 나가보려고 하고 있답니다.
낮에 좀 쉬시고 밤에 힘내시길~~~

이잘코군 2008-05-29 11:29   좋아요 0 | URL
네 부산에서도 거리행진 시작됐답니다. 규모가 상당하다고 들었는데. 오늘 4시 여의도에서 장관고시 발표하겠다네요. 아고라에서는 광화문 12시에 시위진행한답니다. 피곤해도 해야죠. 머릿수 싸움인지라 나 하나쯤 하는 생각 버렸습니다. 경찰이 그짓하기 전엔 여의도 침묵 시위 나간게 다였는데, 분노를 벌고 있습니다.

블루캣 2008-05-29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제 거기 있었는데 스크럼 짜셨군요~그렇게 해서 사람들 다 올라 올 수 있었죠...도대체가 가둬두고 뭐 하잔 건지, 집에 간다는 사람들까지 막고 있어서 한숨만 나오네요!!!

이잘코군 2008-05-29 12:12   좋아요 0 | URL
엇, 저랑 비슷한 지점에 계셨나봅니다. :) 집회 끝나고 집에 가겠다는 사람들까지 막으면 어쩌자는 겁니까. 정말.
 


  여의도, 청계천, 청계천. 세번째입니다. '이명박과 미친소'(무슨 댄스그룹명 같습니다. 근데 잘 어울립니다.)로 인해 집회에 참여한게 오늘로 세번째 입니다. 여의도의 침묵시위보다 청계천의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훨씬 좋았습니다. 오늘은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제와 비슷한 규모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청계천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집회는 시작했고, 대략 천여명 정도가 모여있는 듯 했습니다. 어제와 같은 위치로 가서 자리를 지키며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지르고, 촛불을 높이들며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아니 이게 뭡니까. 앞에 있어서 몰랐는데 어느새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였습니다. 

  여덟시에 마친다 했습니다. 사회자는.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엠비씨가 아홉시 뉴스에 생방송을 하겠으니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답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엠비씨 엠비씨를 외치는데 큭큭 어찌나 재밌던지. 마치 엠비씨라는 댄스그룹을 부르는 듯 했달까요. 어제 집회에 참여했고, 두 눈으로 연행 전까지의 장면을 모두 보고 왔는데, 아침 신문은 역시나 역시나 왜곡하더군요. 숫자를 줄이는건 이제 그네들의 일상이고 - 집회인원을 아마도 경찰에 물어보고 쓰나봅니다 - 평화집회가 폭력집회로 바뀌었다느니 어쩌구저쩌고. 어이가 없어라. 집나간 어이를 찾습니다.

  역시나 어제 새벽에도 스물몇명이 연행됐다고 하지요. 지나번 연행된 서른몇명은 '불구속 입건'되었다고 하고. 불구속 입건. -_- 뭡니까 장난합니까. 출근할 직장인 잡아다, 집에서 애볼 주부 잡아다, 뭐하겠다는겁니까. 월드컵 때 거리로 나와 광분하던 시민들은 왜 잡아들이지 않았답니까. 만단위가 아닌 십만단위라서 안잡아넣었답니까. 어이 없는 쉐끼들. 검찰 스스로 그랬다죠. 지금의 시위 양상은 특정 배후 세력이나 주도 세력이 없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우후죽순 참여하는지라 월드컵 때와 비슷하다고. 그래서 구속시키기 난감하다고. 구속시키려거든 우리처럼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다닌 애들이 아닌 월드컵에 거리에 발가벗고 나와 미친듯이 돌아댕기던 그네들을 잡아들여라 꼴통들아.
 
  대통령은 애써 이런 장면들을 보기 싫었던지 중국으로 토껴버리고, 경찰청장이며 검찰총장이며 아주 오랫만에 어이쿠 월척이다 잘 걸렸다 하는 마음인지, 다 잡아들이겠다고 하고. 어휴. 왜 그동안 경찰들 스트레스 풀 기회를 마련하지 못해 고민이 많았나보지. 잘됐다 이녀석들. 오랫만에 비오는 날 개패듯이 -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 한번 패보자 이런 심보인가요?  오늘도 거리행진은 계속 됐습니다. 아홉시 엠비씨 방송이 끝나고 집회를 마쳤고, 사람들은 다시 행진! 행진! 을 외쳤습니다. 집회를 마쳤으니 갈 사람들은 가고, 남을 사람들은 남아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절대 주동자, 배후세력 없습니다.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작은 카드를 들고, 저벅저벅 앞으로 나가며, 외쳤습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연.행.자.를.석.방.하.라!", "협.상.무.효. 고.시.철.회!" 심심하지 않게 구호를 바꿔가며 때로는 "이명박은 물러가라 울라울라!" 노래를 부르며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습니다. 청계천에서 종로로, 종로에서 명동으로, 주변을 빙빙 돌면서 어제와는 조금 다른 코스로 행진을 계속 했습니다. 어제보다 많은 전경들이 주변에 포진해있었고, 그들은 거리행진 한 시간(?)만에 우리의 앞을 막았습니다. 사거리에서 두 곳을 원천봉쇄했습니다. 우리는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길은 많았으니까. 오던 길을 돌아 명동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명동거리 안쪽으로.

  사람들은 건물에서 구경하고, 어떤 분은 호텔 노래방에서 손을 흔들며 호응을 하고(왜 있잖아요. 안과 밖이 서로를 볼 수 있는 누드노래방. 호텔건물인데 이런게 있더라구요.), 길거리 악세사리 아저씨는 함께 플랜카드를 들고 응원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바라봤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역시나 우리의 대열에 동참했고, 처음에 어제보다 못했던 인원으로 시작한 대열은 거대한 한 집단을 만나 두 배가 되었습니다. 어제와 맞먹는 인원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들은 지쳤고, 목소리는 작아졌으나,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있는 힘껏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명동 밀리오레 근처에서 전경은 우리를 압박해왔습니다. 그들은 방패를 들고 우르르 달려들었습니다. 시위대 앞을 막았고, 다시 대치했습니다.

  제가 본 건 또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사건은 제가 집에 돌아온 뒤에 생기더군요. 경찰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 어제도, 오늘도, 밥벌이를 위해 발을 뗐습니다. 그들을 남겨놓고 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11시를 넘어가면서 규모는 절반이하로 줄었고, 전경들은 그때를 기다려 압박해왔습니다. 현재 시각 한시 십분. 조만간 또 사태가 벌어질 것이고, 내일 아침엔 스물 몇명이 또 강제연행되었다는 기사가 나오겠지요. 일부는 방패에 맞아 쓰러질 것이고, 일부는 땅바닥에 질질 끌려다니겠지요.

  오늘도, 고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촛불을 들고 시위대 한 편을 차지하고 있던 여고생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계천 단상에 오른 이들 중에는 직장인와 아이엄마를 제외하고 여고생이 셋이나 됐습니다. 친구들은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그들은 해야 할 공부가 많을텐데,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한참 뒤쳐질 것이 뻔한데, 분노를 삭히지 못해 그곳에 올라왔습니다. 교복을 입은채로.

  10대가 시작한 촛불 시위, 이제 20대와 30대가 이어받습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제 몫 이상을 해주었습니다. 아니 그들의 몫이 아니었으나 그들이 대신 나왔습니다. 20대와 30대가 이어받는 촛불시위, 전 국민이 이어받습니다. 내일과 토요일 집중 촛불 시위 합니다. 이제 천 단위가 아니라 만 단위의 사람들이 청계천에 모입니다. 10만 단위, 100만 단위가 될 때까지 모입시다. 국민의 머슴이 머슴 역할을 할 때까지 모입시다. 자신을 고용한, 주인을 배신한 머슴을 따끔히 혼내줍시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머슴이 머슴 노릇을 할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현재 밝힌 촛불 25842개 (http://www.sealtale.com)


p.s. 어제 오늘 연달아 나갔더니 체력이 바닥났는지 오늘은 힘들더군요. 이게 별 거 아닌거 같아도 몇시간 동안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서있고, 행진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많은 듯 합니다. 내일은 몸상태를 봐서 갈지 안갈지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오늘 페이퍼에 속삭여주신 분, 댓글을 집에 돌아와 봤습니다. 다음에 함께해요. 
 

p.s.2 아침 뉴스를 보니 연행인원 100명이 넘는다 하더군요. -_- 폭력/강제 연행이 되자 남은 시위자들이 경찰들이 폭력행사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들어갔다 합니다. 나 잡아가라고.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정말로. 좋다. 나 잡아가라. 서로들 잡아가라고. 이런 식으로 수만명이 함께 외치면 다 잡아갈 수는 있으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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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lia 2008-05-28 0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 님, 고단하신 중에도 유머를 잃지 않으시는군요. 본받고 싶습니다. 힘내시구요.

이잘코군 2008-05-28 09:28   좋아요 0 | URL
^^ 이거 쓰고 자서 잠을 별로 못잤어요. -_- 회사 가는 날엔 6시간 이상 자줘야 하는데. 오늘은 비가 오네요. 비가 와도 집회를 하려나 모르겠습니다. 아침 뉴스보고 100여명 연행됐다고 해서 피곤해도 나가야지 했는데 비가 오네요.

여울 2008-05-28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도, 오늘도, 밥벌이도 중요하고, 시간을 안분하는 것도 중요하죠.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으셔도 될 듯한데요. 한방울, 한점...다 소중하겠죠. 마음 속에 촛불한점 가져갑니다아.

이잘코군 2008-05-28 09:29   좋아요 0 | URL
고시가 오늘내일인지라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요. 분명 강행할텐데 앉아서 당할 수는 없죠. 자발적으로 닭장에 들어가신 백여명의 사람들이 참 고맙게 느껴집니다. 폭력경찰 만들지 않으려고, 강제연행되지 않으려고, 자발적으로. 4천만 촛불이 켜질 때까지 계속 갑니다.

드팀전 2008-05-28 09: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산에서도 어제 있었는데....가려고 집에 전화를 했는데..^^ 아내가 아이가 아프다고 일찍 들어오랍디다... 쯥....다음에 가족이 함께 가자는데 요즘 추세를 봐서는 이제 아기들은 빠져야할 것 같아요.

이잘코군 2008-05-28 09:30   좋아요 0 | URL
부산에서는 아직 거리행진은 안하고 있죠? 서울 이외의 지역에선 어떤 양상으로 진행되는지 파악이 안돼요. 보도를 안해주니. ^^

지호 2008-05-28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회사다니면서 집회까지 참가하실려면 정말 힘드시겠네요..
몸도 좀 챙기셨으면 좋겠습니다.여기는 광준데요 금남로에서 늘 촛불집회 열리고있습니다.
사람들이 꽤 많이 모이는데 지역뉴스나 신문에서는 다뤄지지 않고 있네요.

이잘코군 2008-05-28 09:58   좋아요 0 | URL
넵. 광주 한 번 가보고 싶습니다. 역사의 현장인 금남로. 요즘 아주 바쁜 일은 없어서 퇴근하고 가면 할 만합니다. ^^

p.s. 전북의 지식인 강준만과 전남의 철학자 김상봉이 믿음직스럽습니다. :)

블루캣 2008-05-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새벽에 누군가 인터넷에 '하늘도 울고 있다고 했죠' 표현이 고전틱하긴 하지만...달리 다른 표현은 생각나지 않는군요! 저녁에 다시 모일 사람들을 위해 오후엔 울음을 그친다고 했습니다.(기상청이...)

이잘코군 2008-05-28 11:09   좋아요 0 | URL
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오늘 저녁에도 모여야 하니까요. 하루라도 빠질 순 없죠.

무스탕 2008-05-28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민심은 천심이라고.. 광우병 없던시절, 달나라에 토끼 산다고 믿던 시절부터 나랏님들은 백성을 받들고 사는 법을 알았는데 자기를 나라 대표로 만들어준 국민들을 언제까지 무시하고 모른척하고 잘 먹고 잘 살런지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볼겁니다!!

이잘코군 2008-05-28 11:10   좋아요 0 | URL
주인이 한표씩 행사해서 고용한 머슴이 주인 말을 듣지 않고 있습니다. 그럼 해고해야죠.

caren 2008-05-28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그제 청계광장 갔는데 정말이지 평화스런 집회였어요.
어제는 못 가고 오늘은 우산이라도 받쳐 들고 다시 가봐야 겠네요.
대통령을 뽑은 건지, 독재자를 낳은 건지 답답~한 요즘이지만
미래 한국을 위해서라도 시민들이 나서서 막아야죠.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같이 해요^^

이잘코군 2008-05-28 11:10   좋아요 0 | URL
네. 평화집회였습니다. 어제 코스가 이상하게 도는 바람에 - 그제처럼 해야하는데 - 도로 양쪽이 잠시 혼란스러워지긴 했지만요. 같이 해요. :)

순오기 2008-05-28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국민들이 아우성쳐도 귓구멍 틀어막고 모른 척하는 저들에게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방법으론 딱이겠죠. 외신들도 보도를 하는 것 같은데...정부보다 똑똑한 국민이 주인 정신을 확실히 보여줘야죠. 수고하시고요~ 응원합니다!

이잘코군 2008-05-28 12:27   좋아요 0 | URL
네 이준기가 그랬다죠. 신문고를 두드리다 못해 반응을 않으니 거리로 나오는거라고. :) 맞는 말입니다. 국내 언론 통제하면 끝나는줄 아나본데 외신이 조명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망신을 당해봐야 정신 차리려나 봅니다.

yayanim 2008-05-28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엊저녁 청계천으로 가지않고 얼떨결에 광화문역 근처 작은 규모의 집회에 참여하게 됐는데 쁘락찌들과의 신경전이 상당하더군요. 큰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단 수십명이서 인도로 행진을 하는데도 한개 중대가 막아서질 않나... 황급하게 다들 가게안으로 피신(?)하고 두명은 연행됐는데 연행된 그 두명마저도 쁘락찌였다더군요. 그러다 어찌하다보니 단 네명만이 남아 밀리오레까지는 가긴 했습니다만 결국 시위대열에 합류한건 저 한명뿐이었네요.
아무튼 오늘 나오실거라면 한번 뵜으면 좋겠습니다.

이잘코군 2008-05-28 17:22   좋아요 0 | URL
어제 광화문쪽에서도 작게 뭐가 있었군요. 사복경찰들이 시위대 안에 들어와서 자꾸 폭력시위를 조장하는거 같습니다. 이건 뭐 배후세력이 경찰이니, 경찰이 경찰 잡겠다고 하는 형국입니다. -_- 형사-도둑놈 놀이하나. 어릴적 하고팠는데 왕따여서 못했던지 나이 먹고 그 놀이가 갑자기 하고파졌나봅니다. 큭큭. 어제 저도 밀리오레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집에 왔는데, 대치상황이었어요. 그리고는 아마도 뉴스를 보니 길을 터주는 척 하면서 에워쌌나봅니다. 개xx들. 에혀 오늘, 쉴까 했는데 가봐야겠네요. 7시 넘어 도착할거 같은데 전화드리겠습니다.

비로그인 2008-05-28 16: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로그에서는 어떻게 하는걸까 궁금했는데 주소 밝혀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촛불 밝힐게요


그런데 다 잡아가고도 남지 않을까요. 매우 씁쓸합니다.

이잘코군 2008-05-28 17:20   좋아요 0 | URL
네 주소 모르셔서 못하시는 분 계실까봐. 저도 글샘님 블로그 통해서 갔는데, 이상하게 제 촛불은 링크가 안되더라고요. 몇명까지 잡아가나 한번 해보라죠 뭐. 쩝. 잡아가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는거 같습니다. 이젠 시민들이 봐도 상관없다는 식인가 봅니다.

전호인 2008-05-28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로의 회귀인 듯 하여 그저 씁쓸함을 금할 길 없습니다.
여러 일정이 겹치는 바람에 같이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음만은 같이 할 거고요 기회가 되면 가족과 같이 다녀오겠습니다.

이잘코군 2008-05-28 17:49   좋아요 0 | URL
네. 제가 태어나던 시점으로 돌아가나봅니다. 인생 다시 시작하라고. -_- 지금 인생도 나쁘지 않은데 말여요. 그렇게 배려(?)해줄 필요 없는데. 다녀오겠습니다.

2008-05-28 2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8 23: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8-05-2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08년도에 그런 광경을 뉴스마다 보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도 우리나라 좀 변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잘코군 2008-05-28 23:56   좋아요 0 | URL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지금 집에 들어왔는데 오늘은 아주 가관이 아니었습니다. 페이퍼 올리겠습니다.
 


  내일 아침이면 몇몇 언론들이 사진과 함께 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회사에서 칼퇴근하고 떡볶이를 사들고 집에 돌아와 맛있게 먹고는 알란질을 잠시하다 24일 밤에서 25일 새벽까지 발생한 사건 동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리고, 가만 있을 수가 없어 외출한다하고 집을 나섰다. 몇몇 지인들에게 함께 가자 메세지를 보냈지만 아마도 바빴던지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밴드의 보컬이었던 녀석인데 휴학을 밥먹듯(?) 했던 녀석이라 아직 대학생이다. 동참 의사는 밝혔지만 그 녀석이 촛불집회에 참가하기엔 이미 우리의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던지라 어쩔 수 없이 홀로, 아니 수만명의 남녀노소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행진을 주도하는 차량이 앞장 서고 그 뒤를 플랜카드가 따랐다. 그리고 난 그 뒤에 있었다. 어쩌면 내일 나갈 수많은 온/오프 언론에서 내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자리는 어쩔 수 없다. 이뻐서 찍어간거면 좋겠다만 못생겨도 앞에 있으면 찍힐 수밖에 없다. 엠비씨, 케이비에스가 보였고, 알 수 없는 수많은 언론들이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연신 플래시를 터뜨려댔다. 소라광장에서 시작된 집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열시경 끝났고,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 행진!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대열을 지어 거리로 나갔다.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끝을 알 수 없는 행렬이었다. 어마어마했다. 소라광장에 모인 인원보다도 행진 인원이 더 많아 보였다. 착시현상이 아니었다. 분명. 소라광장에서 종로일대, 시청옆을 돌아 명동으로, 그리고 명동과 남산방향 터널을 통과해 다시 명동으로, 종로로, 참 많이 걸었다. 시계는 어느덧 열한시를 훌쩍 넘겼고, 구경하던 많은 시민들 중 일부는 우리의 행진에 동참했다. 사람이 붐비는 종로와 명동 일대를 한바퀴 돌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잇는 행렬이 끝을 알 수 없었다. 길다란 일직선 도로에서 뒤를 돌아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언론은 분명 3천명이라 할 것이다. 또. 그러나 그건 3만명이면 3만명이지 고작 3천명은 아니었다.
 
  폭력경찰의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어제도 모였고, 오늘도 모였다. 나와 같은 전형적인 직장인 가방을 맨 이들도 있었고, 빡빡이 남중생도 있었고, 여고생은 엄청 많았다. 할아버지도 동참했고, 부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고, 엄마와 딸이 손잡고 나온 장면도 목격했다. 그들은 빨갱이도, 특정단체에 소속되어 지시를 받은 이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가슴에 담은 분노를 안고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나처럼 혼자 온 이들도 많았다. 혼자여서 외롭겠단 생각은, 버스에서 내리며 이미 끝났다. 누구와 왔느냐, 몇명이서 왔느냐는 중요치 않았다. 거기 있는 이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므로.  

  열한시십분경. 다시 종로로 돌아온 우리들을, 경찰이 막아섰다. 얼마 되지 않는 경찰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경이었다. 밖에서 만나면 나한테 형 하고 부를 그런 나이의 전경이었다. 그런 '애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우리 앞을 막아섰다. 물러나라 외쳤다. 비키라고 외쳤다. 하지만 비키지 않았다. 나와 함께 맨 앞에 있던 건장한 남정네 하나는 매우 분노했고 욕을 했고, 뭔가를 던지고 싶어했으나 던질 게 없었다. 그래 고작 던진다는게 가지고 있던 팜플릿 한 장이었다. 그러나 그걸 막았다. 그가 종이를 던지든, 돌멩이를 던지든, 다음날 신문엔 폭력시위대라고 보도될 것이므로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던질 것도 없고, 가슴에 분노만 가득한 그를 막아섰다.

  나는 밥벌이를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쉬는 날이 아니므로.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한 대여섯정도였다. 혹 보이지 않는 저 뒤 행렬에 더러 몇이 더 있을지 모르겠다만, 내가 있던 그곳에선 정확히 대여섯 정도만이 귀가를 서둘렀다. 내일 출근하더라도 열한시반까지는 그곳에 있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경찰과 마주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은 상황에서 이미 장시간 대치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고, 그 '장시간'을 버틸 시간이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오늘밤, 내일새벽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부디 어제와 같은 강제연행과 폭력사태가 없길 바랄 뿐이다. 그 자리에 모여있던 중학생, 고등학생, 아저씨, 아줌마, 부부, 아줌마와 딸, 할아버지, 직장인들이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내일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행진은 오늘로 끝이 아닐 것이다. 이제 촛불시위는 그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 거리행진으로 머릿수를 늘리며 분노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밖에 없다. 5만명, 10만명, 50만명이 거리로 나오는데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로 그치지 않는다. 절대로. 나는 내일도 오늘 만난 그들을 만나러 소라광장으로 향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거리에 구경하던 이들이  속속들이 행렬에 동참하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모두 브이의 가면을 쓰고 나와 거리를 행진하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

  내일 나오실 분은 번호와 함께 속삭여주시면 그곳에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 연락처를 아시는 분은 따로 연락주셔도.)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권이란다. 양심, 사상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인정된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집회, 시위, 출판, 언론의 자유 또한 인정되어야 완전한 기본권이 된다는 생각에서란다. 그러므로 시위는 타인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칠 위험성이 없는 한 허용되어야 하는 거란다.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이야." (<10대와 통하는 정치학> 中)

  그렇다면 질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일까? 답은 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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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08-05-27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촛불 시위에도 꿈쩍 않는 정부를 향해, 우리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현실이 참 막막합니다~~ 부디 다치는 사람들이 없기를...

Arm 2008-05-27 0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승리가 약속되어 있어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불의가 넘쳐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해 묻고, 허위가 뒤덮고 있기 때문에 진실을 말하기 위해 싸운다."
- 서경식의 <난민과 국민 사이> 중에서.

Mephistopheles 2008-05-27 0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브이 포 벤데터..
지금 시국과 어쩌면 맞아 떨어지는 영화로 볼 수 있어요..
영화 속에선 브이 라는 도화선 같은 열성 혁명가가 있었다는 차이점을 빼곤요..^^

비로그인 2008-05-27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멋있어요.

무스탕 2008-05-27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애' 같은 전경들도 지금 신분이 '전경'이라서 어쩔수 없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지 아니었으면 아프님의 뒷줄에 늘어서 있었을 거에요.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2008-05-27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8-05-27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제 몫까지 소리질러 주세요!!!

2008-05-27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블루캣 2008-05-27 1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은 미친소보다 혈압올라 먼저 쓰러질거 같다는...국민을 위한 정부, 국민을 위한 경찰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에휴~!!!

2008-05-27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8 0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28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5-31 1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돈 키호테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8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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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고나니 기왕에 읽는거 시공사에서 나온 두꺼운 완역본으로 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쉽고 편하게 재밌게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하다.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이라 완역본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자르고 붙여 편집한 것인지 알 수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치만, 돈 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딱 최소한 접할 만큼은 접한 듯하니 이 정도로 만족.

  철학자 김용규씨가 얼마전(?) 한겨레신문 토요일자 칼럼란을 통해 - 지금은 연재를 안하신다 - 두 차례에 걸쳐 돈 키호테 이야기를 하신 바 있다. 그만큼 다른 고전작품들보다 돈 키호테를 가지고 하고픈 말이 많으셨던듯 하다. 먼저 김용규는 "돈 키호테는 이상주의자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상주의를 ‘현실적 가능성을 무시하고 이상의 실현을 삶의 목표로 하는 공상적 또는 광신적 태도’ "라고 규정하면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가진 이상은 순결한 이상이었다. 돈 키호테를 둘러싼 전자의 해석은 칼 마르크스에 의한 것인데 마르크스는 돈 키호테를 "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같이 "추상적 원칙에 의해" 세계를 해석한 "잘못된 의식의 화신" "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김용규는 그럼에도 돈 키호테에게는 다른 이상주의자들이 가지기 어려운 미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 희생에 의한 이상 실현"이라고 한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인류의 이상은 숱한 사상가, 혁명가, 종교인에 의해서 시대를 거르지 않고 주장되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온전하게’ 성취되지는 못했다. 각각의 이유야 많다. 그러나 공통적인 원인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모두들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면서도, 그 이상을 실현하는 데 요구되는 희생은 떠맡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누구도 “남의 뺨에 흐르는 땀에서 제 먹을 빵을 짜내면서”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이상이란 ‘단지 꿈꾸고 바라기만 하는 공허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희생을 대가로 이루어가야만 하는 고귀한 어떤 상태’인 것이다."

  돈 키호테는 성직자들이 앉아서 기도나 드리고 있던 시절, 비록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몸으로 노력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곳곳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못생긴 동네처녀를 공주라고 하질 않나, 낡은 여관을 뻑쩍지근한 성이라는둥 엉뚱한 소리, 엉뚱한 짓을 일삼고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력기사로서 꿋꿋이 나아간다. 그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소설 속에서 그렇게 묘사되고 있지만 그는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사회를 위해 한발 한발 정진해나가고 있다. 비록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헛된 망상이라고 놀리지만. 

  이상사회는 완전하지만 도달하기 어렵다. 현실이기보단 비현실에 가까우며, 그것은 차라리 꿈꾸지 않느니만 못해 보인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자기 나름의 이상사회를 그리고 그 이상사회로 다가가기 위한 철학을 세웠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키는 부문은 이상사회였다. 플라톤이 그러했고, 헤겔도 그러했고, 칸트도 그러했다. 이들의 철학을 분야로 나누는 건 우습지만, 그들이 마지막에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 곳은 정치철학이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이상사회를 꿈꿨지만 아무도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다. 실현 불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현불가능하다하여 꿈꾸지 말란 법도 없다. 개인의 자아실현은 꿈을 꾸면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과 노력이야말로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드는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상이란 언제나 ‘아직은’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를 부추기고 불편하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이것이 이상의 본래적 가치이며 역할이다. 따라서 진정한 이상주의자는 밤마다 희망을 쓸어안고 잠들고 아침마다 길 떠나는 자다."

  우리는 이상사회를 꿈꾸고 있는가. 그리고 있는가.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현실을 보면 너무나 멀고 암울하기만 하다. 국민으로서 누리고자 하는 기본적인 가치조차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집나간 민주주의를 찾아 길떠난 시점에서, 우리에게 이상사회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다. 그러나 현실이 암울하다 하여 이상을 접어버릴 순 없다. 이토록 참담한 현실에서도 우리는 이상을 꿈꿔야 한다. 그리고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거꾸로 퇴행하는 역사를 되돌리고, 우리의 권리를 지키며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어쩌면 이상사회는 국민 모두가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받고 누릴 수 있는 사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본다. 그것이야말로 이상사회가 아닐까하고. 별다른게 없다. 그 옛날 선비들이 꿈꿨던 무릉도원이나 기독교의 천국이 이상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기본권을 보장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날이 이상이 실현된 날이 아닐까 싶다. 그 날을 위해 한 발씩 내디디기에도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이상을 위해 함께 가자. 돈 키호테처럼. 돈 키호테는 혼자여서 세상이 그를 비웃었을지 모르나, 우리가 함께 가면 우리가 세상을 비웃는다. 한 두명의 돈 키호테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동참해야 한다. 수많은 돈 키호테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p.s. 파란색 인용문은 모두 김용규씨의 한겨레 칼럼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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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05-25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돈키호테 완역본을 사놓고도 보지않고 곱게 책장에 꽂아두기만 했는데....
돈키호테들이 세상을 비웃을 수 있는 그런날이 보고싶네요. 먼저 책을 읽어야할까요?

이잘코군 2008-05-26 00:01   좋아요 0 | URL
시공사 것을 가지고 계시는군요. ^^ 매우 두껍다고 들었는데. 저 역시 수많은 돈 키호테가 거리로 나와 세상을 비웃기를 희망합니다. 그들의 편력을 끝낼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10대와 통하는 정치학 - 고성국 박사가 들려주는 정치와 민주주의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
고성국 지음, 배인완 그림 / 철수와영희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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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대들이 거리로 나서고 있다. 광우병 걸린 소를 먹기 싫다며 그들이 직접 거리로 나왔다. 한쪽에서는 좌익반동세력들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고 말하고, 한쪽에서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라 말한다. 나는 후자의 입장이다. 어떤 이는 둘 다 아니고, 소비자가 잘못 산 상품에 대해 리콜 운동을 벌이는 것이라고도 했지만, 그렇게본다 하더라도 희망적이다. 최근 백분토론에 전화참여한 양선생님은 지금 촛불집회와 이명박 대통령 발언 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전 생략) 국민은 소비자인거죠. 국민의 건강과 관련된 서비스를 정부에서 해줘야 하는거죠. (중략) 반대를 하면 어린애들이 몰라서 그런다, 정치세력이 뒤에 있다, 그러면서 국민들을 말 잘 못알아듣는 어린애들 취급을 하지 않았습니까. (중략) 자동차 회사로 예를 들면요, 우리국민인 소비자가 자동차를 샀단 말입니다. 근데 의자가 좀 불편해요, 그게 고소영 강부자 내각에요, 핸들링이 좀 안좋아요, 영어몰입교육이에요, 근데 참았어요, 엔진이 힘이 없어요, 대운하 정책이에요, 그래도 참았단 말이에요, 근데 이 차가 브레이크가 안들어요, 이게 소고기 문제에요, 소비자 입장에서 지금까지는 그래도 다 참겠는데 더 이상은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하자를 발견했단 말이에요, 그래서 소비자인 국민이 이 자동차를 리콜을 시키려는데 회사에서는 뭘 모르는 소비자가 좋은 상품 모른다고 말을 해왔단 말이죠. (이하 생략)"

  대한민국이라는 회사의 CEO(이명박)와 그 직원들(공무원, 한나라당)이 소비자(국민)의 불만을 제대로 듣지 않고, 좋은 상품을 못 알아본다고 큰소리 치는 형국이라는 말인데, 지금 상황을 아주 재밌게 적절하게 표현한 말이 아닐까 싶다. 십대들을 소비자의 일부로 본다면 상품이 맘에 안들고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해서 거리로 나와 시위를 하는데 회사는 물대포를 쏘고 강제연행하고 있다. 어제 본 동영상에도 중학생 한 녀석이 경찰에게 맞아 아파하는 모습이 보였다.

  무엇이 십대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들었을까. 학생들이 집회에 나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우리는 학교에서 배운대로 하고 있을 뿐이에요." 그렇다. 그들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하고 있을 뿐이다. 선생님은 그렇게 가르쳤고, 학생들은 그렇게 배웠다. 그런데 선생님은 배운대로 실천하는 학생들을 잡아들인다고 거리로 나왔고, 학생들은 배운 것을 실천하겠다고 거리로 나왔다. 무엇이 잘못되었을까. 잘못된 건 그렇게 가르치고도 하지말라고 말하는 선생들이다. 그리고 이 나라 정부다.  

  <10대와 통하는 정치학>은 철수와영희에서 나온 '10대를 위한 책도둑 시리즈' 1권이다. 이 책은 중고생이라면 알고 있을 정치에 관한 기본 상식들을 쉽고 재미나게 친절하게 풀어놓고 있다. 정치가 뭐에요, 좋은 정치와 나쁜 정치 뭐가 다른가요, 좋은 정치 어디서부터 시작하나요, 민주주의가 뭐에요, 민주 정치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어요, 기본권이 뭐에요, 기타 등등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던져놓고 저자가 쉽게 답해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 책은 전혀 정치적이지 않다. 좌편향도 우편향도 아니며, 객관적인 있는 그대로의 사실만을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전혀 정치적이지 않은 이 책의 가르침은, 교과서의 그것과도 어긋나지 않아 보이는데, 여기 적혀 있는대로라면 지금의 십대들의 행보는 문제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왜 그들을 문제삼는가. 수능공부해야 할 녀석들이 도서관에 안가고, 야자 빼먹고 거리로 나온 것이 문제인가. 학원다니라고 열심히 벌어다 학원비 매달 채워주고 있는데, 그거 한 번 빼먹어서 문제인건가. 그렇지 않다. 학생들이 두려운게다. 시민단체가 들고일어나면, 노동자가 들고일어나면, 에이 또 이 녀석들이네 하면서 무시하면 되는데, 전혀 나오지도 않던 머리에 피도 안마른 새파란 녀석들이 거리에 나와 "미친소는 너나 쳐드삼" 이러고 있으니 그들이 두려운게다. 그러니 교육청 직원과 교감이 토요일날 자리배치까지 다 짜가면서 거리에 나와있지.  

  이 책의 장점은 매우 친절하고 쉽게 풀어썼다는데 있으며, 단점은 너무 문답형식에 따르려다보니 화면구성이 지루하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만화와 곁들여진 본문 서술이 끝나고 나면 뒤에 문답형식의 장이 계속 나오는데, 계속 단조로운 같은 구성이 반복되어 지루함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또 이 책의 특징이라면 특징이기도 하다. 알고싶은 질문을 찾아서 해당 부분만 찾아 읽으면 되는. 마치 각종 사이트 고객센터란에 있는 '자주 하는 질문' 코너 같은 느낌이랄까. 왜 그런 코너들 보면 알고 싶은, 궁금한 부분을 깔끔하게 설명해주지 않나.

  청소년용 서적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중고생이 읽을 마땅한 정치입문서격인 책이 없는 차에 이 책은 괜찮은 교과서 역할을 해줄 수 있을 듯 하다. 다 알고 있고, 나도 오래전 배운 내용이지만, 읽으면서 머리 속이 말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이 읽어도 신선한 책이다. 당연한 것을 모르고 살면 피해보게 마련이다. 다음은 보너스 밑줄.

 "집회,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권이란다. 양심, 사상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인정된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집회, 시위, 출판, 언론의 자유 또한 인정되어야 완전한 기본권이 된다는 생각에서란다. 그러므로 시위는 타인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칠 위험성이 없는 한 허용되어야 하는 거란다.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이야." 그렇다면 질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일까? 답은 각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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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미로 2008-06-19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태에 딱 맞춰서 잘 나온 책 같네요^^ 어린이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권해야 겠군요^^

이잘코군 2008-06-19 22:19   좋아요 0 | URL
네 지금 딱 아이들이 읽어야 할 책입니다. 교과서에 뭐라 쓰여있는지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한다면 그들이 거리로 나오는건 당연한 수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