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아침이면 몇몇 언론들이 사진과 함께 기사를 내보낼 것이다. 회사에서 칼퇴근하고 떡볶이를 사들고 집에 돌아와 맛있게 먹고는 알란질을 잠시하다 24일 밤에서 25일 새벽까지 발생한 사건 동영상을 다시 찾아보았다. 그리고, 가만 있을 수가 없어 외출한다하고 집을 나섰다. 몇몇 지인들에게 함께 가자 메세지를 보냈지만 아마도 바빴던지 동참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밴드의 보컬이었던 녀석인데 휴학을 밥먹듯(?) 했던 녀석이라 아직 대학생이다. 동참 의사는 밝혔지만 그 녀석이 촛불집회에 참가하기엔 이미 우리의 발걸음이 시작되고 있던지라 어쩔 수 없이 홀로, 아니 수만명의 남녀노소 사람들과 함께, 걸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행진을 주도하는 차량이 앞장 서고 그 뒤를 플랜카드가 따랐다. 그리고 난 그 뒤에 있었다. 어쩌면 내일 나갈 수많은 온/오프 언론에서 내 얼굴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자리는 어쩔 수 없다. 이뻐서 찍어간거면 좋겠다만 못생겨도 앞에 있으면 찍힐 수밖에 없다. 엠비씨, 케이비에스가 보였고, 알 수 없는 수많은 언론들이 앞에서 뒤에서 옆에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연신 플래시를 터뜨려댔다. 소라광장에서 시작된 집회는 예상보다 빠르게 열시경 끝났고, 행진이 시작됐다. 행진! 행진!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모두 대열을 지어 거리로 나갔다. 그곳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끝을 알 수 없는 행렬이었다. 어마어마했다. 소라광장에 모인 인원보다도 행진 인원이 더 많아 보였다. 착시현상이 아니었다. 분명. 소라광장에서 종로일대, 시청옆을 돌아 명동으로, 그리고 명동과 남산방향 터널을 통과해 다시 명동으로, 종로로, 참 많이 걸었다. 시계는 어느덧 열한시를 훌쩍 넘겼고, 구경하던 많은 시민들 중 일부는 우리의 행진에 동참했다. 사람이 붐비는 종로와 명동 일대를 한바퀴 돌다보니 꼬리에 꼬리를 잇는 행렬이 끝을 알 수 없었다. 길다란 일직선 도로에서 뒤를 돌아보아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떤 언론은 분명 3천명이라 할 것이다. 또. 그러나 그건 3만명이면 3만명이지 고작 3천명은 아니었다.
폭력경찰의 행태에 분노한 시민들이 어제도 모였고, 오늘도 모였다. 나와 같은 전형적인 직장인 가방을 맨 이들도 있었고, 빡빡이 남중생도 있었고, 여고생은 엄청 많았다. 할아버지도 동참했고, 부부가 함께 온 경우도 있었고, 엄마와 딸이 손잡고 나온 장면도 목격했다. 그들은 빨갱이도, 특정단체에 소속되어 지시를 받은 이들도 아니었다. 그들은 그야말로 가슴에 담은 분노를 안고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그 자리에 자발적으로 모인 이들이었다. 나처럼 혼자 온 이들도 많았다. 혼자여서 외롭겠단 생각은, 버스에서 내리며 이미 끝났다. 누구와 왔느냐, 몇명이서 왔느냐는 중요치 않았다. 거기 있는 이들 모두가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으므로.
열한시십분경. 다시 종로로 돌아온 우리들을, 경찰이 막아섰다. 얼마 되지 않는 경찰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경이었다. 밖에서 만나면 나한테 형 하고 부를 그런 나이의 전경이었다. 그런 '애들'이 내 앞을 막아섰다. 우리 앞을 막아섰다. 물러나라 외쳤다. 비키라고 외쳤다. 하지만 비키지 않았다. 나와 함께 맨 앞에 있던 건장한 남정네 하나는 매우 분노했고 욕을 했고, 뭔가를 던지고 싶어했으나 던질 게 없었다. 그래 고작 던진다는게 가지고 있던 팜플릿 한 장이었다. 그러나 그걸 막았다. 그가 종이를 던지든, 돌멩이를 던지든, 다음날 신문엔 폭력시위대라고 보도될 것이므로 그런 사태가 벌어지지 않도록 던질 것도 없고, 가슴에 분노만 가득한 그를 막아섰다.
나는 밥벌이를 위해 집으로 돌아왔다. 내일은 쉬는 날이 아니므로. 그러나 그 자리에서 이탈하는 사람은 나를 포함한 대여섯정도였다. 혹 보이지 않는 저 뒤 행렬에 더러 몇이 더 있을지 모르겠다만, 내가 있던 그곳에선 정확히 대여섯 정도만이 귀가를 서둘렀다. 내일 출근하더라도 열한시반까지는 그곳에 있자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경찰과 마주하며 땅바닥에 주저앉은 상황에서 이미 장시간 대치는 불보듯 뻔한 일이었고, 그 '장시간'을 버틸 시간이 내겐 주어지지 않았다. 오늘밤, 내일새벽 무슨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부디 어제와 같은 강제연행과 폭력사태가 없길 바랄 뿐이다. 그 자리에 모여있던 중학생, 고등학생, 아저씨, 아줌마, 부부, 아줌마와 딸, 할아버지, 직장인들이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 내일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란다.
행진은 오늘로 끝이 아닐 것이다. 이제 촛불시위는 그 분노를 감당할 수 없다. 거리행진으로 머릿수를 늘리며 분노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밖에 없다. 5만명, 10만명, 50만명이 거리로 나오는데 이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로 그치지 않는다. 절대로. 나는 내일도 오늘 만난 그들을 만나러 소라광장으로 향할 것이다. 우리가 얼마나 분노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거리에 구경하던 이들이 속속들이 행렬에 동참하던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마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의 마지막 장면 같았다. 정해진 시간에 모두 브이의 가면을 쓰고 나와 거리를 행진하는. 이대로 주저앉지 않는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번 해보자.
내일 나오실 분은 번호와 함께 속삭여주시면 그곳에서 연락드리겠습니다. (제 연락처를 아시는 분은 따로 연락주셔도.)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집회, 시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권이란다. 양심, 사상의 자유가 기본권으로 인정된다면 그것을 표현하는 집회, 시위, 출판, 언론의 자유 또한 인정되어야 완전한 기본권이 된다는 생각에서란다. 그러므로 시위는 타인에게 심각한 손해를 끼칠 위험성이 없는 한 허용되어야 하는 거란다. 그것이 민주주의 정신이야." (<10대와 통하는 정치학> 中)
그렇다면 질문.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일까? 답은 각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