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청계천, 청계천. 세번째입니다. '이명박과 미친소'(무슨 댄스그룹명 같습니다. 근데 잘 어울립니다.)로 인해 집회에 참여한게 오늘로 세번째 입니다. 여의도의 침묵시위보다 청계천의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가 훨씬 좋았습니다. 오늘은 어제만큼은 아니었지만, 어제와 비슷한 규모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르지 않고 곧장 청계천으로 향했습니다. 이미 집회는 시작했고, 대략 천여명 정도가 모여있는 듯 했습니다. 어제와 같은 위치로 가서 자리를 지키며 구호를 외치고, 함성을 지르고, 촛불을 높이들며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아니 이게 뭡니까. 앞에 있어서 몰랐는데 어느새 사람들이 벌떼같이 모였습니다.
여덟시에 마친다 했습니다. 사회자는. 그러나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엠비씨가 아홉시 뉴스에 생방송을 하겠으니 연장해달라고 요청했답니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엠비씨 엠비씨를 외치는데 큭큭 어찌나 재밌던지. 마치 엠비씨라는 댄스그룹을 부르는 듯 했달까요. 어제 집회에 참여했고, 두 눈으로 연행 전까지의 장면을 모두 보고 왔는데, 아침 신문은 역시나 역시나 왜곡하더군요. 숫자를 줄이는건 이제 그네들의 일상이고 - 집회인원을 아마도 경찰에 물어보고 쓰나봅니다 - 평화집회가 폭력집회로 바뀌었다느니 어쩌구저쩌고. 어이가 없어라. 집나간 어이를 찾습니다.
역시나 어제 새벽에도 스물몇명이 연행됐다고 하지요. 지나번 연행된 서른몇명은 '불구속 입건'되었다고 하고. 불구속 입건. -_- 뭡니까 장난합니까. 출근할 직장인 잡아다, 집에서 애볼 주부 잡아다, 뭐하겠다는겁니까. 월드컵 때 거리로 나와 광분하던 시민들은 왜 잡아들이지 않았답니까. 만단위가 아닌 십만단위라서 안잡아넣었답니까. 어이 없는 쉐끼들. 검찰 스스로 그랬다죠. 지금의 시위 양상은 특정 배후 세력이나 주도 세력이 없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우후죽순 참여하는지라 월드컵 때와 비슷하다고. 그래서 구속시키기 난감하다고. 구속시키려거든 우리처럼 질서정연하게 줄지어 다닌 애들이 아닌 월드컵에 거리에 발가벗고 나와 미친듯이 돌아댕기던 그네들을 잡아들여라 꼴통들아.
대통령은 애써 이런 장면들을 보기 싫었던지 중국으로 토껴버리고, 경찰청장이며 검찰총장이며 아주 오랫만에 어이쿠 월척이다 잘 걸렸다 하는 마음인지, 다 잡아들이겠다고 하고. 어휴. 왜 그동안 경찰들 스트레스 풀 기회를 마련하지 못해 고민이 많았나보지. 잘됐다 이녀석들. 오랫만에 비오는 날 개패듯이 -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았다 - 한번 패보자 이런 심보인가요? 오늘도 거리행진은 계속 됐습니다. 아홉시 엠비씨 방송이 끝나고 집회를 마쳤고, 사람들은 다시 행진! 행진! 을 외쳤습니다. 집회를 마쳤으니 갈 사람들은 가고, 남을 사람들은 남아 행진을 시작했습니다. 절대 주동자, 배후세력 없습니다.
한 손에는 촛불을, 한 손에는 작은 카드를 들고, 저벅저벅 앞으로 나가며, 외쳤습니다. "이.명.박.은. 물.러.나.라!", "연.행.자.를.석.방.하.라!", "협.상.무.효. 고.시.철.회!" 심심하지 않게 구호를 바꿔가며 때로는 "이명박은 물러가라 울라울라!" 노래를 부르며 한 발짝 한 발짝 내디뎠습니다. 청계천에서 종로로, 종로에서 명동으로, 주변을 빙빙 돌면서 어제와는 조금 다른 코스로 행진을 계속 했습니다. 어제보다 많은 전경들이 주변에 포진해있었고, 그들은 거리행진 한 시간(?)만에 우리의 앞을 막았습니다. 사거리에서 두 곳을 원천봉쇄했습니다. 우리는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길은 많았으니까. 오던 길을 돌아 명동으로 다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명동거리 안쪽으로.
사람들은 건물에서 구경하고, 어떤 분은 호텔 노래방에서 손을 흔들며 호응을 하고(왜 있잖아요. 안과 밖이 서로를 볼 수 있는 누드노래방. 호텔건물인데 이런게 있더라구요.), 길거리 악세사리 아저씨는 함께 플랜카드를 들고 응원했습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밖으로 나와 우리를 바라봤습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역시나 우리의 대열에 동참했고, 처음에 어제보다 못했던 인원으로 시작한 대열은 거대한 한 집단을 만나 두 배가 되었습니다. 어제와 맞먹는 인원이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많이 지나고 그들은 지쳤고, 목소리는 작아졌으나, 분노를 보여주기 위해 있는 힘껏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리고, 명동 밀리오레 근처에서 전경은 우리를 압박해왔습니다. 그들은 방패를 들고 우르르 달려들었습니다. 시위대 앞을 막았고, 다시 대치했습니다.
제가 본 건 또 여기까지입니다. 항상 사건은 제가 집에 돌아온 뒤에 생기더군요. 경찰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 어제도, 오늘도, 밥벌이를 위해 발을 뗐습니다. 그들을 남겨놓고 오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11시를 넘어가면서 규모는 절반이하로 줄었고, 전경들은 그때를 기다려 압박해왔습니다. 현재 시각 한시 십분. 조만간 또 사태가 벌어질 것이고, 내일 아침엔 스물 몇명이 또 강제연행되었다는 기사가 나오겠지요. 일부는 방패에 맞아 쓰러질 것이고, 일부는 땅바닥에 질질 끌려다니겠지요.
오늘도, 고등학생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손에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촛불을 들고 시위대 한 편을 차지하고 있던 여고생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청계천 단상에 오른 이들 중에는 직장인와 아이엄마를 제외하고 여고생이 셋이나 됐습니다. 친구들은 학원에서, 독서실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시간에, 그들은 해야 할 공부가 많을텐데, 친구들과의 경쟁에서 한참 뒤쳐질 것이 뻔한데, 분노를 삭히지 못해 그곳에 올라왔습니다. 교복을 입은채로.
10대가 시작한 촛불 시위, 이제 20대와 30대가 이어받습니다. 그들은 이미 충분히 제 몫 이상을 해주었습니다. 아니 그들의 몫이 아니었으나 그들이 대신 나왔습니다. 20대와 30대가 이어받는 촛불시위, 전 국민이 이어받습니다. 내일과 토요일 집중 촛불 시위 합니다. 이제 천 단위가 아니라 만 단위의 사람들이 청계천에 모입니다. 10만 단위, 100만 단위가 될 때까지 모입시다. 국민의 머슴이 머슴 역할을 할 때까지 모입시다. 자신을 고용한, 주인을 배신한 머슴을 따끔히 혼내줍시다.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머슴이 머슴 노릇을 할 때까지 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현재 밝힌 촛불 25842개 (http://www.sealtale.com)
p.s. 어제 오늘 연달아 나갔더니 체력이 바닥났는지 오늘은 힘들더군요. 이게 별 거 아닌거 같아도 몇시간 동안 고래고래 소리지르면서 서있고, 행진하면서 에너지 소모가 많은 듯 합니다. 내일은 몸상태를 봐서 갈지 안갈지를 생각해봐야겠습니다. 오늘 페이퍼에 속삭여주신 분, 댓글을 집에 돌아와 봤습니다. 다음에 함께해요.
p.s.2 아침 뉴스를 보니 연행인원 100명이 넘는다 하더군요. -_- 폭력/강제 연행이 되자 남은 시위자들이 경찰들이 폭력행사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닭장차에 들어갔다 합니다. 나 잡아가라고. 참 대단한 분들입니다. 정말로. 좋다. 나 잡아가라. 서로들 잡아가라고. 이런 식으로 수만명이 함께 외치면 다 잡아갈 수는 있으려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