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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키호테 ㅣ 푸른숲 징검다리 클래식 18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정우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7년 12월
평점 :
다 읽고나니 기왕에 읽는거 시공사에서 나온 두꺼운 완역본으로 읽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쉽고 편하게 재밌게 읽었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듯 하다. 청소년용으로 나온 책이라 완역본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는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자르고 붙여 편집한 것인지 알 수 없어,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치만, 돈 키호테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딱 최소한 접할 만큼은 접한 듯하니 이 정도로 만족.
철학자 김용규씨가 얼마전(?) 한겨레신문 토요일자 칼럼란을 통해 - 지금은 연재를 안하신다 - 두 차례에 걸쳐 돈 키호테 이야기를 하신 바 있다. 그만큼 다른 고전작품들보다 돈 키호테를 가지고 하고픈 말이 많으셨던듯 하다. 먼저 김용규는 "돈 키호테는 이상주의자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상주의를 ‘현실적 가능성을 무시하고 이상의 실현을 삶의 목표로 하는 공상적 또는 광신적 태도’ "라고 규정하면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가진 이상은 순결한 이상이었다. 돈 키호테를 둘러싼 전자의 해석은 칼 마르크스에 의한 것인데 마르크스는 돈 키호테를 "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과 같이 "추상적 원칙에 의해" 세계를 해석한 "잘못된 의식의 화신" "으로 평가했다고 한다.
김용규는 그럼에도 돈 키호테에게는 다른 이상주의자들이 가지기 어려운 미덕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자기 희생에 의한 이상 실현"이라고 한다. "더 나은 삶과 세상을 위한 인류의 이상은 숱한 사상가, 혁명가, 종교인에 의해서 시대를 거르지 않고 주장되었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온전하게’ 성취되지는 못했다. 각각의 이유야 많다. 그러나 공통적인 원인들 가운데 중요한 하나는 모두들 자신의 이상에 대해서는 열변을 토하면서도, 그 이상을 실현하는 데 요구되는 희생은 떠맡으려 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버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이 누구도 “남의 뺨에 흐르는 땀에서 제 먹을 빵을 짜내면서” 더 나은 삶과 세상을 만들 수는 없는 법이다. 이상이란 ‘단지 꿈꾸고 바라기만 하는 공허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희생을 대가로 이루어가야만 하는 고귀한 어떤 상태’인 것이다."
돈 키호테는 성직자들이 앉아서 기도나 드리고 있던 시절, 비록 사람들에게 조롱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을 희생해가면서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몸으로 노력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곳곳에서는 그런 장면들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못생긴 동네처녀를 공주라고 하질 않나, 낡은 여관을 뻑쩍지근한 성이라는둥 엉뚱한 소리, 엉뚱한 짓을 일삼고 만나는 사람들로부터 놀림을 받는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편력기사로서 꿋꿋이 나아간다. 그는 헛된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다. 비록 소설 속에서 그렇게 묘사되고 있지만 그는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사회를 위해 한발 한발 정진해나가고 있다. 비록 주변 사람들이 그것을 헛된 망상이라고 놀리지만.
이상사회는 완전하지만 도달하기 어렵다. 현실이기보단 비현실에 가까우며, 그것은 차라리 꿈꾸지 않느니만 못해 보인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자기 나름의 이상사회를 그리고 그 이상사회로 다가가기 위한 철학을 세웠다. 많은 철학자들이 자신의 철학을 완성시키는 부문은 이상사회였다. 플라톤이 그러했고, 헤겔도 그러했고, 칸트도 그러했다. 이들의 철학을 분야로 나누는 건 우습지만, 그들이 마지막에 자신의 철학을 완성한 곳은 정치철학이었다.
과거 역사 속에서 수많은 이들이 이상사회를 꿈꿨지만 아무도 그곳에 도달하지 못했다. 실현 불가능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현불가능하다하여 꿈꾸지 말란 법도 없다. 개인의 자아실현은 꿈을 꾸면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국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더 나은 사회를 향한 열망과 노력이야말로 사회를 좀 더 낫게 만드는 변화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상이란 언제나 ‘아직은’ 실현되지 않음으로써 현실에 안주하려는 우리를 부추기고 불편하게 하고 변화하게 한다. 이것이 이상의 본래적 가치이며 역할이다. 따라서 진정한 이상주의자는 밤마다 희망을 쓸어안고 잠들고 아침마다 길 떠나는 자다."
우리는 이상사회를 꿈꾸고 있는가. 그리고 있는가. 우리가 꿈꾸는 이상사회는 어떤 모습인가. 현실을 보면 너무나 멀고 암울하기만 하다. 국민으로서 누리고자 하는 기본적인 가치조차 무시당하는 현실에서, 집나간 민주주의를 찾아 길떠난 시점에서, 우리에게 이상사회는 너무나 멀리 떨어져있다. 그러나 현실이 암울하다 하여 이상을 접어버릴 순 없다. 이토록 참담한 현실에서도 우리는 이상을 꿈꿔야 한다. 그리고 한 발짝 나아가야 한다. 거꾸로 퇴행하는 역사를 되돌리고, 우리의 권리를 지키며 이상을 실현해야 한다.
어쩌면 이상사회는 국민 모두가 그들의 기본권을 보장받고 누릴 수 있는 사회인지도 모르겠단 생각도 해본다. 그것이야말로 이상사회가 아닐까하고. 별다른게 없다. 그 옛날 선비들이 꿈꿨던 무릉도원이나 기독교의 천국이 이상사회가 아니다. 우리가 기본권을 보장받고,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그날이 이상이 실현된 날이 아닐까 싶다. 그 날을 위해 한 발씩 내디디기에도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이상을 위해 함께 가자. 돈 키호테처럼. 돈 키호테는 혼자여서 세상이 그를 비웃었을지 모르나, 우리가 함께 가면 우리가 세상을 비웃는다. 한 두명의 돈 키호테로는 세상이 변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동참해야 한다. 수많은 돈 키호테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p.s. 파란색 인용문은 모두 김용규씨의 한겨레 칼럼을 인용한 것이다.